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บทที่ 71 - บทที่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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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얼굴이 더러워졌네. 내가 닦아줄게.”소녀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기피하지 않았던 존재였다.그 짧은 한마디에 구형민의 가슴 속으로 난생처음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지 못하고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보건실로 옮겨진 뒤였다.과거를 떠올리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단 하나, 자기 얼굴을 닦아주던 손수건에 수놓아진 무지개색 곰 무늬뿐이었다.훗날 온아정에게 그 손수건이 있었다는 사실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확인한 순간, 구형민은 확신했다.그녀가 바로 노란 원피스의 소녀라고.“아정아, 사랑해. 나한테 오직 너뿐이야.”구형민은 손수건을 가슴에 움켜쥔 채 눈을 감고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왜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네가 아닌 걸까.”...어느덧 주말이 찾아왔다.온세아는 이채린의 부추김에 못 이겨 그녀와 함께 진하성의 승마장으로 향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흥분 섞인 비명이 들려왔다.“세상에, 여기 완전 예쁘잖아!”이채린은 눈 앞에 펼쳐진 승마장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말들도 정말 멋지네.”온세아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밭과 줄지어 늘어선 나무 말뚝 울타리.그 너머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우러진 풍경은 절경이 따로 없었다.“가자.”온세아는 시선을 거두고 승마장 입구로 향했다.진하성이 미리 연락해둔 덕분에 경비원은 두 사람에게 친절히 길을 터주었다.하지만 얼마 못 가 온세아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검은색 캐주얼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한 남자.나른하게 늘어진 자세에서도 감출 수 없는 고귀한 기품이 흘러나왔다.워낙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외모라 모른 척 지나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주말에까지 상사와 마주치다니.이곳이 진하성의 소유이니 절친인 권태혁이 있는 게 이상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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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그러나 본인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신의 눈빛이 얼마나 뜨겁고, 지독한 소유욕으로 번들거리고 있는지.그 노골적인 시선이 부담스러운 온세아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이때, 곁에 있던 이채린이 권태혁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내질렀다.“세상에, 대표님 아니야? 주말에 승마장에서 마주칠 줄이야, 이게 웬 횡재니?”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세아의 손을 잡아끌고 권태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권태혁은 누구보다 먼저 온세아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지만, 반응은 진하성이 한 발 더 빨랐다.승마장의 주인으로서 초대한 손님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마중을 나갔기 때문이다.권태혁은 일어나려던 동작을 멈추고 대신 다리를 바꿔 꼬았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진하성의 뒷모습에서 떠나지 않았다.“세아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진하성이 멀리서부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늦어서 죄송해요.”온세아가 앞에 서서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자, 진하성은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딱 맞춰 왔어요. 우선 구경부터 좀 할까요?”두 여자는 진하성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그 와중에 온세아의 시선이 멀리 떨어져 있던 권태혁과 다시 한번 허공에서 부딪혔다.그녀는 이번에도 피해버렸고, 이를 본 권태혁의 눈동자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이때, 곁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진하성 저 자식, 제 버릇 개 못 준다니까. 미녀만 나타났다 하면 우릴 까맣게 잊어버리네. 이리로 데려와서 소개라도 좀 시켜주지.”“근데 하성이 유부남 아냐? 마누라 무서운 줄도 모르고 예쁜 여자만 보이면 저렇게 달라붙어서 어쩌려고.”“방금 그 여자 미모를 봐라. 나라도 저 정도 급이면 눈 돌아가겠다.”“저렇게 예쁜 사람은 실로 오랜만에 보네. 특히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진짜 예술인데? 진하성 혼자 독식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귓가를 어지럽히는 저속한 품평에 권태혁의 미간이 단단히 일그러졌다.‘대체 왜, 이 여자는 나타나는 곳마다 타인의 시선을 끄는 거지?’가슴 속 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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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온세아는 옷을 벗고, 손에 들린 강렬한 붉은색 승마복으로 갈아입었다.하지만 허리띠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한참을 낑낑거려야 했다.이채린에게 매는 법을 아느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등 뒤의 가림막이 크게 흔들렸다.동시에 서늘한 바람과 함께 특유의 남성적인 향취가 좁은 공간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온세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권태혁은 그녀를 벽으로 몰아붙였다.“여긴 어떻게 온 거야?”무시무시한 눈빛에 온세아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최대한 몸을 뒤로 밀착시키며 남자와 거리를 두려 애썼다.“승마장이 대표님 전유물은 아니잖아요...”온세아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최근 유독 쌀쌀맞았던 상사의 태도를 떠올리니 고운 말이 나갈 리 만무했다.사실 그녀도 오기 싫었다.다만 아침 일찍부터 진하성이 기사를 보내 이채린을 먼저 태우고, 그녀의 집 앞까지 와서 기다리는 바람에 체면상 거절하기 힘들었을 뿐이었다.형부에게 미운털 박혀서 좋을 게 없으니까.권태혁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무서울 정도로 깊게 가라앉았다.“그래? 하지만 내 말 한마디면 세아 씨는 여기 발도 못 붙여.”“대표님!”안하무인인 그의 말투에 온세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체 어느 대목에서 또 심기가 뒤틀린 건지 알 수 없었다.“이것 좀 놓으세요!”그녀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저항하기 시작했다.권태혁은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벨트를 낚아채더니 그녀의 허리에 감았다.그러고는 순식간에 잡아당겨 매듭을 지었다.온세아는 벨트와 함께 그대로 남자의 품속으로 끌려 들어갔다.좁디좁은 탈의실 안, 남녀의 몸이 빈틈없이 밀착되었다.서로의 숨결이 뒤섞이고, 거칠어진 호흡 소리가 점점 커졌다.온세아는 겁에 질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콧속을 파고드는 것은 온통 권태혁 특유의 짙은 남성적인 향취뿐이었다.자칫 잘못하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대표님, 아까는 제가 잠시 욱해서 실언했어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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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남녀의 몸이 빈틈없이 맞물렸다.온세아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대표님, 자중하세요!”벌써 몇 번째 내뱉는 경고인지 모를 일이었다.평소 지독할 만큼 절제와 품위를 지키는 남자가 ‘자중’이라는 단어를 모를 리 없건만, 이상하게 그녀의 앞에만 서면 집 떠난 이성은 돌아올 줄 몰랐다.권태혁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분명 수치심과 분노로 일렁이는 표정인데도 곱상한 얼굴에는 왠지 모를 애틋함과 원망이 서려 있었다.사람으로 하여금 속수무책으로 선을 넘고 싶게 만들었다.권태혁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물론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입술을 짓누르는 서늘한 촉감에 온세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하필이면 지금, 이채린이 바로 밖에서 가림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온세아는 겁에 질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자칫 숨소리라도 새어나갈까 봐 본능적으로 호흡을 멈췄다.밖에서 기다리는 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꼴이 마치 몰래 바람이라도 피우는 처지 같았다.권태혁은 그녀의 초조함을 눈치챈 듯, 오히려 더 격렬하게 파고들었다.처음엔 그저 가볍게 입만 맞추려 했으나, 붉은 입술이 닿는 순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몇 번이고 다시 그 맛을 탐하고 싶었다.온세아는 집요한 입맞춤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세아야, 안에 있어?”이때 탈의실 밖에서 다시 한번 이채린의 외침이 들려왔다.정신이 번쩍 든 온세아는 급히 권태혁을 밀쳐냈다.“응, 있어!”목소리는 다급함이 묻어났다.이채린이 혹시라도 대답을 듣지 못해 가림막을 걷어내고 들어올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다 갈아입었으면 먼저 나가 있어. 나도 금방 갈게.”“그래,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멀어지는 발소리를 확인하고서야 온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고개를 들자 다시 권태혁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두 사람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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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말을 마치고는 등 뒤의 백마를 가볍게 토닥였다.“이 녀석이 여기서 제일 순해요. 한번 타 볼래요?”신나게 말을 타는 이채린의 모습을 보며 온세아도 슬슬 마음이 동하던 참이었다.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옆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내가 가르쳐주지.”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온세아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앞섰다.직접 가르치려던 진하성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친구를 보자 마지못해 물러났다.권태혁이 어떤 여자에게 노골적인 소유욕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그럼 부탁 좀 할게.”진하성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온세아를 권태혁의 손아귀에 오롯이 남겨둔 채로.온세아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으려는데, 서늘한 명령이 떨어졌다.“얼른 타.”온세아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저... 그냥 안 배울래요.”대표가 직접 가르쳐주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직접 올라갈래, 아니면 내가 안아서 올려줄까?”온세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결국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등자를 밟고 말 등에 올라탔다.겨우 고삐를 움켜쥔 순간, 묵직한 느낌과 함께 다시 한번 익숙한 숨결이 훅 끼쳐왔다.권태혁이 같은 말에 올라탈 줄은 꿈에도 몰랐다.승마를 가르치려면 당연히 앞에서 말고삐를 잡고 끌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말을 꺼낼 새도 없었다.어느새 고삐를 잡아챈 권태혁의 두 팔이 그녀를 가두듯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온세아는 전신을 에워싸는 짙은 체향에 머릿속이 하얘져서 꼼짝도 못 했다.승마를 배우는 데 이렇게까지 밀착해야 하나?“왜 그러지?”돌처럼 굳어버린 온세아의 몸을 눈치챈 권태혁이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온세아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엉덩이를 슬쩍 앞으로 옮겼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처음 타보는 거라 좀 긴장했나 봐요.”“그렇군.”권태혁은 나지막이 대답하더니, 양다리로 말의 배를 조여 천천히 걷게 했다.하지만 말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그때마다 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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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온세아는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구역질에 신음했다.바로 그때, 권태혁이 고삐를 거칠게 낚아챘다.질주하던 말의 앞발이 허공을 가르며 멈춰 섰다.관성에 의해 앞으로 고꾸라지던 온세아가 말의 목덜미에 처박히기 직전,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챘다.다시금 넓고 뜨거운 품 안으로 끌려간 뒤에야 온세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정을 되찾았다.하지만 권태혁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꼴사나운 몰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지면에 발이 닿는 순간, 비로소 살아있다는 실감이 났다.권태혁은 말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아직 수업 안 끝났는데.”“저, 안 배울래요! ”온세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조금 전의 공포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속은 여전히 뒤틀리고 있었다.결국 입을 막고 화장실로 직행한 그녀는 변기를 붙잡고 마른 구토를 쏟아냈다.지독한 현기증 속에서 확신이 들었다.저 남자는 분명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게 분명하다고.대기업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왜 하필 일개 비서인 그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알 수 없었다.설마 예전에 발작했을 때, 그의 외모에 홀려 저질렀던 실수 때문에 여전히 심기 불편한 걸까.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가능성은 그것뿐이었다.“세아야, 괜찮아? 어디 안 좋아?”화장실로 따라 들어온 이채린은 변기를 붙잡고 창백한 안색으로 구토하는 온세아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물었다.온세아는 힘겹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괜찮아. 그냥... 난 승마랑 잘 안 맞나 봐.”이채린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안 되겠어. 내가 먼저 데려다줄게.”온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이채린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온세아는 권태혁을 마주쳤다.어느덧 검은 승마복을 벗어 던진 그는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캐주얼한 슈트 차림으로 돌아와 있었다.벽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어 선 채 한쪽 다리를 가볍게 굽힌 남자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함과 냉철함이 흘러나왔다.온세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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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권태혁은 한마디를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하지만 몇 걸음 못 가서 온세아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었다.“대표님, 아니면 그냥... 먼저 가시겠어요? 전...”온세아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태혁이 다시 돌아왔다.그러더니 허리를 숙여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이럴 수가!온세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권태혁은 그녀를 안고 승마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남자의 품에 기댄 온세아는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애썼다.고개만 들어도 얼굴이 턱 끝에 스칠 듯했고, 두 사람은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게 밀착되어 있었다.그녀는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권태혁에게 안겨 차에 올라탄 온세아는 즉시 반대편 창가 쪽으로 몸을 옮겨 그와 거리를 두었다.기사가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조금 전 말을 탔을 때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그녀는 행여 차가 흔들릴까 노심초사하며 손잡이를 꽉 잡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승마로 이미 기력을 너무 많이 소진한 탓이었을까.꼿꼿이 앉아 있던 온세아는 금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의식은 점점 아득해졌고, 끝내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옆에 앉은 여자가 한참 동안 미동도 없자, 권태혁은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어느새 곤히 잠들었다.머리를 차창에 기댄 채, 얼굴은 그를 향해 있었다.감긴 두 눈과 고른 숨소리,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권태혁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절로 그녀에게 머물렀다.그는 몇 초간 가만히 여자를 응시했다.‘내 차 안에서 이렇게 잠이 들어버리다니.’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잠든 사이 무슨 짓이라도 당할 거라는 의심조차 안 하는 건지.온세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권태혁의 눈빛이 한층 깊게 가라앉았다.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잠든 여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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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아버지께서 방금 네 소식을 물으셨어. 지금 당장 본가로 와.”구형민이 서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권태혁은 곁에서 곤히 잠든 여자를 힐긋 쳐다보며 대답했다.“지금 자고 있어서 가기 힘들 것 같군.”구형민의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누구야! 내 아내 전화를 왜 그쪽이 가지고 있는 거지?”권태혁이 무심하게 대꾸했다.“난 이 사람 상사고, 지금 온세아 씨는 내 차 안에서 잠들었어.”구형민의 마음속에 거센 파동이 일었다.무언가 더 따져 물으려 했으나, 상대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린 뒤였다.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갑자기 본가 가기를 거부하고, 이혼에 동의하며 온아정과의 관계를 축복하겠다던 온세아의 비정상적인 태도들.그 모든 게 전부 저 상사라는 놈 때문이었나?생소한 질투심이 순식간에 가슴을 휩쓸었다.스스로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온아정 외에 그의 감정을 이토록 크게 동요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설마 온세아가 바람이라도 피우는 건가?’그래, 틀림없이 그 의심 때문일 것이다.설령 온세아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자기 몰래 다른 남자와 눈이 맞는 꼴은 결코 용납이 불가했다.한편, 온세아가 눈을 떴을 때 고급 승용차는 이미 그녀의 집 앞에 멈춰 서 있었다.하지만 차 안에는 기사 말고 아무도 없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시죠?”온세아가 의아한 듯 묻자, 기사가 서둘러 답했다.“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겨 먼저 이동하셨습니다.”온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에게 짧은 감사를 전한 뒤, 서둘러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권씨 저택.“어머니, 고작 맞선 자리에 앉히려고 병까지 가짜로 꾸며 저를 불러들이신 거예요?”권태혁은 원래 차 안에서 온세아가 잠에서 깰 때까지 곁을 지킬 생각이었다.하지만 도중에 본가 고용인으로부터 어머니의 심근경색이 재발했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결국 잠든 온세아를 홀로 남겨둔 채 서둘러 본가로 달려와야만 했다.그러나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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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홍지영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아들을 타박했고, 마지막에는 정말 혈압이 올라 심근경색이 재발할 뻔했다.다행히 때맞춰 등장한 권민지가 노련하게 상황을 수습한 덕분에 간신히 화를 삭이며 권태혁을 놓아주었다.어머니를 겨우 달래 보낸 권민지가 동생의 앞을 막아섰다.“네 일은 알아서 좀 챙기면 안 되냐? 엄마 속 썩는 바람에 나까지 피곤해지잖아.”권태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응수했다.“누나 앞가림이나 잘하시지?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했으면서 누굴 훈계하는 거야?”“이 자식이!”권민지의 안색이 돌변했다. 동생이란 놈이 정곡을 찔러도 유분수지.그녀는 괘씸하다는 듯 권태혁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진심으로 묻는데, 너 혹시 여자한테 아예 흥미가 없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일찌감치 엄마한테 털어놔. 그래야 엄마도 포기하시지.”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남동생이 여자 만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여자를 소모품처럼 갈아치우는 다른 재벌가 자제들의 방탕함에 비하면, 권태혁은 지나칠 정도로 결벽에 가까운 무욕을 유지해 왔다.오죽하면 핏줄인 자신조차 그의 성적 취향을 의심할 정도였을까.“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지.”권태혁은 누나를 무심하게 훑어보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온세아를 만난 이후, 잠들어 있던 그의 본능은 마침내 눈을 떴다.여자를 밀어냈던 것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그저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차에 올라탄 권태혁이 기사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려던 찰나였다.시트 틈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집어 올린 것은 파란 사파이어 귀걸이 한쪽이었다.이 차에 온세아 외에 다른 여자를 태운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 유실물 역시 그녀의 것임이 분명했다.굳게 다문 입술 끝이 미묘한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깊은 밤.구형민이 귀가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온세아는 진즉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가족 만찬에서 아버지가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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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이야기 좀 해.”구형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온세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무슨 얘기?”이 밤중에 잠도 안 자고 불쑥 찾아와서 대체 무슨 대단한 대화를 나누겠다는 건지.구형민의 눈빛이 유난히 깊게 가라앉았다.“너, 회사 대표랑 많이 친해?”온세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뜬금없이 권태혁은 왜 언급하는 걸까.“그럭저럭.”그녀가 덤덤하게 대꾸했다.구형민의 서늘한 시선이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전에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너 유부녀라는 거 잊었어? 밖에 나가서 처신 똑바로 하라고 했지?”그 말에 온세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대체 무슨 염치로 이런 충고를 지껄이는 거지?“그 말, 본인한테나 하시지?”온세아는 몰래 눈을 흘겼다. 밖에서 온갖 추잡한 짓 다 하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데.구형민은 말문이 턱 막혔다.이내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다시 입을 떼려던 찰나, 온세아가 가차 없이 말을 잘라버렸다.“미안하지만, 난 잠 좀 자고 싶거든? 그만 나가줄래?”구형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온세아가 감히 자신을 쫓아내려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결혼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합방 한 번 해보려고 기회를 엿보던 건 늘 그녀가 아니었던가.그런데 막상 제 발로 찾아든 자신을 향해 일말의 동요도 없이 서늘한 냉대만을 내비치고 있었다.순간, 구형민의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명확하게 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온세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그를 등지고 누웠다.“앞으로는 내 방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과거 자신이 그녀에게 내뱉었던 말이다.이제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구형민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다음 날 아침, 세수하던 온세아는 왼쪽 귀가 허전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귀걸이 한쪽이 사라진 것이었다.승마장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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