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861 - Chapter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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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1화

태자 또한 조원철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집요하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이번 일은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고, 서준마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고 자부했다.그런데 조원철은 애당초 덫에 걸려들기는커녕 오히려 어둠 속에 숨어 상황을 관망하다가 인질만 쏙 데려간 것이다.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증인과 물증을 확보하기는커녕 대놓고 조원철의 심기만 건드린 꼴이었다. 조원철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강유영을 등 뒤로 감추고는 태자를 향해 예를 행했다."태자 전하, 누이가 오늘 몹시 놀란 듯하여 이만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오늘 태자비 마마께서 누이에게 베풀어 주신 환대는 훗날 반드시 성심껏 갚아드리지요."말을 마친 조원철은 강유영을 데리고 뒤돌아섰다.다급해진 태자비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태자를 돌아보았다.방금 전 조원철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훗날 기필코 앙갚음을 하겠다는 서늘한 경고였다.이대로 조원철을 순순히 보낼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그의 손에 있었다.태자는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멈추거라!"태자 역시 초조하긴 매한가지였으나, 명색이 일국의 태자인지라 겉으로는 조급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위엄을 지켰다.조원철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강유영과 함께 앞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막 자리를 벗어나려던 찰나였다.평정을 잃은 태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조원철, 내 멈추라 하지 않았느냐!"감히 태자인 자신이 직접 명을 내렸는데도 무시하다니, 방자하기 짝이 없었다.조원철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태자를 바라보았다."태자 전하, 아직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네 누이는 데려가도 좋다."태자는 성큼 다가오며 다분히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허나 내가 찾는 자는 넘겨야지."그의 뒤에 서 있던 호위 무사들도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날 선 병기를 빼 든 채 조원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서준은 바닥에 떨어진 장검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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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화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옆으로 슬금슬금 조원철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태자라는 작자가 이토록 비열할 줄이야.정공법이 안 먹히니 이딴 음흉한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태자 전하께서는 제가 누군지 깜빡하신 모양입니다."조원철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하고는 수하를 불렀다."청운."그 말을 들은 태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하더니 입을 다물었다.조원철은 황궁을 수호하는 오천 명의 금군을 거느린 어전 지휘사였다."부르셨습니까."청운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그와 함께 절도 있는 갑옷 소리와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강유영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어둠 속에서 수많은 창끝이 서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열은 족히 수백 명은 되어 보였다."조원철, 감히 사사로이 금군을 움직이다니! 역모라도 꾸미려는 것이냐?"매서운 기세에 안색이 창백해진 태자는 억지로 태연한 척 가장하며 조원철을 반역자로 몰아갔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태자를 조용히 응시했다.청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갑옷이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주군께서는 황명을 받들어 경교 대영의 사건을 조사하고 계십니다. 허나 태자 전하께서는 저희 주군이 찾으신 증인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시니, 어쩔 수 없이 금군을 동원하여 증인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도 주군의 충심을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태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질렸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그의 머리칼을 적셨다. 조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혹감과 불안감만이 남았다.내일이면 조원철은 황제에게 증인을 넘길 것이다. 거기에 서준이 가진 물증까지 더해지면 태자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태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비틀거렸다.뒤에 있던 수하들이 재빨리 부축하지 않았다면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전하!"태자비가 다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가자."조원철은 태자를 한 번 쳐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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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3화

태자비는 태자의 옷자락을 붙들고 간곡히 애원했다.이쯤 되자 태자도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듯 고개를 돌려 태자비를 바라보았다.가만 생각해 보니 그의 부인은 허언을 뱉은 적이 없는 여인이었다."어디 한번 말해 보시오."태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두려움을 억눌렀다."전하."태자비는 태자의 팔을 꼭 붙들고는 눈짓으로 주위 사람들을 물렸다. 그런 다음 태자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지금 태자의 자리를 지킬 방도는 단 하나, 고육지책뿐입니다.""고육지책이라니?"태자는 곁눈질로 태자비를 바라보았다. 순간 솔깃한 기분이 들었다."전하께서 직접 죄를 청하는 자백서를 작성하시어 사사로이 군사를 움직인 연유를 밝히고, 오늘 밤 당장 아바마마께 올리십시오. 그런 다음, 겉보기엔 위중해 보이나 고통은 덜한 독약을 드시는 겁니다."태자비가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아니, 이왕 할 거면 진짜 독약을 마시겠소."태자의 두 눈에 번쩍 생기가 돌았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던 조금 전의 불안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든든한 동아줄이라도 잡은 양,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안 됩니다, 전하. 신첩은 두렵습니다."사실 태자비 역시 진짜 독약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허나 태자가 자신의 의도를 오해할까 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터였다. 태자가 먼저 진짜 독을 마시겠다고 나서 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겉으로는 짐짓 뜯어말리는 시늉을 해야 했다."아바마마께서도 바보가 아니시지 않소. 독약도 적당히 마시면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요. 그리 합시다."태자는 조금 전의 좌절감을 미련 없이 떨쳐 내고 단숨에 결단을 내렸다.마차가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차갑게 내려앉은 휘장 너머, 마차 안은 유리 등불이 켜져 있어 대낮처럼 환했다.강유영은 마차 벽에 기댄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핏기없이 창백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극도의 긴장감 속에 태자 부부의 일거수일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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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4화

조원철은 손길을 멈추고 상처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품에 연고를 챙겨 넣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강유영을 바라보았다.강유영은 그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걸 눈치챘지만 지금은 그와 아무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차 벽에 기댄 채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조원철은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을 잠시 응시하다가 입을 꾹 다물고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차가 진국공부로 들어서 요월원 문 앞에 멈춰 설 때까지 내내 적막이 흘렀다.어느덧 한밤중이었다."시간이 늦었습니다. 이만 돌아가 쉬십시오."강유영은 마차에서 내리며 짧게 한마디를 남기고는 서둘러 안뜰로 걸음을 옮겼다.조원철은 말없이 성큼성큼 그녀의 뒤를 따랐다.강유영이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책상 앞에 반듯하게 앉아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있는 조원철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를 못 본 체하며 동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침상으로 향했다."머리도 안 말리고 자려고?"조원철이 붓을 내려놓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쪽에 놓인 마른 수건을 집어 들고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 주려 했다."제가 하겠습니다."강유영은 그의 손에서 수건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화장대 앞에 앉아 묵묵히 머리의 물기를 닦아 냈다.그저 그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조원철은 말없이 그녀의 뒤로 다가와 수건으로 손을 뻗었다.강유영은 몸을 비틀어 그의 손길을 피하며 수건을 내어 주지 않았다.하지만 조원철은 고집스레 수건을 빼앗아 들었다. 그는 강유영의 뒤에 서서 젖은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한참을 머리를 닦는데 몰두하던 그는 무심하게 고개를 들어 동거울 속에 비친 강유영을 바라보았다.시선을 아래로 깐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꼭 정교하게 빚은 도자기 인형 같았다."많이 놀랐느냐?"그가 나직하게 물었다."아닙니다."강유영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부인했다.가슴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놀랐든 안 놀랐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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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아닙니다."강유영은 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 한번 부인했다.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감히 그에게 화를 낼 자격은 애초에 없었다.위험에 처한 그녀를 구하러 와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그냥 가버렸다고 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아니라면서, 어찌 이리 서러운 표정이냐."조원철은 두 손으로 강유영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정말 아닙니다……."강유영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촘촘하고 풍성한 속눈썹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렇게 가르쳐줬는데도 어찌 이리 늘지를 않는 것이냐."조원철은 몸을 낮춰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태자비 들으라고 일부러 한 소리인 것을 몰랐던 거구나."강유영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고였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녀는 젖은 눈으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당혹감과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평소 그토록 차갑고 매정하던 사람이 먼저 몸을 낮춰 다정하게 오해를 풀어 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자신의 앞에 무릎을 낮추고 앉은 그를 보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밀려드는 벅찬 감정에 강유영의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그만 울거라."조원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품에 안았다.강유영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차라리 끝까지 매정하게 굴었다면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다정하게 오해를 풀어 주고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니 도통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만, 뚝 그치거라. 태자가 왜 그리 초조해하며 그런 비열한 수법을 썼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조원철은 강유영의 등을 토닥이며 화제를 돌렸다."왜 그랬답니까?"강유영이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물었다.눈가와 코끝이 발갛게 달아오른 것이 여간 가여운 게 아니었다.조원철은 마른 수건을 하나 더 가져와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 주며, 태자가 벌인 짓을 차근차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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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강유영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처한 상황을 떠올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황제에게도 골칫거리가 있는데 하물며 일개 양녀인 자신이야 오죽할까 싶었다.조원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참, 서유는요? 서유를 구하러 사람을 보내셨습니까?"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강유영은 다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별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내일 아침이면 돌아올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다독였다."다행입니다."강유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반나절 내내 마음을 졸인 데다 밤에는 생사가 오가는 큰 일을 겪은 터라,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서유의 안위를 떠올릴 여유가 생겼다."태자비가 오늘 너를 어디로 데려갔느냐?"조원철이 물었다."여러 군데를 다녔습니다. 비단 가게가 있는 거리는 거의 다 훑어보았습니다."강유영은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태자비의 사촌 동생이라는 분도 불렀는데, 아무래도 저와 선을 보게 하려던 눈치였습니다."눈앞에 하세욱의 거만한 얼굴이 떠오르자 그녀는 질색하며 입술을 삐죽였다."마음에 안 들었나 보구나."조원철이 힐끗 그녀를 보며 말했다. 눈가에는 옅은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아무리 그래도 혼사는 집안 어른들께 먼저 운을 떼는 것이 도리이지 않습니까."강유영은 몸을 비틀며 돌아앉았다. 곱씹을수록 태자비의 무례한 처사가 언짢았다."어쩌면 충동적으로 벌인 일일 수도 있다. 네가 고개라도 끄덕였다면 그쪽이 보기에는 서왕의 오른팔을 잘라 낸 셈이 되니까."조원철이 차분히 분석해 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의 의미는 금방 이해가 갔다.태자비의 눈에 그녀는 조만간 서준의 측비로 들어갈 사람이었다. 그렇게 되면 진국공부 전체가 서준의 편에 서게 될 것이 뻔했다.태자비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상황을 막고 싶었을 테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졸린 모양이구나. 이만 자거라."조원철이 어느새 보송하게 마른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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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아씨, 이따가 그냥 들어가실 겁니까? 아니면 숨어서 보실 겁니까?"서유는 진국공부 정원을 거니는 강유영의 뒤를 따르며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경화 공주는 줄곧 세자를 차지하려 안달을 냈지만 여태껏 뜻을 이루지 못했다.오늘 저택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또 한씨를 재촉해 일을 성사시키려는 속셈일 것이다.그런데 한씨는 정말로 사람을 보내 세자를 모셔 오게 했다.그토록 고고하고 단정한 세자가 과연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강유영은 말할 것도 없고 서유조차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숨어서 볼 수도 있어?"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서유를 바라보았다.원래는 당당하게 들어가서 한씨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볼 참이었다.조원철 쪽은 굳이 걱정하지 않았다.워낙 신중한 성격인 데다 줄곧 사람을 심어 한씨를 감시하고 있었으니 한씨의 행보는 이미 그의 손바닥 안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조원철은 그녀보다 먼저 경화 공주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그가 알아서 할 일이니 그녀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당연하지요."서유가 방긋 웃었다."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담장을 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뒷창문으로 안을 엿보면 됩니다.""들키지 않을까?"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렸다.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구경할 수 있으니 꽤 솔깃한 제안이긴 했다.문제는 한씨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한씨는 어떻게든 강유영의 꼬투리를 잡을 구실만 찾고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한씨에게 그녀를 벌할 명분만 쥐여주는 꼴이었다."조심하면 절대 들키지 않을 겁니다."서유가 웃으며 대답했다.만약 강유영이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해도, 시녀인 서유까지 방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평소 보기 힘든 세자가 곤란해하는 상황을 서유 역시 꼭 구경하고 싶었다."글쎄……."강유영은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 주저했다."유영이니? 유영이 맞지?"마침 그때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강유영과 서유는 동시에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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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8화

"마침 잘됐네요."강유영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저도 어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던 참이었거든요."원래는 뒷창문으로 방 안을 엿볼까 망설이던 참이었다. 하지만 진 부인이 뒤따라올 것 같으니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결국 두 사람은 나란히 한씨의 방으로 들어갔다."온다고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어. 사람을 시켜 마중 나가게 했을 텐데."한씨가 반갑게 진 부인의 손을 맞잡았다.강유영은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조원철은 한쪽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무릎에 올린 채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것을 보아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세자도 계셨군요."진씨가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이모님."조원철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담담히 인사만 건넸다. 그의 시선이 진 부인을 스치고 강유영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강유영은 고개를 갸웃했다.분명 서유가 경화 공주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밖에는 공주의 시녀조차 보이지 않았다.'공주는 어디로 갔지? 벌써 돌아갔나?'하지만 이쪽으로 오는 내내 마주친 적이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우리 유영이가 눈에 밟혀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진씨는 한씨의 곁에 앉으며 방긋 웃었다."주루에 음식과 술을 넉넉히 주문해 두었으니 곧 배달이 올 겁니다. 이따가 다 같이 식사나 하세요.""뭘 그리 수고스럽게. 우리 집에 왔으니 내가 대접해야지. 음식값은 내가 내마."한씨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곁에서 지켜보던 강유영은 서로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가 지나치게 살가워 오히려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묘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딱 꼬집어 무엇이 이상한지 알아채기는 어려웠다.잠시 한담을 나누는 사이 밖에서 음식이 도착했다.풍씨 어멈이 시녀들을 거느리고 찬합에서 술과 요리를 꺼내 상에 올렸다. 특별히 수상한 낌새는 없었다.경화 공주가 돌아갔다면 한씨가 세자에게 허튼짓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유영아,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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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9화

진 부인은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한씨는 진국공 부인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조원철같이 훌륭한 아들까지 두었으니 참으로 타고난 팔자가 좋았다.그녀의 아들이 조원철의 반만큼만 번듯했어도 자다가 웃으며 일어날 것이다."자, 원철아, 백숙 좀 먹어 보렴."한씨는 백숙이 반쯤 담긴 그릇을 조원철의 앞에 밀어 놓았다."어미가 널 위해 특별히 끓인 것이란다.""어머니께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표했지만 백숙에 숟가락을 가져가지는 않았다.한씨는 그를 힐끗 보면서도 차마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지는 못했다.그녀는 백숙 두 그릇을 더 떠서 각각 강유영과 진 부인 앞에 놓아주었다."다들 맛 좀 보거라. 아주 넉넉하게 끓였으니까."강유영은 한씨의 살가운 태도에 마음속으로 의구심을 품었다.백숙에 정녕 아무 문제도 없는 걸까?문제가 있다면 그녀와 진 부인에게 주지는 않았을 터였다.짐작이 틀린 걸까?아니면 처음부터 조원철에게 수작을 부릴 요량으로 백숙을 끓였는데 그녀와 진 부인이 불쑥 찾아오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고, 경화 공주마저 돌아가 버리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백숙을 나눠 먹는 걸 수도 있었다.충분히 그럴듯한 추측이었다.하지만 강유영은 섣불리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반면 자기 앞에 놓인 백숙을 한술 뜬 진 부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국물이 정말 깊고 진하네요.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언니의 솜씨는 여전하군요.""입맛에 맞으면 많이 먹으렴."한씨는 진 부인에게 살갑게 답하고는 조원철을 힐끗 보며 재촉했다."원철아, 어미가 반나절을 들여 끓인 것이니 한술이라도 뜨거라. 식으면 비려진단다.""저는 배가 부릅니다."조원철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한술만 뜨라는데 어미 체면 좀 세워주면 안 되겠느냐."가볍게 핀잔을 주는 한씨는 겉보기엔 그저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아끼는 평범한 어머니 같았다.조원철은 숟가락을 쥔 채 국물을 천천히 저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유영은 가슴이 타들어갔다.만약 한씨가 저렇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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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짙고 차가운 그의 눈동자가 한씨를 올곧게 주시하고 있었다."아, 아니… 원철아, 오늘따라 웬일로 어미를 이리 살뜰히 챙기느냐… 전에는 안 그러더니… 내 것은 내가 따로 떠먹으마."한씨는 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어머니, 설마 아들이 주는 것이라 꺼리시는 겁니까? 저는 아직 그릇에 입을 대지도 않았습니다."조원철은 여전히 고집스레 백숙이 담긴 숟가락을 한씨의 입가로 들이밀었다."언니, 그냥 한술 드세요. 아들이 이리 효도하는 것도 다 언니 복이잖아요."진 부인은 곁에서 조원철을 거들며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평소 조원철이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기에, 한씨가 보란 듯이 아들 자랑을 하려고 일부러 꾸민 짓이라고 생각했다."그, 그래. 그럼 한 모금 마시마."한씨는 차마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조원철의 의심을 살 수도 없어 결국 입을 벌려 그가 내민 국물을 삼켰다.그녀는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몰래 뱉어낼 기회를 노리려 했다. 하지만 빤히 쳐다보는 조원철의 시선에 결국 눈 딱 감고 삼켜버리고 말았다. "이건 어머니 드십시오. 저는 새로 뜨겠습니다."조원철은 아예 자신이 들고 있던 그릇을 한씨에게 내밀었다."아니다, 이건 네가 마시거라……."한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그릇을 차마 받아 들지 못했다.이미 한 모금을 마셨는데 더 마시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경화 공주가 건넨 약은 약효가 지독한 대신 서서히 퍼진다고 했었다. 밥 먹는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유영은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조원철은 참으로 대단했다. 말 몇 마디로 한씨가 자기가 판 무덤에 빠지게 만들다니.한씨도 자업자득이었다. 이용당할 줄 알면서도 경화 공주의 그런 파렴치한 제안을 덥석 물었으니 말이다. 약을 탄 백숙을 마신 한씨가 어찌 될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어머니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남이 입 댄 음식은 안 먹습니다."조원철은 그릇 한씨 앞에 내려놓았다.강유영은 입안의 음식을 우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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