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벼락 위,어둠과 달빛의 모호한 경계선에 걸터앉은 사내 혁(정혁)과 마당에 홀로 서 있던 목련의 시선이 허공에서 완벽하게 맞부딪쳤다.사흘 전 왁자지껄한 장터 골목길에서 자신에게 거대한 위로를 건네고 흔적도 없이 도망쳤던 그 기이하고 가여운 도령이 지금 제 집 안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목련은 숨을 들이켰다.그 순간, 기이한 현상이 두 사람의 전신을 관통했다.담장 위와 아래, 제법 먼 거리감을 두고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흘 전 장터에서 서로가 맞닿았던 그 왼손바닥 위로 눈이 멀 것 같이 뜨겁고 아련한 온기가 동시에 화르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혁은 제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목련의 미세한 심장 고동에 진저리를 치며 주먹을 꽉 쥐었고 목련 역시 제 심장을 두드리는 사내의 서글픈 요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붉어진 손을 가슴에 얹었다.서로가 서로에게 뇌파처럼 동기화되는 이 해괴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영혼의 결속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할 뿐이었다.밤바람에 흔들리는 복사꽃 잎만이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정적을 채워갔다.정적을 먼저 깨뜨린 것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으나 선녀의 격을 지닌 목련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목련은 담장 위를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그러나 사내의 귓가에 속삭이듯 예의를 갖추어 입을 열었다.“.......도련님..... 엊그제 장터에서는 소녀의 행동이 무척이나 무례했던 것 같아 줄곧 마음이 무거웠습니다.도련님의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감히 헤아리지도 못한 채 함부로 들여다보아 진심으로 송구합니다.그날 이후로 ........좀 어떠하십니까?”그 맑고 청아한 안위의 한마디에, 담장 위의 혁은 일순간 호흡을 멈추었다.그는 본래 가문의 엄명에 따라 이 고결한 제물을 꾀어내어 파멸로 몰고 가야 하는 잔혹한 사냥꾼이었다.사흘 밤낮을 그녀의 온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이곳을 찾았으면서도 혁은 제 얄팍한 밑바닥을 감추기 위해 짐짓 단검의 자루를 쥐며 차갑고 서늘하게 대꾸했다.“너- 내게 도대체 무슨 해괴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