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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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구기빈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서운함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성숙한 남자라면 스스로 자기 기분을 달랠 줄도 알아야 했다.강이주를 붙잡기까지 갈 길은 멀었다.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언젠가 정말로 강이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강이주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눈으로 침대 위의 구기빈을 바라봤다.“내가 떠난다고 말한 적 있어요? 기빈 씨, 정말 머리 다친 거 아니에요?”강이주는 지금 진심으로 의심스러웠다.혹시 구기빈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방금 전까지 차분하고 냉정해 보이던 남자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흥...”구기빈은 나지막하게 코웃음을 쳤다.“정말 바보가 돼도 이주 씨가 말했잖아요. 날 평생 돌봐준다고요. 그러면 바보든 아니든 별 상관없어요.”강이주는 말문이 막혔다.‘이건 진짜가 아니야. 내가 아는 구기빈이 이럴 리 없어.’강이주는 눈앞에서 어딘가 허술해진 구기빈이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차라리 예전의 그 차갑고 무서운 구기빈을 다시 데려와 달라고 하늘에 빌고 싶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좀 정상적으로 굴어요. 당신이 이러니까 내가 더 무서워요.”이번에는 구기빈이 할 말을 잃었다.이불을 끌어다 덮은 구기빈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피곤해요. 잘게요.”조금 토라진 듯한 말투였다. 그 안에는 지친 기색도 조금 섞여 있었다.강이주는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오늘 밤 벌어진 일들을 떠올려보니 강이주도 지칠 만했다.다행히 구기빈이 있는 병실은 1인실이었다.방 한쪽에는 소파가 있었고, 소파 위에는 적당히 두툼한 담요도 놓여 있었다.강이주는 소파에 누웠다.하지만 눈을 감아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결국 핸드폰을 꺼내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 모아두었던 심원후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서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심원후, 너 폭로 좋아하잖아.’‘보아하니, 심 회장 쪽에서 준 경고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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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다음 날 아침, 강이주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옆에 누워 있는 구기빈을 보았다.그녀는 너무 놀라 침대 위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이곳이 병원 침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1인용 병상은 생각보다 좁았다. 강이주의 몸이 뒤쪽으로 크게 기울었다.그러자 구기빈이 곧바로 손을 뻗으면서 강이주를 자기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몸이 돌로 된 것도 아니고. 넘어지는 게 안 무서워요?”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일이었다.강이주의 귀가 남자의 가슴팍에 닿았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구기빈의 팔은 강이주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은 빈틈없이 맞닿아 있었다.강이주는 얼굴을 붉힌 채 서둘러 구기빈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아, 진짜 창피해 죽겠네.’강이주는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자신이 요 며칠 왜 이렇게 구기빈 앞에서만 계속 망신을 당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지금 당장 바닥에 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강이주는 당황한 채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나는 분명히 소파에서 잤잖아. 그런데 왜 눈을 뜨니까 병상 위야?’‘설마 잠결에 병상으로 올라온 걸까?’강이주는 깊은 자기 의심에 빠졌다.한참 망설이던 강이주는 겨우 고개를 들어 구기빈을 바라봤다. 미안하고 민망한 표정이었다.“나 어젯밤에...”강이주는 자신이 어떻게 침대 위로 올라왔는지 묻고 싶었다.구기빈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도 몰라요. 나 어젯밤 수액 맞고 금방 잠들었어요. 눈 떠보니까 이주 씨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혹시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위로 올라온 거 아니에요?”구기빈의 말을 들은 강이주의 입가가 어색하게 굳어졌다.‘무의식이라니. 말은 참 그럴듯하네.’문제는 강이주에게 침대로 올라온 기억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구기빈의 말을 듣고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내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 이렇게 민망한 일만 골라서 해?’구기빈은 강이주가 당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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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돌아오는 길에 구기빈은 창백한 안색으로 또 한 번 속이 울렁거리는 듯했다.그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몸을 숙이자, 강이주는 놀라 곧장 차를 돌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의사는 가벼운 뇌진탕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약을 조금 처방해주며,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쉬라고 덧붙였다.그 말을 듣고 나서야 강이주는 다시 구기빈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그녀는 침대에 기대앉은 구기빈을 바라봤다.아직도 어딘가 힘이 빠져 보이는 모습이었다.구기빈은 이 집에 혼자 지내서 곁에서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강이주는 결국 남아서 구기빈을 돌보기로 마음먹었다.구기빈은 자신의 계획이 먹혀 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강이주는 핸드폰을 꺼내 임설에게 전화를 걸었다.“임 비서, 오늘은 회사 못 갈 것 같아. 급한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결재 필요한 건 메일로 보내고.”통화를 마친 뒤 돌아보니, 구기빈은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그는 강이주가 전화를 끊자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심원후... 어젯밤 병원에 왔어요?”강이주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 핸드폰 화면을 흘끗 보았다.기사 제목들을 보고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네. 기빈 씨 입원 수속하러 갔을 때, 마침 심원후랑 백초아를 만났어요.”‘내가 연락한 기자가 생각보다 일을 빠르게 했네.’강이주는 속으로 짧게 생각했다.고작 하룻밤 사이에 심원후 관련 기사가 연달아 터졌다.크게 판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어도 심원후가 한동안 정신없이 대응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구기빈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심현목 회장의 압박이 생각보다 약했나 보네요.”구기빈은 심현목이 돌아와 심씨 집안을 꽉 잡으면, 적어도 심원후를 한동안은 묶어둘 수 있을 거라 여겼다.하지만 결과를 보니 구기빈의 예상보다 심원후는 훨씬 더 제멋대로였다.‘내가 심현목을 너무 높게 봤나?’강이주는 눈앞의 남자를 멍하니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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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강이주는 시간을 확인했다.아침에 퇴원 수속을 서두르느라 구기빈도, 강이주도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어느새 오전 11시가 넘어 있었다.강이주는 침대에 기대앉은 구기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기빈 씨.”강이주는 구기빈에게 배가 고픈지, 아니면 자신이 간단하게 죽이라도 끓일지 물어보려고 했다.하지만 강이주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구기빈이 먼저 말을 막았다.“이주 씨, 이제부터 우리 서로 ‘여보’라고 이렇게 불러봐요. 말도 너무 격식 차리지 말고 반말로 하고.”강이주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네?”강이주는 구기빈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구기빈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우리는 지금 부부잖아요. 아직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고요.”구기빈의 시선이 강이주에게 고정됐다.“앞으로 이주 씨는 내 가족이나 친구들을 상대할 일도 생길 텐데, 그때마다 우리도 계속 서로를 ‘이주 씨’, ‘기빈 씨’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구기빈의 말을 듣고 보니, 강이주도 자신이 계속 이렇게 거리감 있게 부르는 게 어색하긴 하다고 느꼈다.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다정한 호칭을 입 밖으로 꺼내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여보’라니. 내가 이 남자한테 ‘여보’라고 부른다고?’강이주의 귓가가 괜히 뜨거워졌다.구기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강이주를 불렀다.“이주 씨, 앞으로 우리는 편하게 지내자... 나도 최선을 다 할게.”“어때? 여보? 당신이 내 제안에 대한 대답은?”구기빈에게 그 한마디는 낯선 말이 아니었다.구기빈은 마음속으로 이미 수백 번은 넘게 연습해둔 호칭이었다.그래서인지 구기빈의 목소리는 진심이 담겨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웠다.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이 강이주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강이주는 남자의 눈빛과 마주했다. 뺨이 붉게 달아오른 채,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여... 보?”“몇 번 더 부르면 익숙해질 거야.”구기빈은 웃으며 강이주를 격려했다.그렇게까지 말하니, 강이주도 혀끝에 감긴 낯간지러운 호칭을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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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구기빈은 벌써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먹고 싶은 거 말해 봐. 내가 창피하나 안 하나 보면 되잖아.”손놀림만 봐도 꽤 익숙했다. 칼을 잡는 자세도, 재료를 꺼내는 속도도 어설프지 않았다.구기빈의 집 주방은 거실과 이어진 오픈형이었다.바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은 강이주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주방 안의 구기빈을 바라보았다.“전복 한우죽.”강이주는 구기빈이 뇌진탕을 당했으니 몸에 부담이 덜 가는 음식을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죽이면 속도 편하고, 기운을 보태기에도 괜찮을 것 같았다.‘지금은 자극적인 음식보다 따뜻하고 속 편한 게 낫겠지.’구기빈의 손이 잠깐 멈췄다.“집에 전복이 없어. 바로 보내 달라고 할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기빈은 강이주가 말릴 틈도 주지 않고 배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전복이랑 한우 다짐육 좀 가져다줘. 최대한 빨리 부탁해.”통화는 짧고 분명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한 치 망설임 없는 실행력에 놀라 엄지를 세웠다.“빠르네?”“생각이 나면 바로 움직여야지. 망설이다 보면 끝에 가서 후회하는 일이 많아.”구기빈은 뭔가를 넌지시 담은 말투로 강이주에게 말했다.강이주는 구기빈이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여보 말이 맞아.”구기빈은 강이주를 보며 웃고는 다시 다른 재료들을 정리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이주도 혼자 앉아 구경만 하기가 멋쩍었다.강이주는 의자에서 내려와 구기빈 곁으로 다가갔다.“뭐 도와주면 돼? 불만 안 쓰면 돼. 장담하는데, 이 집 주방을 폭파하는 일은 없을 거야.”강이주는 자기 자신을 가지고 구기빈에게 농담을 던졌다.농담은 제대로 먹혔다. 구기빈도 웃었고, 강이주도 따라 웃었다.두 사람 사이에 어색하게 남아 있던 공기가 이런 농담으로 꽤 가까워졌다.배진호는 오래 걸리지 않아 구기빈이 부탁한 재료를 들고 도착했다.구기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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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구기빈은 허리를 살짝 숙여 강이주와 눈높이를 맞췄고,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봤다.그 눈빛을 강이주가 제대로 봤다면, 사람이 홀랑 넘어갈 만큼 다정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하지만 강이주는 남자의 얼굴에 묻은 밀가루를 닦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기빈이 강아지보다 더 애틋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하지만, 구기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눈앞의 강이주를 바라봤다.“다 됐어.”강이주는 더러워진 물티슈를 휴지통에 버렸다.그 말에 구기빈은 재빨리 눈 안의 감정을 거두었다. 곧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조용히 말했다.“고마워.”강이주는 가볍게 웃었다.“당신은 대체 어떻게 해야 얼굴 전체에 밀가루를 그렇게 묻힐 수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반죽 그릇에 머리라도 박은 줄 알겠어.”방금 전 구기빈의 모습을 떠올리자 강이주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그런 구기빈이 묘하게 귀엽다고 생각했다.그 웃음소리를 들은 구기빈은 손을 뻗어 강이주의 코끝을 톡 건드렸다.“그만 웃어. 더 웃으면 당신도 얼룩 고양이로 만들어버릴 거야.”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이주의 얼굴에는 밀가루 자국이 몇 줄 생겼다.강이주가 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당신 너무하네.”강이주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두 손으로 밀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 틈을 보자마자 구기빈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면서, 밀가루가 묻은 손바닥으로 구기빈의 뺨을 문질렀다.얼마 전까지 깨끗했던 구기빈의 얼굴은 다시 하얀 가면을 쓴 것처럼 변했다.구기빈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바로 손에 묻은 밀가루를 강이주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두 사람은 주방에서 서로의 뺨에 밀가루를 묻히며 장난을 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 안에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다.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식탁에 앉을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반이나 지난 뒤였다.강이주와 구기빈의 얼굴은 깨끗하게 씻은 뒤였다.다만 두 사람의 옷에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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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처음에 구기빈도 조금 불안했다.하지만 강이주가 자신의 행동을 밀어내지 않는 걸 확인하자, 잔뜩 조여 있던 마음이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다.식사하는 내내 구기빈은 말없이 강이주를 챙겼다.강이주도 그런 배려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다만 구기빈과 자신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어떻게 깨야 할지 알 수 없었다.식사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난 강이주가 그릇을 치우려 했다.하지만 구기빈이 곧바로 막았다.“내가 할게.”구기빈은 그릇과 수저를 챙겨 주방으로 들어갔다.강이주는 몇 번이나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구기빈은 번번이 그녀를 주방 밖으로 내보냈다.“앉아 있어. 오늘은 내가 할게.”강이주는 결국 더 고집하지 못했다.바로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강이주는 주방 쪽을 한 번 바라본 뒤, 더는 버티지 않고 몸을 돌려 거실로 나왔다.“임 비서.”강이주는 거실 창가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전화 너머에서 임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심명그룹 쪽에서 2년 전에 심원희 개인 명의로 의류 회사를 하나 세웠습니다. 자원은 거의 강중그룹에서 빼낸 게 맞습니다.]심원희는 2년 전, L.V.E라는 이름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다.그 브랜드는 겨우 반년 만에 업계에서 이름을 알렸다.그 안에는 강중그룹과 과거에 협업했던 디자인 시안도 꽤 많았다. 디자이너, 원단 업체, 봉제 공장, 유통 협력사까지 강중그룹과 인연이 있던 곳들이 적지 않았다.하지만 강중그룹에 문제가 생긴 뒤 김태용이 실권을 잡자, 그 디자이너들과 업체들은 더 이상 강중그룹과 협력하지 않았다.지금 그 자원들은 모두 심원희가 만든 회사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강이주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임설도 강이주의 지시에 따라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임설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김태용이 쫓겨난 뒤, 원래 공모전에 제출하려던 작품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지금 확인된 바로는 그 작품들이 모두 심원희 쪽에 넘어가 있습니다.]임설의 조사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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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요즘은 온갖 브랜드와 스튜디오가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제대로 설 무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디자인 감각이 좋은 개인 작가들 중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각종 플랫폼에 자신의 작업물을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정식 스튜디오나 대형 회사 디자이너의 시안에 전혀 밀리지 않는 작품도 많았다.강이주가 뒤늦게 세운 회사의 디자인팀 역시 대부분 그런 온라인 디자이너들로 꾸려졌다.정식 업체들이 심명그룹과 맞서는 걸 부담스럽게 여긴다면, 강이주에게도 다른 방법은 있었다.임설은 강이주의 지시를 듣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끝냈을 때, 구기빈은 이미 주방 정리를 마치고 강이주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방금 전 강이주가 통화하던 내용은 구기빈도 전부 들었다.그는 강이주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도와줄까?”사실 구기빈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하지만 방금 강이주의 대응을 보니, 굳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내가 나설 틈이 별로 없네. 이건 조금 아쉬운데...’구기빈은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괜찮아.”강이주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거절했다.“그 정도 수작은 내가 감당할 수 있어.”길이 막히면 돌아가면 됐다.막다른 길처럼 보여도, 어딘가에는 빠져나갈 틈이 있었다.강이주는 아직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매달릴 만큼 절박한 상황도 아니었다.구기빈은 자신감이 깃든 강이주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팔짱을 꼈다.“당신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모을 생각을 했어?”구기빈에게 그 방식은 꽤 큰 놀라움이었다.사실 구기빈은 자신이 팀을 소개해서 강중그룹에 합류하게 만들 생각도 했다.전문성만 놓고 보면 심명그룹으로 넘어간 인력보다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심명그룹 쪽 사람들이 강중그룹을 떠난 바로 그날, 구기빈은 강이주에게 연락하려고 했다.하지만 강이주는 곧바로 전문 팀을 데려와서 심명그룹 쪽이 빠진 빈자리를 채웠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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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그러고 나서 강이주는 구기빈을 가리켰다.“게다가 지금은 내 뒤에 당신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잖아. 심씨 집안이 함부로 못 건드릴 거고.” “그래서 나는 믿어. 당신이 자기 협력 파트너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어쨌든 강이주는 구기빈이 모른 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스스로도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이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강이주는 어느새 눈앞의 남자를 자연스럽게 믿고 있었다.구기빈의 눈빛이 깊어졌다.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지난 3년 동안 강이주가 어떤 압박을 버티며 회사를 여기까지 키웠는지.심명그룹과 갈라설 준비를 하면서 강이주는 자금만 준비해둔 것이 아니었다. 인력과 자원까지 전부 계산해두고 있었다.지난 3년 동안 사람들이 말하던 ‘사랑에 눈먼 강이주’는 사실 강이주가 세상에 보인 위장이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호색이었다.그 안에서 강이주가 짊어졌을 무게는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구기빈은 그 생각에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당신이 내 배에 오른 그때부터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 앞으로는 내가 당신을 지킬 거야. 아무도 당신한테 함부로 못 해.”구기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이주에게 약속했다.하지만 강이주는 구기빈의 말속에 담긴 깊은 뜻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이어 구기빈의 앞으로 걸어가 손을 들어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럼 미리 고맙다고 할게, 여보?”구기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걸리던 걱정을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개인 디자이너가 많은 건 맞아.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해. 시간이 촉박하고 해야 할 일도 많잖아.” “온라인에서 찾은 사람들이 정말 믿을 만한지, 작업물에 문제는 없는지 봐야 해. 선별 과정도 엄격하게, 더 엄격하게 봐야 해.”작품 하나라도 권리 문제나 표절 논란에 휘말리면, 강이주 쪽에는 되돌리기 어려운 패배가 될 수 있었다.그 방법에는 숨은 위험이 너무 많았다.구기빈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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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그날 오후만 해도 임설은 꽤 많은 후보자 명단을 추려 강이주의 메일함으로 보냈다.강이주는 하나씩 훑어봤지만,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은 없었다.실력이 괜찮은 작가들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주력 분야가 의류 쪽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지금은 시간이 부족했다.상대가 아무리 감각이 좋아도, 강중그룹이 원하는 방향을 새로 익히고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강이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임설에게 링크 하나를 보냈다.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의상 디자이너로 알려진 계정이었다.아이디는 ‘두루미’.‘두루미’가 올린 작업물은 많지 않았다.두세 달에 한 번쯤 새 게시물이 올라올 뿐이었다. 어떤 날은 일러스트였고, 어떤 날은 의상 디자인 스케치나 미완성 시안이었다.그 정도뿐인데도, 올라오는 게시물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다.‘두루미’라는 아이디의 주인은 성격도 꽤 특이했다.게시물을 올린 뒤에는 댓글창이 아무리 난리가 나도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마치 정해진 일을 끝낸 사람처럼, 계정 관리를 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런데도 ‘두루미’의 팔로워는 사백만 명이 넘었다.강이주가 그 계정을 알게 된 건 1년 조금 넘은 때였다.당시 강이주도 몇 차례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하지만 답장은커녕, 강이주가 보낸 메시지는 그대로 묻혔다. 상대는 메시지함을 열어보지도 않는 듯했다.채팅창에 길게 쌓인 읽지 않은 메시지들을 볼 때마다, 강이주는 이상할 만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강이주는 ‘두루미’에게 꽤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단순히 상대가 신비롭기 때문만이 아니었다.강이주는 알림이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으면 반드시 체크하고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쪽이었다.그런데 ‘두루미’는 수많은 메시지가 쌓이든 말든 내버려두었다.그때부터 강이주는 언젠가 ‘두루미’라는 사람을 직접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이번 강중그룹의 패션쇼를 떠올렸을 때도, 강이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가 바로 ‘두루미’였다.강이주는 ‘두루미’를 강중그룹 산하 디자인팀에 초대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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