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961 - Chapter 970

1195 Chapters

제961화

강유영은 진 부인을 친어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던 자신의 얕은 생각이 부끄러웠다.본인이 심하게 다친 상황에서도 그녀를 이처럼 애틋하게 대할 사람은 친어머니뿐이었다."다 되었습니다. 요 며칠은 음식을 담백하게 드시고 약은 하루에 한 번 갈아주시면 됩니다."의원이 손을 거두며 당부했다.진 부인은 은표를 꺼내려는 시늉을 했다."얼마입니까?""제가 내겠습니다."강유영은 서둘러 소매에서 은표를 꺼내 건넸다.그녀는 진 부인을 부축해 의원을 나와 마차 쪽으로 향했다."다치셨으니 물건은 훗날 사시고,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진 부인의 의중을 물었다."나 혼자 가도 된다." 진 부인은 손사래를 쳤다. "넌 네 볼일이나 보거라.""볼일은 다 보았습니다."강유영은 진 부인을 부축해 마차에 올라 밖을 향해 일렀다."서유야, 진 부인 댁으로 가자."마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유영아, 웬 물건을 이리 많이 샀느냐?" 진 부인은 마차 안 탁자 위에 놓인 활과 화살, 도롱이 등을 보며 의아해했다. "꼭 먼 길이라도 떠날 채비 같구나.""어머니께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강유영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경성을 떠나려 합니다."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어머니에게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한 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으니 곁에서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말 한마디 없이 훌쩍 떠나버린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뭐라고?" 진 부인은 깜짝 놀랐다. "경성을 떠나겠다고? 멀쩡히 잘 있다가 갑자기 왜?"사실 진 부인은 이미 한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강유영이 요 근래 사들인 물건들을 보고 한씨가 추측해 낸 사실이었다.지금 그녀의 놀란 반응은 강유영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연기였다."멀쩡하다니요." 강유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진국공부에서 제 처지가 어떤지 어머니도 짐작하시지 않습니까. 계속 이곳에 있다가는 그들의 세력을 모으는 데 도구로 팔려 가거나
Read more

제962화

"어머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강유영은 진 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방금 나를 뭐라 불렀느냐?"진 부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감격스러운 얼굴로 강유영을 돌아보았다."어머니."강유영은 뺨을 살짝 붉히며 진 부인의 눈을 마주 보고 다시 한번 불렀다.조금 쑥스러웠다.난생처음 입 밖으로 내어본 어머니라는 단어는 달콤하고도 부드러웠다.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구나.참으로 좋은 느낌이었다."오냐!" 진 부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으며 대답하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강유영의 손을 꽉 잡았다."착한 내 딸. 에미가 미안하다.""어머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머니께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셨잖습니까."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진 부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여의찮았을 뿐이었다."이거 받거라."진 부인은 품에서 은주괴 두 개를 꺼내 강유영의 손에 쥐여 주었다."괜찮습니다." 강유영은 극구 사양했다. "어머니, 제게 은표가 있습니다.""진국공부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며 지내는데 네게 돈이 어디 있겠느냐?" 진 부인은 억지로 강유영의 손에 은정을 쥐여 주었다. "넣어 두거라. 네가 날 어미로 인정해 주니 기뻐서 주는 거란다.""정말 괜찮습니다." 강유영은 다시 은 주괴를 밀어냈다. "살림 꾸리기도 빠듯하실 텐데 제게 주지 마시고 살림에 보태십시오."강유영은 속으로 길을 떠날 때 어머니에게 은표를 좀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곁에서 모시지 못하니 돈으로라도 효도를 대신할 생각이었다.진 부인은 몇 번 더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지못해 은주괴를 거두며 물었다."참, 경성을 떠나면 어디로 갈 셈이냐?""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강유영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쪽으로 가다가 발길이 닿는 곳, 마음에 드는 곳에 머물까 합니다."목적지는 따로 없었다.그녀 자신조차 어디로 갈지 모르니 조원철도 그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유영은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Read more

제963화

강유영은 손을 뻗어 앞쪽의 휘장을 살짝 걷어 올렸다.마차는 마침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을 지나고 있었다.앞을 가로막고 선 자는 역시나 조원철이었다.그는 옥색 장포 차림으로 고요히 서 있었다. 석양이 비친 수려한 얼굴과 굳게 다문 입은 설산의 눈처럼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감히 마주 보기 어려웠다.시선을 느낀 듯,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강유영을 똑바로 응시했다.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손을 움츠렸다. 휘장이 내려와 그의 시선을 가렸지만,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말머리를 돌려라. 길을 우회해서 가자."강유영은 주먹을 꽉 쥔 채 서유에게 지시했다.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소지란 주변에 감시하는 눈이 많다고 했는데 왜 또 찾아온 걸까?소지란에게 발각될까 두렵지도 않은 걸까?그는 발각되는 게 두렵지 않다 해도 그녀는 두려웠다.서유는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리려 했다. 막 출발하려는 찰나, 말이 돌연 울음을 터뜨리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무언가에 단단히 놀란 듯했다."아씨, 주군께서 못 가게 앞을 막으십니다……."서유는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당황한 나머지 세자라는 호칭 대신 무의식중에 주군이라 부르고 말았다.강유영은 마음이 어지러워 치맛자락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조원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마차에서 내려 걸어갈까 궁리했다.생각에 잠긴 사이, 돌연 휘장이 걷히며 바깥의 빛이 스며들었다.조원철의 훤칠한 체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낯익은 모습에 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조원철은 몸을 굽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강유영을 힐끗 살피고는 자연스레 곁에 자리 잡았다.강유영은 본능적으로 그의 기척을 거부했다. 조원철이 앉는 순간,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반대편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그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소은경이, 곁에는 소지란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자신을 놔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북교로 가자."조원철은
Read more

제964화

"할 말이 있다."조원철의 목소리는 낮고 차갑고도 단호했다."여기서 말씀하십시오."강유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그녀는 잔뜩 굳은 몸으로 고개를 숙였다. 온몸으로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무슨 말이기에 여기서 하지 못하고 기어이 북교로 가야 하는 걸까."말 들어."조원철이 손을 뻗어 강유영의 손을 잡으려 했다.그의 손끝이 손등에 닿는 순간, 그녀는 흠칫 놀라며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제 마차입니다. 내리십시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고는 치맛자락을 꽉 쥔 채 단호하게 말했다.아무리 중요한 말이라 해도 이제는 순순히 그의 뜻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다.조원철은 미간을 좁히며 강유영을 바라보았다.강유영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끈질긴 시선에 온몸이 불편했다.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결심을 굳혔기에 이번만큼은 뜻을 굽히지 않을 생각이었다."오씨 어멈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냐?"조원철이 불쑥 물었다."무슨 뜻입니까? 또 오씨 어멈을 붙잡아 두신 겁니까?"강유영은 홱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순식간에 두 눈이 붉어졌다.그가 또 오씨 어멈을 볼모로 협박하고 있었다.조원철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았다. 그녀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라면 상처받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조원철은 입을 꾹 다문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강유영은 붉어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이었다."서유, 북교로 가거라."조원철은 밖을 향해 다시 지시했다.밖에 있던 서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씨는 본채로 가라 하고 세자는 북교로 가라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막막했다.조원철이 재차 지시했지만 서유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귀를 기울여 보아도 마차 안에서는 강유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곁에 앉은 청류가 서유의 손에서 고삐를 낚아채려 했다."아씨, 출발할까요?"서유는 고삐를 꽉 쥔 채 망설이다
Read more

제965화

조원철의 동작이 더 빨랐다. 커다란 손이 이미 강유영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힘을 주자 그녀는 그대로 딸려갔다.팔을 밀어내려던 강유영의 두 손은 조원철의 단단한 가슴에 닿고 말았다.곧이어 그녀는 두 발이 들린 채 완전히 그의 품에 안겼다."놓으십시오……."강유영은 분노와 서러움이 뒤섞인 채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다른 여인을 안았던 손으로 자신을 만진다고 생각하니, 형언하기 힘든 거부감이 밀려왔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의 가슴을 밀어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목만 시큰거릴 뿐이었다.조원철의 팔은 무쇠 같았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억눌러 품에 얼굴을 파묻게 했다."놓으시라니까요."강유영은 손목의 통증에 자세를 바꿔가며 그를 밀어냈다.힘으로 당해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직 이 구속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품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그가 다른 여인을 품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끔찍했다.조원철이 제 품에서 그녀의 손을 억지로 빼냈다.그러자 강유영은 주먹을 쥐고 그의 등을 내리쳤다.몇 번이나 내리쳤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때리는 손이 얼얼할 정도로 내리쳤다.그는 묵묵부답으로 그녀를 꽉 끌어안은 채 조금의 틈도 내어주지 않았다."놓으란 말입니다. 오라버니가 너무 싫습니다……."강유영은 분에 못 이겨 입을 벌려 닥치는 대로 그를 물어뜯었다.단단한 가슴 근육이 치아 사이로 미끄러져 나갔고, 결국 부드러운 옷감만 입에 물렸다.잔뜩 독이 오른 그녀는 옷감을 꽉 문 채 거칠게 물어뜯었다."그만하거라. 피곤하구나."조원철은 한 손으로 강유영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자신의 가슴에 밀착시켰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강유영은 멈칫하며 몸부림을 멈추었다.그가 이렇게 기운 빠진 목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 들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뺨을 잡고 있었다. 귓가에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눈에서 왈
Read more

제966화

굳이 이런 해명을 왜 하는 걸까?그가 굳이 그녀에게 해명할 이유는 없었다.어차피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사이였다.게다가 훗날 정실이 된다 해도 남자가 첩실을 들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사내는 그렇게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엉뚱한 생각 마라. 난 그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다."조원철은 강유영을 조금 더 꽉 끌어안았다."소지란은 침상에서 자고 난 평상에서 잤다. 그저 바깥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지. 폐하께서 나를 감시하라고 보낸 자다. 그 여자가 데려온 아홉 명의 하인 역시 각기 모시는 주인이 따로 있고, 그 진짜 주인들은 모두 궁 안에 있다."조원철은 나직한 목소리로 핵심적인 상황을 일러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잠긴 목소리였다."예, 알고 있습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랍을 쳐다보았다.그 서랍에 값비싼 장신구가 가득 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원철이 서랍을 열 때마다 빠짐없이 보아왔다.모두 소은경을 위해 준비한 것들로, 아직 전해줄 기회를 찾지 못했을 뿐일 것이다."그만 울거라."조원철이 고개를 숙여 강유영의 눈물을 꼼꼼히 닦아주었다.강유영은 입술을 깨물 뿐 몸을 피하지 않았다.그녀가 불쑥 물었다."소지란의 본래 성이 소씨가 아닙니까?"전에 서준에게 듣기로, 소지란의 본래 성은 송씨였다. 황제가 조원철에게 소은경을 멀리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성을 바꿔 하사한 것이라 했다.서준의 말에 따르면, 조원철이 궁 안에서 소은경과 은밀히 만남이 있던 것을 태자가 황제에게 고발하는 바람에 황제가 소지란을 하사했다는 것이다.강유영은 서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조원철이야 의지할 곳 없는 고아인 그녀를 괴롭힐 때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하지만 소은경은 이제 후궁이었다. 조원철이 태자의 사람에게 덜미를 잡힐 만큼 부주의하게 굴었을 리 없었다.그는 결코 허술한 사내가 아니었다."그래."조원철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본래는 송씨다.""어째서 성을
Read more

제967화

"요 근래 일이 많아 널 서운하게 했구나."조원철은 강유영의 정수리에 턱을 얹고 가볍게 비볐다."서운하지 않습니다."강유영은 눈을 감으며 조용히 대답했다.그녀는 방금 전의 생각을 거두었다. 그가 소지란을 안지 않았다는 사실은 꽤 중요했다.만약 다른 여인을 안고서 자신에게 입을 맞췄다면, 거부감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소지란을 떠올리니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 역시 가엾은 사람이었다. 조원철과 건정제 사이에 끼여 있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 막막할 것이다."세자, 도착했습니다."마차 밖에서 청류가 알렸다.조원철은 먼저 일어나 마차에서 내린 뒤,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강유영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손에 제 손을 얹었다.예전처럼 순순히 말을 잘 듣는다고 믿게 만들어야 훗날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이끌고 마차에서 내렸다.발이 땅에 닿자마자 고개를 든 강유영은 멍하니 멈춰 섰다.뜰 곳곳에는 붉은 비단이 장식되어 있었고, 회랑 아래에는 주홍빛 풍등이 걸려 있었다. 돌계단 아래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혼례의 화사함이 가득했다.예전에 와본 적이 있는 저택이었으나,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꼭 혼례라도 치를 모양새였다. 누가 혼인을 하는 걸까.그녀는 고개를 돌려 맑은 눈동자로 조원철을 쳐다보았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문앞에는 금박을 입힌 축하글이 붙어 있었고, 창문에는 희(囍)자를 올린 붉은 색종이가 발라져 있었다. 들보 아래로는 분홍빛 얇은 비단이 드리워졌고, 긴 탁자 위에는 환하게 웃는 월하노인 상이 모셔져 있었다. 화사하고 경사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였다."이곳을 왜 이렇게 꾸며놓은 것입니까?"강유영은 주위를 둘러보다 조원철을 보며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가 굳이 그녀를 데려온 것은 누구의 혼례에 참석시키기 위함일까. 혹여 청운 무리의 혼례인 걸까. 그럴싸했다.하지만 청운은 조원철처럼 차갑고 과묵했다. 여인들이 보
Read more

제968화

'설마 나와....'정실로 맞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첩실로 들이는 것도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불가능했다.그는 조정에서 사사건건 태자의 견제를 받는 데다 이따금 서준의 계략에도 맞서야 했다. 게다가 건정제를 모시며 온갖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니 이미 충분히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만약 그녀를 첩실로 들인다면 명성에 금이 가 상황만 더 꼬일 것이다.그가 그런 이성적이지 못한 일을 벌일 리 없었다.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그녀를 외실로 들이는 것.강유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눈치를 채다니 참으로 미련했다. 교외의 저택에서 이처럼 혼례 흉내를 내는 것은 외실을 들일 때나 하는 짓이었다. 저택을 이리도 화사하게 꾸며준 정성에 감사라도 해야 할 지경이었다.아마도 곁에 소지란을 둔 일로 그녀가 크게 반항하자, 적당히 달래줄 요량으로 벌인 일이라 생각했다.강유영은 손을 뻗어 평상에 놓인 얇은 비단 이불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불에는 금실로 정교한 꽃무늬가 수놓여 있었고, 곁에 둔 작은 탁자에는 부부 화합을 상징하는 쌍둥이 목각 인형이 놓여 있었다.다행히 외실은 정실이나 첩실을 들이는 것과 달리 혼인 문서가 남거나 얽매일 규범이 없었다.우선 순순히 굴복한 척 그의 뜻에 맞춰주어야 훗날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강유영은 한숨을 내쉬며 평상에 몸을 기대고 두 눈을 감았다.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잠시 눈이나 붙이는 편이 나았다.몸은 기진맥진한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방 안의 화사한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하긴, 남의 외실로 들어앉게 된 마당에 이런 신혼방 같은 곳에서 잠이 올 리 만무했다.해 질 녘, 청운이 저녁상을 내왔다.강유영은 억지로 밥을 뜬 뒤 청운에게 상을 물려 달라고 했다.오래 누워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하여 더운물을 청해 목욕했다. 따뜻한 물에 한참 몸을 담그고 나니 한결 개운해졌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다시 평상에 몸을 기댔다.잡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은 어쩔
Read more

제969화

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깐 채 화장대 위의 화장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녀를 외실로 들이기로 작정한 이상, 이미 어찌할지 조원철은 이미 다 계획해 두었을 것이다.그녀는 그저 순종해야 했다.조원철은 참빗을 내려놓고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쥐어 조금씩 땋고 단단히 묶어 올렸다. 움직임은 부드럽고도 신중했으며, 다정함마저 묻어났다.한참을 기다리던 강유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평소 머리를 빗겨줄 때는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었다.대체 어떤 모양이기에 이리도 복잡한 걸까.거울 속에는 정수리 쪽의 머리만 보일 뿐, 뒤통수는 어떻게 틀어 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작은 청동 거울을 집어 들어 그녀의 등 뒤에 놓았다. 그제야 뒤쪽 머리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거울 속에 비친 머리 모양을 확인한 그녀는 흠칫 놀라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그가 묶어준 것은 다름 아닌 동심계(同心髻: 고대 올림 머리의 일종)였다. 솜씨도 훌륭하여 높으면서도 뾰족하지 않고 무척이나 단아했다.하지만 동심계는 여인이 혼례를 치를 때나 땋는 머리였다.그저 외실로 들일 뿐이면서 어찌 동심계를 튼단 말인가.조원철은 손에 든 작은 거울을 내려놓지 않은 채, 한 손으로 화장대 위의 장신구 함을 열었다.그러고는 안에서 백옥 봉황 비녀를 꺼냈다. 영롱한 옥빛 봉황 머리가 살짝 아래를 향한 채 입에 금 장식을 물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둥근 진주가 매달려 있었다.그 비녀가 머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꽂혔다.머리 양옆에는 붉은 금으로 세공된 동백꽃 모양의 작은 비녀가 꽂혔다. 자잘한 진주 장식이 달려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가볍게 흔들리며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남은 것은 작고 앙증맞은 동백꽃 귀걸이 한 쌍뿐, 더 이상의 번잡한 장식은 덧붙이지 않았다.강유영은 멍하니 거울 속을 응시했다. 화려한 장신구를 치장하니, 묘하게 고아한 기품이 흐르는 듯했다."마음에 드느냐?"조원철은 작은 거울을 내려놓고 비녀를 반듯하
Read more

제970화

강유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보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문을 열고 곧장 그에게 다가가는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팔을 들거라."조원철은 미리 준비해 둔 옷을 들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유영은 고분고분 팔을 들어 올리고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그가 옷을 겹겹이 입혀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이 옷은 머리 모양보다 훨씬 복잡하여 입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다 되었다, 보거라."마침내 조원철이 그녀를 부축해 돌려세워 거울을 마주 보게 했다.강유영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 단 한 번 시선을 주었을 뿐인데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거울 속 여인은 단아한 동심계를 틀고, 겉에는 짙은 푸른색 비단 덧옷을, 안에는 옥색 저고리를 받쳐 입었다. 어깨에는 어두운 금실로 덩굴무늬가 수놓인 얇은 허리띠를 둘렀고, 아래에는 짙은 초록빛 목련꽃 무늬 치맛자락이 우아하게 떨어졌다.이 나라는 혼인하는 날 신랑은 붉은 옷을, 신부는 녹색 옷을 입는 풍습이 있었다.그녀가 입은 이 옷차림은 정실부인을 맞이할 때나 입는 규격으로, 더할 나위 없이 단아하고 기품이 넘쳤다.그가 이토록 정통적인 혼례복과 격식을 차린 치장, 그리고 귀한 장신구들 정말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가슴이 떨렸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요동쳤다. 꽉 쥔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한낱 꿈이라 여겼을 것이다."곱구나."조원철 역시 거울 속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차가웠던 눈동자에는 보기 드물게 부드러운 기색이 번져 있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소지란의 일로 기분을 달래주려는 거라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그녀에게 어찌 이렇게 공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잠시 기다리거라."조원철은 그녀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는 돌아서서 얇은 비단 휘장이 쳐진 안쪽으로 향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않았다.마음이 몹시 심란하여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Read more
PREV
1
...
9596979899
...
12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