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손재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말하자면 길어요. 예전에 나, 걔 오빠랑 사귀었어요. 원래는 약혼까지 하기로 했었죠.”연지아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방금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그래서 안연청 때문에 헤어진 거예요?”손재인은 입꼬리를 비틀어 짙은 조소를 흘렸고 눈빛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번졌다. “그 여자 말이에요. 온 세상 남자들이 다 자기만 바라보길 바라죠. 내가 걔 오빠랑 조금이라도 사이가 좋아지면 야단법석을 떨어요. 마치 내가 자기 남자를 빼앗은 것처럼 굴더라고요. 송나겸은 또 걔를 얼마나 싸고도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헤어진 게 잘된 거예요. 진짜로 결혼이라도 했으면 내 인생이 편할 리가 없죠.”“그런 여자를 성유원이 좋아하다니 보는 눈이 정말 보통은 아니네요.”고성주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끼어들었다.“그래도 우리 강 대표님은 보는 눈이 좋으시잖아요!”강현수는 그를 한 번 흘겨보자 연지아는 고개를 갸웃했다.그 모습을 보던 손재인이 다시 설명했다.“안연청, 예전에 지아 씨 교수님 쫓아다닌 적 있어요. 그런데 바로 단칼에 거절당했죠.”말을 마칠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통쾌함이 묻어 있었다. 연지아는 믿기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이런 얽힘이 있었다니...성유원이 좋아한 사람이 이런 여자일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찌 또렷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시간이 어느덧 흘러 그들 일행은 식당을 나섰다.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차마 떨어지지 못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손재인은 바로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렸다.“쯧, 재수도 없지.”몇 사람은 걸음을 늦추고 그들이 먼저 떠나길 기다렸다.안연청은 성유원의 손을 붙잡은 채 차에 오르지 않고 그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남자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오빠랑 같이 돌아가.”안연청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확인하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붉은 입술을 열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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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한참이 지나서야 연지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다시 들어가야 해?”강현수가 물었다. 방금 통화에서 성유원이 한 말은 그도 모두 들은 상태였다.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연지아가 입을 열었다.“한 번 다녀오죠.”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연지아는 직접 들어야 했다....사십 분 뒤, 차는 오션 빌리지 대문 앞에 멈춰 섰다.“오늘 여기서 묵을 거야?”강현수가 물었다.“아마 아닐 거예요. 교수님,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성유원은 그녀의 거취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사람이다. 여하간에 그와의 대화는 늘 짧았고 그녀와 한 마디 더 섞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 여기는 사람이니까.“그래, 알았어.”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연지아는 대문 앞으로 걸어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거실로 들어서자 집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소파 위에는 성유원이 앉아 있었다.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인상... 그러나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건 말 없이도 숨 막히게 만드는 싸늘한 기류였다.연지아는 그 앞까지 걸어가 멈췄다.“무슨 일인데?”성유원은 티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계약서를 그녀 앞으로 밀어 내밀었다.“사인해.”순간 연지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꽉 쥐어졌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한 번 고른 뒤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계약서를 집어 들어 천천히 넘겨 보았다. 그건... 이혼 합의서가 아니라 경업 금지 계약서였다.3년간 관련 업계 종사 금지. 대신 기존 평균 급여의 50% 이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한다는 것이다.그녀는 이미 반년 넘게 직위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한때 성유원의 비서였던 사람이다. 그랬기에 회사 내부의 주요 기획과 핵심 정보 대부분을 알고 있다. 이런 일은 주이빈을 통해 연락해 회사로 불러 추가 서명을 받아도 됐을 터였다.그런데 굳이 그가 직접 한다는 건 그녀를 향한 경고이자 압박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이후 강현수의 회사로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연지아는 펜을 들어 망설임은 없이 사인했다.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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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연지아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싸 쥐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거실에 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고 연지아가 남든 떠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연지아는 현관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버텼다. 배 속의 아이가 진정된 뒤에야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마당으로 나가 의자에 앉아 한동안 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몇 분 뒤, 마음을 정리한 그녀는 별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차에 오르자 강현수가 물었다.“무슨 일로 부른 거야?”연지아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경업 금지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하더라고요.”강현수는 계약서를 받아 대충 훑어본 뒤 돌려주며 말했다.“성유원은 네 능력을 잘 알아. 그래서 경계하는 거겠지. 그래도 당분간은 관련 업계에 들어갈 생각 없잖아.”연지아는 작게 대답했다.“네.”강현수는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떠났다.연지아를 제이드 팰리스에 데려다주었을 때는 이미 밤 열 시였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마친 뒤 연지아는 곧바로 누워 쉬었다.이틀 동안 집에서 몸을 추스르는 동안 배난화는 매일 그녀와 함께 요가 하러 가고 산책을 했다. 연지아는 걸음이 예전만큼 무겁지 않다고 느꼈다.그 후 그녀는 경원대학교로 갔다.강현수는 자신의 맞은편에 그녀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녀의 주된 업무는 강현수의 수업을 보조하고 관련 강의 자료를 정리하며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일이었다. 현재 강현수의 주당 수업은 많지 않았고 올해는 대학원 지도도 맡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밖에서 보냈다.그래서 연지아의 업무는 그리 많지 않았고 학교에 있는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강현수는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연지아의 업무를 정리해 주었다.그 사이 여러 학생들이 연구실을 찾아와 질문을 했다.늘 그랬듯이 강현수는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수업 시간에는 무척 엄격하고 성격도 까다로워 학생을 울릴 만큼 매섭게 꾸짖기도 했다. 그의 강의를 듣고 기말에 낙제하지 않기란 쉽지 않았고 그 난이도는 거의 지옥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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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교수님은 정말 좋아한 여자가 한 번도 없었어요? 연애도 안 해봤고요?”손재인은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그 사람은 머릿속에 공부랑 일밖에 없어요. 여자는 자기 앞길 막는 존재라고 생각하죠. 아무도 눈에 안 찰걸요. 솔직히 자이 씨 교수님 쫓아다니던 여자들, 다 최상급 미인이었어요. 집안이면 집안, 학력이면 학력, 외모면 외모 빠지는 게 없었죠. 그런데도 마음을 안 줬어요. 하물며 안연청처럼 가식적인 여자야 말할 것도 없고...”안연청의 이름을 꺼내자 손재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녀는 곁눈질로 연지아를 한 번 바라봤다.연지아는 그 어색한 멈춤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손재인을 보았다. 잠시 후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옅게 웃으며 말했다.“사람마다 좋아하는 타입은 다르잖아요. 감정에는 정답이 없는 거고.”“그래도 성유원은 안목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죠.”연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재인은 화제를 돌렸다.“우리 선배님이 유일하게 칭찬한 사람이 지아 씨에요.”연지아는 눈을 크게 떴다.“저요?”“네. 자기가 본 학생 중에 제일 노력하고 똑똑하다고 했었어요. 분명 나보다 더 잘될 거라고 하면서 나를 한참 디스했었죠.”연지아는 웃음을 터뜨렸다.“혹시 선배님이 뭔가 잘못한 거 아니에요?”“그때 일이 좀 매끄럽지 못했던 건 맞아요. 그래도 지아 씨 칭찬한 건 진심이에요. 그렇게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애가 앞길이 훤한데 결혼해서 아이 낳겠다고 하니...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 앞길을 막는 거나 다름없는 거죠. 그래도 지아 씨는 아직 젊잖아요. 아이를 낳아도 다시 시작할 시간은 충분해요.”“성유원 같은 남자는 멀리할수록 좋아요. 나중에 우리가 성공하면 훨씬 더 괜찮은 남자들이 줄 설 거예요. 성유원 같은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요.”연지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손재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마 또 다른 불편한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그때 손재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블루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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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손재인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연지아가 먼저 조심스레 말했다.“교수님께 전화 한 통 해볼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재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강현수에게서 온 전화였다.손재인은 전화를 받으며 목이 잠긴 목소리로 불렀다.“네, 선배.”강현수가 말했다.“일은 전부 들었어. 아버님한테 연락 왔지?”손재인은 짧게 대답했다.“네, 지금 금자당으로 오라고 하셨어요.”강현수는 차분히 말했다.“일단 가서 상황부터 봐. 괜히 무리하거나 성급하게 굴지 말고.”마지막 말은 특히 힘을 주어 덧붙였다.그의 말에 손재인은 낮게 답했다.“네, 그럴게요.”전화를 끊고 잠시 숨을 고른 손재인은 연지아를 향해 말했다.“미안해요, 지아 씨. 먼저 집에 데려다줄게요.”그러나 연지아는 고개를 저었다.“앞에 지하철역 있어요. 그냥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남편은 자기 여자친구를 위해 대신 화를 풀고 있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성유원에게 했던 말이 오히려 그를 더 자극한 건 아닐지 연지아는 마음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손재인은 더 고집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 조심하라는 말만 남겼다.차에서 내리기 전, 연지아는 다시 한번 당부했다.“선배님, 이번 일 절대 감정적으로 굴지 말아요. 아버지 회사 이익이 제일 중요하잖아요.”손재인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성격도 강한 편이었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말아요, 알고 있어요.”손재인의 차가 먼저 떠났다.연지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차가 다시 차들 사이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시선을 거두고 지하철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지하철 입구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성민우의 전화였고 곧장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민우야.”“맞은편 봐.”고개를 들자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는 성민우가 보였다.연지아는 앞쪽 횡단보도를 건너 성민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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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직원이 음식을 가져왔다.저녁을 마친 뒤, 연지아는 성민우와 함께 근처의 고급 쇼핑몰로 향했다.성민우는 곧 어머니 생신이 다가오는데 아직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오늘 시간이 난 김에 연지아에게 의견을 구하려는 것이었다.연지아는 흔쾌히 응했다. 마침 소화도 시킬 겸 걷기 좋았다.성민우는 차를 지하 주차장에 세웠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어느 유명 브랜드의 보석 매장에 들어섰다.매장 직원이 다가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성민우의 단정한 차림과 남다른 분위기와 손목에 찬 수천만 원대 시계를 보는 순간 속으로 감탄이 흘렀다. 저토록 잘생기고 부유해 보이는 남자의 아내는 옷차림이 너무 수수했다. 전혀 같은 세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부자들의 취향은 정말 알 수 없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속으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정중하게 응대했다. 어른께 드릴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는 소파 쪽으로 안내했다.매장 직원은 에메랄드 보석들을 차례로 테이블 위에 펼쳐 보였다. 가격은 몇천에서 억 단위까지 다양했다.성민우는 진주 목걸이 하나를 집어 들고 유심히 살폈다.그러자 연지아가 말했다.“이 세트가 어머님께 잘 어울릴 것 같아. 한번 봐.”그녀는 목걸이를 들고 성민우를 바라봤다. 그가 들고 있던 진주 목걸이를 내려놓고 연지아가 고른 사파이어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매장 직원은 곧바로 보석의 소재와 디자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성민우는 한 번 더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예쁘네. 이 세트로 할게요. 이 진주 목걸이도 같이 포장해 주세요.”“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매장 직원은 보석을 하나씩 정리해 계산대로 가져갔다.성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하자 매장 직원은 정성스럽게 포장한 뒤 선물 봉투를 건넸다.그는 매장 직원이 건넨 쇼핑백을 받아 연지아에게 다가왔다.“가자.”연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받치고 일어섰다. 그때 신발 끈이 풀린 걸 알아챘다.성민우는 그 모습을 보고 쇼핑백을 내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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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성유원은 대답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마음에 드는 거 골라.”매장에서 십여 미터쯤 벗어난 뒤에야 연지아는 벽을 짚고 서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예전엔 좀처럼 마주치기도 힘들던 남자였는데 이제는 왜 이렇게 그의 여자와 함께 있는 장면만 보게 되는 걸까. 마치 하늘이 일부러 그녀를 비웃듯 초라하고 민망한 순간만 골라 안겨 주는 것 같았다.성민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무심코 등을 토닥이려 손을 뻗다가 문득 멈췄다. 손가락을 움켜쥐었다가 이내 내려놓으며 말했다.“앞에 가게에 잠깐 앉아 있을까.”연지아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그냥 먼저 집에 가고 싶어.”“그래.”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차에 올랐지만 성민우는 바로 시동을 걸지 않았다. 핸들을 잡은 채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너...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그는 성유원이 연지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심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마치 낯선 사람 같았다. 연지아 배 속의 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녀의 상태만 봐도 얼마나 버티며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연지아는 이미 마음을 다잡은 듯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아이 낳으면, 우리 이혼할 거야.”성민우는 순간 굳었다.“이혼?”연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내년에 헤리국으로 가서 박사 과정 밟을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나 걱정하지 마.”그렇게 말하며 성민우를 바라보고는 일부러 밝게 웃어 보였다.성민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잠시 말이 없었다.이내 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좋네. 그럼 우리 또 보기 힘들어지겠네.”연지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보고 싶으면 나 찾아오면 되지.”성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괜찮네.”그는 차를 몰아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가는 길 내내 연지아는 손재인 일을 떠올렸다. 손병철이 성유원을 만난 줄 알았는데 아닌 듯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이혼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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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교수님, 재인 선배님 쪽은 어떻게 됐어요?”연지아가 다급히 묻자 강현수가 답했다.“송나겸을 만나기로 했어. 내일 성유원 쪽과 이야기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약속한 상대는 안연청의 오빠였다. 겉보기에는 성유원보다 훨씬 대화가 통할 사람처럼 보였다.“네.”다음 날, 강현수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연지아는 이번 주에 필요한 강의 자료를 정리해 두었다. 일이 한가해지자 교정을 산책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었다.오늘은 날씨도 좋았다.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연지아는 도서관에서 책 두 권을 빌려 나와 햇볕을 쬐려 했다. 벤치를 찾아 앉으려다 흰 머리에 돋보기를 낀 노인이 신문을 한참 떨어뜨려 들고 읽는 모습을 보았다. 가끔 안경을 추켜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듯했다.연지아는 멀리서 그를 알아봤다. 잠시 망설이다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교수님.”박대훈은 고개를 들어 연지아를 바라봤다. 돋보기를 벗고 자세히 살폈지만 금세 알아보지 못했다.연지아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교수님, 저 연지아입니다.”그제야 박대훈의 눈빛이 달라졌다.박대훈은 경원대학교의 전 총장이자 강현수의 옛 스승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상태였다.연지아가 강현수에게 배울 당시 박대훈은 이미 은퇴했지만 그녀를 각별히 챙겼다. 대학 시절부터 학술 세미나에 데려가며 강현수 이후 가장 아끼는 제자라고 말하곤 했다.그녀는 강현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대를 받던 학생이었다.박대훈은 직접 해외 최고 대학 교수에게 그녀를 소개하며 박사 과정을 이어가길 바랐다. 그러나 그때 연지아는 이미 몰래 운성에 이력서를 넣은 뒤였다.그 기회를 놓치면 언제 성유원 곁에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여러 차례 면접을 통과한 뒤에야 그 사실을 알렸다.그날을 그녀는 잊지 못했다.박대훈의 굳은 얼굴,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던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났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 후로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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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차 안에서 중년 남성이 운전대를 잡은 채 말했다.“성종현 어르신께서 이번에는 단단히 벼르고 계실 겁니다. 어르신이랑 제대로 한 판 붙어서 설욕하려고요.”박대훈은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내가 걔를 무서워하겠어?”오늘은 박씨 가문의 가족 모임 날이었다. 성씨 가문과는 윗대부터 두터운 인연을 이어왔고 혼인으로도 얽혀 있었다. 성민우의 어머니 박은희는 박대훈의 둘째 딸이었다. 그래서 두 집안은 자주 왕래하며 함께 식사했다.박대훈이 집에 도착했다.이미 성씨 가문의 차량이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서 웃음 섞인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천명숙은 그를 보며 성종현의 아내인 김미현에게 말했다.“저 양반은 가만히를 못 있어요. 틈만 나면 경원대학교로 달려간다니까요.”그러자 박대훈이 다가오며 말했다.“젊은 기운 모여 있는 데를 가지, 그럼 매일 노인네들만 보고 있으란 말이야?”천명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래, 당신 말이 다 맞아.”그러자 김미현이 웃으며 말했다.“대훈 씨 말도 틀린 건 아니죠. 젊은 사람들 만나야 마음도 젊어지잖아요.”박대훈은 소파에 앉으며 성종현을 향해 말했다.“너도 나랑 좀 돌아다녀. 하루 종일 낚시만 하지 말고. 그렇게 잘 잡는 것도 아니잖아.”성종현은 눈을 굴렸다.“그래도 너보단 낫지.”“뭐? 자, 지금 가서 붙어보지. 장정민, 낚싯대 준비해.”“좋아, 지금 가지.”“...”두 노부인은 그런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저녁 식사가 시작되기 전 경원시에 사는 박씨 일가가 차례로 본가에 도착했다.성씨 가문의 장남 부부, 이서연도 함께 왔다. 조금 늦게 성유원과 성민우도 박씨 가문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성민우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두 사람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거실에 들어서자 어른들께 차례로 인사했다.성민우는 밝고 말솜씨가 좋아 어른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민우 오랜만이구나. 네 어머니 말로는 게임 회사를 차렸다면서? 큰 프로젝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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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성유원은 손을 뻗어 박아린이 내민 사탕을 받아 들었다.“고마워, 아린아.”박아린은 두 개의 작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아니에요.”이때 천명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원이도 곧 딸 아빠가 되겠네. 우리 아린이 이제 동생 생기겠다.”성유원은 옅게 웃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박아린은 곧장 천명숙에게 쪼르르 달려갔다.“증조할머니, 아린이 동생은 어디 있어요?”천명숙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직 안 태어났지.”박아린이 또 물었다.“그럼 언제 태어나요?”“새해쯤 되면 아린이 동생 볼 수 있을 거야.”“그럼 아린이랑 동생이랑 같이 새해 맞이해요?”“그럼. 물론이지.”“...”김미현은 박아린을 바라보며 눈에 가득 애정을 담았다.천명숙이 그런 김미현을 보며 말했다.“내년이면 증손녀 보겠네요.”그녀의 말에 김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오는 거죠.”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박형주가 웃으며 말했다.“이제 유원 씨도 아이 아빠가 되는군요.”성유원은 입가에 미소를 걸었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 눈동자 깊숙한 곳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때 박대훈의 목소리가 불쑥 울렸다.“오늘은 왜 며느리는 안 데려왔지?”말이 떨어지자마자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연지아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태어날 아이 이야기는 해도 정작 아이를 품고 있는 연지아의 이름은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그런데 박대훈이 먼저 입을 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으로 굳었다. 식탁 위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김미현의 얼굴도 잠시 굳어졌다.성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분위기를 살핀 천명숙이 슬쩍 박대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박대훈은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어찌 됐든 이미 맞이한 아내 아닌가. 남자라면 책임은 져야지.”그 말에는 성유원을 향한 분명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이서연조차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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