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수연의 세상은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같은 리듬으로 뛰었지만, 그 안의 울림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아침이면 병원 복도에 햇살이 들이쳤다.소독약 냄새 사이로 커피 향이 묻어났고, 환자들의 웃음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그 단순한 일상이,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차 박사님, 오늘 회진 일정 확인하셨어요?”간호사 지연이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응, 오전엔 중환자실 먼저 갈게요. 심근 재활팀은 오후로 미뤄주세요.”“네, 알겠습니다.”지연이 물러가자, 수연은 잠시 창가에 멈춰 섰다.유리창 너머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그 빗줄기 사이로, 자신의 반영된 얼굴이 보였다.“이제 정말, 내 얼굴이네.”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지난 몇 년 동안 박지현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면,이제는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했다.그날 오후, 수술실에서 급한 호출이 들어왔다.심장 이식 환자의 예기치 못한 부정맥.“혈압 60 이하로 떨어집니다!”“아드레날린 투여!”“심전도 이상합니다!”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수연은 마스크를 고쳐 쓰며 침착하게 외쳤다.“제세동기 준비하세요. 200줄.”‘퍽!’전류가 환자의 몸을 스쳤다.모니터가 흔들렸다.“아직 반응 없습니다!”“한 번 더. 300줄.”'퍽'모니터가 떨리며, 짧은 삐 소리가 이어졌다.순간, 그래프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잡았다. 심박 돌아옵니다.”“혈압 상승합니다!”그제야 모두의 긴장이 풀렸다.마스크 너머로 서로의 눈빛이 교차했다.수연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녀의 시선이 환자의 심장 위에 멈췄다.그 심장은 아직 연약했다.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그녀의 가슴이 미세하게 울렸다.'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를 이어받는 일이지.'그 순간, 자신이 박지현에게서 받은 그 숨결이결코 무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수술이 끝난 뒤, 병원 옥상으로 올라오자 저녁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바람은 부드러웠고, 그 바람에 비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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