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였던 수진은 새벽녘에야 잠시 눈을 감았다가,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겨우 숨을 고르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아직 차갑고 조용했지만, 어쩐지 전날보다 더 밝아 보였고, 그 밝음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커튼을 젖히자 바람이 차갑게 스며들었고, 그 바람 속에 묻힌 작은 파도 소리는 이상하게도 감정의 결을 건드렸다.침대 머리맡에는 자신도 모르게 밤새 붙들고 잤던 수민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조용히 이어지던 균열은 더 깊어졌고, 그 균열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흔들지 정확히 예감할 수 있었다.“흔들리지 말라 했제…”그녀는 작은 숨으로 말하고 사진을 조심스럽게 내려두었다.“오늘만이라도… 안 흔들리면 되는디.”그러나 마음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꽃집을 열기 위해 문을 나선 순간부터, 마을의 공기, 바람, 햇빛,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어딘가 강혁의 그림자가 스며 있는 것만 같았다.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아닌데,그의 시선이 남아 있던 자리들을 자연스레 향하게 되었고,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더 분명히 깨달았다.꽃집 문을 열자 아직 실내에 스며 있던 강혁의 체온 같은 것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그녀는 그 온기부터 먼저 치워버리려는 듯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을 들였지만,바람은 강혁의 흔적만 흐트러뜨렸을 뿐, 온전히 지워주지는 못했다.수진은 꽃 작업대 앞에 서서 오늘 주문이 들어온 꽃다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손은 익숙하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고,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그녀는 더 천천히, 더 섬세하게 꽃을 다뤘다.한 송이, 한 송이. 마치 손끝에 박힌 감정을 떼어내듯이.그러다 문이 열렸다.종이 울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고,그 소리 하나에 그녀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수축됐다.강혁일까.아니면 어제의 그 경고를 보낸 사람이 직접 나타난 걸까.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Last Updated : 2026-05-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