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Kabanata 91 - Kabanata 100

116 Kabanata

91화. 성문을 연 국왕 폐하

희수는 본사 로비의 거대한 회전문을 통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높은 층고와 대리석 바닥,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수트 차림의 사람들.이곳은 재원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견고한 '성'이자, 희수에게는 가장 아픈 기억이 서린 장소였다.몇 년 전, 서투른 마음으로 도시락을 들고 찾아왔던 날이 떠올랐다.그때 재원은 로비 구석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희수를 몰아세웠다."여기가 어디라고 와. 공과 사 구분 안 돼? 업무 방해니까 그냥 가."그날 희수는 제 손에 들린 도시락 가방보다 더 무거운 비참함을 안고 돌아섰어야 했다.희수는 로비 안내 데스크 앞에서 주춤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그냥 돌아갈까. 또 그때처럼 무시당하면 어떡하지.'불안함이 발끝부터 차올랐지만, 아침에 재원이 보여준 그 당당한 미소를 떠올리며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자기야, 나 지금 로비인데."재원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저 멀리 엘리베이터 홀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평소라면 절대 뛰지 않는 안 대리가, 넥타이까지 휘날리며 로비를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로비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재원에게 꽂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희수야!"숨을 헐떡이며 멈춰 선 재원이 희수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희수는 당황해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손을 빼려 했다."잠깐, 자기야. 사람들 다 봐. 안 대리님 체면이...""체면 같은 거 모른다. 백성이 직접 알현을 오셨는데, 왕이 마중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재원은 예전의 그 차가운 철벽 대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표정으로 희수를 응시했다.그의 눈에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적인 공간'에 대한 강박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가자. 내 자리가 저 위다."재원은 망설이는 희수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당당히 게이트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 타서도 그는 희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마주치는 동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자, 재원은 유례없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A, 내 여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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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한 달간의 독방

"인스타 즐겨찾기? 진짜 언제부터 본 거야?"희수의 장난 섞인 질문에 재원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그저 귓가로 피가 몰려 터질 것처럼 붉어질 뿐이었다.언제부터였냐고 묻는다면, 희수와 헤어지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던 날부터였다.처음 일주일 동안 재원은 지독한 오만과 자존심으로 버텼다.고작 연애 하나 끝났다고 무너질 사람인가 싶어 평소보다 출근을 앞당기고, 일에 미친 사람처럼 몸을 굴렸다.하지만 불 꺼진 텅 빈 아파트에 들어설 때마다 명치끝이 짓눌리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몸이 아픈 거라 스스로를 속이며 타이레놀을 삼켰지만, 그건 약으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그리움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평소 SNS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남자가, 결국 희수의 소식이 너무 궁금해 의미 없는 영어와 숫자를 조합한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ajw19820314. 고심 끝에 입력한 아이디는 본인 이니셜과 생년월일의 조합이었다.프로필 사진도 없고 팔로워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계정이었다.오직 희수의 미용실 인스타 하나만 즐겨찾기 해둔 채,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새로고침만 수백 번을 눌렀다.남들은 그냥 지나칠 강아지 미용 사진을 한참 동안 확대해 보곤 했다.사진 구석 유리창에 아주 작게 비친 희수의 실루엣을 찾아내고, 혹시 손가락에 대역 밴드가 붙어 있으면 어디 다친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사진 속 희수의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 보여도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독한 미련의 시작이었다.회사에서 대형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서류의 글자 대신 희수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공적인 자존심과 회사에서의 완벽함이, 희수가 없는 공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껍데기일 뿐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퇴근길, 예전에 희수가 찾아왔을 때 모질게 돌려보냈던 본사 로비 구석을 지날 때마다 밀려드는 죄책감과 후회로 숨이 막혔다.그날 희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도시락 가방 끈을 꼭 쥐고 아무 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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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행동주의자의 생일 주간

오후 두 시, 미용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렸다.희수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낯선 남자가 말티즈 한 마리를 안고 서 있었다."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들어왔는데요. 혹시 지금 미용 되나요? 예약은 없는데."희수는 잠깐 달력을 확인했다. 마침 두 시 예약이 노쇼였다."되네요. 들어오세요."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훈훈한 외모에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희수는 반사적으로 남자가 아니라 그가 안고 있는 말티즈에게 시선이 꽂혔다.하얗고 둥근 얼굴. 크고 까만 눈.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구름이랑 판박이였다."이름이 뭐예요?""뭉게요."희수는 손을 내밀었다. 뭉게가 코를 킁킁대더니 손바닥을 핥아왔다."대기해도 되죠?""그러세요."박시윤이라고 했다. 동네 살면서 미용실 지나칠 때마다 눈에 띄었다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태도가 매너 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희수는 뭉게를 테이블에 올리며 물었다."언제부터 키우셨어요?""3년 됐어요. 혼자 사니까 얘가 낙이에요.""그렇구나. 뭉게야, 우리 잘해보자."뭉게 손질을 하는 내내 간간이 대화가 오갔다. 희수가 적당히 받아치는 사이, 시윤이 호감을 보이는 건지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손질을 마치고 뭉게를 안겨주자 시윤이 카운터 앞 명함 꽂이를 힐끗 봤다."명함 가져가도 되죠? 뭉게 데리고 자주 올 것 같아서요.""그러세요."딸랑, 문이 닫혔다.희수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뭉게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우리 구름이랑 많이 닮았네.별거 아닌데, 괜히 마음이 잠깐 물컹해졌다.---며칠 뒤, 희수의 미용실 카운터 달력에는 4월 19일에 커다란 빨간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생일'이라는 세 글자가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퇴근 시간에 맞춰 들어온 재원은 달력 앞에 멈춰 섰다.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었다.희수는 가위를 정리하며 기다렸다. 재원의 넓은 등판 너머로 머릿속 엑셀 창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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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한 달의 무게

희수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다가 멈췄다.핸드폰 화면을 다시 내려다봤다.[원장님, 내일 미용실 문 여시나요?]모르는 번호. 오늘 미용하고 간 손님은 박시윤 하나였다.'오늘 미용 다 끝내고 갔는데. 내일 왜?'희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찜찜한 기분이 발뒤꿈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다음날 오전, 미용실 문이 딸랑거렸다.박시윤이었다. 뭉게는 없었다."안녕하세요. 뭉게 다음 예약 하러 왔어요.""어서 오세요. 달력 보고 날짜 골라요, 여기요."희수는 가위를 정리하며 달력을 내밀었다. 시윤이 날짜를 고르는 동안 미용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강아지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은 벽을 훑다가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액자 속 작고 하얀 말티즈."혹시 이 강아지도 키우세요?"희수는 고개를 들었다가 시윤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했다."아, 구름이요. 예전에 키웠어요.""뭉게랑 많이 닮았네요. 그래서 어제 뭉게 보자마자 반응하신 거예요?"희수는 잠깐 멈칫했다. 어제 뭉게 손 내밀던 게 그렇게 티가 났나."...그랬나요, 제가.""네. 표정이 확 바뀌셔서요. 좋은 의미로요."희수는 픽 웃었다."눈썰미 좋으시네요.""자주 봐서요."희수가 고개를 들었다. 시윤은 달력을 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사실 어제 처음 온 게 아니에요. 뭉게 산책시키면서 이 앞을 지나다닌 게 한 달 좀 넘었거든요. 원장님이 일하시는 거 유리창 너머로 자주 봤어요. 어제 마침 노쇼 있으셔서 들어온 거고요."희수는 잠시 시윤을 바라봤다.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 고백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톤이었다. 불편하게 들이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사실만 전달하는 것도 아닌 묘한 온도."그래서 내일 문 여냐고 문자 하신 거예요?""네. 뭉게 데리고 산책 나올 것 같아서요. 혹시 또 타이밍 맞으면 들어올까 싶었는데." 시윤이 희수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렇게 예약을 잡는 게 더 낫겠네요.""그게 서로 편하죠."희수는 예약을 잡아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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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손님입니다

예약 시간 정각에 미용실 문이 딸랑거렸다.박시윤이었다. 뭉게를 안고 들어서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안녕하세요. 예약했어요.""어서 오세요. 뭉게 받을게요."희수는 뭉게를 받아 테이블에 올렸다. 뭉게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희수 손을 핥아댔다. 한 번밖에 안 왔는데 기억하는 게 확실했다."목욕에 위생미용까지 하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요. 저쪽에 셀프 커피 있으니까 편하게 앉아 계세요."희수가 카운터 옆 커피 머신을 가리켰다. 시윤이 고맙다며 커피를 뽑아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희수는 뭉게를 목욕조에 올리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물을 틀자마자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재원: 나 밥 먹고 회의 들어가희수는 흘끗 화면을 확인했다. 손에 물이 묻어 있었다. 답장은 나중에.뭉게 목욕을 시작하면서 시윤이 소파에서 말을 걸어왔다."뭉게가 목욕 원래 싫어하는데, 여기선 얌전하네요.""처음엔 다 싫어해요. 자주 오면 익숙해져요.""그럼 자주 와야겠네요."희수는 뭉게 등을 문지르며 대꾸했다."뭉게한테 좋죠. 위생 관리 자주 해주는 게."시윤이 커피를 홀짝이며 웃었다."뭉게한테만요?"희수는 잠깐 손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대답하지 않았다. 시윤은 더 밀어붙이지 않고 커피잔만 내려다봤다.이 사람, 선 넘는 것 같다가도 딱 거기서 멈추는 타입이었다.목욕을 마치고 드라이를 시작할 때쯤 핸드폰이 또 울렸다.💬 재원: 끝나면 연락할게💬 재원: 오늘 예약은 몇 시까지 있어?드라이기 소리에 진동이 묻혔다. 희수는 잠깐 화면을 봤다가 드라이기를 다시 들었다. 양손이 다 차 있었다. 답장을 못 하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재원이 회의 끝나면 바로 연락하고, 예약 시간에 칼같이 맞춰서 올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보낸 카톡에 답장도 못 하면서 시윤 앞에 서 있는 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일하면서 연락 받기 불편하시겠다."시윤이 불쑥 말했다. 희수가 핸드폰 화면을 흘끗 보는 걸 봤던 모양이었다."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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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통제 불가

재원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집 앞에 차가 서고 희수가 안전벨트를 풀었을 때도, 재원은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정면만 보고 있었다. 평소엔 차에서 내려 현관 앞까지 배웅하던 남자가 오늘은 그대로였다. "다 왔다." "응. 들어갈게." 희수는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잠깐 차를 돌아봤다. 재원의 옆얼굴이 어두운 차창 너머로 보였다. 뭔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냥 피곤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희수는 그냥 현관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대답 안 한 게 대답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왜 이렇게 찜찜하냐고. 질투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그냥 아니라고 하거나 맞다고 하면 되는 걸, 저 남자는 항상 침묵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그 침묵이 이상하게 더 오래 남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희수는 안으로 들어서며 생각을 끊었다. 생각해봤자 답 안 나오는 거 알면서. --- 그날 이후로 재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희수도 눈치채지 못했다. 퇴근 데리러 오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졌다. 5시 반에 끝나는 날이면 5시 10분에 미용실 앞에 차가 서 있었고, 희수가 "일찍 왔네" 하면 재원은 "회의가 일찍 끝났다"고 했다.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달력을 확인하는 것도 처음엔 눈에 띄지 않았다. 재원이 희수 옆에 서서 카운터 위 달력을 자연스럽게 훑는 게, 그냥 오늘 손님이 몇 명이나 있었나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 행동이 반복됐다. 들어오자마자 달력 먼저, 그러고 나서 희수 얼굴 확인. 순서가 고정돼 있었다. 희수는 가위를 정리하다가 그 패턴을 처음으로 의식했다. 루틴남이니까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루틴이 아니라 확인인 것 같았다. 뭔가를 확인하고 싶은데 직접 물어보기는 싫어서 행동으로 때우는 것 같은 그런 확인. 희수는 재원을 흘끗 봤다. 재원은 달력에서 눈을 떼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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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논리적인 남자의 비논리적인 요청

퇴근 후 희수 미용실 앞에 재원의 차가 섰다. 희수가 가방을 들고 나오자 재원이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 평소처럼 자연스러운 저녁이었고, 차 안에는 라디오가 낮게 깔려 있었다.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원이 입을 열었다."희수야, 부탁이 하나 있는데.""응, 뭔데?""네이버 예약 알림 나한테도 공유해줄 수 있어?"희수는 잠깐 재원을 봤다. 예약 알림이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는데, 재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정면을 보고 있었다."예약 알림을? 왜?""네가 몇 시에 끝나는지 알아야 데리러 가는 시간 조정이 되잖아. 그리고 쉬는 날 미리 알면 불필요하게 연락하는 것도 줄일 수 있고. 효율적이잖아."논리적이었다. 틀린 말도 없었다. 그런데 희수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예약 알림에는 손님 이름이 다 뜬다. 박시윤 예약도 뜬다. 재원이 그걸 모를 리 없었고, 희수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생각해볼게.""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구글 캘린더 연동하면 되잖아.""알아. 그냥 생각해본다고."재원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입을 다무는 타이밍이 딱 한 박자 늦었고, 그 한 박자가 희수 머릿속에서 꽤 오래 남았다. 효율 때문이라고 했는데,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이 얘기가 나오는 건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희수는 창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음날 오후, 마지막 손님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저장된 이름이 떴다.💬 박시윤: 원장님, 뭉게가 어제부터 밥을 잘 안 먹고 기운이 없어요. 혹시 미용할 때 뭔가 이상한 거 없었나요?희수는 잠깐 손을 멈췄다. 미용 직후에 이런 증상이 생기면 걱정되는 게 당연했고, 샴푸 알러지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반응일 수도 있었다. 담당 미용사한테 물어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희수는 마무리 손질을 끝내고 답장을 보냈다.💬 희수: 미용할 때는 이상 없었어요. 혹시 구토나 설사는요?💬 박시윤: 그건 없어요. 그냥 축 처져 있어요.💬 희수: 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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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챙기는 것과 확인하는 것

그날 이후로 재원이 조금씩 달라졌다.달력을 확인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예전엔 미용실에 들어오자마자 카운터 위 달력으로 시선이 갔는데, 요즘은 들어오자마자 희수 얼굴부터 봤다. 그 순서가 바뀐 게 희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고, 의식해서 바꿨다는 것도 알았다. 의식해서 바꿨다는 건 스스로 뭔가 알아챘다는 뜻이었다.예약 알림 공유 얘기도 다시 꺼내지 않았다. 대신 퇴근 데리러 오기 전에 문자가 왔다.'오늘 몇 시에 끝나?'달력 대신 희수한테 직접 물어보는 방식으로 바꾼 거였다. 희수는 그 문자를 받으면서 잠깐 멈췄다. 방식을 바꿨다는 건 뭔가 생각했다는 뜻이었고, 생각했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말로 먼저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 행동으로 먼저 움직이는 방식. 이 남자 특유의 방식이었다.귀엽다고 생각했다가, 그 생각을 바로 거뒀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방식만 바꿨을 뿐이었고,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라는 건 희수도 알았다. 그리고 재원이 그 차이를 아직 모른다는 것도. 언젠간 얘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며칠째 머릿속에 걸려 있었다.그 언젠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주말 오후, 희수가 미용실 마감을 하고 있을 때 재원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희수가 청소를 마무리하는 동안 재원이 카운터 앞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는데, 그러다가 시선이 카운터 위 메모지로 갔다. 희수가 손님 연락처를 적어둔 메모지였다.재원의 시선이 딱 한 군데에서 멈췄다. 박시윤. 메모지 한쪽에 적힌 이름과 번호. 희수는 그 시선을 봤고, 재원은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희수는 걸레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자기야.""응.""나 할 말 있어."재원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희수를 봤다. 희수는 카운터 앞에 서서 재원을 똑바로 마주봤다."챙겨주는 거랑 확인하는 거 달라."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희수는 계속했다."달력 확인하고, 예약 알림 공유 요청하고, 지금 저 메모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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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뜻밖의 앨범

그 주말은 조용히 지나갔다.재원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말이 많아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조심스러워졌다. 희수 일정을 물어볼 때도 예전처럼 달력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희수 얼굴을 먼저 봤고, 미용실에 들어올 때도 문을 열자마자 "다 끝났어?" 하고 먼저 물었다.작은 차이였는데, 희수한테는 크게 느껴졌다.일요일 저녁, 재원이 치킨을 사들고 왔다."갑자기 왜?""그냥. 먹고 싶었어.""자기가 치킨을 그냥 먹고 싶어?""왜. 안 되냐."희수는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재원은 치킨 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서 희수를 힐끗 봤다."지난번에 내가 좀 답답하게 굴었다.""알아.""그래도 다시 안 그럴게.""그것도 알아."재원이 잠깐 멈췄다가 치킨 뚜껑을 열었다.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거기서 접는 얼굴이었다. 희수는 그냥 앉으며 치킨을 집었다.말 안 해도 됐다.이미 충분히 알았으니까.---화요일 오후였다.뭉게 정기 예약 날이었다. 시윤이 뭉게를 안고 들어오며 가볍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뭐 많이 바쁘셨어요?""그럭저럭요. 어서 오세요."희수는 뭉게를 받아 테이블에 올렸다. 뭉게가 꼬리를 흔들며 희수 손을 핥았다."뭉게 이번엔 밥 잘 먹어요?""네, 완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걱정 끼쳐드렸죠.""아니에요. 연락 주시는 게 맞아요."시윤이 소파에 앉으며 커피를 뽑았다. 희수가 목욕을 시작할 때쯤 시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원장님, 저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응? 뭔데요?""이번에 앨범이 나왔거든요."희수는 손을 멈추며 시윤을 봤다."앨범이요?""네. 음악 한 지 꽤 됐어요. 인디 씬에서 오래 했는데, 이번에 정규 앨범 처음 냈어요."희수는 잠깐 시윤을 바라봤다. 동네에서 뭉게 산책시키는 남자인 줄만 알았는데, 앨범을 냈다는 말이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얼마나 됐어요? 음악 한 지.""한 십 년 넘었어요. 처음엔 밴드로 시작했다가 솔로로 전향했고, 그러다 인디 레이블이랑 계약하고 싱글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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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말하지 못한 것들

재원은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었다.아니, 정확히는 감정보다 데이터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희수가 표정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 웬만해선 티가 나지 않았는데, 요 며칠은 달랐다.퇴근하러 미용실에 들어서면 희수가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게 보였다. 한 번은 그냥 넘겼다. 두 번째도 그냥 넘겼다. 그런데 세 번이 되니까 패턴이 보였다. 재원이 들어오기 직전에 뭔가를 보다가 급히 화면을 끄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재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물어보고 싶었지만, 희수한테 한 소리 들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 확인하는 거랑 챙기는 게 다르다고 했다.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지금 참아야 하는 거였다.그런데 참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목요일 저녁, 차 안에서 재원이 슬쩍 물었다."요즘 뭔가 생각 많아?""응? 왜?""그냥. 좀 달라 보여서."희수가 잠깐 재원을 봤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별거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한가 봐."재원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핸들 잡은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 희수는 그 손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이 남자, 다 알면서 참고 있구나.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재원은 원래 모르는 걸 그냥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업무에서도, 일상에서도, 불확실한 변수가 생기면 반드시 확인하고 정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희수한테는 그게 안 됐다. 확인하면 또 달력 보던 눈빛이라고 할 것 같았고, 그 말이 무서웠다. 챙기는 게 아니라 감시하는 거라는 말. 그 말 한마디가 재원을 이렇게 묶어두고 있었다.희수는 그걸 알까. 모를 것 같았다.재원은 창밖을 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다음날 오전, 미용실 문이 딸랑거렸다.예약 없는 시간이었다. 시윤이었다. 뭉게 없이 혼자였다."안녕하세요. 갑자기 왔죠?""어서 오세요. 뭉게는요?""오늘은 혼자 왔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희수는 가위를 내려놓으며 시윤을 봤다. 시윤이 카운터 앞에 서서 작은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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