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Chapter 71 - Chapter 80

85 Chapters

71화

고개를 번쩍 든 민수가 구원 줄이라도 잡은 듯 유빈의 어깨를 강하게 틀어쥐며 다급하게 물었다.“계획? 그게 뭔데! 어? 빨리 말해봐!”유빈이 민수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며 턱을 치켜들었다.“그런데 우리 둘 힘만으로는 못 해요. 그 사람도 같이해야지.”“그 사람이라니 누구?”“오지연이요.”민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너… 네가 걔 이름을 어떻게 알아?”“잘 때 몰래 오빠 통화 목록 뒤졌거든요. 다른 여자 생긴 거 모를 줄 알았어요?”민수가 다시 운전석 시트에 몸을 묻으며 삐딱하게 눈을 흘겼다.“그래서 뭐 어쩌자고. 너 배신했으니까 경찰에 신고라도 하겠다? 협박이라도 해보시지,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그 순간 유빈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한참을 웃어댄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손끝으로 눈물을 대충 훔쳐낸 유빈이 입꼬리를 위로 씨익 끌어올렸다.“오빠, 제가 왜 그런 자살 행위를 해요? 경찰에 찌르면 나도 공범으로 무사하지 못하는데.”민수는 입을 벌린 채 유빈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유빈은 그런 민수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속삭이듯 덧붙였다.“깔끔하게 2억만 줘요. 그러면 이번 일 완벽하게 도와주고, 오빠 인생에서 영원히 비켜줄 테니까.”“하….”민수가 입술을 짓씹으며 생각에 잠겼다.예리와 해진이 손을 잡고 제 목을 조여오는 마당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결심을 굳힌 그가 핸들에서 손을 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그래.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똑바로 해. 만약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너도 가만 안 둬.”“걱정 마세요. 절대 틀어질 일 없으니까.”유빈이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생글생글 웃었다.그 미소를 가만히 노려보던 민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이 뭔데?”***오른쪽 귀를 살짝 누른 유빈이 작게 속삭였다.“팀장님, 잘 보이세요?”치이익-잠시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일더니, 귀 안쪽에 박힌 인이어 너머로 예리의 건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네, 아주 잘 보여요.고
Read more

72화

“……!”지연이 거칠게 돌아섰다. 그러곤 손을 번쩍 들어 올려 그대로 힘껏 유빈의 뺨을 내리쳤다.탁.허공에서 커다랗게 호선을 그리던 지연의 손목을 유빈이 단단히 움켜잡았다.“놔! 이거 놓으라고, 이 미친놈아!”지연이 손목을 빼내기 위해 이리저리 발버둥 쳤다. 악에 받친 지연의 얼굴을 냉정하게 응시하던 유빈이 툭, 손에 힘을 풀었다.버티던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가자 지연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얼얼한 손목을 주무르는 지연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유빈이 휴대폰 화면을 두드려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둘 다 없애야 해. 일이 틀어지게 만든 것들 싹 다 죽여버려야 끝난다고.잡음이 섞여 흘러나오는 민수의 잔인한 음성에 지연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거… 뭐야.”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너머로 지연이 유빈과 눈을 맞췄다.“노민수, 자기 와이프도 죽이려고 5년 동안 계획한 인간이에요. 그동안 언니랑 연락 끊겼던 거, 나 때문 아니에요. 우리 때문에 일이 망가졌다고 생각해서, 열 받아서 피한 거지.”“난… 나는 시키는 대로 전부 했어!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지연이 현실을 부정하듯 악을 쓰자 유빈이 헛웃음을 삼키며 한 걸음 다가섰다.“언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요? 언니가 일을 잘했든 못했든, 그 인간한테는 이제 아무 상관 없어요. 서해진이 살아 있잖아요. 게다가 그 사람, 나예리랑 손잡았어요.”지연이 고개를 휙 쳐들었다. 유빈이 한 글자씩 낮고 서늘하게 읊조렸다.“그 사람들이, 우리가 이 보험 사기에 가담했다는 것까지 싹 다 알고 있다고요.”지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유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그래서 노민수는 우리한테 죄를 전부 뒤집어씌울 작정인 거예요. 자기는 그사이에 새로운 애인이랑 해외로 도피하고.”“…….”“그것마저 실패하면… 이 일을 다 알고 있는 우리 둘을 살려둘 것 같아요?”유빈이 민수의 목소리가 담긴 휴대폰을 가볍게 흔들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던 지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
Read more

73화

민수는 피우던 담배를 발밑으로 떨어뜨렸다. 이미 그의 주변 땅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가 운동화 앞 꿈치에 체중을 실은 채 담배꽁초를 짓이겼다.‘제기랄, 진짜 오긴 하는 거냐고.’민수는 고개 들어 주변을 쓰윽 훑어 보았다.유빈의 말대로 오후 3시가 넘은 귀영사(歸影寺)의 뒷산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적막한 산속에는 벌레 우는 소리만 희미하게 번졌다.“이 정도면 그림자가 아니라 귀신 귀겠네.”민수가 낮게 비웃음을 흘렸다.해진을 조용히 처리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장소였지만, 정작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오늘은 텄네. 텄어.’다시금 담배가 당겨온 민수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담뱃갑을 꺼내려는 찰나였다.멀리서 잘그락 자갈을 밟는 작은 소리가 났다.주머니에서 손을 뺀 그는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자갈 밟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수의 손바닥에 축축한 땀이 배어났다.이윽고 절에서부터 쭉 이어진 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해진이었다.뒷 산으로 이어지는 입구 앞에 멈춰 선 그녀는 목뒤에 매달려 있던 검은 모자를 푹 눌러썼다. 덕분에 커다란 창과 창에 연결된 그물 천이 해진의 얼굴을 삼켰다.그녀는 모자의 각도를 조절하려는 듯 챙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등산로 안으로 들어갔다.2m 정도 되는 거리의 나무 뒤에서 몰래 엿보던 민수도 그녀를 따라 곧장 등산로 안으로 발을 들였다.해진은 길이 익숙한 듯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거침없었다.민수도 해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지금껏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가 따라붙은 걸 해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그렇게 한참을 오르던 민수는 양옆 나뭇가지를 훑었다. 산의 중턱까지 온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유빈이 말한 표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정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표시해 놓을 테니 그곳으로 가라던 유빈의 말을 떠올리며 민수는 입술 사이로 작은 욕설을 내뱉었다.하여튼 오
Read more

74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반투명한 검은색 그물망 너머, 흔들리는 갈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민수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오, 오빠?”혼란스러운 표정의 지연이 주춤 뒤로 발을 내디뎠다.“꺄아아아악!”지연이 디디고 있던 땅이 무너지더니 손쓸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이 절벽 밑으로 미끄러졌다.민수가 당황한 얼굴로 한 발짝씩 절벽 끝으로 다가갔다.“오빠! 나 좀 살려줘!”절벽 아래에서 힘겨운 외침이 들려왔다. 다행히 저 아래로 아주 추락하기 전에 어딘가를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몸을 움직이려던 민수의 발이 멈췄다.지금 손을 내밀지 않으면 오지연은 그대로 죽는다.민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말려 올라갔다.제 수고도 저절로 덜어지는 셈이었다.“오빠! 나 진짜 한계야…! 이대로 죽는다니까? 오빠…!”지연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져갔지만, 민수는 냉정하게 뒤를 돌았다. 눈을 질끈 감자마자, 귀를 찢을 듯한 비명과 함께 아래로 무언가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민수가 다시 눈을 떴다.지연이 어쩌다 여기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옥에 가는 것보단 죽는 편이 지연에게도 나았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서해진이었다.민수가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해진의 머리카락은커녕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씨발!”민수가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는 숨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그래도 나예리와 오지연, 두 년의 입을 틀어막았으니 당분간 큰일은 없겠지.‘그래, 이유빈부터 만나자.’서둘러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숙여 칼을 집어 올린 바로 그때였다.“노민수. 어디 가게?”민수는 제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확 들어 올렸다.지연과 똑같은 법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모자를 벗어 던지자, 검은색 그물 천 너머로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민수의 미간이 한껏 좁혀졌다.“…서해진, 너!”“나 많이 찾았어?”“허!”민수가 기가 찬 듯 혀로 볼 안쪽을 훑었다.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나예리랑
Read more

75화

사정없이 떨리던 민수의 입술 사이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너…! 네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모르셨나 봐요. 유빈 씨가 민수 씨한테 알려준 길, 정상으로 가는 게 아니었는데.”민수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간 예리가 입꼬리를 매끄럽게 끌어올렸다.“뭐?”“여기 SNS에서 꽤 유명한 곳이거든요. 정상이랑 똑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스팟으로.”예리가 제 가슴께 정도로 손을 가져다 대더니 눈대중으로 높이를 재어 보였다.“저 절벽, 높이 2미터도 안 될걸요? 하긴, 평소에 남의 몸 사진에나 ‘좋아요’ 누르는 분 알고리즘에 이런 건전한 정보가 뜰 리가 없죠.”“너…! 너, 이 씨…!”눈이 뒤집힌 민수가 당장이라도 예리에게 달려들려 하자, 그 앞을 체격 좋은 남자 형사가 단단히 가로막았다.“노민수 씨. 오지연 씨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형사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며 민수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형사가 옆에 있던 경찰들에게 턱짓하자, 민수는 순순히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로 땅을 짓누르며 거칠게 버텼다.“아니야! 이거 아니에요, 형사님! 제가 피해자라고요! 저년들이 다 짠 거라고요!”노민수의 처절한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양 옆의 경찰들이 버티는 그의 몸을 억세게 붙들어 끌고 나갔다.그 뒤를 이어 오지연 역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경찰들 손에 이끌려 터덜터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예리의 앞으로, 조금 전 민수에게 수갑을 채웠던 형사가 다가왔다. 그는 예리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덕분에 수사에 큰 도움 되었습니다.”“저희 고객 건드린 인간 죗값 받게 하는 건데, 당연히 협조해야죠. 그리고 오늘 현장 영상은… 강 비서님.”예리가 소진에게 슬쩍 시선을 던졌다. 소진이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형사에게 건넸다.“정리되는 대로 추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소진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형사는 이번엔 유빈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그럼, 이유빈 씨도 서해진
Read more

76화

“유 이사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해진이 은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작게 속삭였다.“팀장님이랑 잘되면, 꼭 같이 놀러 오세요. 저희 집 근처에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곳 많거든요.”“…네?”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스라쳤다. 은호에게서 좀처럼 들을 수 없던 큰 소리에 예리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은호는 터질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제 귓불을 손으로 꾹 눌렀다. 정작 해진은 해맑게 웃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럼, 저 진짜 가볼게요.”해진이 문을 열고 나가자, 소진이 배웅하기 위해 같이 밖으로 나섰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자마자 눈을 가늘게 뜬 예리가 은호를 향해 고개를 훽 돌렸다.“이사님, 무슨 말을 들었길래 그렇게 귀가 빨개질 정도로 놀라셨어요?”“아, 아무것도 아닙니다.”방 안의 모든 시선이 은호를 향하자, 그가 다급하게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바닥의 카펫으로 떨어뜨렸다.“오, 오늘 다들 고생하셨는데 저번에 못 한 회식 하셔야죠.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소고기 어떠십니까?”“와! 진짜요? 진짜죠? 아싸! 드디어 회식이다!”은영이 두 주먹을 흔들며 폴짝 뛰었다. 저번 회식 때 먹지 못한 소고기가 아직도 한으로 남은 모양이었다.“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사님, 회식 장소는 제가 알아서 예약하겠습니다!”비장하게 안경을 고쳐 쓴 은영이 문을 박차고 나가자, 팀원들도 그 뒤를 부리나케 따라 나갔다.왁자지껄했던 방 안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은호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심한 척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 끝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예리가 있었다. 해진과 달리, 예리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은호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그건 그렇고, 나 팀장님과 잘되면이라니….'은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얼굴이 벌개진 승호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들고 있던 맥주잔을 젓가락으로 두드리자, 요란스러운 타격음이 테이블 위를 가
Read more

77화

터무니없는 헛소문.은호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지금은 달랐다.그는 대답을 고민하는 듯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예리의 얼굴을 집요하게 훑었다. 마치 그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기어코 찾아내겠다는 사람처럼.“그건….”예리의 입술이 작게 벌어지며 틈새로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우우웅-. 웅-.“잠시만요.”양해를 구한 예리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 속 발신인을 확인한 예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다.드르륵-. 예리가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대답을 기다릴 생각도 없다는 듯,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예리는 문밖으로 향했다.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화면을 제 몸쪽으로 바짝 기울이며 나가는 모습이 퍽 수상했다.‘누구한테 온 전화길래. 혹시… 남자 친구?’예리가 나가며 문에 달린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은호의 귀에는 그 어떠한 소리도 닿지 못했다.당연히 예리에게도 연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얼마나 제멋대로였는지는, 지금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은호의 이가 뿌득 갈렸다.갑자기 관자놀이가 조여오며 술기운이 훅 치밀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앞에 놓인 물통을 거칠게 집어 올려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탁.차가운 물이 식도를 따라 빠르게 내려갔지만, 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은호가 다시 물통으로 손을 뻗으려던 순간, 혜린이 박수를 요란하게 쳤다.“저 갑자기 생각났는데, 그 이탈리아 사건 있잖아요. 결혼하기 싫다고 도망갔던 고객님이요.”“아, 김 장관님 따님? 그때 김 장관님이 하도 잡아 오라고 길길이 날뛰셔서 팀장님이 직접 공항까지 가셨잖아. 비행기 타기 직전인 거 겨우 잡으시고.”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픈 승호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외국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거면, 매칭해 준 상대가 그렇게 별로였습니까?”은호의 물음에 승호가 고개를 단호
Read more

78화

예리가 느릿하게 입술을 떼어 숨을 골랐다.“박 회장님, 오랜만입니다.”-요새 잘 지내죠?“네. 회장님도 목소리 들으니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하하하. 수화기 너머로 해미가 웃음을 터뜨렸다.-나야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으니까 잘 지내죠. 그런데 나 팀장, 내가 요새는 조금 스트레스받으려고 그러네?웃음기 섞인 인사치레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예리를 향한 묵직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예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유은호 이사 매칭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마치겠습니다.”-요새 유 이사랑 여기저기 잘 다니는 것 같던데, 둘이 많이 친해졌나 봐? 나 팀장 소문대로 고객 사로잡는 실력은 참 좋아.“…….”─그런데 왜 아직까지 진전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친히 전화를 하게 만들까?해미의 목소리가 일순간 소름 끼칠 만큼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죄송합니다. 곧….”해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나 팀장. 전에도 말했지만, 나 기다리는 거 아주 싫어해.“…….”-그러니까 더는 나 기다리게 하지 마요. 기다리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알겠습니다.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좋아요.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 통화 말고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죠. 이러다 우리 예쁜 나 팀장 얼굴 다 잊어버리게 생겼어. 물론 그때는 뭔가 결과가 나와 있겠죠?예리는 마른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렸다. 마지막 말은 마치 제 목덜미를 정조준하고 있는 서슬 퍼런 칼날 같았다.“네. 다음에는 제가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박해미는 수고하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종료된 까만 화면을 내려다보던 예리가 힘없이 벽에 기댔다.“하아…….”예리의 무거운 한숨이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부서져 흩어졌다.조금 전까지 그와 히히덕거리며 회식을 즐기던 스스로가 한심했다.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그때 해진의 일에 더는 관여하지 못하게 딱 잘라내야 했을까. 아니, 애초에 자신의 일을 곁에서 지켜보겠다던 그의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Read more

79화

“그나저나 해진 씨… 괜찮을까요. 노민수와 함께한 세월이 10년이고, 한때 없으면 안 된다 믿을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인데.”은호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눌렀다.예리가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진 터라 달이 흐릿하게 둥근 형태만 빛을 내고 있었다.“죽을 뻔했으니, 충격이야 크겠죠. 그렇지만 원래 사랑한 만큼 아픈 거라잖아요. 그런데 해진 씨는 노민수를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금방 털고 일어날 거예요.”“…어떻게 확신합니까?”낮게 가라앉은, 묘하게 날카로운 목소리에 예리가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은호의 시선이 예리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겁게 내리눌렀다.“팀장님은 참 신기합니다.”은호가 예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네? 뭐가요….”예리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다시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왔다.그렇게 조금씩 뒷걸음치던 예리의 등이 끝내 차가운 벽에 가로막히며, 별안간 그의 품에 갇히는 꼴이 되었다. 눈앞을 가득 메운 그의 넓은 가슴에 예리가 숨을 흡 들이켰다.은호는 잠시 예리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려다보다, 불쑥 고개를 숙였다.“……!”두 사람의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은호가 예리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마치 예리의 눈동자 떨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팀장님만 보면 꼭… 그런 착각이 들어요.”“그게 무슨 말….”당장이라도 옥죄어올 것 같은 검은 눈동자에 예리의 속이 울렁였다.예리가 서둘러 어색하게 웃어 보이곤 그를 밀치려고 손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째깍-.공중에서 예리의 손이 그대로 얼어붙었다.째깍-. 째깍-.예리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째깍-. 째깍-. 째깍-. 째깍-.점점 더 빠르고 또렷해지는 초침 소리에 예리가 다급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사방이 막힌,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는 자신뿐이었다. 그때 은호의 걱정스러운 음성이 머리 위로
Read more

80화

예리가 마우스 휠을 빠르게 굴렸다. 모니터 속 세월을 머금어 노랗게 바랜 종이가 쉼 없이 넘어갔다.“쯔….”마우스를 내팽개치듯 내려놓은 예리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좋아.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자.’유은호의 손목에 문양이 나타났고, 강렬한 붉은빛을 내뿜었다.그걸 보고 있는 제 머리통을 울리던 초침 소리. 온몸을 짓누르던 열감까지. 하나같이 아직도 생생했다.예리의 입술 사이로 참았던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이거 완전 빼도 박도 못하잖아.”유은호는 나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것도 진하게.힘없이 고개를 든 예리가 오른쪽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그럼에도 가라앉은 그녀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산 넘어 산이라더니. 겨우 하나를 넘었다 싶었는데,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도대체 유은호는 정체가 뭐야? 어떻게 사람이 사랑에 유효기간이 없을 수가 있냐고.”지금까지 사랑의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하나씩만 지닐 수 있었다. 즉, 그 문양의 기간이 끝나야만 새로운 문양이 생기는 시스템이었다.그런데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문양에는 유효기간이 없었다.‘年 月 日’만 남겨진.맹세코 처음 보는 형태였다.“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하필이면 왜, 왜, 왜!”나를 향한 거냐고!예리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뒷말을 삼켰다. 아직까지는 소진도 모르는 저만 아는 1급 기밀이었기에 차마 뒷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의 만료일을 기다리는 수밖에.“하아…….”예리가 힘없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갑자기 두통이 몰려왔다. 진통제라도 먹어야지, 안 그러면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예리가 관자놀이를 꾹 누른 채 서랍 제일 위 칸을 열어 진통제가 담긴 통을 찾아 뒤적일 때였다.똑, 똑.예리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제 멋대로 사무실로 들어온 그는 예리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소파에 널
Read more
PREV
1
...
45678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