All Chapters of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Chapter 41 - Chapter 50

100 Chapters

제41화

성유원은 머리가 지나치게 비상한 탓에 정작 인간적인 온기는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인 이서연과도 그리 살갑지 않았다.집에 돌아온 뒤 김미현 역시 성유원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유미연한테 들었는데 연지아가 친정으로 들어갔다면서?”오늘 김미현이 전화를 건 이유는 연지아의 몸 상태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유미연은 기다렸다는 듯 연지아의 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유미연은 김미현이 성유원처럼 자신들 편을 들어줄 거라 믿었다.하지만 김미현은 곧바로 그녀를 나무랐다. 유미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더는 아무 말도 못 했다.성유원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연지아도 성인입니다.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성인이라고요. 친정에 가서 지내겠다면 그건 본인의 선택이죠.”그가 먼저 이혼을 언급했을 때 연지아는 자신의 처지를 알았고 더는 매달리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었다.연지아가 처음 그의 조력자로 들어왔을 때 감정을 꽤 잘 숨겼지만 그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끝까지 감추고 있었다면 그는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일에서는 확실히 능력이 있었으니까.그러나 그녀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예상치 못한 아이의 존재, 그리고 그와의 결혼... 그의 스물몇 해 인생에서 통제 밖으로 벗어난 유일한 두 가지 일이었다.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김미현이 말을 이었다.“지금 네 아이를 배고 있는데...”“그만 하세요, 할머니. 피곤해요. 이만 끊을게요.”성유원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연지아는 저녁에 강현수 일행과 함께 식사를 했다.동한 은행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손병철이 양보했기에 성유원이 물러선 것이었다. 동한 측 손실도 적지 않았다.손병철은 딸을 심하게 꾸짖지 않았다. 다만 강현수에게 잘 챙겨달라 부탁한 뒤 다시 해성시로 비행기를 탔다.손재인은 술을 꽤 마시며 분을 풀었다. 욕이라도 퍼붓고 싶어 했지만 고성주가 말렸다. 어디서든 들리는 귀가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고성주가 말했다.“지금은 안연
Read more

제42화

연지아는 전화를 받았다.“네, 할머니.”김미현이 물었다.“지아야, 요즘 몸은 좀 어떠니?”“괜찮아요.”“그래, 마침 내일 일정도 없으니 가서 너도 볼 겸 병원 가서 검사도 같이 받자.”연지아는 잠시 멈칫했다.임신 후 오션 빌리지에 머무는 동안 김미현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직접 보러 오고 검진까지 챙기겠다니 결국 관심은 뱃속 아이에게 있는 듯했다.거절할 이유는 없었다.“네, 할머니. 그런데 제가 요 며칠 친정에 있어요. 시간 말씀해 주시면 병원에서 기다릴게요.”김미현이 물었다.“왜 친정에 가 있는 거니?”성유원은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말을 그녀 입에서 꺼낼 수는 없었다.연지아는 담담히 말했다.“오래 본가에 못 간 것 같아서요. 잠깐 다녀오고 싶었어요.”김미현은 타이르듯 말했다.“이틀쯤 있는 건 괜찮다. 그래도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남편은 잘 챙겨야지. 내가 예전에 한 말, 아직도 마음에 안 담아두었구나.”연지아는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꽉 쥐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할머니, 죄송해요. 저는...”“됐다. 검진은 내일 아침 열 시로 하자.”김미현은 말을 끊어버렸다.연지아는 더 말하지 않고 짧게 답했다.“네.”전화를 끊고, 연지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마음을 다잡은 뒤에야 자신이 사는 동으로 향했다.다음 날, 마침 주말이었던지라 연지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배우진이 그녀를 서화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병원은 명한 그룹 산하의 병원이었다.연지아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배우진은 다른 일정이 있어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차를 몰아 떠났다.그녀는 병원 로비 벤치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삼십 분쯤 지나자 김미현이 병원에 도착했다.연지아는 입구에서 김미현을 보았다. 검은 코트를 입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 귀에는 옥빛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는 고풍스러운 웨이브로 말려 있었고 화장은 단정했다. 여전히 고귀하고 단아한
Read more

제43화

연지아는 묵묵히 말을 들으며 김미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예전 같았으면, 성유원과 안연청 사이의 다정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직도 헛된 기대를 품었을지 모른다. 아이가 있으니 끝까지 노력해 이 결혼을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그녀와 성유원의 결혼은 곧 끝에 다다를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미래는 없었다.지금 김미현이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도 결국은 아이 때문이었다. 말의 겉과 속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여전히 남편을 잘 보필하고 밖에서 체면을 세워주는 아내가 되라는 뜻이었다.오늘 갑자기 검진을 핑계로 그녀를 데려온 것도 이미 그녀가 오션 빌리지를 떠났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혹시 바깥에서 성유원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이다.두 사람의 혼인은 대외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지만, 같은 업계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그녀가 성유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도 법적으로는 분명 부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의 명성에 흠이 갈 수밖에 없었다.차가 오션 빌리지 별장 앞에 멈췄다.김미현과 연지아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다.연지아가 놀란 건 오늘 성유원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연청과 함께 있지 않고 옅은 색의 홈웨어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김미현이 연지아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 변화가 없었다.김미현이 다가가 손에 쥔 검사 결과지를 그 앞에 내밀었다.“너도 한 번 봐라.”연지아는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괜히 숨이 조여왔다.성유원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짙은 눈동자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점심 준비됐습니다. 먼저 식사하시죠.”말이 떨어지자 연지아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김미현이 그를 한 번 노려봤지만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그래, 검사지는 이따 보
Read more

제44화

김미현은 오션 빌리지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저 떠나기 전 연지아에게 몇 마디를 더 건넸다. 그녀의 뜻은 분명했다. 이제 시집온 몸이니 이 집에서 잘 지내고 친정에 자주 들락거리지 말라는 말이었다.성유원은 위층 서재로 올라갔다.연지아는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배난화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자 배난화가 물었다.“지아야, 오늘은 언제 들어오니?”연지아는 조용히 말했다.“이모,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배난화는 잠시 말을 멈췄다.“무슨 일 있는 거니?”“할머니가 집에서 몸조리 잘하라고 하셨어요.”배난화는 단번에 상황을 이해하고는 더 묻지 않았다.“오늘도 요가 갈 거니?”“네,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예약했어요.”“그럼 일찍 나올래? 저녁거리 챙겨 갈게.”“네.”전화를 끊고 연지아는 시간을 확인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나갈 시간이 딱 맞았다.잠에서 깨 준비를 마치고 나오려던 순간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성유원과 마주쳤다.연지아가 물었다.“외출하려고?”성유원의 무심한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무슨 일이지?”연지아는 이미 익숙해진 태도로 담담히 말했다.“나도 나가야 하는데 차가 집에 있어서. 지하철역까지만 태워다주면 안 돼?”이십 분 뒤 연지아는 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배난화를 만나 준비해 온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간 있은 일을 들은 배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그 어르신이 그렇게 말했으면 거스르기 어렵지. 두 달만 잘 버티자.”연지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빠랑 상의했어. 헤리국 가기 전에 결혼식 올리자고. 새해에 간단히, 양가 가족만 부르자고 하더라.”두 사람은 지난주 이미 혼인신고를 마쳤으니 이제는 법적으로도 한 가족이었다.연지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네, 좋아요.”식사를 마치고 삼십 분쯤 쉰 뒤 요가 하러 갔다.운동을 마치고 배우진이 데리러 와 먼저 연지아를 오션 빌리지에 내려주었다. 연지아는 내일 시간 되면 차를 가져다 달라고 부
Read more

제45화

성유원은 정말로 연지아와 한 지붕 아래 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사실에 더 마음 쓰고 싶지 않았다.그날 연지아는 손재인에게 연락해 몸 상태를 물었다. 어제 병원에 들르려 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별일 아니에요. 링거만 다 맞으면 퇴원할 수 있대요.”그날 밤 위염이 심하게 도져 이틀간 수액을 맞아야 했다.연지아는 직접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마침 배우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사를 구해두었다고 했다. 상대는 작년에 제대한 군인으로 운전기사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배우진은 연락처를 보내주었다.연지아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현재 배우진의 회사에 있었고 제이드 팰리스에 들러 차를 가져와야 해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도착 30분 전에 연락 주세요.”천천히 걸어 나가며 산책 삼으면 될 일이었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다.열 시 반, 연지아는 별장 정문까지 걸어 나갔다.차가 마침 도착했다.차가 멈추자 기사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키는 180 정도 짧은 머리에 반듯한 이목구비, 단단한 체격이었다. 군 복무를 했다는 게 한눈에 보이는 피지컬이었다.연지아는 차에 올랐다.우현석은 곧바로 준비해 온 자신의 이력서를 건넸다.“확인해보십시오.”연지아는 그의 이력서를 훑었다. 이름은 우현석, 스물여덟 살이었고 어린 나이에 곧바로 입대했다.물론 배우진이 소개한 사람이니 문제는 없을 터였다.“저희 오빠가 얼마로 계약했나요?”“사백만 원입니다.”“당분간만 필요하다는 건 알고 계시죠?”“네, 알고 있습니다.”“지금 어디에 거주하세요?”“신원거리 쪽입니다. 여기까지는 사십 분 정도 걸립니다.”“월셋집인가요?”“아닙니다. 지금은 친척 집에 있고 근처로 옮길 생각입니다.”이 근처는 월세가 만만치 않았다.연지아는 지나가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말했다.“추가로 100만 원 더 드릴게요. 근처에서 방 구하세요. 그냥 회사 복지라고 생각하세요.”“감사합니다. 빠르게 알아보겠습니다.”우현석은 손재인이
Read more

제46화

연지아가 손재인이 있는 병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지아 씨, 왔어요? 그냥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뭘 또 과일까지 사 왔어요.”연지아는 과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아직 반쯤 남은 수액을 보며 물었다.“이거 다 맞으면 또 있는 거예요?”“아니요, 이게 마지막이에요.”“앞으로는 그날 밤처럼 술 그렇게 마시면 안 돼요.”손재인은 웃으며 말했다.“기분 안 좋으면 어쩔 수 없죠. 어디라도 풀어야 하잖아요.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죠.”손재인이 막 수액을 마칠 즈음 강현수도 병실로 들어왔다.점심에는 셋이 병원 근처 식당에서 담백한 음식들로 식사를 했다. 연지아는 며칠 전 학교에서 박대훈을 만난 일을 꺼냈다.그러자 강현수가 말했다.“교수님은 자주 학교에 오셔. 젊은 학생들 보면 본인도 젊어지는 기분이라시더라.”손재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지아 씨가 박 교수님이랑 아는 사이에요?”박대훈은 강현수를 지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다.이내 강현수가 말했다.“내가 지아를 지도할 때 교수님이 많이 눈여겨보셨어. 은퇴하신 뒤에도 따로 가르치고 세미나에도 여러 번 데려가셨지.”강현수가 연지아가 수학과 금융 복수전공에 국제 수학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을 때보다 박대훈 총장이 직접 지도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지아 씨가 얼마나 대단하면 박 교수님이 따로 가르쳐 주셔요.”박대훈은 낙제 제조기로 유명했다. 그의 제자들은 모두 뛰어났지만 그 밑에서 졸업하려면 오육 년은 단단히 단련을 받아야 했다. 물론 강현수 같은 천재는 예외로 오히려 조기 졸업까지 했다.그런데 연지아는 은퇴 후에도 따로 지도를 받을 정도였으니 더욱 특별했다.연지아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지금의 처지를 떠올리면 과거를 입에 올리기도 민망했다.“성유원은 진짜 보는 눈이 없네. 지아 씨처럼 훌륭한 사람 못 알아보고 그런 쓰레기 조각이랑 어울려 다니다니.”연지아는 그저 옅게 웃었다.강현수가 낮게 말했다.“근처에 그 당사자들이 없다고 방심하지 마
Read more

제47화

그다음 이틀 동안 성유원은 밤마다 집에 들어왔지만 연지아와는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그편이 오히려 나았다. 어차피 지금 그녀가 바라는 건 아이를 무사히 낳는 것뿐이었다.김미현의 꾸중 이후 유미연과 오미란은 한결 얌전해졌다. 아침도 꼼꼼히 챙겨주었고 연지아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요가 하러 나갔다. 배난화는 늘 먼저 도착해 저녁을 들고 기다렸다.경원대학교 안에는 아주 유명한 은행나무 길이 있었다. 지금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별무리 같았다.학생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연지아가 있는 행정관 사무실 창밖으로도 그 황금빛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그날 박대훈이 행정관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는 연지아를 보자 또다시 신문을 읽어달라고 했다.사무실 안에서 연지아는 신문을 들고 박대훈에게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사십 분쯤 지났을 때 박대훈은 입을 열었다.“됐네, 여기까지.”연지아는 신문을 내려놓고 그의 텀블러가 빈 걸 보고는 말했다.“물 다시 따라드릴게요.”컵을 들고 정수기 앞으로 갔다. 정수기는 통유리창 옆에 있었다. 물을 받다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익숙한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지나가던 학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눈빛에는 감탄이 담겨 있었다.한창 근무 시간인데도 성유원은 시간을 내어 자신이 아끼는 사람 곁에 서 있었다.연지아는 시선을 거두었다.한때 젊은 날의 꿈이었고 그녀의 전부였던 사람이다. 그랬으니 그가 다른 여자와 나란히 선 모습을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뭘 보고 있나?”박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은행잎이 참 예쁘네요.”그리고 텀블러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박대훈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강현수가 그러던데, 네게 이미 스탠더대학을 추천했다고 하더구나.”연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내년에 아이 낳고 나서 가려고요.”“시댁은 동의했니?”연지아는 손가락을 꽉 쥐었다.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아이를
Read more

제48화

박대훈의 얼굴이 굳어졌다.“가자.”그는 곧장 주차된 곳으로 향했다. 차는 멀지 않은 앞쪽에 세워져 있었던지라 장정민이 문을 열자 박대훈이 올라탔다.성유원은 안연청을 차에 태운 뒤 눈앞을 지나가는 박대훈의 검은 차량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차에 올랐다.눈 깜짝할 사이 황금빛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고 날씨는 점점 차가워졌다.연지아의 배는 날마다 불러왔다. 더는 오래 걷지 못하고 금세 앉아 쉬어야 했다. 옷 입는 일도 점점 힘들어졌고 바지 하나를 입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밤중에 자주 깨 화장실을 가야 했고 허리는 욱신거렸으며 다리에 쥐가 나 깜짝 놀라 깨는 일도 잦았다. 가끔은 숨쉬기조차 버거웠다.그녀와 성유원은 여전히 선을 긋고 지냈다.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식사 시간은 일부러 피했다. 마주쳐도 그는 그녀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연지아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시간은 흘러 어느덧 11월 말.성유원이 일주일간 출장을 갔다. 유미연이 그의 짐을 챙기라 했지만 연지아는 거절했다. 의미 없는 일로 그의 불쾌함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유미연은 콧방귀를 뀌며 대신 짐을 챙겼다.그가 없는 동안 연지아는 친정으로 갔다. 배난화가 매일 밤 곁에서 함께 자주 지켜주었고 돌봐주는 사람이 있어 한결 수월했다.그가 돌아오기 전날, 김미현이 전화를 걸어 한 번 더 일러주었다.결국 연지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가 돌아오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당분간 친정에 머무르겠다고. 갈수록 스스로 몸을 돌보기 힘들어지고 있었다.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쉬고 있었다.두 시쯤 연지아는 인기척을 듣고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유미연이 재빨리 실내화를 꺼내 놓았다. 성유원은 전화를 받으며 실내화를 갈아신고 있었다.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성유원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연지아는 사라져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유미연은 기사가 밀어온 캐리어를 받아 들고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연지아를 흘
Read more

제49화

연지아는 성유원이 언제쯤 일을 마치고 서재에서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차라리 먼저 나서기로 하고 우현석에게 차를 몰아 본가로 가자고 했다.성유원은 위층에서 정리를 마치고 내려와 유미연을 보며 말했다.“가서 불러와요.”유미연은 못마땅한 얼굴로 답했다.“벌써 나갔어요.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유세는.”성유원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 없이 밖으로 향했다. 연지아는 그보다 먼저 본가에 도착했다.오늘은 성씨 가문 식구들이 모두 모인 날이었던지라 주차장에는 고급 차량이 가득했다. 마침 도착하자마자 성민우와 마주쳤다.성민우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두 사람은 한동안 얼굴을 못 본 사이였다. 성민우는 그녀의 배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배는 더 나왔네. 대신 얼굴은 살 빠져서 더 예뻐진 것 같은데.”그의 말에 연지아는 웃음이 났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사람은 성민우뿐이었다.“너도 전보다 더 잘생겨졌네.”“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자, 들어가자.”연지아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화목한 대가족 안으로 혼자 끼어드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민우가 함께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거실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 속에 웃음과 아이들 목소리가 섞여 흘렀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거실에는 여성들만 모여 있었다.연지아와 성민우가 들어오자 김미현이 손짓했다.두 사람은 얼른 다가가 김미현에게 인사했다. 성민우가 먼저 차례로 인사를 건넸고 연지아도 예를 갖춰 불렀다.김미현이 물었다.“너 혼자 왔니? 유원이는?”연지아는 차분히 답했다.“아직 일이 있어서요.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제가 먼저 왔어요.”김미현의 눈빛이 잠시 가라앉았지만 더 말하지는 않았다.“그래, 앉아라.”이때 성민우의 조카 둘이 달려와 그의 손을 붙잡고 놀아달라 졸랐다. 연지아는 자리를 찾아 앉아 조용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박은희가 그녀의 배를 보며 물었다.“출산 예정일이 언제니?”연지아가 답했다.
Read more

제50화

“구텐국에서 넘어온 서류가 하나 있는데, 네가 좀 봐줄 수 있어?.”성민우의 말에 연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중에 보내줘.”성민우는 새우를 하나 까서 그녀의 그릇에 올려주며 웃었다. “그럼 사촌 형수께 미리 감사 인사드려야겠네.”그 말을 들은 박은희가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사촌 형수한테 뭘 고맙다는 거니?”“사촌 형수한테 좀 도와달라고 했거든요.”“너도 참, 배도 저렇게 불렀는데 일을 시키면 어떡하니?”연지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작은 일이에요.”박은희는 그동안 연지아에게 비교적 온화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녀와 이해관계나 체면이 얽힌 것도 아니었고 가끔은 김미현의 말을 따르며 두어 마디 거들어주기도 했다.“민우랑 지아 씨는 사이가 좋네.”신진설이 웃으며 말했다. 신진설은 성주헌의 아내, 즉 성민우의 친형수였다.그러자 박은희가 덧붙였다.“둘이 예전에 같은 학교였어. 그해 수능에서 지아가 이과 수석이었고, 민우는 딱 1점 차이로 수석을 놓쳤지.”그 사실은 예전에 신상 조사를 하다 알게 된 것이었다. 연지아라는 이름이 귀에 익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해 그녀의 아들이 1점 차이로 밀린 게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남아 있었으니까.외형은 조금 아쉬울지 몰라도 연지아는 충분히 똑똑하고 뛰어났다. 성유원을 보좌할 현명한 내조자로는 자격이 있었다. 다만 성유원이 연지아를 마음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어쩌면 성유원 같은 천재 중의 천재에게는 그녀의 영리함도 눈에 차지 않았을지 모른다.신진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랬군요. 참 묘한 인연이네요.”성민우가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그러게요. 예전에는 저를 민우 오빠라고 부르던 애가 지금은 제 사촌 형수가 되었잖아요.”연지아는 옆에 있는 남자를 흘끗 보았다. 고작 자신보다 석 달 더 빨리 태어났을 뿐이면서 학창 시절 부탁할 일이 생기면 일부러 오빠라고 부르라며 자신을 놀리곤 했다.신진설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얼른 지아 씨보다 항렬 높은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되겠
Read more
PREV
1
...
34567
...
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