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가장 높이 뜬 정오 무렵, 블랑은 별궁을 나섰다.마차의 커튼을 내리자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좁은 틈새로 스며들었다.그 빛은 갓 벼려낸 칼날처럼 희고 서늘했다.“행선지는… 레녹 후작 저택이 맞습니까.”마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황궁의 하인들조차 그 이름을 말할 때는 한 박자 늦는다.블랑은 고개만 끄덕였다.‘의회 수장의 문 앞이라.’아직 속내를 알 수 없는 자. 그의 손을 잡는 것이 과연 옳은 수일까. 잉크를 다루는 자들의 치밀하고 교활한 덫은, 무식하게 휘두르는 칼날보다 피하기 어려운 법.그 낯선 긴장감에 블랑은 매끄러운 팔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두려움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된 서늘함이었다.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조금 전, 페온 공작이 남기고 간 살의가 아직도 피부에 끈적하게 남아 있었다.그 늙은 거목은 오늘은 물러났지만, 다음엔 가지를 뻗어 기어이 목을 조를 것이다.마차가 골목을 돌아나가자 도시의 냄새가 바뀌었다.황궁 주변의 달콤한 향수 냄새 대신, 젖은 잉크와 오래된 양피지 냄새가 스몄다.문관들의 구역.칼 대신 법과 치밀한 기록으로 남의 목을 죄는 곳이었다.레녹 후작 저택은 외려 소박했다.귀족들의 과장된 과시가 없었고, 정원도 억지로 넓히지 않았다.대신 모든 것이 정교하고 숨 막히게 통제되어 있었다.문지방의 높이, 기둥의 간격, 석상 하나의 시선까지.들어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검열하고 계산하게 만드는 집이었다.문이 열리고 집사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블랑 백작님을 뵙습니다. 후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기다리고 있었다.]블랑은 그 말속에서 이미 게임이 시작됐음을 느꼈다.저택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접견실은 대낮임에도 서늘하고 묘하게 어두웠다.창의 절반을 가린 두꺼운 커튼 탓이었다. 밝은 밖과 달리, 오직 상대를 읽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짙은 그림자를 깔아둔 공간.레녹은 여유롭게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다.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검은 예복, 이지적인 은테 안경, 그리고 가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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