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261 - Chapter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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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그저 같은 길을 가던 우연에 가까워 보였다.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한 두 사람은 지구대를 나왔다.허서령은 다시 자신을 의심했다.‘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변한 걸까? 아니면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걸까?’아니었다. 최근에는 약도 꾸준히 먹고 있었고 일도 바빴다. 병세는 나아지는 중이었고 신체화 증상도 점점 줄고 있었다.생각할수록 무서워졌다. 손이 저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깊은 생각에 빠진 허서령은 멍한 얼굴로 지강산의 뒤를 따라 차 쪽으로 걸어갔다.지강산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말을 꺼내려 했다.그런데 풀이 죽은 채 생각에 잠겨 다가오던 허서령이 그대로 그의 품에 부딪혔다. 그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허서령은 부딪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한 걸음 물러나 이마를 만지며 고개를 들어 사과했다.“미안해요.”지강산은 오히려 몇 번 더 부딪혀 주길 바랐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녀?”“아무것도 아니에요.”“무서우면 이사해. 나한테 다른 집도 있어.”지강산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네가 싫지만 않다면 나랑 같이 살아도 되고.”허서령은 즉시 거절했다.“싫어요.”지강산은 숨을 가라앉히며 난처하게 웃었다.“요즘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착각한 건 아닐까?”“그럴 지도요.”“그럼 내가 네 집으로 들어가 살까?”허서령은 미간을 찌푸렸다.“강산 씨, 우리 관계를 좀 명확히 정리하면 안 돼요?”지강산은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숙여 차가운 눈동자를 응시하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허서령,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면 안 괴로워?”갑자기 가까워진 지강산 때문에 허서령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긴장한 그녀가 침을 삼키며 한 걸음 물러나자 그는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가 또 물러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바짝 따라붙었다. 얼굴이 거의 맞닿을 만큼 내려와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했다.허서령은 다급히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밀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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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나한테 네 한계가 어디까지인데?”지강산의 표정은 진지했다.허서령은 고개를 돌려 지구대를 가리켰다.“저기까지요.”지강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넌 못 해.”허서령 역시 자신 있게 대꾸했다.“강산 씨도 저를 억지로 건드리지는 못해요.”“어쩌면 넌 아직 나를 잘 모르는지도 몰라.”지강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몸을 돌려 차 문을 열었다.“타.”허서령은 잠시 망설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지강산은 운전석 쪽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뭐 좀 먹으러 가자. 먹고 싶은 거 있어?”“안 배고파요. 집에 데려다줘요.”허서령은 고개를 돌려 창밖의 멀지 않은 가로등을 바라보았다.지강산은 안전벨트를 매며 그녀를 돌아보았다.“저녁도 안 먹었는데 어떻게 안 배고파?”허서령은 완강하게 말했다.“집에 데려다줘요. 아니면 저 혼자 택시 타고 갈 거예요.”지강산은 더 말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켜 지구대를 떠났다.가는 내내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 지강산은 허서령의 뒤를 따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집 앞까지 갔다.문 앞에 선 허서령은 몸을 돌려 그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받아 들고 꽤나 정중하고 거리감 있는 어투로 말했다.“오늘 밤 고마웠어요. 집에 다 왔으니 이제 가요.”지강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깊이 바라보았다.그녀의 차갑고, 거리를 두는 태도는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집에 먹을 건 있어?”지강산은 여전히 그녀가 저녁을 걸러 위가 아플까 걱정했다.“있어요.”허서령이 대답했다.“들어가. 내가 해 줄게.”지강산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허서령은 손을 들어 막으며 차갑게 거절했다.“필요 없어요. 제가 해 먹을 수 있으니까 가요.”철저히 선을 긋는 그녀의 냉정함에 지강산은 가슴이 아팠다.“잘 자.”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허서령을 깊이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 아래에는 강인하고 억눌린 자제력이 숨어 있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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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깊은 밤, 사방은 고요했다.허서령은 다 먹지 못한 야식을 포장해 냉장고에 넣고 이를 닦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수면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던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어 지강산과의 대화창을 열었다.갑자기 대화창에 움직이는 노란색 점이 나타났다.그녀는 가슴이 살짝 조여들었다.잠시 후 노란 점이 사라졌지만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몇 초가 지나자 다시 움직이는 노란색 점이 나타났다.몇 번이나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지강산은 끝내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잠시 기다리던 허서령은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협탁 위에 내려놓은 뒤 옆으로 누워 눈물에 젖은 눈을 감았다.지강산도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시지 한 통 보낼 핑계와 이유조차 찾지 못했다.그날 밤 지강산에게서는 끝내 카톡이 오지 않았고, 그녀는 눈물 속에서 잠이 들었다.경찰에 신고한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심리적인 영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 며칠 동안 허서령은 자신을 미행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듯 느꼈다.그러다 일주일 뒤, 밤늦게 퇴근해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문틈 아래로 흰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그녀가 종이를 주워 보니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때가 오면 반드시 갚게 될 것이다.]허서령은 깜짝 놀라 서둘러 현관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CCTV를 확인했다.검은 옷에 모자와 마스크까지 쓴 작은 체구의 사람이 다른 입주민을 몰래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온 뒤 그녀의 집 앞에 종이를 밀어 넣고 떠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그녀는 다시 경찰서에 가서 신고했다. 하지만 쪽지에는 구체적인 협박 내용이 없었고, CCTV에서도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체형만 보면 상대는 여성일 가능성이 컸다.제산시에서 허서령이 떠올릴 수 있는 여자는 소유하와 도은정뿐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유치하고 생각 없는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허서령은 지강산과 다시 사귀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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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반드시 와야 해.”소준혁은 반박할 수 없는 강압적인 어조로 말했다.“오면 재계 사람들을 더 많이 소개해 줄게. 네 경력에도 득이 되면 됐지 손해 볼 건 없어.”직장에서는 활용할 인맥이 있는 편이 혼자 바닥부터 천천히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허서령도 가식적으로 겸손한 척하거나 고고한 체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게 인맥과 자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시간 맞춰 갈게요.”소준혁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귀한 손님을 정중히 모시지.”허서령은 통화를 끝내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들어오세요.”그녀가 고개를 들자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남자는 네모난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정교한 보석함이 놓여 있었다.“안녕하세요. 허서령 변호사님, 저는 소 대표님의 개인 비서예요. 대표님께서 만찬 때 입으실 드레스와 보석을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허서령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비서가 두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저도 입을 옷이 있어요. 번거롭겠지만 다시 가져가 주세요.”“죄송합니다. 허 변호사님, 소 대표님께서 반드시 받으셔야 하며 내일 만찬에도 이것을 착용하고 오시라고 하셨습니다.”비서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뒤 말을 전하고 사무실을 나갔다.소준혁의 구애는 너무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어서 그녀를 지치게 했다. 대부분 부자가 가진 공통된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정교한 보석함을 들어 열어 보았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안에는 눈부신 다이아몬드 다섯 점, 한 세트가 들어 있었다.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 팔찌, 머리핀이었다.큐빅 지르코니아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진짜 다이아몬드라면 최소 수억은 할 물건이었다.그녀는 서둘러 보석함을 닫고 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안에는 값비싼 검은색 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허서령은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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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허서령의 미소가 어색해졌다. 그녀는 몸을 돌려 지나가던 직원에게 가방을 건네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이 가방을 소 대표님 방에 가져다주세요. 부탁드릴게요.”직원은 가방을 받아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소준혁은 입을 다문 채 숨을 내쉬었다. 불만은 있었지만 여전히 허서령의 아름다움에 눈을 빼앗겼다.그의 미소가 부드러워졌다.“괜찮아. 네가 와 준 것만으로도 됐어.”이어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려 했다.허서령의 몸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살짝 굳었다. 하지만 곧바로 반응해 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틀어 반걸음 비켜서, 두 사람 사이에 예의상 거리를 만들었다.그녀는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선물 가져왔어요. 마음에 들면 좋겠네요.”“내 선물이야?”소준혁은 눈빛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 시선이 멀지 않은 곳의 지강산에게 스쳤다. 먹물처럼 어두워진 그의 얼굴을 의미심장하게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숙여 포장을 뜯었다.“네가 주는 거라면 뭐든 좋아.”상자를 열어 보니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펜 한 자루였다. 소준혁의 미소가 잠시 굳었지만 몇 초 만에 다시 기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펜을 정장 주머니에 꽂고 가볍게 두드렸다.“정말 마음에 들어.”허서령은 입술을 다문 채 옅게 웃었다.소준혁은 손을 그녀의 등에 가볍게 대고 앞으로 이끌었다.“서령아, 사람들한테 소개해 줄게.”그 뒤로 이어진 시간은 허서령에게 공개 처형이나 다름없었다.소준혁은 막 손에 넣은 자랑스러운 전리품을 전시하듯 그녀를 데리고 친구들 사이를 누볐다.“여러분께 소개할게요. 이분은 허서령 변호사예요. 우리 회사 분쟁 사건을 맡아 주는 협력 변호사이자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예요. 재능과 미모를 모두 갖춘 분이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사람들은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며 허서령과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다.이어진 대화에서, 소준혁은 두 사람의 업무 관계와 사적인 관계 사이의 경계를 일부러 흐렸다.그의 손은 줄곧 그녀의 팔이나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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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허서령.”지강산이 다정한 목소리로 약간 놀란 듯 그녀를 불렀다.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허서령 곁에 다가와 손으로 가느다란 허리를 감싼 뒤 가볍게 품으로 끌어당겼다. 일부러 소준혁 옆에서 그녀를 떼어 낸 것이다.그 행동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허서령도 멍해졌고 소준혁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너도 왔어?”지강산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여 발목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발목은 좀 나아졌어?”허서령은 영문도 모른 채 다급히 그의 손을 밀어내며 속으로 생각했다.‘발목이 나아졌냐니, 무슨 소리지?’지강산은 남몰래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바짝 끌어안아 빠져나갈 수 없게 한 뒤 어리둥절한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미소로 설명했다.“제 전 여자 친구예요. 며칠 전 집에서 샤워하다가 미끄러져 발목을 삐었거든요.”소준혁의 친구라면 거의 모두가 지강산을 알고 있었다.그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갑자기 민망해졌다. 이토록 막장 같은 관계 앞에서 더는 허서령에게 소준혁을 받아 주라고 재촉할 수도 없었다.소준혁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는 옆에 있던 술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허서령은 어이가 없었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잔꾀를 부릴 줄은 몰랐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그녀는 서둘러 지강산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을 굳이 폭로하지는 않았다.“이제 괜찮아요.”지강산의 등장은 그녀를 곤란한 상황에서 구해 준 셈이었다. 다만 한 난처한 상황에서 다른 난처한 상황으로 뛰어든 것뿐이었다.그때 지강산과 아는 친구 하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강산아, 첫사랑과 헤어진 지 오래됐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허 변호사님일 줄은 몰랐네.”지강산은 부드러운 미소로 허서령을 뜨겁게 바라보았다.“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 연애하다 보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일도 흔하잖아. 마지막으로 헤어진 게 아마 1년 전이었지? 그렇지, 허서령?”허서령은 뻣뻣한 미소를 유지한 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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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서령이는 석류 주스 안 좋아해.”지강산이 태연하게 말했다.“망고 주스로 바꿔 줘.”소준혁은 표정이 어두워진 채 막 집어 든 주스를 다시 내려놓았다.“강산아, 우리 따로 가서 얘기 좀 하자.”“좋아.”지강산은 몸을 돌려 연회장의 뒷문으로 향했고 소준혁이 그 뒤를 따랐다.정원 밖에는 흐릿한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빽빽한 관목 사이의 오솔길을 지나 한참 돌아간 뒤 차가운 흰빛이 비치는 정자에 도착했다.정원 가득 울리는 벌레 소리가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이어졌다.얼굴을 스치는 산들바람에는 정원의 은은한 꽃향기가 섞여 있었다.지강산은 난간 옆에 서서 하늘 끝의 희미한 별을 올려다보았다. 소준혁은 정자의 둥근 기둥에 몸을 기대고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담배 한 개비를 꺼내 지강산에게 내밀었지만 지강산은 받지 않았다.“끊은 지 오래됐어.”소준혁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고개를 숙여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고개를 들어 하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강산아, 너희가 대학 시절 내내 사귀었고 전에 한 번 다시 만난 적도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나도 그 사람한테 진심이야. 공정하게 경쟁하자.”지강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있는 듯 없는 듯 걸렸다.“공정한 경쟁?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게 성립하지 않아.”“왜?”소준혁이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나와 그 사람은 한 몸이나 다름없어. 너는 끼어든 제삼자가 될 뿐이야.”소준혁은 코웃음을 치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너희는 이미 헤어졌어.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앞으로는 내가 그 사람에게 더 잘 맞을 거야.”“넌 매일 꽃을 보낼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오 년 넘게 비바람을 함께 견뎠어. 가장 초라하고 약한 모습도 봤고, 가장 망가진 모습까지 사랑해. 나와 허서령은 사랑했던 사이가 아니라 지금도 사랑하는 사이야. 한 번도 멈춘 적 없어.”“내가 알기로 그 사람 아버지가 감옥에 있어.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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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우리 오빠?”소유하는 잠시 멍해졌다가 곧 비웃음을 띠었다.“하긴, 오빠가 예전부터 널 많이 좋아했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첫사랑의 환상으로 남는 법이잖아. 지난 몇 년 동안 만난 여자들도 다 너와 조금씩 닮았더라.”허서령은 대꾸하지 않았다.소유하는 잔 속의 레드와인을 흔들며 혼자 말을 이어 갔다.“그런데 허서령, 남자 갖고 노는 재주는 정말 대단하네. 처음에는 지강산, 그다음에는 윤성, 이제는 우리 오빠까지. 남자란 남자는 다 한 번씩 만나 보고 제일 돈 많은 사람을 고르려는 거야?”목소리를 들은 손님들이 모두 두 사람 쪽을 바라보았다.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한 허서령에게 이런 모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유하만 한없이 유치해 보였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연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췄다.“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네 오빠에게 관심 없어. 그저 네 오빠의 대리 변호사일 뿐이야.”“너...”소유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오빠를 싫다고 해?”“너 때문이잖아.”허서령은 정중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지만 한마디 한마디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소준혁에게 너 같은 여동생이 있다는 건 큰 감점이야. 아무리 돈이 많고 훌륭해도 난 관심 없어.”“허서령,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오만하게 굴어?”소유하는 분노에 차서 와인잔을 들고 그녀에게 끼얹으려 했다.하지만 잔을 들어 올리고 와인을 뿌리기 전, 커다란 손 하나가 그녀의 손목을 세게 내리쳤다.‘짝’ 소리와 함께 소유하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고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산산이 조각나고 레드와인이 사방에 쏟아졌다.소유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지강산이 어두운 표정으로 위험할 만큼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곁에 서 있었다.그가 내리친 손목이 욱신거릴 정도로 아팠다. 소유하는 억울한 표정으로 손목을 감싸 쥐다가 다가오는 오빠를 발견했다.지강산이 자신을 감싸 주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 소유하는 소준혁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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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소준혁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미소도 굳었다.지강산의 눈에 득의만면한 빛이 무심코 스쳤다. 그는 몸을 돌려 허서령 곁으로 갔다. “가자.”허서령은 소준혁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지강산을 따라 떠났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준혁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문 채 짜증스럽게 욕설 한마디를 내뱉었다.소유하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오빠, 나는...”“입 다물어.”소준혁은 몸을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화가 나 가슴이 들썩이더니 목소리를 낮춰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소유하, 똑똑히 기억해. 허서령을 싫어해도 좋고 지강산과 허서령이 다시 만나는 걸 막아도 좋아. 하지만 내가 허서령을 쫓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하면 네 돈줄을 전부 끊을 거야. 그때는 나를 오빠라고 부르지도 마.”소유하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으로는 억울했지만 돈이 끊길 수 있다는 압박에 즉시 굴복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잘못했어. 꼭 오빠가 허서령을 얻도록 도울게.”“알았으면 됐어.소준혁은 말을 던지고 화가 난 채 다른 손님들에게 걸어갔다....깊은 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불을 밝혔다. 차는 붉게 이어진 차량 행렬 속으로 들어갔고 차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술을 마신 지강산은 대리기사를 불렀다.허서령은 그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은은한 술 냄새와 남자에게서 나는 기분 좋은 향이 섞여 차 안을 가득 채우며 희미하게 그녀의 숨결 속으로 스며들었다.그녀는 차창에 기대어 고개를 돌리고 밖의 도시 야경을 바라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지강산이 먼저 다정한 목소리로 답답한 침묵을 깼다.“허서령, 오늘 정말 예쁘다.”그의 시선은 거리낌 없이 그녀의 몸에 머물렀다. 시선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감탄이 담겨 있었다.허서령의 심장이 한 박자 놓치고 뺨이 살짝 떨렸다. 다행히 어두운 조명이 순식간에 스친 당황을 가려 주었다.“고마워요.”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아주 작게 대답했다.그는 눈빛이 뜨거웠지만 여전히 신사적인 거리를 지켰다. 억눌린 애매한 기류가 공기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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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업은 업으로 갚는다.]쪽지의 문장은 의미가 모호했다.지강산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허서령을 바라보았다.“전에도 이런 게 있었어?”“네.”허서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슬리퍼를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가, 다른 쪽지를 꺼내 지강산에게 건넸다.지강산은 슬리퍼로 갈아 신고 뒤따라 들어오다가 쪽지를 받아 보며 물었다.“신고했어?”“신고했어요. CCTV로 보면 여자 같아요.”허서령은 지친 몸으로 소파에 앉았다.“얼굴은 안 보이고, 쪽지 내용도 구체적인 협박이라고 볼 수 없대요.”“이사해, 허서령.”지강산은 그녀 곁에 앉아 두 장의 쪽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나랑 살자.”허서령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입술을 깨물고 그를 노려보며 몇 초간 침묵한 뒤 물었다.“화장실 빌리러 온 거 아니었어요?”지강산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잊었네.”‘정말 급했다면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허서령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쿠션을 안고 소파에 기대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잠시 후 지강산이 손을 깨끗이 씻고 나왔다. 그는 소파 쪽으로 걸어오며 정장 재킷을 벗었다.허서령이 의아하게 물었다.“옷은 왜 벗어요? 안 갈 거예요?”“너무 늦었어. 내일 갈게.”지강산은 재킷을 소파 위에 놓고 그녀 곁에 앉았다.너무 가까이 앉자 허서령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막 엉덩이를 들었는데 치마가 당겨져 다시 앉게 되었다. 내려다보니 지강산이 그녀의 치맛자락 위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쿠션을 내려놓고 치마를 빼낸 뒤 옆으로 옮겨 소파 끝에 앉았다.“내가 무슨 전염병이라도 걸렸어?”지강산은 따뜻한 눈에 억울함을 조금 담은 채 난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렇게 멀리 피해야 해?”허서령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작게 투덜거렸다.“무슨 생각 하는지 스스로 잘 알잖아요.”지강산은 씁쓸하게 웃으며 뒤로 기대 소파 등받이에 뒤통수를 댄 후 고개를 돌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알지. 그래도 내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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