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이 와중에 가계영이 걱정된 현신은 일단 주차를 서둘렀다.
회사 편의점에 들러 파운데이션 하나를 집어 들고는, 거울 속 처참한 멍 자국 위로 대충 펴 발랐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어제 총무과장에게 출근하지 못한다고 짧게 전하긴 했지만, 양심이 쿡쿡 쑤셔대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 죄짓고는 못 산다더니, 복도를 지나는 내내 사방의 눈치만 살피게 되었다.
일단 마스크를 깊게 눌러쓰고 평소 일하던 자리로 향했다.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각이니, 자신 같은 알바생 하나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투명 인간 취급을 해주리라. 일말의 기대를 품어 보았건만···.
“어이! 알바생! 어제 왜 안 왔어? 마스크는 또 왜 썼냐?”
“와, 근데 너 마스크 쓰니까 진짜 아이돌 같다. 연예인 느낌인데?&rd무균 병동으로 옮겨진 현신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침묵의 조각상 같았다.창백하게 질린 피부 위로 잔상처럼 남은 긁힌 자국들, 골절 수술과 더불어 다리 쪽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를 촘촘히 메운 소독약 냄새가 짙게 감돌았다.하지만 자신이 짊어졌던 지독한 사명을 마침내 끝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 비극적인 삶으로부터 해탈한 것일까.다시는 이 가혹한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현신은 잔물결 하나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짙은 잠에 빠져 있었다.의료진의 간곡한 만류를 물리치고, 계영은 무균실 규정에 따라 멸균 가운과 마스크, 장갑까지 갖춰 입은 채 현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가계영에게 처음부터 현신은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태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류의 사람.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서늘하고 고운 얼굴 뒤에, 어쩌면 이리도 지독할 정도의 사명감과 정의로움을 지니고 살아온 것일까.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한계를 뛰어넘어 버리는 현신을 향해, 계영은 매 순간 감탄을 넘어선 아득한 존경심마저 느끼고 있었다."우리 사이엔······ 아직 남은 약속이 있잖아."하지만 이대로 영영 눈을 감고 있기엔 계영의 가슴에 차오르는 서운함과 절망이 너무도 컸다.제발 부탁이니 눈을 떠달라 속으로 빌고 또 빌어도, 현신은 조금의 동요조차 없었다."신······. 엘에프 수술이 잘 끝났어. 적어도 고맙다는 인사는 직접 들어야지."몸이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사람의 정신력이란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이신이라는 아이의 신장 이식 수술도 무사히 끝났다고 하더군."심장이 터져 나갈 듯한 통증에 계영은 숨을 제대로 쉬기조차 힘들었다."다른 장기 이식과 피부 이식도 모두 성공적이었어
수술은 이미 지독한 10시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달력의 장이 넘어가며 3월 1일의 봄 햇살이 세상 밖으로 높이 떠올랐을 시간이건만, 대한종합병원 지하 비밀 수술 구역의 복도는 여전히 낮과 밤의 경계조차 아득해진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벽면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짓눌린 정적만이 둔탁하게 감돌았다.수술 시간이 길어지자 복도를 채웠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수술이 끝난 다른 가족들도 모두 사라졌다.현장의 긴급 수습을 위해 나선 강무와 한규련을 비롯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오열하던 무휼과 시온도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허기를 달래러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지금 이 사늘한 공간을 지키는 사람은 헤르만과 계영, 그리고 저 멀리 구석에서 눈물을 겨우 그친 채 불안하게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보는 주효진이 전부였다.억겁과도 같은 10시간의 정적을 견디다 못한 헤르만이 수척해진 얼굴로 계영에게 천천히 다가왔다."엘에프에게 최주현의 간을 이식받게 만들다니······. 정말 에스는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요."덤덤하게 던진 한마디였지만, 헤르만의 지친 눈빛 끝에는 작게나마 희망의 온기가 서려 있었다.자신을 던져 남을 구원해낸 현신만의 지독하고도 숭고한 방식이라 계영 역시 벼랑 끝으로 내몰려 바스러지던 마음을 아주 조금씩 추슬렀다."그 여자가 원래 그래. 남의 인생을 아주 흔들어 놓거든."계영의 입가에 나직한 자조가 걸렸다. 헤르만은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마른세수를 했다."반드시 엘에프도 살아나고, 에스도 무사히 깨어날 겁니다."깊은 한숨 끝에 묻어나는 헤르만의 목소리엔 절박한 간절함과 단단한 믿음이 동시
차디찬 어둠이 대형 수술 센터 전광판 위로 짓눌려 있었다. 달력을 넘어선 시간은 3월 1일 새벽.계절은 비로소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지만, 대한종합병원 수술실 앞 복도의 공기는 여전히 잔혹한 한겨울의 한복판에 멈춰 있었다.국내 최고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 대형병원에는 수십 개의 수술방이 존재했지만, 오늘 밤 불이 켜진 곳은 철저히 통제된 구역이었다.김민철 원장이 그동안 온갖 불법 수술을 감행해 온 비밀 구역에서 실시되는 중이다.외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보안요원들이 철통같이 입구를 막아선 그곳에서는 지금 여러 개의 수술실 불빛이 동시에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한쪽 수술실에서는 최주현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작업과 함께 시한부의 삶을 버티던 엘에프에게 간을, 어린 이신에게 신장을 이식하는 것과 더불어 심장과 안구, 피부 등 장기 기증을 기다리던 일반인들의 수술도 대규모로 함께 이루어지는 중이었다.그리고 그 맞은편 수술실에서는 현신의 골절 수술도 진행이 되고 있었다.수술이 시작된 지 어느덧 지독한 3시간이 흐르고 있었다.거대한 절망과 찰나의 희망이 칼날 같은 긴장감 속에서 위태롭게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엔 그림자만 가득했다.“제발······ 현신이를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시온은 의자에 힘없이 앉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울음을 토해내며 기도를 올렸다.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무휼이 말없이 감싸 안았다.무휼의 얼굴 역시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수술실로 향했다.저 멀리 구석진 창가에는
김민철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대한종합병원.이동 침대에 누워 도착한 현신은 가물거리는 의식의 줄기를 겨우 붙잡고 있었다.“현신. 이 와중에 서류 작성까지······.”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현신의 의지는 바위처럼 확고했다.끝까지 의식을 놓지 않는 현신을 둘러싸고, 마동현 실장이 뒤이어 들어섰으며 무휼과 시온 역시 병원에 도착했다.“신아! 정신 차려! 힘내!”“현신! 너 무리하지 마!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당장 검사부터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시온이 울컥 눈물을 터뜨리며 현신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었고, 무휼도 현신의 상태를 살피며 소리쳤다.“빨리······.”누운 채 입술을 경련하듯 움직이며 중얼거리는 현신의 모습에, 모두는 침울한 침묵 속에서 이 비극적인 상황을 지켜보았다.무휼은 현신의 눈빛에서 낯선 위화감과 서늘한 결의를 느꼈는지, 불안한 마음에 시온의 손을 꼭 쥐며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계영은 엘에프의 이송 차량이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김민철이 강무와 함께 로비에 나타났다.“감히! 이 야밤에 나를 불러내다니! 이 해괴망측한······!”한밤중에 갑작스럽게 끌려 나온 김민철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병원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다가, 이동 침대 위 죽어가던 최주현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색을 바꾸며 크게 외쳤다.“·&m
현신은 자신이 지금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기 일보 직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의식이 돌아온 건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통증, 그리고 제 얼굴을 감싸 쥔 계영의 뜨겁고 일그러진 손길만큼은 지독하게 생생했다.계영은 그녀를 안아 암반 안쪽으로 조심스레 끌어당긴 상태였고, 강무 역시 드론 통신을 통해 계영의 수신기 너머로 희미한 지시를 보태고 있었다.“······어떻게 여기까지······.”입에 피가 고여 그런지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네 생일에 건넸던 그 선물······ GPS를 심어 놓았어.”계영은 사색이 되어 현신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며 그래도 차분하게 대답을 건네 주었다.설마 홍콩에서부터 계영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인가.지독하고 병적인 집착. 통제 불능의 스토킹에 가까운 행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친 집착 덕분에 현신은 오늘 밤 목숨을 건졌다.“······진짜 너무하시네요.”“모른 척해. 넌 사선을 넘나드는 여자잖아, 벌을 주고 싶으면 줘. 달게 받을 테니까······ 살기만 해. 부탁이야. 제발.”현신은 떨리는 팔을 힘들게 밀어 올렸다.벌이라니. 이 집요하고 오만한 사내에게 줄 것은 오직 상뿐이었다. 계영의 얼
설마, 아니겠지. 실종되었던 김강무의 목소리가 들리다니.그게 아니라면 최주현이 깔아놓은 함정일까.그러나 현신은 찰나의 순간, 그를 믿기로 했다. 스러져가는 의식의 끈을 이를 악물고 부여잡은 채, 인이어 너머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알바생, 내 말 잘 들어! 나뭇가지는 끌어안지 마!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 절벽 같아 보여도, 바로 거기에 튀어나온 평평한 암반이 있어!]그러다 균형이라도 잃고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면.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현신이 죽는다고 김민철의 죄악이 깔끔히 세탁되는 것도 아니었다. 증거는 이미 흘러넘치도록 모아두었으니까.강무의 서늘한 경고가 아니었다면 부서져가는 고목을 끌어안았을 터였다. 현신은 온몸의 신경을 짓누르는 고통을 씹어삼키며 강무가 일러준 방향으로 제 몸을 비틀어 넘겼다.털썩—.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감돌던 몸뚱이가 드디어 견고하고 차가운 바위 위로 안정되게 안착했다.이 깊은 밤, 칠흑 같은 산속. 강풍이 휘몰아치고 수색 헬기 소리마저 까마득히 멀어진 이 사지에서.[바로 그거야! 잘했어!]강무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깨고 선명하게 현신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야간 투시 고글이라도 끼고서 현신의 처절한 몸부림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그리고 그 순간, 공허한 정적을 갈라치며 또 하나의 익숙한 음성이 쏟아져 들어왔다.[현신! 임무 완수해야지! 곧 갈게! 살아만 있어 줘!]‘설마, 계영 님?’꿈이 아니었다.가계영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현신의 귓가에 번져나갔다.***계영의 피는 이미 바짝 말라붙어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십수 미터 절벽에서 추락했으니 생존율은
죄를 지었냐고.현신은 너무 많은 죄를 지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아니요.”“풋, 귀엽게!”“살면서 죄 안 짓는 사람 없다. 거짓말도 죄지.”현신이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말하자, 한규련과 김강무의 입가에 그 모습이 귀엽다며 옅은 미소가 번졌다.대기업 본사의 로비는 굵직한 해외 파트너사들과의 미팅 준비로 소란스러웠으나, 소파에 모여 앉은 이 세 남자는 마치 다른 시간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여유로웠다.지나가는 직원들이 사장과 그 거물급 친구들의 등장에 놀라 시선을
3월의 끝자락, 창밖의 공기는 여전히 냉소적이었으나 사무실 안은 화이트칼라들이 뿜어내는 기묘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서류 더미가 스치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음 사이로 현신의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제안서 복사 끝났습니다, 최 대리님!”“어이, 알바생! 여기 오타 좀 확인해 봐.”“예, 갑니다!”현신은 기계적으로 발을 놀렸다.지금 그녀가 걸친 헐렁한 셔츠와 알바생이라는 가명은 정체를 감추기 위한 완벽한 껍데기였다.현신은 구석진 제 책상에 앉아 엘리트들이 내놓은 오만한 종이 뭉치들을 넘겨보았다. 무미건조한 숫자와
이 남자.적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유롭지만 비틀린 웃음을 짓는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매우 차가웠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살기를 풍겼다. 검은 머리의 검은 눈, 그리고 검은색 슈트까지 입은 그는 한 마리의 굶주린 재규어처럼 번득여댔다.그때, 남자는 현신의 뒷머리를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겨우 그의 손목을 잡고 공격을 저지시킨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는 다시 현신을 돌리려고 했으나, 반대로 발목을 차이면서 주먹으로 남자의 배를 한 방 공격했다.휙!그 순간 쿵-, 현신의 관자놀이가 책상에 내리찍히는 불
마지막 임무가 곧 끝이 난다.지긋지긋한 가면을 쓴 생활도, 사선을 넘나들며 시간에 쫓기는 삶도. 더 이상 피를 흘릴 일도, 손에 피를 묻힐 일도 없게 된다. 폐가 터질 듯 숨차게 도망갈 일도 없겠지.그 희망을 품고 문을 연다. 그동안 머물렀던 곳과 다른 세상의 향기가 밀려왔다. 성공해서 새로운 삶을 살든, 실패해서 영원한 거짓말쟁이로 남아 죽음을 맞이하든 어쨌든 오늘이면 끝이 난다.내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마지막 미션. 곧 시작이다. *** 1년 전, 2월의 마지막 날. 어둠이 짙게 깔린 숲속을 검은 인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