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บทที่ 881 - บทที่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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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강유영은 펼쳤던 초식을 거두었다. 서유가 건넨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은 뒤에야 몸을 돌려 조사예를 바라보았다.생각해 보니 조사예를 보지 못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조사예는 예전보다 조금 야윈 듯했다. 하지만 본래 살집이 있는 둥근 얼굴이라 여전히 통통하고 순박해 보였다.물론 강유영은 알고 있었다. 조사예의 본성은 그 순박한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안에 들어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조사예가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았다.아무리 다급해도 아직 혼인하지 않은 처녀였다. 도경진과 정혼한 사이도 아닌 만큼, 함부로 밖에서 입에 올렸다가는 누군가 엿듣고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날 수 있었다.“들어오세요.”강유영은 손에 든 수건을 서유에게 건네고 먼저 방 안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들어오자 단비가 차를 가져와 강유영에게 건넸다. 상석에 앉은 강유영은 단숨에 찻잔을 반쯤 비운 뒤, 잔을 내려놓고 조사예를 바라보았다.조사예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눈앞의 강유영은 예전의 소심하고 주눅 든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말과 행동에 한 치의 조급함도 없었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사람을 압도하는 기세가 느껴졌다. 어딘지 모르게 큰오라버니인 조원철을 닮은 분위기였다.조사예는 입을 열려다가도 강유영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했다.“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강유영이 가느다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재촉했다.물론 조금 전 조사예가 한 말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조사예는 도경진에게 일이 생겼다고 했다.도경진은 강유영의 벗이었으니 전혀 걱정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조사예 앞에서만큼은 그 걱정을 조금도 내비칠 수 없었다.“도 대인께서 크게 다치셨어요. 한 번만 가서 뵈어 주세요.”한동안 강유영의 눈치를 살피던 조사예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근심 어린 얼굴에는 간절한 부탁의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가지 않겠습니다.”강유영은 생각할 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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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저와 도 대인은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말씀은 그만하세요.”강유영이 차갑게 경고했다.“도 대인이 다친 건 정말 너 때문이야!”조사예는 문틀을 부여잡은 채 흥분에 겨워 소리쳤다.“도 대인은 오늘 조회에서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태자 전하를 탄핵했어. 태자 전하가 태자비 마마의 만행을 묵인하고, 관원의 가족인 너를 납치해 국법을 업신여겼다며 폐하께 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를 엄벌해 달라고 했다고!”격앙된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그런데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어. 태자 전하가 보낸 자들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겠어! 도 대인은 너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지경이 됐는데, 너는 얼굴 한 번 보러 가지 않겠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조사예는 문틀을 끌어안은 채 강유영을 향해 울부짖었다. 붉어진 눈에서 끝내 눈물이 쏟아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평소처럼 냉정을 유지했다면 ‘태자가 보낸 자들’이라는 위험한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조사예에게는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강유영을 향한 원망과 도경진을 향한 애틋함이 뒤엉켜 이성을 집어삼킨 탓이었다.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도경진을 대신해 강유영에게 따져야 한다는 생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강유영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도경진은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온화한 문약한 선비였다. 그런 사람이 문무백관 앞에서 태자를 탄핵할 만큼 강직한 성정일 줄은 미처 몰랐다.그런데 도경진은 태자비가 자신을 납치한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의문이 떠오른 순간, 강유영은 곧 답을 깨달았다.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이야기가 새어 나갔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내가 좋아서 너한테 사정하러 온 줄 알아?”강유영이 아무런 반응 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조사예가 더욱 격분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물 젖은 뺨에 달라붙고, 눈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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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지인이 다쳤다는데 찾아가 보는 것 자체는 사실 별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유의 생각일 뿐이었다. 세자의 눈에는 강유영이 다른 사내를 걱정해 일부러 병문안까지 가는 것으로 보일 터였다. 그렇게 되면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서유는 두 사람이 또다시 도경진 때문에 다투게 될까 걱정스러웠다.“조금 더 생각해 보마.”강유영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도경진을 찾아가려면 먼저 조원철에게 말해야 했다.어떻게 해야 그가 순순히 허락할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나친 요구만 아니라면 입을 맞추고 살갑게 애교를 부렸을 때, 조원철은 대부분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하지만 강유영은 그 사실이 못내 억울했다.어째서 매번 그래야 한단 말인가? 조원철은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차분히 이치를 따져 이야기해 줄 수 없는 걸까?“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느냐?”조원철이 돌아왔을 때, 강유영은 한 손으로 뺨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도 대인이 다쳤대요.”강유영은 정신을 차리고 맑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반나절 내내 고민해 보았지만, 아무리 에둘러 말하고 잔꾀를 부려도 조원철은 곧바로 알아챌 터였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솔직히 말하는 편이 자신도 떳떳했다.“그래, 들었구나.”조원철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앉은 뒤 손을 끌어다 쥐었다.“가서 보고 싶은 것이냐?”봄날의 죽순처럼 희고 여린 손가락이 그의 손안에 고스란히 감겼다. 매끄럽고 보드라운 감촉에 그는 좀처럼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허락해 주실 겁니까?”강유영은 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조심스레 그를 올려다보았다. 맑은 눈동자에는 기대와 함께 희미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조원철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했다.강유영은 그가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도경진을 찾아가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조원철이 갑자기 화를 내며 또 자신을 괴롭힐까 봐 두려웠다.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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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무엇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조원철이 곧바로 되물었다.“남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습니다.”강유영은 속으로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사이가 남들 앞에 떳떳이 드러낼 수 있는 관계도 아니잖아요.”소주에 있을 때 도경진은 조원철이 자신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도경진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으니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했을 터였다. 단지 알고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강유영은 이런 느낌이 싫었다. 남들의 은밀한 추측거리가 되는 것도, 언제나 숨어서 몰래 만나야 하는 것도, 햇빛 아래 떳떳이 드러낼 수 없는 관계에 얽매여 사는 것도 모두 싫었다.언젠가는 반드시 이런 삶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그럼 오늘 오후에 다녀오너라. 예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준비해 두마. 서유에게 들고 가라고 하면 될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허락해 주시는 겁니까?”강유영의 새카만 눈동자가 금세 환하게 빛났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들어 조원철을 올려다보았다.“그래.”조원철이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살짝 꼬집었다.“일찍 갔다가 늦지 않게 돌아오거라.”“네.”강유영은 더없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단번에 대답했다.*“안에 계십니까?”강유영은 눈앞의 나무문을 가볍게 두드렸다.문은 반쯤 열려 있어 그 틈으로 뜰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푸른빛이 도는 회색 벽돌로 둘러싸인 작은 집이었다. 마당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구석에 난초 몇 포기가 가지런히 심겨 있었고, 곳곳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누구십니까?”안쪽에서 도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인, 접니다.”강유영이 대답하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강 소저, 이제야 왔군.”도 부인의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번졌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강유영을 맞았다.“어서 들어와 앉게.”도 부인은 여전히 세월이 무색할 만큼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고, 눈빛에는 특유의 영리함이 배어 있었다. 다만 도경진이 다친 뒤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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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강 소저도 알다시피 내 팔자는 참 기구하네. 젊은 나이에 부군을 잃고, 경진이 하나만 바라보며 서로 의지해 살아왔지. 솔직히 그 아이마저 없었다면 나도 진작 제 아버지를 따라갔을 것이네…….”지난 이야기를 꺼내던 도 부인은 이내 눈가를 훔치기 시작했다.강유영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언젠가 조원철이 그녀에게 일러 준 말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라고 했다.강유영 역시 마음속에 온갖 고민을 품고 있었다. 잠시라도 혼자 있게 되면 그 생각들에 짓눌려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그러니 도 부인의 고달픈 과거까지 들어 줄 여유는 없었다.그러나 예의를 생각하면 이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도 부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홀몸으로 아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제는 아들이 장성해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니 자신에게 보답할 차례라는 이야기일 터였다.하지만 도경진은 제법 효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도 부인이 무엇 때문에 불만을 품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 아이 하나를 바라보며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 가며 지금껏 버텼으니 나도 이제 고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네. 지금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성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까.”도 부인은 붉어진 눈으로 강유영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자손이 번창하는 큰 복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제는 며느리를 맞아 편히 살면서 손주를 안아 볼 때도 되지 않았겠나. 강 소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마땅히 그래야지요.”강유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도 부인이 도경진이 아직까지 혼인하여 자식을 보지 않은 일을 한탄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어째서 자신에게 하는 것일까?강유영과 도경진의 혼담은 이미 오래전에 없던 일이 되었다. 더구나 소주에서 도 부인이 벌인 일들로 두 사람이 맺어질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도 부인은 영리한 사람이니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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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강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들어 도 부인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완곡하게 돌려 말했지만, 분명한 거절이었다.그녀는 오늘 도경진의 병문안을 하러 왔다. 도경진과는 벗이라 할 만한 사이였고, 그도 줄곧 그녀를 살뜰히 대해 주었다. 그러니 도경진이 앓아누운 이때 도 부인과 얼굴을 붉히며 일을 험악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도 부인은 더욱 가까이 다가와 강유영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듯 말했다.“내가 홀로 그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라도, 소저가 한 번만 잘 타일러 주게. 분에 넘치는 마음은 이제 그만 품고, 어서 부인을 맞아 자식을 낳으라고 말일세. 계속 저러다 도씨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면, 나중에 내가 죽어 저승에 간들 무슨 낯으로 그 아이 아버지를 보겠나…….”말을 마친 도 부인은 다시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치며 가느다랗게 흐느꼈다. 그 모습이 더없이 애처로워 보였다.강유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유영이 마음 약한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자신은 어른인 데다 이렇듯 가련한 모습까지 보였으니, 차마 거절하지는 못하리라 여겼다.“부인께서 홀로 도 대인을 키우느라 고생하셨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강유영은 붙잡힌 손을 빼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거절하는 태도만큼은 단호했다.“하지만 이는 도 대인의 평생이 걸린 혼사입니다. 부인께서 도 대인과 상의해 결정하실 일이지, 외인인 제가 함부로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그만해 주십시오.”도 부인은 영악한 데다 곧잘 가식까지 떠는 사람이니,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이런 부탁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아직 출가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 다른 사내더러 혼인하라 설득하라니, 어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사실이 밖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체면이 말이 아닐 터였다.“소저가 괜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건 나도 아네. 꼭 어느 집 규수와 혼인하라고 말해 달라는 게 아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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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도 부인이 난데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다음에 또 찾아오면 도 부인이 무슨 말을 꺼낼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이왕 온 김에 지금 도경진을 만나 보고, 앞으로는 발걸음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침실 안의 살림도 단출했다.소나무로 만든 서안 위에는 손으로 베껴 쓴 낡은 책 몇 권이 놓여 있었고, 소박한 백자 화병에는 은빛 버들가지가 몇 가닥 꽂혀 있었다. 부귀한 멋은 없었으나, 맑고 정갈한 운치가 있었다.도경진은 침상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소저.”그녀를 본 순간, 빛을 잃었던 도경진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다.“천천히 일어나거라!”도 부인이 놀라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도 대인, 몸은 좀 어떠십니까?”강유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살피며 다가갔다.도경진의 얼굴에는 군데군데 멍이 들었고, 한쪽에는 피부가 쓸린 상처도 있었다. 본래도 옥처럼 온화하고 단정한 인상에 피부까지 흰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낯빛이 더욱 창백했다. 거기에 상처까지 더해져 금세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고 안쓰러워 보였다.강유영도 차마 똑바로 보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쓰였다.분명 몸에도 상처가 있을 터였다. 얼굴에 난 상처만으로는 그토록 심한 열이 날 리 없었다.“괜찮습니다.”도경진은 자신을 부축한 도 부인의 손을 살며시 떼어 내고 웃으며 말했다.“소저, 앉으세요.”강유영은 자리에 앉은 뒤 밖을 향해 불렀다.“서유야.”서유가 곧바로 준비해 온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딱히 좋은 것은 아니고, 몸을 보하는 약재를 조금 가져왔습니다. 나중에 부인께 부탁드려 달여 드십시오.”강유영은 미소를 지으며 서유에게 물건을 서안 위에 내려놓으라고 손짓했다.“뭘 이런 것까지 가져온 겁니까?”도경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괜찮으니, 돌아갈 때 다시 가져가십시오.”“괜찮기는 뭐가 괜찮다는 것이냐?”곁에 있던 도 부인이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옆구리에 칼을 얼마나 깊이 맞았는데. 의원 말로는 반 치만 더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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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그는 강유영이 마음의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좋은 뜻으로 그러셨다는 건 압니다.”강유영은 그의 말을 끊고 곧은 눈길로 바라보았다.마음속에 품은 말을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지 망설여졌다.도경진은 고개를 저으며 맑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일국의 태자 전하가 법을 업신여겼습니다. 조정에 몸담은 신하로서 마땅히 충정을 다했을 뿐입니다. 정말 소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오히려 그는 강유영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도리어 제 일로 그녀까지 마음 아프게 했으니 말이다.“아무튼… 몸조리 잘하십시오.”하고 싶은 수많은 말은 결국 그 한마디로 줄어들었다.사실 강유영은 말하고 싶었다. 그도 보지 않았느냐고. 자신에게는 조원철이 있고, 그가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고. 도경진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더는 자신 때문에 도경진이 고초를 겪지 않기를 바랐다.그녀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의 마음에 보답할 수도 없었다.그러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라, 아무리 애써도 끝내 꺼낼 수가 없었다.“알겠습니다.”도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다음에는 나부터 지키겠습니다.”“네.”강유영은 입술을 살며시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그녀는 잠시 더 머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어머니.”도경진은 다시 침상에 누운 뒤 밖을 향해 불렀다.도 부인은 곧바로 대답하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왔다.“왜 그러느냐?”강유영을 배웅하고 막 돌아오던 참이었다.“어머니께서 소저에게 하신 말씀, 저도 다 들었습니다.”도경진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안색에는 허약함과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앞으로는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혼인하지 않는 것은 소저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지금은 조정에서 제 지위가 미미하니, 아무리 명문가의 여식을 부인으로 맞아도 남들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질 뿐입니다. 관직이 조금 더 오르면 그때 혼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그는 어머니가 다시 강유영을 찾아가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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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속하가 확인해 보겠습니다.”남풍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잠시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서준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남풍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서준은 눈을 굴려 잠시 생각하더니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가자.”주종 두 사람은 조원철의 뒤를 쫓아 옥림궁에 이르렀다.“이쪽으로 오너라.”서준은 으슥한 곳을 찾아 남풍과 함께 잽싸게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몇 번 숨을 고를 만한 시간이 흐른 뒤, 옥림궁 앞에 건장한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는 내관의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이 날렵했다. 한눈에 보아도 무예를 익힌 자였으니, 결코 진짜 내관일 리 없었다.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준이 곁에 있는 남풍을 툭 밀었다.남풍도 사내를 살펴보고는 서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아마 태자 전하의 수하인 듯합니다.”서준은 소리 없이 웃으며 팔짱을 꼈다. 한바탕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가짜 내관은 먼저 옥림궁의 전각 문 앞에 몸을 붙이고, 문틈을 통해 안을 엿보았다.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는 좌우를 살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단숨에 옥림궁의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이윽고 담장 너머로 훌쩍 몸을 날렸다.“가자.”서준은 더욱 즐거운 듯 웃으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남풍에게 손짓해 자리를 떠났다.“전하, 대체 무슨 일을 꾸미신 겁니까?”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남풍이 물었다. 그 자리에서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한참 멀어진 뒤에야 뒤를 돌아보며 제 주군에게 물은 것이다.“태자 형님께서 조원철과 소 미인이 남몰래 만나는 모습을 보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 것 같으냐?”서준의 길고 아름다운 여우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세상만사를 장난처럼 여기는 듯한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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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고익은 손안에 든 묵직한 금괴를 힘주어 움켜쥐며 더욱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이냐?”건정제는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들라 하라.”“예, 폐하.”고익은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소매 속의 금괴는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물러나 전각을 나갔다.잠시 후, 태자 서용연이 빠른 걸음으로 전각 안에 들어와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아바마마를 뵙습니다.”서용연은 건정제와 마주 앉아 있는 서준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눈 깊숙한 곳으로 질투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됐다.”건정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이기에 그리 다급하다는 것이냐?”그 목소리에서는 별다른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근신 중인 태자가 명을 어기고 멋대로 동궁을 빠져나온 데 대한 불만이 이미 질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아바마마, 어마마마께서 소자를 보내셨습니다.”태자는 그렇게 말한 뒤 서준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 분명했다.서준도 태자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태자는 자신이 동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부터 서준이 마련한 기회라는 사실도 모른 채, 도리어 그를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네 어머니가 직접 짐에게 말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기에, 너더러 짐의 명을 거역하고 동궁을 빠져나오게 했단 말이냐?”건정제는 여전히 태자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태자가 서준에게 보낸 눈길도 모르는 척했다.무엇보다 태자가 독단적으로 병력을 움직인 일 때문에 아직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어전 지휘사 조원철과 관련된 일입니다. 어마마마께서는 조정의 일이니 소자가 직접 아뢰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태자가 황급히 설명했다.이는 미리 황후와 입을 맞춰 둔 말이었다. 사내인 태자가 후궁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서준을 감시하려고 사람을 붙였다가, 그 수하가 후궁에 들어가 조원철과 소은경이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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