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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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하지만 강이주는 금방 구기빈이 장한민 앞에서 이렇게 물은 이유를 알아차렸다.‘일부러 얘기한 거야.’강이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분 정리할 생각은 있어요.”그 말을 듣자 구기빈이 다시 물었다.“그럼... 장 대표님은 오늘 협상하러 오신 건가요? 이야기는 잘 진행됐나요?”구기빈은 시선을 장한민 쪽으로 옮겼다.장한민은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네, 아직 협의 중입니다.”있는 그대로 답했다.구기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러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네요.”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장한민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묘한 불안감이 올라왔다.‘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구기빈이 그냥 들른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설마... 정말로 강이주가 들고 있는 미스틱레벨 지분을 노리고 온 건가?’장한민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번쩍 떠올랐다.구기빈과 심원후 사이의 관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오히려 장한민 자신 못지않게 깊게 얽혀 있었다.심원후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강이주의 이름을 들먹이며, 구기빈을 자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리고 그때마다 구기빈은 빠짐없이 받아쳤고, 결과는 늘 심원후의 체면이 구겨지는 쪽이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장한민은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강이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한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미 합의됐습니다. 가격도 다 맞췄고요. 강이주 씨가 제시한 조건, 전부 수락했습니다.”장한민은 숨도 고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구 대표님, 이제 계약서 확인만 하면 됩니다. 서명만 하면 바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구기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그렇군요.”그러고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아직 계약서에 서명은 안 하신 거잖아요?”구기빈의 시선이 다시 강이주에게 향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강이주 씨가 갖고 계신 지분에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남의 거래를 가로채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구기빈은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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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강이주가 제시한 금액은 시장에서 통용되는 적정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오히려 가격을 약간 낮춘 수준에 가까웠다.장한민은 강이주가 이 기회를 틈타 값을 더 올려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계약서에 적힌 숫자를 보는 순간, 장한민은 자신이 완전히 잘못 짚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내가 괜히 속 좁게 생각했네.’강이주가 먼저 물었다.“문제가 있나요?”강이주의 말에 장한민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전혀 없습니다.”강이주가 내건 가격은, 장한민이 처음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충분히 받아들일 만했다.무엇보다 장한민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강이주가 마음을 바꿀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지금 바로 끝내야 해.’장한민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곧장 계약서에 자기 이름을 힘차게 써 내려갔다.서명을 마친 뒤, 회사 인감을 찍고 계약서를 강이주 쪽으로 내밀었다.구희라는 계약서를 받아 꼼꼼히 확인했다.문제될 부분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계약서 한 부를 다시 장한민에게 돌려주며 말했다.“장 대표님, 이후 절차는 제가 맡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진행 상황이나 확인하실 부분이 있으면 저한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구희라는 자기 명함도 함께 건넸다.장한민은 명함을 받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계약이 완전히 마무리된 뒤에야, 구기빈은 옷매무새를 가볍게 정리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강이주 씨와 함께할 기회가 없는 모양이네요.”구기빈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따로 약속이 있어서요. 세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올 때 그랬던 것처럼, 구기빈은 갈 때도 망설임이 없었다.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더 꺼낼 틈도 없이, 구기빈의 모습은 이미 룸 밖으로 사라지고 없었다.구기빈이 완전히 나간 뒤에야 장한민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하... 이제야 좀 살겠네.’강이주와 구희라는 서로를 바라봤다.두 사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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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어디 좀 보자. 어떤 사람이길래 우리 구기빈이 저렇게 웃기까지 할까?”유예준은 구기빈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수저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더니 곧장 구기빈 쪽으로 다가왔다.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당장이라도 구기빈의 핸드폰을 뺏어 들 기세였다.구기빈은 차갑게 눈길을 던졌다.“밥이나 먹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예준은 이미 구기빈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잠깐만 보자니까.”유예준은 목을 길게 빼고 구기빈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유예준이 고개를 들이밀자, 구기빈은 손바닥으로 유예준의 얼굴을 그대로 밀어냈다.목소리는 나직하고 서늘했다.“밥을 먹고도 입이 안 닫히냐? 안 먹을 거면 빨리 꺼져. 너 보면 피곤해.”사실 유예준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집요함이었다.친구들 사이에서도 유예준의 그 성격은 이미 유명했다.‘오늘은 내가 필요해서 데리고 나온 거지.’오늘이 아니었다면, 구기빈은 진작 유예준을 차단 목록에 던져 넣고도 남았을 것이다.이번에는 유예준이라는 이 귀찮은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냥 두고 있을 뿐이었다.그 정도로 쏘아붙였으면 보통은 물러날 법도 했다.하지만 유예준은 잠깐 입을 삐죽이면서, 이내 엉덩이를 슬쩍 옮겨서 원래 자리로 물러났다.방금 전까지 구기빈의 옆에 딱 붙어 있던 유예준은, 어느새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게 되었다.유예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구기빈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흥, 나도 안 궁금하거든?”그러더니 곧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근데 너 같은 사람한테 먼저 들이대는 여자가 있겠냐? 맨날 그 얼음장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너 이대로 계속 살다간 큰일 난다.”유예준은 한숨까지 크게 내쉬었다.“너 모태솔로로 몇 년째인지 알긴 하냐? 우리는 여자친구도 몇 번씩 바뀌었는데, 너는 아직 첫사랑도 없잖아. 진짜 기가 막힌다.”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여자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은 있어? 그 말랑말랑한 감촉도 모르지?”유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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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계약서에 서명까지 끝내자, 장한민은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구희라는 웃는 얼굴로 장한민을 바라봤다.“오신 김에 식사도 같이 하고 가시죠.”장한민 같은 부류의 도련님 스타일을 구희라가 썩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그래도 일이 일인 만큼, 구희라는 잠깐 생각한 끝에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기로 했다.장한민은 목에 맨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며 웃어 보였다.“두 분과 함께 식사할 수 있으면 저야 영광이죠. 그런데 제가 이따가 참석해야 하는 리셉션이 하나 있어서요. 시간을 맞추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장한민은 미안하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식사는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서로 좋은 조건으로 마무리된 기념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편하게 드시고 가시면 됩니다.”장한민이 그렇게 말하자, 강이주도 더 붙잡지는 않았다.장한민이 룸을 완전히 나가자, 강이주는 핸드폰을 들었다.그리고 화면에 떠 있는 구기빈의 프로필 사진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봤다.조금 전 구기빈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장한민과의 협상이 이렇게 빠르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결국 이번 일은 구기빈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했다.‘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잠시 망설이던 강이주는 결국 먼저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강이주 옆에 앉아 있던 구희라도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구희라는 거의 폭격하듯 구기빈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그러다 구기빈이 아주 성의 없이 보낸 눈을 흘기는 이모티콘을 확인하자, 구희라는 입술을 삐죽거렸다.“재미없어.”핸드폰을 내려놓은 구희라는 고개를 돌렸다.그제야 강이주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구희라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강이주는 시선을 살짝 비키면서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구희라는 굳이 캐묻지 않고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구희라는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밥 먹고 나서 쇼핑하러 가자. 내가 오빠 카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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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강이주가 쓰고 있는 전화번호에 거의 모든 앱과 계정이 연결돼 있었다.하나하나 해제하고 새 번호로 옮기는 일은 생각만 해도 번거로웠다.그래서였다.강이주는 몇 번이나 번호를 바꿔버릴까 고민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심원후야?”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구희라가 눈을 흘기면서 혀를 찼다.친구 표정만 봐도 누가 저렇게 한심하게 전화로 들들 볶고 있는지 바로 감이 왔다.강이주는 어깨를 으쓱했다.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그 모습을 본 구희라가 차갑게 웃었다.“진짜 너무 없어 보이지 않냐? 너 집 판 거 진짜 잘했어. 안 그랬으면 거기 계속 남아서 둘이 하는 짓 다 봐야 했잖아.”구희라는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었다.심원후가 바로 옆 동에 백초아의 집을 따로 마련해둔 걸 떠올리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본처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를 그 따위로 만들어놓고도 당당했다.같은 단지 안에 큰집 작은집 만들어두는 발상을 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진짜 별꼴을 다 본다.’강이주를 바보처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어이없었다.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구희라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강이주도 새삼 아파트를 처분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잘 팔았어.’괜히 미련 남기고 얽힐 이유가 없었다.전화가 계속 연결되지 않자, 이번에는 심원후가 문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전화 받아!!!][강이주, 너 나랑 언제까지 이렇게 기싸움할 건데? 내일 게임 오픈이야. 할 말 있어.][도하늘은 왜 내 비서 전화도 안 받아? 강이주, 문제 있으면 얘기부터 하는 게 네 방식 아니었냐? 집에도 없고 강씨 가문에도 안 들어갔던데, 너 지금 어디 있는데?]그제야 심원후도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예전 같으면 강이주가 있을 만한 곳은 뻔했다.그런데 이번에는 어디를 찾아도 강이주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이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강이주는 문자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전부 다 지워버렸다.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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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처음에 심원후는 그 말을 믿지 않고 끝까지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결국 관리사무소 직원들까지 올라왔고, 지금 집주인이 등기서류를 내보인 뒤에야 심원후는 멈춰 섰다.백초아는 그때 심원후 표정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안 그래도 차갑던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심원후는 분을 참지 못한 채 그대로 백초아 집 쪽으로 돌아왔다.걸음은 거칠었고,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었다.백초아는 뒤에서 심원후를 따라가느라 애를 먹었다.아무리 발걸음을 재촉해도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백초아는 심원후가 강이주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낸 일까지는 알지 못했다.겨우 뒤쫓아 들어온 백초아는, 마침 심원후가 분을 터뜨리는 장면과 맞닥뜨렸다.백초아가 놀란 듯 입을 열었다.“원후야, 화내지 마. 이주 씨랑 연락은 됐어? 뭐래? 집은 왜 판 거야?”백초아는 일부러 다시 집 얘기를 꺼냈다.사실 백초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강이주가 집을 판 건, 결국 자신이 보낸 메시지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그래도 눈치는 있었네.’백초아는 속으로 은근한 만족감을 느꼈다.강이주가 스스로 물러날 줄은 알아서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했다.백초아에게 강이주는 애초에 크게 신경 쓰이는 상대가 아니었다.조금 몰아붙이면 결국 버티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실제로 강이주는 끝내 자리에서 밀려났다.그 점만 놓고 본다면, 상황은 백초아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었다.하지만 심원후가 아직 완전히 자기 손안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그래서 더 힘을 줘야 했다.백초아도 바보는 아니었다.심원후가 자신과 강이주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특히 최근 들어 심원후 입에서 강이주 이름이 나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예전보다 훨씬 자주.그 변화가 백초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심원후는 강이주 이름이 나오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짜증 섞인 목소리가 바로 튀어나왔다.“내 앞에서 걔 얘기하지 마.”지금 심원후는 당장이라도 강이주 앞에 가서 따지고 싶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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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네가 속상하다는 거 알아. 뭐 해주면 되는데?”심원후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그러고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백초아를 바라봤다.심원후의 시선이 닿았을 때, 백초아는 이미 표정을 다 정리한 뒤였다.백초아는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잔잔하게 웃었다.“괜찮아.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네가 나 많이 챙겨주고 있잖아. 다 내가 문제였지. 나 때문이 아니라면 이주도 너한테 그렇게 화를 내진 않았을 거야.”백초아는 미안한 기색을 덧씌운 채 말을 이었다.“나도 네가 이주랑 잘됐으면 좋겠어. 원후야, 걱정하지 마. 나 치료도 잘 받을게. 최대한 네 손이 안 가게 할 거야.”“넌 나한테 이미 충분히 많이 해줬어. 나 때문에 너랑 이주 씨 사이까지 망가지면 안 되잖아.”그러더니 백초아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진짜 나 때문에 너랑 이주 씨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면... 난 죽어도 할 말조차 없을 것 같아.”백초아는 심원후 앞에서 일부러 또 ‘죽는다’는 말을 꺼냈다.그 단어 하나에, 심원후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백초아는 입버릇처럼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정작 백초아 자신은 그게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심원후는 어느 정도 패턴을 읽고 있었다.백초아 입에서 ‘죽는다’는 말이 나오는 날이면 상태가 급격하게 흔들릴 가능성이 컸다.그런 날에는 자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심원후는 바로 긴장했다.심원후의 시선이 백초아의 손목으로 향했다.희미하지만 분명한 자국이 보였다.긁히고 뜯긴 흔적 위로 붉은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그 자국들이 보이는 순간, 심원후는 가슴을 꽉 조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또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돼.’심원후는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그리고 억지로 화제를 바꿨다.“준비해. 우리 이제 나가자.”지금은 백초아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야 했다.이대로 두면 분명 또 혼자 이상한 생각에 빠질 게 뻔했다.그때 심원후는 오늘 잡혀 있던 술자리를 떠올렸다.조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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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강이주는 처음에는 심원후가 아파트에서 소란을 피운 일까지는 알지 못했다.심원후의 번호를 차단한 뒤, 강이주는 구희라와 함께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영화관에 오기 전까지는 구희라가 무슨 영화를 골랐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그러다 스크린에 만화 캐릭터가 뜨는 걸 보고서야 강이주는 뒤늦게 알아차렸다.구희라가 고른 건, 동심 가득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었다.이른 시간대라 그런지, 넓은 상영관 안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정말 아무도 없었다.오직 강이주와 구희라, 두 사람뿐이었다.강이주는 텅 빈 상영관을 둘러보며 잠깐 생각했다.성인 둘이 표 두 장 값을 내고 사실상 통째로 전세 낸 셈이었다.‘이거... 맞는 거야?’강이주 시선을 느낀 구희라는 몸을 살짝 기울여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공포영화는 네가 무서워하고, 예술영화는 내가 지루하고, 로맨스 영화는 지금 우리 둘 다 별로 안 보고 싶잖아.”구희라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이것저것 다 빼고 나니까 결국 이거 하나 남더라.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난 괜찮은데? 봐봐,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한 마음도 되살리고 얼마나 좋아.”순수한 마음이라니!강이주는 구희라가 그런 표현을 입에 올린 것부터가 너무 의외라서 잠깐 놀랐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애니메이션이라고 못 볼 건 없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옆에 구희라가 있다는 점이었다.그 생각이 들자, 강이주는 영화가 시작한다는 뜻으로 구희라를 슬쩍 쳐다봤다.그리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려던 그때,아파트 새 집주인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강이주 씨,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래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려요.] [방금 30분쯤 전에 어떤 남자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억지로 들어오려고 했습니다.][많이 흥분한 상태였고, 아무래도 강이주 씨 관련 일인 것 같았습니다. 관리실에서 내보내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그래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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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말을 마친 구희라는 잔을 들어 강이주와 가볍게 부딪쳤다.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술을 들이켰다.물론 구희라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조금 있으면 자정이 되고, 그때 이 술집에서 남자 모델 쇼가 열린다는 사실을.오기 전부터 구희라는 매니저에게 미리 연락을 해두었다.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 두 석을 따로 빼 두라고.‘시간이 되면 바로 이주를 데리고 나가야지.’구희라는 속으로 웃었다.강이주를 데리고 나가, 마음껏 즐기게 해줄 생각이었다.강이주는 그런 구희라를 바라보면서 살짝 웃었다.“오케이.”구희라가 잔뜩 비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또 뭐 준비해 놨네.’예전에도 그랬다.둘이 같이 놀러 다닐 때마다, 구희라는 종종 이렇게 몰래 뭔가를 준비해두곤 했다.그렇다고 해서 선을 넘는 일은 없었다.그래서 강이주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그저 구희라가 하고 싶은 대로 두는 편이 더 재미있었다.강이주는 구희라와 함께 몇 잔 더 술을 마셨다.시간이 흘러 23시 50분.구희라는 잔을 내려놓았다.술기운이 올라서 볼이 은근히 달아올라 있었다.구희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이주 손목을 잡았다.“자정 되면 공연이 있어. 가자, 재밌는 거 보여줄게.”강이주는 그대로 끌려가듯 일어났다.구희라를 따라 걸으며 웃었다.‘공연이었어?’그 정도면 그냥 말해도 될 텐데, 굳이 이렇게 숨길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그래도 뭐, 구희라다운 방식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룸을 나섰다.계단을 내려가는 길.그때, 정면에서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하, X발...”구희라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다.“진짜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심원후였다.‘이 도시가 이렇게 좁았나.’구희라는 기가 막혔다.어디를 가도 심원후가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강이주 표정도 굳었다.솔직히 말해서, 강이주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심원후였다.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딱 마주쳤다.심원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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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재수 없게.”심원후가 강이주를 불러 세우려던 바로 그때, 구희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구희라는 심원후를 향해 대놓고 눈을 흘겼다.그러고는 비웃듯 차갑게 말했다.“아무 쓰레기나 다 들어오네. 나중에 매니저한테 꼭 말해야겠다. 아무거나 막 들이지 말라고.” “보기만 해도 더러운데, 괜히 세균 옮겨서 손님들 다 도망가면 어쩌려고.”구희라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짜증 나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어야지. 더러운 게 사람 앞까지 기어 나오고 있어. 퉤.”“퉤, 퉤, 퉤.”말이 끝나자마자 구희라는 심원후 쪽으로 대놓고 몇 번이나 침을 내뱉었다.심원후는 얼굴을 시커멓게 굳어진 채로 구희라를 노려봤다.구희라가 전혀 거리낌 없이 저런 행동까지 하자, 심원후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심원후도 나름 눈치는 있었다.구희라 같은 성격의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피곤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진짜 미쳤나?’심원후는 속으로 이를 갈며 구희라에게서 거리를 뒀다.그 모습을 본 구희라는 주먹까지 쥐어 보였다.“꺼져. 우리 이주 앞에서 알짱거리지 마.”술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심원후 얼굴을 보자, 구희라는 감정이 더 올라왔다.흥분이 확 치솟은 탓에 발걸음도 살짝 꼬였다.“조심해.”강이주는 바로 구희라를 붙잡았다.흔들리는 몸을 단단히 받쳐 세운 뒤, 시선을 들어 심원후를 봤다.눈빛은 싸늘했다.강이주는 막아선 심원후를 향해 또렷하게 말했다.“좋은 개는 사람 길 안 막아.”심원후는 대놓고 굳었다.강이주가 자기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했다.“강이주,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함부로 했어? 너...”“계속 내 앞에서 얼쩡거리면.”강이주는 심원후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차갑게 잘랐다.“욕으로 안 끝나.”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기색은 없었다.“내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참고 있는 거야. 쓰레기랑 말 섞을 생각도 없으니까 알아서 빨리 비켜.”강이주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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