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391 - Chapter 400

460 Chapters

제391화

"이곳은 경성이 아니니 그렇게 매사 긴장할 필요 없다."조원철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조심스레 그를 살폈다.비록 경성이 아닐지라도, 그의 앞에 있으면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편하게 그를 대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조원철은 손을 뻗어 휘장을 걷어 올렸다.한여름의 눈부신 햇살이 마차 안으로 쏟아졌다.창밖으로는 푸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이마에 달라붙은 잔머리가 흩날렸다.강유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탁 트인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삿갓을 쓴 농부들이 논밭을 거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유롭고 생기가 넘쳐 부러운 마음마저 들었다.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보니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다.‘바깥세상은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이곳에서는 네가 국공부의 양녀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우리의 관계를 아는 이도 없다." 조원철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가 어떻게 앉아 있든,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쓸 사람 하나 없으니 마음을 좀 편히 먹거라."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옷자락을 꽉 쥐었다.그의 말은 참으로 달콤했다. 그녀가 늘 꿈꿔왔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경성을 벗어났으니 잠시나마 모든 굴레를 내려놓고 두 사람의 관계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잊고 지낼 수도 있었다.앞으로 사십구 일 동안은 조금 긴장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조원철은 흑요석 같은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제법 마음이 동한 기색이었다. 그의 눈빛 깊은 곳에 옅은 안도감이 스쳤다.어릴 적 강유영의 눈망울은 늘 이렇게 맑고 빛났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고 해맑게 웃으며 그를 쫓아다녔고, 오라버니라 부르며 쉴 새 없이 조잘거리곤 했다.하지만 여덟 살 이후, 출생이 불분명해진 뒤로, 그 맑았던 빛은 조금씩 사그라들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게 먼저 살갑게 말을 거는 일도 줄어들었다.지난 세월 동안 진국공부는 그녀에게 몹쓸 짓을 참 많이도 했다.
Read more

제392화

조원철은 제법 능숙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수리로 모아 틀어 올렸다.역시나 그가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상투 모양이었다.강유영은 그가 서랍에서 작은 관 하나를 꺼내어 자신의 머리를 고정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긴장 풀거라."그는 가볍게 강유영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강유영은 그대로 창틀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았다. 눈부신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위로 살포시 내려앉아 고운 이목구비를 환히 비추고 옷자락을 살랑살랑 흔들었다.코끝을 스치는 공기에서 자유로움이 물씬 묻어났다.잔뜩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높게 쌓아 올렸던 마음의 벽에도 몰래 작은 틈새가 벌어졌다.그녀는 창가에 나른하게 기댄 채 바깥 풍경을 눈에 담으며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을 만끽했다.조원철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따스한 햇살이 그녀의 반쪽 몸을 감싸고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어여쁜 얼굴에서는 예전의 주눅 든 기색이 사라지고 나이에 맞는 생기가 감돌았다. 좁은 소매 아래로 드러난 하얀 손목은 마치 이른 봄 가지에서 갓 돋아난 새싹처럼 싱그러웠다."세자, 경성 경계를 벗어났습니다."앞에서 마차를 몰던 청운이 불쑥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조원철은 때마침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마차를 세우거라."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분부했다.창밖을 내다보니 도로변에 붉은 글씨로 경성 경계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청운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마차를 세웠다.뒤따르던 청류 일행도 일제히 말을 세웠다.“저들은 앞쪽에 있는 마을에 가서 대기하고 있으라 전하거라.”조원철은 재차 청운에게 명을 내렸다.곧이어 청류가 부하들을 이끌고 떠났다.“이제 내려오너라.”먼저 마차에서 내린 조원철은 손을 내밀어 강유영을 부축했다.강유영은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곳은 앞뒤로 인가나 객잔 하나 없이 휑한 곳이었
Read more

제393화

"올라오거라. 내가 태워주마."강유영은 입술을 삐죽이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그가 무조건 배우라 하니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여기를 밟거라."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안장 손잡이에 얹어주고는, 직접 발걸이를 밟고 말에 오르라고 지시했다.그가 말 위에 함께 있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얌전히 그가 가르쳐준 대로 손잡이를 꽉 쥐고 발걸이를 밟아 말 위로 올라가 그의 앞에 탔다.조원철은 그녀를 품에 안고 두 손으로 고삐를 쥐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밀착하고 말 타는 요령을 나직하게 가르쳐주었다."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때 몸의 중심도 함께 살짝 기울여야 해.""종아리로 말의 배를 가볍게 조이고 뒤꿈치로 슬쩍 밀어주면 말이 앞으로 나아간다.""말을 빨리 달리게 하려면 배를 연속해서 가볍게 차주고, 말의 반응에 따라 힘을 조절하면 된다."강유영이 말타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소리를 지르는 것과 채찍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이렇게 알아야 할 요령이 많은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조원철은 그녀에게 고삐를 넘겨주었다.강유영은 본래 무엇이든 잘 배우는 편이라, 그의 설명을 듣는 족족 곧잘 따라 했다.말이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떼자, 그녀는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땅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말타기도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그녀도 지금 제법 그럴싸하게 타고 있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조원철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다음 순간, 등 뒤가 휑해졌다.조원철이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것이다.강유영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굳어졌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안장을 와락 끌어안고 말등에 납작 엎드렸다."내려주십시오...."그녀는 안장을 꽉 끌어안은 채 감히 땅을 내려다보지도 못하고 애원했다."종아리로 말의 배를 조여라. 다리를 흔들지 말고."조원철은 어느새 옆에 있던 흑마 위로 올라타
Read more

제394화

"조금 더 빨리 달려도 된다."조원철은 자신이 탄 말에 속도를 올리며 고개를 돌려 일러주었다.강유영도 막상 혼자 말을 타보니 생각만큼 무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탄 말은 성미가 아주 온순해서 보폭이 무척 안정적이었다.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삐를 꽉 쥔 채, 조원철이 가르쳐준 대로 발뒤꿈치로 말의 배를 가볍게 살짝 찼다.역시나 말은 고분고분 속도를 높였다.이에 강유영은 자신감이 차올랐다.그 다음부터는 조원철이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말을 재촉해 속도를 더 높였다.물론 전속력으로 달리지는 못하고 가볍게 뛰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쾌한 공기가 얼굴에 와닿아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말타기는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꽤나 상쾌한 일이었다.그렇게 둘은 한참을 달렸다.조원철이 다시 말을 몰아 다가오더니 그녀를 격려했다."더 빨리 달려보거라!""이랴!"강유영은 점차 담력이 붙어, 종아리로 말의 배를 꽉 조이며 소리쳤다.말이 경쾌하게 땅을 차며 달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고삐를 쥔 손등에 말의 갈기가 스치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스쳐 지나갔고, 따갑던 햇살도 누그러졌으며, 흙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지러웠다.이렇게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달리다 보니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마치 지난 십여 년간 겪었던 모든 억울함과 고난을 저 멀리 떨쳐버린 기분이었다.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자유라는 감각을 온몸으로 실감했다.가슴속에서 벅찬 환희가 차올랐다."이랴!"그녀는 말을 몰아 조원철을 따라잡더니, 다음 순간 그를 앞질러갔다."이쪽이다."조원철이 따라붙으며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강유영도 말을 몰아 그 뒤를 따랐다.조원철은 그녀를 이끌고 도로를 벗어나 풀밭 샛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그녀는 고삐를 꼭 쥐고 마음껏 내달렸다. 풀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귓가를 쌩쌩 스쳤다.이 순간만큼은 모든 굴레를 잊고 마음껏 홀가분함을 만끽했다.들뜬 얼굴로 달리던 그녀는 또다시
Read more

제395화

조원철은 그녀를 품에 안고 고삐를 쥐며 말을 재촉해 달리기 시작했다.찬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쳤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이 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그녀는 이 흑마가 조원철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말타기를 배우고 나니 부쩍 흥미가 생겼다."추풍이다."조원철이 답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감탄했다.백마는 설영, 흑마는 추풍, 둘 다 좋은 이름이었다.밤이 깊어지자, 조원철은 어느 객잔 앞에서 말고삐를 당겨 세웠다.말에서 내린 강유영은 허벅지 안쪽 살갗이 아까보다 훨씬 쓰라린 것을 느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간판을 올려다보았다.운래객잔이라고 쓰여 있었다.주변을 둘러보니 거리 양옆으로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행인들이 오가고 있었다. 제법 번화한 마을이었다. 외관을 보아하니 이 객잔은 마을에서도 꽤 고급스러운 곳인 듯했다.조원철의 따뜻하고 큰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본능적으로 손을 뺐다.하지만 그는 손을 놓아주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이끌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강유영은 아픔을 참고 그에게 이끌려 계산대 앞까지 갔다."제일 좋은 방으로 하나 주시오."조원철이 계산대에 은자를 올려놓으며 말했다."방 두 개 주세요."강유영은 그보다 한발 뒤에 서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와 한 방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부인, 제일 좋은 방은 딱 하나 남았습니다."객잔 주인은 두 사람의 눈부신 외모를 보고 순간 넋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사내의 분위기가 워낙 예사롭지 않아 감히 더 쳐다보지 못하고 황급히 시선을 거두며 굽실굽실 웃어 보였다."저는 이분의...."주인이 두 사람을 부부로 오해한 것을 깨달은 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다급히 해명하려 입을 열었다. "그 방으로 하겠소."조원철은 그녀의 말을 싹둑 자르고 방값을 치러버렸다."오라버니는 청운이랑 같이 주무십
Read more

제396화

비록 상처를 살피는 것이라 해도 그가 은밀한 부위를 빤히 강유영은 무척이나 불편했다. 저도 모르게 발가락이 잔뜩 오므라들었다."너는 바보도 아니고 미련하게 상처가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말을 안 했느냐?"조원철은 굳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좀처럼 이렇게 직설적으로 남을 꾸짖는 법이 없었다.낮에 말을 타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기에, 조금 더 달리게 내버려 두었을 뿐이었다. 이토록 심하게 다칠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아프지 않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폈다.말을 달릴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이렇게 쓰라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작 알았다면 그렇게 오래 타지 않았을 것이다.조원철은 어두운 얼굴로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를 안아 침상에 눕혔다.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그는 약술과 연고, 그리고 면수건을 들고 돌아왔다."제가 하겠습니다...."강유영은 그가 든 물건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가만히 있거라."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피하고는 단호하게 말했다."조금 따가울 테니 참아."그러더니 면수건에 약술을 적신 뒤 침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붉게 까진 상처에 가져다댔다.축축하고 차가운 수건이 상처에 가볍게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쁜 숨을 들이켰다. 본능적으로 아픔을 피하려 다리를 움츠렸으나, 조원철이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하지만 거기서 더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조원철은 곧게 뻗은 긴 속눈썹을 내리깐 채 제 손끝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면수건이 상처 위를 아주 조금씩 꾹꾹 눌러 피를 닦아냈다. 그의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고,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강유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무심코 넋을 잃고 말았다.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이 일었다.상처 소독이 끝나자, 그는 고개를 숙여 상처 부위에 가볍게 입김을 불어주었다.서늘한 숨결이 화끈거리는 상처를 스치자 쓰라림이
Read more

제397화

오후 내내 말을 타느라 체력을 소진한 데다 상처까지 입은 터라,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자 허기가 졌다.그녀는 침상에서 내려가려고 몸을 움직였다."가만히 있거라."조원철은 작은 탁자를 침상 위로 가져와 그녀의 앞에 밥상을 차려주었다.강유영이 젓가락을 집어 들기가 무섭게 그가 그녀의 손에서 젓가락을 가로챘다.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조원철을 올려다보았다.밥을 먹자면서 왜 젓가락을 빼앗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손부터 씻어야지."그는 물을 떠 오더니, 수건을 적셔 직접 닦아줄 태세로 가까이 다가왔다."제가 하겠습니다...."강유영은 수건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다리를 다쳤을 뿐 손을 못 쓰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런 수발까지 받을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조원철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내민 손을 쓱 피하더니, 수건을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얼굴을 닦고 나자 젖은 잔머리가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마치 비에 젖은 아기 고양이처럼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조원철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젓가락을 건네주었다.강유영은 이미 그와 함께 식사하는 것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경성에서 멀어진 터라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덕분에 평소의 조심스러움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조원철은 씻고 나와 상아색 속적삼 차림으로 침상 앞에 섰다.침상 머리맡에 기대어 멍하니 있던 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저, 저는 평상에서 자겠습니다."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조원철은 한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침상에 걸터앉았다."같이 자면 된다."말을 마친 그가 손을 한 번 휘젓자 탁자 위의 촛불이 꺼졌다.눈앞이 캄캄해졌음에도 강유영은 손을 뻗어 그를 밀어냈다."안 됩니다....""손대지 않으마."조원철은 그녀를 안은 채 함께 자리에 누웠다."그게 아니라, 저는...."강유영은 얼굴이 화끈
Read more

제398화

"이 녀석이랑 친해지려고요."강유영은 손에 든 솔을 내려놓고는 쭈뼛거리며 두 손을 등 뒤로 감췄다."누가 알려주었느냐?"앞으로 다가온 조원철이 손을 들어 설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어릴 적, 오라버니가 궁에서 말타기를 배우고 돌아와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는 아마 다 잊었을 것이다.그때, 그들은 둘 다 너무 어렸다.조원철은 황자들과 함께 태학에서 글을 읽고 말타기와 활쏘기도 배웠다.어느날 저택으로 돌아온 그는, 말이 아주 영특한 동물이니 무조건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틈이 날 때마다 직접 먹이를 주고 털을 빗겨주며 머리와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주인의 냄새와 손길에 익숙해져야만 비로소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말했다."가자."조원철이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말은 안 탑니까?"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다쳤지 않느냐."그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청운이 재빨리 마차를 몰아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아쉬운 듯 설영을 바라보았다.상처도 이젠 그리 아프지 않아서 내심 말을 더 타고 싶었다. 그깟 상처쯤이야 몇 번 더 타다 보면 금세 나을 것 같았다."설영도 끌고 가거라."마차에 오르기 전, 조원철이 청운에게 분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날 이후, 두 사람은 밤낮으로 여덟 날을 더 달린 끝에 마침내 호주 경계에 당도했다.호주는 산이 많고 장터도 제법 번화했다.강유영은 마차 창가에 바짝 붙어 거리 풍경을 구경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곳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마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강유영은 조원철이 내려서 묵을 곳을 찾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수하들에게 먹을거리를 조금 사 오라고만 일렀을 뿐, 곧바로 다시 길을 재촉했다."이미 호주성에 도착한 것 아닙니까? 이곳의 관원들을 만나지 않으십니까?"강유영은 마차가 성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의아한
Read more

제399화

"의원 행세를 하려는 겁니까?"강유영은 그가 멘 대나무 바구니를 살폈다. 약초를 캘 때 쓰는 바구니 같았다. 그 안에는 얇은 이불 한 채와 갈아입을 옷, 약초를 캐는 작은 곡괭이가 들어 있었다. 자주 쓰는 연고나 단약 같은 것들도 보였다."떠돌이 의원의 제자 행세다."조원철은 그녀의 옷고름을 단단히 매어주며 시선을 내리깐 채 설명했다."산골 마을은 인가가 적어서 낯선 이가 불쑥 나타나면 의심을 사기 쉽지. 하지만 약초 캐는 제자라면 괜찮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긴장되면서도 묘하게 들뜨고 있었다.여태껏 살면서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조원철을 따라나선 뒤로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난생처음 해보는 일들을 숱하게 경험하는 중이었다.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렸다."세자, 저희는...."청운이 수하들을 이끌고 조심스레 물었다."멀찍이 숨어서 내 신호를 기다리거라."조원철은 안배를 마친 뒤, 강유영을 데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강유영도 꽤 버틸 만했다.저택에 있을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무공을 연마했고, 요 며칠 쉴 새 없이 길을 달리며 체력도 제법 붙은 터였다.하지만 두 시진쯤 지나가자 결국 기운이 다 빠지고 말았다."안 되겠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야겠습니다."그녀는 조원철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걸음을 멈췄다.얼굴은 땀범벅이 되었고 젖은 잔머리가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업히거라."조원철은 메고 있던 빈 대나무 바구니를 벗어 그녀에게 메어주었다.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업은 채 다시 산을 올랐다."힘들지 않으십니까?"강유영은 그의 넓고 듬직한 등에 기댄 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괜찮다."조원철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강유영은 자신을 업고 난 뒤에 그의 걸음이 오히려 아까보다 조금 더 빨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알고 보니, 여태껏 그녀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셈이었다.그의 체력
Read more

제400화

"저희가 자주 쓰는 약을 좀 챙겨왔으니, 필요하신 게 있으면 골라 보십시오."조원철은 대나무 바구니를 내리고 안에 든 약들을 두 노파에게 보여주었다.두 사람은 이것저것 고르더니 다른 아낙 대여섯 명을 더 불러왔고, 다들 필요한 약을 조금씩 사 갔다.조원철은 그들에게 마실 물을 조금 얻으면서, 약을 파는 틈틈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 마을에 관한 것들을 자연스레 물어보았다.강유영은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약을 꺼내고 건네는 것을 거들었다.놀랍게도 바구니에 있던 약은 금세 동이 나다시피 다 팔려나갔다. 그중에서도 타박상에 바르는 약가루는 남김없이 다 팔렸다.그녀는 조원철이 그저 눈속임으로 약을 챙긴 줄로만 알았지 진짜로 수요가 많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아쉽게도 이 첩첩산중은 한번 오기엔 너무 멀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장사하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물건을 사러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자, 조원철은 바구니를 정리하며 고개를 돌려 물었다."더 걸을 수 있겠느냐?""예."강유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일어서며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두 사람은 길을 따라 또다시 두 채의 산을 넘었다.아까와 마찬가지로, 강유영이 산을 오르다 지치면 조원철이 그녀를 업고 걸었다. 산을 내려갈 때는 그녀가 직접 걸어 내려왔다.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해가 지기 전에 그들은 두 번째 마을에 당도했다.이 마을은 앞선 마을보다 인가가 훨씬 적었다. 대충 훑어보아도 열 가구도 채 안 되었다.해 질 녘이 되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잠시 후 마을에 들어서면, 네가 머물 곳을 찾아보거라."조원철이 나직하게 말했다."제가요?"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내심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지금껏 자라면서 외인과 말을 섞어본 일이 손에 꼽았다. 방금 전 마을에서 약을 팔 때도 사람들을 상대한 것은 모두 조원철이었다. 그녀는 옆에서 거들기만 했을 뿐
Read more
PREV
1
...
3839404142
...
4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