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971 - Chapter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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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1화

조원철은 강유영을 품에 안은 채 귓가에 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변방의 혼례는 경성과 다르다. 그곳에서는 천지신명과, 달에 절을 올리면 혼례를 마친 것으로 친다."그는 시선을 내려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그 말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천지신명과, 달에 절을 올려 혼례를 치른다고?이 모든 것을 준비한 이유가 정녕 그녀와 혼례를 올리기 위함이란 말인가.첩이나 외실로 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인으로 맞겠다는 뜻일까?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불신이었다.두 사람이 혼인을 하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직 족보에 나란히 이름이 올라 있고, 경성 사람 모두가 두 사람을 남매로 알고 있었다.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오늘 우리가 이 예를 행할 것이다. 천지신명께 절하고 밝은 달에 머리를 조아려 평생의 부부로 맺어지는 것이지."조원철은 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강유영은 그 자리에 선 채 경악했다. 제 귀를 의심했고, 그가 헛말을 한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평생의 부부가 된다니. 얼마나 황당한 소리인가.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그녀는 입을 달싹였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그가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이끌고 침실을 나와 본채를 지났다.본채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문밖 뜰까지 길게 깔려 있었다.그녀는 그를 따라 문지방을 넘었다.뜰에는 어느새 향탁이 차려져 있었다.탁자 위에는 과일 쟁반과 술이 가득 담긴 잔이 놓였고, 양옆으로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향로에 꽂힌 향은 푸른 연기를 피워 올렸다.머리 위로는 밝은 달이 높이 떠올라 맑은 빛을 대지에 뿌렸다. 뜰 안의 촛불과 어우러진 풍경은 엄숙하면서도 경사스러웠다.조원철을 따라 걷는 강유영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솜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환상 속에 있는 것만 같아 당장이라도 꿈에서 깰 듯했다.뜰 안에는 청간과 청류만이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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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달빛이 그의 진중한 얼굴을 비추었다. 평소의 서늘함은 자취를 감추고, 보기 드문 부드러움과 우아한 기품만이 감돌았다.똑바로 마주보기도 어려울 만큼 수려한 모습이었다.강유영은 시선을 거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벅차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그가 이토록 귀하게 예우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의 훗날을 망칠 수는 없었다."어찌 절을 하지 않느냐?"조원철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강유영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책에서 읽기를, 천지신명과 달에 절을 올리면 하늘과 땅, 해와 달을 증인으로 세우는 일이며 월하노인의 혼인 장부에도 이름이 오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오라버니와 이 예를 치르면 훗날 정실을 맞으실 때 흠이 될 것입니다. 장난으로 넘길 일이 아니니, 이 절은 올리지 않겠습니다."이런 마음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토록 애달파했던 지난날이 마냥 헛되지는 않았다고 여겼다.이대로 떠난다 해도, 훗날 그를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너를 부인으로 맞는 것으로 족하다. 절을 마치고 나면 네가 나의 정실이다."조원철은 나직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풍성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유영은 그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슴은 미친듯이 뛰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스스로 알기나 하는 걸까. 제발 이런 희망 고문은 하지 말았으면 했다. 행여나 이 상황을 진심으로 믿고 깊이 빠져들어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아씨, 어서 절하십시오! 달의 신께 절하시오."애가 탄 청류가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조원철은 강유영의 손을 이끌며 절을 올리자고 눈짓했다.얼떨결에 그를 따라간 강유영은 하늘의 밝은 달을 향해 사뿐히 절을 올렸다."부부 맞절."청류는 서둘러 마지막 구호를 외쳤다.그는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어그러질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조원철은 강유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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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3화

강유영은 혼자 조용히 머물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네게 줄 것이 있다."조원철은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혹시……."강유영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바꿨다."목이 마릅니다. 물을 좀 마시고 싶습니다."얽힌 생각을 정리하고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알겠다."조원철은 팔을 풀고 방으로 들어가 물을 따랐다.강유영은 회랑 기둥을 짚고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마음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그녀는 이내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혼서.혼례에 관해서는 그녀도 아는 바가 있었다.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을 때 가장 중요한 증표는 관아에 기록으로 남기는 혼서였다.혼서에 사내와 여인의 이름을 적고 쌍방이 지장을 찍은 뒤, 관아에 바쳐 관인을 받아야만 비로소 진짜 부부로 인정받는 것이다.조원철과 그녀는 그저 하늘과 땅에 절을 올렸을 뿐이었다. 정식으로 예를 갖추어 혼담을 넣은 것도 아니고, 하객을 부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증명해 줄 혼서가 없었다.그러니 이것은 혼례라 부를 수 없었다.참으로 어리석었다. 그가 말로만 그럴싸하게 흉내를 낸 것뿐인데, 덜컥 겁을 먹고는 혹여나 그의 훗날을 망칠까 봐 걱정까지 했으니 말이다.어차피 그에게 이 모든 일은 한낱 장난에 불과할 것이다."마시거라."조원철이 찻물을 따라 건넸다.강유영도 이제 정신이 돌아온 상태였다. 그녀는 찻잔을 받아 들고 목을 축였다.찻물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으며, 은은한 단맛이 감돌았다."더 마시겠느냐?"조원철이 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입안은 달콤했지만 속은 썼다.이런 수고까지 해준 걸 보면, 그로서는 그녀에게 충분히 도리를 다했다고 여길 것이다.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헛된 기대를 품고 착각에 빠졌던 지난날이 우습게 느껴졌다.다행히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완전히 속아 넘어갈 뻔했다.조원철은 그녀의 손에 들린 찻잔을 받아 남은 물을 마시고는 손을 이끌어 방 안으로 향했다.이번에는 강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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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4화

강유영은 주저하지 않고 붓을 들어 두 장의 혼서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오기가 치민 탓도 있었다.어차피 가짜 혼서였다.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다.서명한들 어차피 효력도 없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조원철 역시 빠르게 혼서에 서명했다. 곧바로 뚜껑을 열어 엄지에 붉은 인주를 묻히고는 혼서 위에 지장을 꾹 눌러 찍었다.그는 강유영에게 인주 함을 내밀었다.강유영은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라 엄지에 인주를 묻혀 나란히 지장을 찍었다.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는 긴장하거나 허둥대지 않았다.그저 장단에 맞춰 연극을 해주면 그만이었다.그가 그녀를 속이니, 그녀도 그를 속이는 셈이다. 서로 비긴 셈 치기로 했다."내일 짬을 내어 액자를 구해오마."조원철이 혼서를 거두며 말했다.강유영은 무심코 물었다."이것을 금수 상회에 가져가면 보흥 전당포를 무사히 물려받을 수 있습니까?"이 혼서가 가짜라는 것은 그녀만 알 뿐, 금수 상회는 모를 수도 있었다.조원철이 만든 물건이니 감쪽같을 것이 분명했다.사실 심사가 뒤틀려 홧김에 내뱉어 본 말에 불과했다.이 가짜 혼서를 들고 나가 남들에게 보여줄 배짱은 없었다.이 위에는 조원철과 그녀의 이름이 버젓이 적혀 있지 않은가.설령 가짜라 해도 행여나 남들 눈에 띄면 큰일 날 일이었다.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그럴 수도 있지."조원철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액자에 넣은 뒤 내 이름을 가려줄 테니 가져다 쓰거라."강유영은 눈동자를 굴렸다.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이름을 가려준다면 정말 한번 써먹어 볼 만했다.관아에 이 혼사가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조원철의 수완이라면 인장만큼은 진짜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무사히 속여 넘길지도 모른다.전당포를 넘겨받은 뒤 경성을 떠나면 더는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생각에 잠긴 사이, 조원철은 그녀를 이끌고 침실로 향했다."앉거라."조원철이 그녀를 침상에 앉혔다.잡생각에서 빠져나온 강유영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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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5화

너무 그럴싸했다. 이번 연극은 참으로 진짜 같았다.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조원철이 몸을 숙여 그녀와 팔짱을 꼈다. 두 사람은 먼저 술을 반쯤 마시고 잔을 바꾼 뒤 남은 술을 마저 비웠다.잔에 담긴 것은 달콤한 과실주였다. 독한 술이 아니었음에도 강유영은 금세 얼굴이 달아올랐고, 귀까지 달아올랐다.언젠가 그와 천지신명께 절을 올리고, 혼서에 서명하며 합환주를 마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왕 이리된 것, 진짜라고 쳐두자.떠나기 전, 달콤한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조원철은 잔을 침상 아래에 내려놓았다. 잔 하나는 위를, 다른 하나는 아래를 향하게 두어 부부 화합의 예법에 꼭 맞췄다.모든 걸 마친 그가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왔다.강유영은 마음을 다잡았건만, 다가오는 그를 보자 어쩔 수 없이 긴장했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다시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조원철이 곁에 앉으며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이리 오거라."강유영은 우두커니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조원철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촛불의 따스한 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솜털까지 보일 만큼 가까웠고, 붉은 뺨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까만 속눈썹이 옅은 그림자를 드리워 눈빛을 가렸고, 오뚝한 코와 꾹 다문 붉은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졌다.강유영은 그의 시선이 불편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조원철은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고는 가볍게 힘을 주어 품에 가두었다.강유영은 익숙하고 단단한 품에 안겼지만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그와 얽힌 시간이 길어지며 예전처럼 겁을 먹지 않게 된 탓이다.마음을 굳힌 이상 거짓으로 밀어낼 필요도 없었다.조원철은 그녀를 안은 채 머리맡의 나무 상자를 가져와 앞에 내밀었다.강유영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시선만 던졌다.묵직한 녹나무 상자였다. 모서리에는 구리를 덧대었고 앞면에는 복잡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한눈에 보아도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받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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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6화

강유영은 스스로가 참 한심했다.거짓으로 달래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무심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울고 싶지 않았건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울지 말거라."조원철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 쥐고 엄지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길에는 애틋함이 묻어났다."지금은 모든 것을 간소하게 치를 수밖에 없어 널 서운하게 했구나. 훗날 만사가 안정되면, 그때는 제대로 예를 갖추어 성대하게 널 맞이하마."짙은 눈동자에는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진중한 말투는 도무지 연기라고 보기 어려웠다.강유영은 눈을 반쯤 감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그저 기분에 취해 잠시 달래는 것일 뿐인데.'하지만 그가 다정하게 굴수록 더욱 빠져들고, 이 허상에 미련을 두게 될까 두려웠다.훗날 그를 떠날 때 이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착하지, 그만 울거라."조원철은 붉어진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맺힌 눈물을 거두어냈다.강유영은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조원철이 천천히 다가와 입술을 맞댔다. 거칠게 탐하는 것이 아닌, 그저 부드럽게 입술을 포갤 뿐이었다."눈을 감거라."그가 손을 들어 물기 어린 두 눈을 가렸다.눈앞이 캄캄해진 강유영이 무의식중에 눈을 깜박이자, 젖은 속눈썹이 그의 손바닥을 간질였다.조원철은 입맞춤을 더 깊게 하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러웠다.강유영은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그녀에게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으나, 조원철은 그 작은 움직임에 이성을 잃은 듯했다.그는 강유영을 힘껏 끌어안고 뒷목을 단단히 받쳤다. 손가락이 틀어 올린 머리칼 사이로 파고들며 도망칠 수 없게 품에 가두었다.입맞춤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거칠고 노골적이었다.강유영은 억지로 고개를 젖힌 채 숨을 헐떡였다.입맞춤이 너무도 거칠었다. 반항할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앓는 소리만 삼킬 뿐이었다.숨 쉴 틈조차 없었다. 공기를 모조리 빼앗겨 버린 듯했다.온 힘을 다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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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7화

늘어진 휘장이 내려지자 눈앞이 짙은 어둠으로 덮였다.그녀는 긴장하여 눈을 떴다. 그가 지척에 있음에도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시야가 차단되자 다른 감각들이 곤두섰다.그의 체온은 델 듯이 뜨거웠다. 닿은 살갗을 통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빠르고 강하게 뛰는 그의 심장 박동이 생생하게 느껴져 그녀의 호흡마저 흐트러졌다.귓가에 닿는 거친 숨소리는 평소의 차분하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휘장 안의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열기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이 몸이 속절없이 늘어졌다.달아오른 귓바퀴에 입을 맞추던 그가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착하지. 내가 누구냐?"낮게 잠긴 목소리에는 짙은 열기가 묻어났다. 억누르지 못한 욕정이 섞인 음성이었다.강유영은 온몸이 저릿해져 입을 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숨이 막힐 듯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녀는 그저 숨만 가쁘게 몰아쉬었다."대답해 보거라."조원철이 고개를 숙여 뺨을 비비며 다그쳤다. 집요하고 짙은 열망이 담긴 목소리였다.부드럽게 달래면서도 끈질기게 몰아붙였다."원철... 오라버니……."강유영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는 사랑을 나눌 때면 그녀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요구하고는 했다.흐트러진 목소리가 애달프게 울렸다."틀렸다."커다란 손이 얇은 허리를 강하게 쥐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름의 벌을 내리는 듯했다."이제, 무리입니다……."강유영이 허리를 비틀며 그의 팔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손톱이 그의 살갗을 파고들었다.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날 뭐라고 불러야 하지?"조원철이 끈질기게 다그쳤다."모, 모르겠습니다…… 제발 그만……."벼랑 끝까지 몰린 그녀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다잡으며 그의 질문을 곱씹었다.지금까지 줄곧 이렇게 불렀고 틀렸다고 한 적이 없었다.'여태껏 줄곧 이렇게 부르지 않았던가? 틀렸다고 한 적 없었는데.'"서방님이라 부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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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8화

침실 안의 소란이 점차 가라앉고, 서로의 익숙한 숨결만이 침상 위를 맴돌았다.조원철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강유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짙은 속눈썹에는 여전히 물기가 맺혀 있었고, 하얀 뺨은 붉게 달아올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온몸이 무겁고 쑤셨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어 딴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점차 잦아드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에 눈꺼풀이 무거워져 당장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아직 자지 말거라."조원철이 땀에 젖은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겨주며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강유영이 눈을 떠 그를 보았다. 평소의 맑은 눈빛 대신 지치고 멍한 기색이 역력했다.졸려 죽겠는데 자지 말라니, 야속하기만 했다."요를 간 뒤에 자거라."조원철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붉은 요와 비단 이불 위는 물자국이 얼룩져 엉망이었으니, 이대로 잠들 수는 없었다.그 말에 강유영의 몽롱하던 눈빛이 단번에 맑아지고, 차갑게 가라앉았던 뺨이 순식간에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조원철은 낮게 웃으며 다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잠시 기다리거라."말을 마친 그는 몸을 일으켰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드러났다. 가슴과 팔, 어깨 곳곳에 그녀가 할퀴고 깨문 자국이 가득했다. 하얀 피부 위에는 전장에서 얻은 오랜 흉터들도 있었지만, 유독 간밤에 그녀가 남긴 붉은 자국들만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몸을 돌려 웅크렸다. 조원철이 돌아보니, 그녀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는 다시 옅게 웃고는 침상에서 내려갔다. 얇은 이불 하나를 가져온 그가 강유영이 덮고 있던 비단 이불을 들춰내려 했다."왜, 왜 이러십니까?"강유영은 당황하여 이불자락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우선 이걸 덮거라."조원철이 손에 든 얇은 이불을 들어 보였다."싫습니다. 속적삼을 가져다주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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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9화

강유영은 피식 웃는 그의 모습이 얄미웠다. 단추를 몇 개 채우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조원철은 화를 내지 않고 손을 뻗어 그녀를 침상 아래로 이끌었다.침상 곁에 선 강유영은 그가 한쪽에 준비해둔 새 이불과 요를 보았다. 거들 생각 없이 침상 기둥에 기댄 채 가만히 기다렸다.조원철은 휘장을 걷어 올리고 붉은 비단 이불을 걷어 한쪽에 둔 뒤, 깔려 있던 요를 치우려 했다."이리 와서 보거라."그가 불쑥 강유영을 불렀다."뭘 보라는 겁니까?"강유영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돌렸다. 발걸음은 떼지 않았다."오거라."조원철이 손짓했다.강유영은 의아해하며 눈을 깜박이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조원철이 침상의 한 곳을 가리켰다.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그녀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요가 온통 구겨지고 얼룩진 것은 둘째치고, 발치 쪽에 가까운 한가운데는 아예 천이 찢어져 구멍이 나 있었다. 뜯어진 가장자리가 흉하게 일어나 간밤의 격렬했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조원철이 손을 내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네가 발로 차서 이리 된 것이다."강유영은 곱지 않게 그를 흘겨보았다. 얼굴은 물론 코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그녀의 발은 그곳까지 닿지도 않았다. 온전히 그의 짓이었다."그래, 나다."조원철이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그 당당한 태도에 말문이 막힌 강유영은 홱 등을 돌렸다."요나 빨리 까십시오."어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일을 안색 하나 안 변하고 인정할까?정말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침상을 짚고 선 몸은 밤새 시달린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선 채로 잠들 것 같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입맛은 전혀 없었다. 오직 빨리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조원철은 금세 새 요를 깔았다."이제 자자."강유영은 몸을 돌려 신발을 벗고 침상에 올랐다. 서늘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등을 돌려 누울 때까지 그에게 시선 한 번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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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0화

강유영은 성화에 못 이겨 입을 벌리고 탕을 마셨다.맑고 달콤한 맛이 혀끝에 번졌다. 국물은 달달하면서도 물리지 않아 제법 맛이 좋았다.몽롱하던 머리가 조금 맑아지자, 저도 모르게 그가 든 그릇을 올려다보았다.그릇에 담긴 것은 달콤한 대추탕이었다. 순간 마음이 일렁였다.조원철이 대추 하나를 떠서 입에 넣어주었다.강유영은 달콤한 대추를 머금은 채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이 나라는 이런 풍습이 있었다.신혼 첫날밤을 치른 다음 날 아침, 갓 맺어진 부부는 대추탕과 경단을 먹었다. 달콤하고 화목하게 백년해로하며 영원히 헤어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조원철이 이런 것까지 챙겼단 말인가.생각이 미치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침상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쟁반에는 과연 경단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예법이란 예법은 다 갖출 작정인 모양이었다.강유영은 대추를 삼키고는 고개를 저었다."그만 먹겠습니다."마음이 편치 않으니, 대추의 단맛이 그저 느끼하게만 여겨졌다."경단도 조금 먹거라."조원철은 경단 그릇으로 바꿔 들어 그녀에게 먹여주었다.강유영은 고분고분 경단을 받아먹었다.달콤한 팥앙금이 든 경단은 대추탕처럼 마냥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팥 특유의 향미가 돌아 맛이 좋았다.그녀가 거부하지 않자 조원철은 조금 더 먹여주고는, 수건을 가져와 입가를 닦아주었다.강유영은 이불을 끌어당겨 누웠다.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온몸을 빈틈없이 감쌌다.반쯤 감긴 눈으로 보니, 조원철은 그녀가 남긴 경단과 대추를 집어 먹고서야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더 생각할 기력도 없었다.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조원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얌전하고 평온한 얼굴이 유난히 말개 보였다.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커다란 손으로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고 붉게 달아오른 뺨을 매만지며 한참을 곁에 머물렀다.한참 뒤 밖에서 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그는 이불깃을 덮어주고 몸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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