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의 모든 챕터: 챕터 161 - 챕터 170

174 챕터

제161화

정우진은 곧게 뻗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이 남자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세에 비슷한 키임에도 불구하고 장건우는 여지없이 눌리는 모양새였다.“진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야 상관없습니다.”짧은 대화가 오간 뒤, 일행은 정우진이 예약해 둔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6인용 사각 테이블에 정우진과 신시아가 나란히 앉았고 그 맞은편에 장건우가 자리를 잡았다.뒤늦게 주차를 마치고 들어온 임정현은 자리에 함께한 신시아를 보더니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말없이 의자를 끌어와 정우진의 다른 쪽 옆에 앉았다.“건우 씨는 신 비서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진승현이 자연스럽게 말문을 텄다.이에 장건우가 잠시 말을 고르더니 대답했다.“백영 그룹 비서실에 먼 친척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소개해 주셨어요.”콕 찍어 말하진 않았어도 영락없이 맞선 뉘앙스를 풍겼다.“두 분이 아는 사이인 줄 알았으면 이번 프로젝트에 건우 씨도 참여하게 했을 텐데. 많이 아쉽네.”장건우가 막 미크로에 입사했을 때부터 진승현은 그의 탁월한 업무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다만 입사 경력이 짧다는 게 흠이라 아직 큰 권한을 쥐여주지 않았을 뿐이다.한편 장건우가 신시아를 만나고 선을 본 뒤에도 따로 식사 약속을 잡았다는 건 분명 진전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신시아는 지난 몇 년간 정우진 곁에서 일하며 남다른 능력을 보여왔고 정우진에게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만약 그녀와 장건우가 잘된다면 진승현에게는 득이 될 터.“지금 장건우 씨를 합류시켜도 안 늦죠, 대표님.”정우진은 의자에 삐딱하게 몸을 기댄 채 곁눈질로 신시아를 쳐다봤다.“신 비서가 워낙 유능해서 미크로와의 프로젝트도 겸임시키면 딱이겠네요.”신시아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저는 지금 정계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서 도저히 여력이 없습니다.”“그렇다면 정말 아쉽겠네요.”진승현이 말했다.“다음에 기회가 되면 미리 일정을 조정해야겠어요.”정우진은 손끝으로 잔을 가볍게 굴렸다. 잔 속의 술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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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정우진은 이쪽을 힐끗 보더니 신시아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쓰레기통에 던졌다.차 문 잠금이 해제되고 두 사람은 각자 올라탔다.정우진은 조수석에 앉아 길쭉한 다리를 조금 웅크려야 했다.차 안에는 그에게서 밴 옅은 담배 냄새가 자욱하게 퍼졌다.신시아가 창문을 조금 내리자 그제야 냄새가 흩어졌고 찌푸렸던 미간도 서서히 펴졌다.“죄송해요, 대표님. 오늘 점심에 따로 업무 일정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원래 계획대로라면 진승현은 저녁 시간대에 리조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정우진은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했다. 술기운 탓인지 눈꼬리가 살짝 붉어졌다.미간을 가볍게 찌푸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어디가 불편한 모양이었다.이 남자가 별다른 대꾸가 없으니 신시아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리조트에 도착했고 신시아는 조용히 차를 세웠다.“도착했습니다, 대표님.”실눈을 뜨고 있던 정우진이 대뜸 두 눈을 번쩍 뜨고 안전벨트를 풀더니 차에서 내렸다.신시아도 가방을 챙겨 들고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같은 층의 방을 배정받아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장건우 씨가 너랑 나이가 비슷해?”남자가 뜬금없이 질문을 건넸다.신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대답했다.“저보다 두 살 많아요.”“사람은 어때?”“해외 유학 다녀왔고 이제 막 미크로에 입사했어요.”“집안은?”“부모님 다 계시고 집안도 괜찮은 거로 알아요.”신시아는 장건우의 집안 사정을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그와 만날 생각이 없었으니까.그저 정우진이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할 따름이었다.문득 이 남자가 다시 물었다.“꽤 마음에 드나 봐?”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정우진은 지금 두 사람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아보는 중이었다.“대표님, 그건 제 사생활입니다.”신시아는 정우진과 일 이외의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전히 불편했다.한편 이 남자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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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진승현은 정우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정 대표님 약혼녀분은 신 비서만큼이나 예쁘진 않던데요. 저번에 뉴스 보니까 현성월인가 뭔가 하는 분이 제대로 봤네요 뭘. 대표님 안목은 정말 별로예요.”신시아가 온수 한 잔을 들고 룸으로 돌아오던 중 마침 진승현이 하는 말을 듣게 됐다.그녀는 걸음을 멈칫하며 맑은 눈동자로 정우진을 바라보았다.룸 안의 조명이 정우진의 뒤쪽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쏟아지는 빛 때문에 그의 이목구비는 그림자에 가려져 흐릿해 보였다.다만 시선은 진승현에게서 신시아에게로 옮겨졌다.은은하게 빛나는 눈빛에 신시아의 심장이 덜컥 가라앉았다.“진 대표님, 많이 드셨네요.”그녀는 아예 온수를 진승현에게 건네며 말을 자르려 했다.하지만 이 남자는 멈출 기색 없이 더욱 폭주했다.“이것 봐. 얼마나 배려 깊어. 정 대표가 전에 은유라 씨 달래준답시고 거액을 들일 때부터 알아봤어요. 얼마나 까칠하고 이기적인 여자인지 감이 오더라니까. 우리 신 비서처럼 속 깊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문득 정우진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마치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아리송한 미소를 띠었다.“이런 건 부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배려라고 할 수는 없어요. 건우 씨도 훌륭한 부하 직원이에요, 진 대표님.”신시아가 온수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웃었다.순간 진승현이 이마를 탁 쳤다.“맞네! 내 정신 좀 봐. 신 비서 건우 씨랑 사귀죠? 우리 정 대표님 아무리 원해도 기회가 없겠네요.”“그런 농담 마세요. 정 대표님은 전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신시아는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정우진의 턱선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 속 깊은 곳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라앉았다.“그건 정 대표가 보는 눈이 없어서죠.”진승현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신 비서랑 건우 씨 꽤 잘 어울리던데 조만간 내 비서로 승진시켜야겠어요. 그러면 신 비서랑 직급도 딱 맞고 좋잖아요...”그의 말을 들은 신시아는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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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대표님은 은유라 씨랑 너무 잘 어울리세요. 은유라 씨는 또 엄청 예쁘시고요.”신시아는 걸음을 멈추고 정우진을 돌아보았다.그의 짙은 눈동자가 집요하게 여자의 얼굴에 엉겨 붙었다.“그럼 너도 장건우랑 진지하게 만나보겠다는 거네?”정우진의 말투에 은근한 불만이 묻어났다.한편 신시아는 이해가 안 갔다.“하씨 가문 문턱은 넘을 수가 없고 구창 그룹은 또 백영 그룹과 오랜 라이벌이죠. 제가 하 대표님이랑 왕래하는 건 그렇다 쳐요. 대체 왜 딴 사람 만나는 것까지 간섭하는 건데요?”“전 남편으로서 조언 좀 해주려고.”정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신시아의 옆으로 다가왔다.“좀 더 만나보고 결정해. 뭐가 그리 급한데?”‘전 남편’이라는 세 글자는 여태껏 신시아가 애써 유지하려 했던 거리를 단번에 무너뜨렸다.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정우진을 바라보았다.“대표님은 은유라 씨랑 어린 시절부터 친구셨잖아요. 그렇게 오래 만나셨으면 이제 결혼하셔야죠. 저도 전처로서 조언을 드리는데 이왕 결혼할 거 빨리하시는 게 좋아요.”두 사람이 잘 맞을지 어떨지는 알 바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빨리 결혼만 해준다면 신시아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났다.룸 문이 스르륵 닫히면서 싸늘한 정우진의 얼굴도 차단했다. 그의 마음속에 이유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인데 왜 못 알아듣냐고!’깊이 생각해보니 그녀는 왠지 자신이 빨리 결혼하길 바라는 듯싶었다.정우진의 얼굴엔 불쾌함이 역력했다. 그는 룸 문을 거칠게 밀치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야유회는 이틀 일정이었다.진승현은 원래 야유회가 끝난 뒤 함께 떠날 계획이었지만 어젯밤 소동 때문인지 다음 날 이른 아침 핑계를 대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접대해야 할 고객이 사라지자 신시아는 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남은 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여유가 생기면 틈틈이 휴식을 취했다.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임정현에게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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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임정현은 차라리 제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머릿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을 되짚어 봐도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러다 다음 날 백영 그룹으로 출근했을 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오늘 정우진 역시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제야 임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시로 야근하게 된 것은 정우진의 심기를 건드려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미리 일을 끝내고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적어도 임정현은 그렇게 생각했다.병원은 평일 오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의사의 지시에 따라 신시아는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결과는 모두 양호했다.“너무 말랐어요. 영양 보충을 좀 하셔야겠어요.”의사는 검사 결과를 살피며 신시아를 훑어보았다.“같은 개월 수의 다른 산모들에 비해 배가 많이 작아요. 입덧은 아직도 심한가요?”신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입덧은 없어요. 아마 일이 너무 바빠서, 끼니를 제때 못 챙겨 먹은 탓인 것 같아요. 앞으로 조심할게요.”“아직도 일하고 있어요?” 의사는 문득 그녀가 처음 검진을 받으러 왔을 때 입었던 단정한 정장 차림을 떠올렸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커리어 우먼이었다.“출산 휴가는 언제부터 낼 예정이에요?”“그건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어요.”신시아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다른 문제는 없고요?”의사가 검진서를 건네며 말했다.“네, 별 이상 없어요. 한 달 뒤에 다시 검진받으러 오세요.”신시아는 검진서를 챙겨 들고 진료실을 나섰다가 복도에서 대뜸 누군가와 부딪혔다.“죄송합니다...”다급하게 사과하며 고개를 든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시아야.”한채은 역시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언가 떠오른 듯 방금 그녀가 나온 진료실을 힐끗 살폈는데 산부인과였다.그리고 지금 그녀 손에 쥐어진 것도 검사 결과지라니.“여기서 뭐 하는 거야?”신시아는 입술을 달싹이며 변명거리를 찾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종이에 갑자기 힘이 실렸다.한채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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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원장님, 제가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원장님은 왜 계속 저랑 지원이한테 그런 생각을 심어주는 거예요?”신시아는 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눈길로 한채은을 쳐다봤다.“원장님도 가족이 없으시잖아요. 가족의 온기를 단 한 번도 바라본 적 없으세요?”그녀는 한채은이 어떻게 보육원에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기억 속의 한채은은 처음부터 보육원 식구였고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스물 남짓이었다.보육원은 한채은의 청춘이 고스란히 묻힌 곳이었다.그토록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으며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사람인데 때로는 이기적인 면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가족이 뭐가 좋다고 그래?”한채은이 당당하게 말을 이어갔다.“지원이도 가족을 찾겠다고 계속 난리지만 뭣 하러 찾아? 그 사람들이 널 사랑했다면 애초에 버리지도 않았겠지.”신시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가족’이란 단어는 그녀에게 너무나 낯설고 먼 이야기였다.수만 가지 환상을 덧칠해 그 낯선 단어를 제 마음이 바라는 모습으로 빚어놓곤 했다.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헤아려 보았지만 단 하나,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만은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김지원이 가족을 찾겠다고 할 때 차마 말릴 수 없었다.하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간절했던 희망도 서서히 재가 되어갔다.하여 이 아이가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결심뿐이었다.이제야 비로소 진짜 내 편이, 그리고 돌아갈 집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그건 제가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예요.”부모가 없다면 아이를 가지면 그만이었다.매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마음을 나눌 존재가 있다는 것, 그거면 됐지...“너 뭐 있지?”한채은의 말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말해 봐. 그 남자 만난 지 얼마나 됐어? 뭐 하는 사람이야? 줄곧 사직하고 싶어 하더니 결혼하려고 그랬던 거지?”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고 한채은은 어이없을 만큼 억지스러운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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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신시아는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정맥주사로 고정하면 되잖아.”임보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리다 보니 뭘 고정한다는지 알지도 못했다.“나중에 간호사한테 여쭤볼게. 정맥주사 놓아줄 수 있는지.”신시아는 임보나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외투를 단단히 여며주었다.그때 아이가 말을 이었다.“원장님이 간호사 언니랑 말하지 말래요. 무슨 문제든 자기한테 말하면 의사 선생님이랑 소통해보겠대요.”“몸 상태에 관한 건 의사 선생님께 여쭤볼 수 있지만 이런 자잘한 문제들은 간호사 언니 찾으면 돼.”신시아가 웃으며 대답했음에도 아이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원장님이 절대 간호사 언니랑 말 섞지 말랬어요.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대요. 밖에 놀러 나가서도 다른 애들이랑 대화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요.”“왜?”신시아는 의아할 따름이었다.“몰라요.”임보나도 고개를 숙인 채 답답하다는 식으로 말했다.“며칠 전에 옆 병실에 몰래 놀러 갔었는데 거기도 아픈 아이가 한 명 있더라고요. 근데 그 아이는 매일 주사를 맞지는 않았어요.”별안간 신시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일단 임보나를 안심시켰다.“몰래 가면 안 되지. 앞으론 그러지 마.”“네.”임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 말고 또 다른 일은 없었어?”신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깜빡이더니 갑자기 눈빛이 반짝거렸다.“며칠 전에 선재 삼촌이 또 왔었어요. 원장님이랑 이야기하는 걸 몰래 엿들었는데 뭐가 들통났다고 했어요.”“시아야!”저 멀리서 한채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신시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한채은은 손에 검사 결과지를 들고 얼굴이 굳은 채 이리로 다가왔다.“보나는 먼저 병실로 가 있어!”임보나는 정색하는 원장님의 말투에 깜짝 놀라 곧바로 병실에 돌아갔다.“내 가방 뒤졌어요?”신시아는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며 유달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이거 사생활 침해인 거 몰라요?”그러나 한채은은 더욱 뻔뻔하게 나왔다.“그래,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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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은유라의 차림새와 분위기는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한채은은 사람을 들이받고는 곧장 기세가 꺾였다. 몇 초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신시아를 부축해 일으켰다.“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행여나 상대가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신시아에게 건성으로 몇 마디 위로를 건네곤 다시 은유라를 돌아보았다.“아니 그쪽은 다리가 불편하면 집에나 있지 왜 이렇게 돌아다녀요? 얘 지금 임...”‘얘’라고 말할 때, 한채은은 신시아를 정우진과 은유라 앞으로 끌고 갔다.이어서 신시아의 배를 가리키며 ‘임신 중’이라는 세 글자가 막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찰나였다“대표님!”“오빠!”두 여자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정우진을 불렀다.전자는 신시아였다.정우진이 방금 이곳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혹시 그가 아직 오해하고 있다면?신시아는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붙잡고 한채은의 말을 잘라버렸다.한편 은유라는 정우진의 팔짱을 낀 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다리가 너무 아파. 빨리 병원에 데려가 줘. 뼈가 또 어긋난 것 같아.”그녀의 말을 들은 정우진은 미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그는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은유라의 무릎 위에 덮어주고는 휠체어를 밀어 급히 자리를 떴다.사실 은유라는 오늘 재검사를 받으러 온 참이었다.방금 검사를 마쳤는데 또 들어오자 의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내막을 들은 후, 그녀의 다리에 씌워진 석고를 풀고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여기 아프세요?”은유라는 정우진의 옷자락을 붙잡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요.”“큰 문제는 아니에요. 원래 골절이 아니었으니 부딪혔다고 해도 통증만 있을 뿐 뼈가 어긋나지는 않아요.”의사는 다시 석고를 씌워주고 진통제를 몇 알 더 처방했다.“아플 때 한 알 드시면 괜찮아질 겁니다.”정우진은 진통제를 챙기고 은유라와 함께 나왔다.“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차에 올라탄 후, 남자가 안전벨트를 매며 그녀에게 물었다.은유라는 진통제 통을 꽉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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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그러니까 지금 그 애가 우진의 아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임신했다 쳐도 기껏해야 몇 개월이야. 둘이 이혼한 지가 벌써 1년이 다 돼가는데 어떻게 그래!”은유라도 확신까지는 아니고 짐작일 뿐이었다.“신시아 주변에 오빠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한때 정우진의 아내였던지라 그만큼 눈도 높아졌겠지.신시아가 평소 마주하는 비즈니스 업계의 엘리트들이 아무리 잘났다 한들 정우진과 비교가 될까?게다가 신시아는 순순히 이혼을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정말 떳떳하다면 왜 굳이 임신 사실을 숨기겠는가?“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선재랑 꽤 가깝게 지내지 않았어?”손연경은 신시아의 임신 소식에 그리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진작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또 얼마 전 유아용품 매장에서 마주친 적도 있으니까.맨 처음 신시아가 임신했다고 의심했을 때, 손연경은 무의식적으로 정우진을 떠올렸다.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어차피 정우진은 이혼 후에 질질 끌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니까.“맞아요. 우진 오빠 아니면 하선재 애가 틀림없어요!”은유라의 마음속에 새로운 후보가 추가되자 조마조마하던 가슴이 조금은 놓였다.“시아 걔 분명 아이를 몰래 낳아 우진 오빠를 잡으려는 걸 거예요. 만약 정말 오빠 아이라면...”손연경이 즉시 그녀의 추측을 잘라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그때 그 사고만 아니었어도 우진이가 신시아랑 결혼했을 것 같니? 그 아이 마음속엔 처음부터 끝까지 유라 너뿐이야.”은유라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꿀꺽 삼키고 말았다.“엄마, 저랑 오빠 일은 지금 당장 설명하긴 어려워요. 그래도 일단 저 믿고 신시아 뒷조사해서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 알아내 주세요!”손연경은 딸아이가 이렇게까지 당황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설마 너희 둘 관계에 자신 없는 거니?”“엄마!”은유라는 애원하는 듯하면서도 약간의 짜증을 섞어 말했다.“그냥 제 말대로 해주세요. 안 그러면... 정말 큰일 나요!”딸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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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신시아는 임보나가 했던 말을 김지원에게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전했다.“이상해. 자꾸 찝찝한 느낌이 들어.”“원장님 혹시...”김지원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들 서빈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김서빈을 안아 들고 달랬다.“울지 마, 서빈아. 엄마 여기 있어...”김지원은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오가며 신시아에게 눈짓을 보냈다.“내 방에 가서 좀 쉬어. 요즘 너무 바빠서 안색이 다 어두워졌네.”신시아는 외투를 벗고 김지원의 방으로 향했다.“그럼 잠깐 눈 붙이고 올게. 이따 깨면 서빈이 토스해줘.”“그래. 네 배 위에 잠깐 올려놓고 우리 예비 며느리랑 애정 듬뿍 키워야지.”김지원은 김서빈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시아 이모만 믿어. 저 이모랑 정우진의 유전자라면 네 신부는 절대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거야.”이제 정우진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신시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뒤척였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까무룩 잠이 들 때마다 정우진이 자신을 사무실로 불러 임신 사실을 추궁하는 악몽에 시달렸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오후였다.김지원은 아이와 함께 아기방에서 낮잠을 자고 막 일어난 참이었다.신시아는 저녁까지 김지원을 도와 아이를 돌봤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집에 돌아오자 김지원은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다음 날.경원의 초여름 아침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신시아는 검은색 트렌치코트 안에 검흰 줄무늬 원피스를 입었다.사무실에 막 들어서자 이은수가 노크하며 들어왔다.“언니, 대표님이 위층으로 올라오시래요.”신시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알았어요.”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한참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야 위층으로 향했다.어젯밤 꾸었던 악몽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듯했다.하지만 정우진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권미희와 정다슬이었다.정우진은 자리에 없었다.“시아야, 요즘 정계 프로젝트를 맡아서 많이 힘들지?”권미희는 그녀가 오자 찻잔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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