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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Auteur: 눈빛 속의 약속
"올라오거라. 내가 태워주마."

강유영은 입술을 삐죽이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가 무조건 배우라 하니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여기를 밟거라."

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안장 손잡이에 얹어주고는, 직접 발걸이를 밟고 말에 오르라고 지시했다.

그가 말 위에 함께 있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얌전히 그가 가르쳐준 대로 손잡이를 꽉 쥐고 발걸이를 밟아 말 위로 올라가 그의 앞에 탔다.

조원철은 그녀를 품에 안고 두 손으로 고삐를 쥐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밀착하고 말 타는 요령을 나직하게 가르쳐주었다.

"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때 몸의 중심도 함께 살짝 기울여야 해."

"종아리로 말의 배를 가볍게 조이고 뒤꿈치로 슬쩍 밀어주면 말이 앞으로 나아간다."

"말을 빨리 달리게 하려면 배를 연속해서 가볍게 차주고, 말의 반응에 따라 힘을 조절하면 된다."

강유영이 말타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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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7화

    뒤따라 나온 강유영은 마침 서준이 남긴 말을 듣게 되었다.그녀는 서준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불안한 기색으로 조원철에게 물었다."인주로 식량 창고를 순찰하러 가시는 겁니까?""그래."조원철이 몸을 돌려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확실히 이야기는 잘 했느냐?""예."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깔며 작게 대답했다."쉬거라."말을 마친 그는 먼저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강유영은 그를 따라가며 조심스레 물었다."인주에 가면 시일이 꽤 지체되는 것 아닙니까? 정 그러시다면... 저 혼자 먼저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조원철을 따라나설 때, 태소 도장은 그녀가 도관에 사십구 일 동안 머물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지금 혼자 돌아가면 얼추 그 시일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인주까지 따라갔다가는 제때 돌아갈 수 없었다. 조씨 노부인과 한씨가 분명히 꼬투리를 잡고 캐물을 테고, 결국 거짓말이 탄로 날 것이 뻔했다."필요 없다."조원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너도 나와 함께 갈 것이다.""하지만, 국공부에서...."강유영은 망설이며 말끝을 흐렸다."그쪽은 내가 알아서 하마."조원철은 담담하게 말을 잘랐다."예."강유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그녀는 밖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진국공부라는 그 숨 막히는 감옥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다음 날.강유영이 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호주의 일이 마무리되어 마음의 짐을 덜어낸 탓인지 늦잠을 자고 만 것이다.마침 조원철이 안으로 들어왔다."일어났느냐? 채비하고 출발하자."강유영은 말없이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챙겨 입었다. 조원철은 묵묵히 청염을 묻힌 양치 도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세면을 마치자 그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가자."강유영은 그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걸음을 재촉해 뒤따랐다.아직 아침도 먹지 못했건만, 그는 서둘러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원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6화

    강유영은 그가 예전 일을 다시 꺼내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싫습니다."지금 그녀에게 혼인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서둘러 거절할 것 없이 우선 내 말부터 들어보거라."서준은 조급해하는 기색 없이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나에게 연정이 없다는 것은 안다. 허나 진국공부에서 평생 너를 거두어주진 않을 텐데, 언젠가는 시집을 가야 하지 않겠느냐? 경성의 사내들 중 나보다 나은 자가 누가 있단 말이냐. 내가 네게는 최고의 선택지다. 훗날 네가 무엇을 하든, 내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마.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거라, 유영아."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사람의 마음을 홀리듯 부드럽고 나직한 어조로 속삭였다.강유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서왕 전하, 제게 잘해주시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진국공부의 양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폐하의 총애를 듬뿍 받는 황자이십니다. 저희의 처지는 애초에 하늘과 땅 차이지요. 게다가 제게는 든든한 친정도 없으니 전하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런 말씀은 앞으로 삼가주십시오. 폐하께서도 자연히 덕과 미모를 겸비한 명문가 규수가 전하의 왕비가 되기를 바라실 겁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맑은 눈을 들어 흔들림 없이 그를 마주 보았다.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서준은 그녀가 쥘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하지만 그녀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었다. 일개 양녀가 서왕비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성정이 변덕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그와는 진심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서준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녀의 고운 얼굴을 응시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서늘한 살기마저 감도는 미소였다.그녀는 구구절절 그를 위하는 척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거절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이토록 속내를 명백히 밝혔건만, 그녀는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5화

    조원철은 서준을 묵묵히 응시했다.서준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번졌고, 가늘게 휜 매끄러운 눈매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서려 있었다.조원철은 몸을 돌리며 강유영을 짧게 훑어보았다.그가 고개를 돌리는 찰나, 서준의 시선이 조원철의 목덜미에 꽂히더니 이내 딱딱하게 굳었다.옷깃 아래로 아주 희미한 자국 하나가 보였다. 그가 고개를 돌릴 때만 살짝 끝부분이 드러나는 자국이었다.누가 봐도 그건 선명한 이빨 자국이었다. 물린 지 며칠이 지나 이미 흔적은 옅어지고 있었다.서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지고, 눈 밑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할 말을 마치고 나오거라."조원철은 강유영에게 담담히 한마디를 남기고는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강유영은 그가 밖으로 나가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개를 돌리면 그녀가 보이지만, 대화는 들리지 않을 만한 위치였다.고요한 밤, 멀리서 우는 벌레 소리만이 맴돌았다.콩알만 한 등불 심지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서준의 얼굴 위로 어스름한 빛을 드리웠다. 강유영은 그의 표정에 담긴 속내를 읽어낼 수 없었다."할 말이 무엇입니까?"그녀는 맑고 단정한 얼굴을 들어 서준을 보며 물었다.예전에 이미 둘은 함께하지 못할 거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건만, 태도가 단호하지 못했던 탓일까. 서준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유영은 오늘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준은 강유영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천천히 다가왔다.등불 아래 비친 그녀의 얼굴은 옥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맑고 깨끗한 눈동자는 여전했으나, 예전보다 한결 생기와 영특함이 돌았다.조원철이 그녀를 참으로 정성껏 길러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가 그녀를 지켜줄 차례였다."거기 멈추세요. 그쯤에서 말씀하시지요."강유영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뒷걸음질 치며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그와 더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밖의 조원철이 오해하여 또다시 원치 않은 사단이 벌어질 터였다.서준은 발걸음을 멈추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4화

    재물을 숨긴 곳은 치밀하게 설계되었고 절대 들키지 말았어야 했다.대체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조원철은 그를 무시한 채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청류가 물을 떠다 그에게 건넸다. 조원철은 손에 묻은 흙을 씻어내고는 장위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장위봉은 이미 핏기가 가신 얼굴로 이마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이제 다 끝났다. 저 밑에 숨겨둔 것들이 파헤쳐지는 순간, 평생을 바쳐 이룩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터였다.삽이 조원철이 그어둔 선을 따라 한 자가 채 안 되는 단단한 흙을 파내려 갔다.돌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삽 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혔다."세자, 돌판입니다!"수하 한 명이 보고했다.강유영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이 그것을 들어 올리자, 과연 커다랗고 평평한 청석판이 모습을 드러냈다.그제야 강유영은 상황을 이해했다. 장위봉은 참으로 교활한 자였다. 재물을 숨길 공간을 이중으로 파놓은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첫 번째 구덩이에서 물건을 발견하는 순간 그 아래에 또 다른 층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텐데, 조원철은 대체 어떻게 알아본 것일까."치우거라."조원철이 명했다.장위봉은 기력이 다 빠져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 아래 돌판이 있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강유영이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방금 전 그녀가 구덩이 바닥을 보았을 때는 이렇다 할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조원철은 무엇을 보고 아래에 층이 더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토질이 달랐다."조원철은 그녀에게 숨김없이 답했다."아래로 갈수록 흙이 부드러워져야 하거늘, 구덩이 바닥의 흙이 윗부분보다 훨씬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땅을 파고 이 깊이까지 내려왔는데 흙의 상태가 그럴 수는 없지."강유영은 아리송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결국 안목의 차이였다. 그녀의 눈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일이었다. 조원철이 아니었다면 장위봉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증거를 잡아내지 못했을 것이다.그사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3화

    곡괭이가 바닥을 파내려 갈 때마다, 흙더미가 한쪽에 수북이 쌓여갔다.강유영은 주먹을 꽉 쥔 채, 삽이 바닥을 파헤치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았다.바닥에 주저앉은 장위봉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그들을 차갑게 주시하고 있었다."조 대인, 그만 파게 하는 것이 좋을 겝니다."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사는 이 초가집이 비록 누추하긴 하나, 엄연히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집입니다. 이리 함부로 땅을 파헤쳤다간 저희 집안의 풍수를 망칠까 두렵군요."조원철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그저 눈앞의 바닥만 뚫어지게 응시했다.일행은 곧 석 자 넓이의 얕은 구덩이를 파냈다. 강유영은 유심히 살폈으나, 그 밑은 그저 단단하게 다져진 누런 흙일 뿐 이렇다 할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설마 내가 잘못 짚은 것일까? 이 아래는 비어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수하들이 다시 반 자 깊이를 더 파고 내려갔다. 하지만 흙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청운이 망설이며 조원철을 쳐다보았다."계속 하거라."조원철이 명했다.그 말에 장위봉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삽이 다시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이 아래 구덩이가 있습니다!"누군가 삽으로 바닥을 뚫자, 부서진 흙더미가 아래로 흘러내렸다."서둘러라, 구멍을 더 넓게 파거라!"청운이 다급히 외쳤다.입구가 드러나자 파내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수하들이 맹렬히 삽을 휘두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숨겨진 구덩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강유영이 두어 걸음 다가가 안을 들여다본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 안에는 이렇다 할 물건이 거의 없었다.구덩이로 뛰어내린 청운이 안에 있던 것들을 꺼내어 조원철 앞의 바닥에 내려놓았다.은기물 몇 점과 네 모서리를 구리로 장식한 나무 상자 하나가 전부였다.강유영은 손을 뻗어 상자를 열었다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안에 금붙이가 있긴 했으나 어린아이들이나 찰 법한 조그만 금팔찌, 금자물쇠, 금목걸이 따위뿐이었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2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것이다."조원철은 어두운 눈빛으로 담담히 답했다."세자, 놈이 깨어났습니다."장위봉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청운이 고개를 돌려 보고했다.조원철은 조용히 그쪽으로 다가갔다.찬물을 뒤집어쓴 장위봉은 얼굴에 물을 뚝뚝 흘리며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부군...."만씨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저들을 끌어내거라."조원철의 지시가 떨어지자, 만씨와 장지운은 즉시 밖으로 끌려 나갔다."조 대인."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한 장위봉은 제 몸을 꽁꽁 묶은 밧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이게 무슨 짓입니까?"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오히려 태연하게 따져 묻는 태도를 취했다.조원철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세자, 앉으시지요."청운이 의자를 끌어왔다.자리에 앉은 조원철은 장위봉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장 대인은 내 뜻을 진정 모른단 말이오?""모르겠습니다."장위봉은 몸을 뒤로 빼 벽에 기대앉더니 턱을 빳빳하게 치켜들고 말했다."조 대인께서 제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갖고 계신다면 기꺼이 율법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허나 아무 증거도 없다면, 제가 비록 직급은 낮으나 엄연한 조정의 관원인데, 조 대인께서 이리 함부로 능멸하시는 걸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빼돌린 것들은 아주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으니 조원철이 절대 찾아내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증거만 없다면 조원철은 물론이고 황제 앞에 끌려간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장 대인은 내가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 확신하는 모양이군."조원철은 단번에 그의 속내를 간파했다.장위봉의 눈가에 언뜻 의기양양한 빛이 스쳤다."조 대인, 증거가 있다면 얼마든지 꺼내보시지요."조원철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강유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장위봉의 반응을 지켜보았다.저자는 조원철이 물증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이 좁은 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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