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511 - Chapter 520

688 Chapters

제511화

“네.”허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만에 다시 만나니 오히려 어색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은 채 작게 물었다.“제가 울심시에 간 뒤 휴가를 취소하고 기지로 돌아간 거예요?”지강산이 다정한 눈빛으로 가볍게 대답했다.“응. 애초에 너 때문에 낸 휴가였으니까. 네가 없는데 쉴 이유가 없잖아.”“그랬군요.”허서령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동안 자신이 오해했던 것 같았다.기지에 있었다면 분명 바빴을 테고,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쓰거나 행방을 알려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날 밤 ‘그냥 있어’라고 답한 것도 보안 때문에 자세히 말하지 못해 생긴 오해였을지 모른다.생각을 이어 가던 허서령은 고개를 숙이고 슬며시 웃었다. 지강산이 해명하기도 전에 스스로 온갖 이유를 만들어 마음을 달래고 있는 자신이 조금 이상했다.어째서인지 마음이 저절로 그의 편을 들었다.“도와줄 거 있어?”지강산이 물었다.허서령은 고개를 저었다.“없어요. 다 정리했어요.”지강산이 바닥에 쌓인 상자를 가리켰다.“저건?”허서령은 선물 더미를 보고 다시 그를 바라봤다.“아주버님 부부와 부모님, 은영이랑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이에요.”지강산은 잠시 기다렸다. 더 할 말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미간을 찌푸렸다.“내 건?”“저만 돌아오면 된다고 했잖아요.”허서령이 일부러 장난을 쳤다.지강산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다른 사람 건 다 있는데 내 것만 없는 거야?”“강산 씨가 뭘 좋아하는지도,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니까요.”“아무거나 괜찮아. 네가 사 준 거라면 난 뭐든...”지강산은 말을 하다 말고 답답한 듯 눈을 감은 채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을 가라앉힌 뒤, 그는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됐어. 네가 돌아온 거로 충분해.”허서령은 빙긋 웃으며 선물 더미에서 상자 두 개를 집어 들고 돌아왔다.“장난이에요. 강산 씨 선물도 샀어요. 둘 다 강산 씨 거예요.”실망했던 지강산의 표정이 금세 환해지며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동차 열쇠를 주머니에
Read more

제512화

기억을 잃은 뒤에는 손을 잡거나 안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졌는데, 지금은 부끄러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지강산의 귓바퀴도 새빨개졌다. 그는 허서령의 붉어진 얼굴과 당황한 모습이 몹시 귀여워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달아오른 마음을 가라앉혔다.잠시 뒤 침착해진 지강산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어차피 산 거니까 줘. 난 정말 마음에 들어.”“좋아하면 안 돼요.”허서령은 긴장한 채 고개를 저었다. 얼굴은 더욱 붉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이건 둘 수 없어요.”“친구가 정성껏 준비한 건데 버리면 아깝잖아요.”지강산도 진지한 얼굴로 말했지만 입가의 웃음은 감추지 못했다.“나중에는 쓸 일이 있을 거야.”허서령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얼른 슬립을 상자에 쑤셔 넣고 뚜껑을 닫은 뒤 품에 안고 옷장 앞으로 달려가 숨겼다. 문을 닫고 등을 기대선 그녀의 눈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이 선물은 취소예요. 제가 직접 산 다른 선물이나 열어 봐요.”지강산은 웃으며 다른 상자를 천천히 열었다.안에는 작은 우주비행사 로봇이 들어 있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꺼내 이리저리 살펴본 뒤 탁자 위에 놓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작은 로봇이 갑자기 말했다.“주인님, 안녕하세요. 저는 에어봇이예요. 주인님과 대화하며 함께 우주를 탐험하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로봇입니다.”지강산이 환하게 웃었다. 깊은 눈에 따뜻한 빛이 어렸다. 그는 허서령을 한 번 본 뒤 로봇에게 물었다.“에어봇, 넌 내가 좋아?”“주인님은 멋지고 잘생겨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분이에요. 에어봇은 주인님을 아주 좋아합니다.”지강산이 다시 물었다.“그럼 허서령도 나를 좋아해?”그에게 다가가던 허서령은 그 질문을 듣고 멈칫했다.로봇 에어봇이 되물었다.“허서령이 누구인가요?”“내 약혼녀. 널 사서 선물해 준 네 여자 주인이지.”에어봇가 곧바로 대답했다.“봄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촛불은 재가 될 때까지 눈물을 흘립니다. 허서령은 주인님을 아주 깊이 사랑하며,
Read more

제513화

지강산은 눈에 뜨거운 물결을 담은 채 봄바람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네가 고른 선물인데 왜 그렇게 구박해?”“저런 엉뚱한 말을 할 줄 몰랐어요.”허서령은 뜨거운 뺨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서서 바쁜 시늉을 했다. 정리할 것도 없는데 이불을 당기고 침대 옆 탁자의 책을 다시 맞췄다. 가슴속의 뜨거운 기운 때문에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어색하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곧 커다란 두 손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허서령의 등이 굳었다.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한 채 단단한 가슴에 닿았다. 따뜻한 손은 그녀의 손까지 부드럽게 감싸며 허리에 둘렀고, 그녀를 품 안에 단단히 안았다.지강산은 고개를 낮춰 얼굴을 그녀의 뺨 옆에 붙였다.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맴돌았다.심장에 모터라도 달린 듯 너무 빠르게 뛰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머릿속은 완전히 하얘졌다.귓가에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렸다.“서령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허서령은 쑥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여기가 제 집이라고 했잖아요.”“그래. 여기가 네 집이야.”그가 안도한 듯 웃었다. 입술이 목덜미에 닿을 듯 가까웠다. 간지러운 숨결이 피부를 스치며 마음조차 뒤흔들었다.손은 따뜻했고 팔은 단단하고 힘이 넘쳐, 그녀의 몸 전체를 가슴에 품은 듯했다.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흘러들자 갑자기 그와 입을 맞추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하지만 남자는 지나치게 절제하고 있었다.허서령도 말하거나 먼저 다가갈 용기는 없었다. 몰래 입술을 축이고 목을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일 끝난 거예요?”“아니. 잠깐 한가한 틈에 널 보러 온 거야. 조금 있다가 다시 가야 해.”“시험 기지에 있어요?”“응.”“비밀 시설인 거죠?”“시설 자체가 비밀인 건 아니고, 실험 내용이 보안 사항이야.”“언제쯤 일이 끝나요?”“몰라. 문제만 해결되면 덜 바빠질 거야.”“밤에는 집에 안 와요?”“여기서 두 시간 거리라 오가는 데 네 시간이 걸려.”지강
Read more

제514화

“고마워요.”허서령은 옷을 돌려주고 주위를 둘러봤다.“여기가 어디예요?”“기지 근처 숙소. 위에 허락을 받아서 너도 머물 수 있어.”“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거예요?”“아픈 널 집에 혼자 두면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지강산은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 주었다.허서령은 정신이 멍한 채 차에서 내렸다. 밤공기는 뼛속까지 차가웠고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감기까지 겹쳐 뼈가 시릴 만큼 추웠다.지강산은 다시 자신의 외투를 그녀에게 입혔다. 커다란 옷이 몸 전체를 감싸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는 지퍼를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기지에서는 집까지 두 시간이 걸리지만 여기는 차로 10분이면 와. 나도 이 숙소에서 쉬니까 밤에 널 돌볼 수 있고.”“평범한 감기일 뿐이에요.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허서령은 그가 이렇게 바쁜데 자신까지 돌보게 하는 것이 미안했다.“네가 집에 있으면 더 걱정돼.”지강산은 차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 그녀의 어깨를 감싼 채 불이 켜진 3층 건물로 향했다.“벌써 어두워졌네요. 몇 시예요?”“저녁 7시. 1층이 식당이야. 먼저 저녁을 먹고 약 먹은 뒤 자. 나는 기지에 다녀올게. 자러 돌아올 거야.”이미 온 이상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허서령은 더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일하는 곳도 궁금했지만 밤이라 주변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밝은 식당에 들어가니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 명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지강산이 여자를 데려오자 사람들은 호기심과 놀라움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봤다.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농담했다.“지 엔지니어, 집에 갔다 오더니 가족까지 데려왔네?”지강산은 허서령의 어깨를 감싸고 지나가다 그들 앞에 멈췄다.“제 여자 친구가 아픈데 집에서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요.”그는 양쪽을 서로 소개했다.“허서령이예요. 이쪽은 진 엔지니어, 하 엔지니어, 우 엔지니어고.”허서령이 세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허서령 씨.”“저희는 밥부터 먹
Read more

제515화

지강산이 식판을 들고 돌아오다 백시욱과 심채린을 발견했다.“두 사람 아직 밥 안 먹었어?”심채린은 지강산을 보며 웃었다.“기지에서 막 돌아와서 이제 먹으려고요. 이따 같이 가요. 데이터가 계속 잘못 나와서 머리가 아프네요.”“그래.”지강산은 두 사람분의 음식을 테이블에 놓고 허서령의 맞은편에 앉았다.“오늘 구운 닭이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생선 요리도 있고.”“고마워요.”허서령이 정중히 인사했다.지강산은 국을 그녀의 앞으로 밀어줬다.“국부터 마셔. 생선 가시는 내가 발라 줄게.”허서령은 조금 민망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시는 저도 알아서 뱉을 수 있어요.”지강산은 기특하다는 듯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고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살을 조심스럽게 발라 가시를 하나하나 골라냈다.심채린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런 지강산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 웃음도 이미 굳어 있었다.“강산 씨는 여자 친구를 정말 아끼네요. 생선 가시까지 발라 주고.”평범한 동료일 뿐이라 지강산은 대꾸하지 않았다.지강산이 허서령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는 백시욱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자. 두 사람 식사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우리도 밥 먹어.”심채린은 백시욱과 함께 배식대로 향했다. 멀리 가서도 자꾸 지강산과 허서령을 돌아봤다.허서령이 국을 마시다 눈을 들자 다시 심채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심채린은 당황한 듯 얼른 고개를 돌렸다.그 눈빛을 확인한 허서령은 지강산을 바라보며 조금 불안해졌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걱정할 일은 없었다.그녀가 아파 보이자 지강산은 출근하면서도 곁에 데려왔고, 식사할 때는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었다.생선을 먹을 때는 가시까지 발라 주며 거의 딸을 돌보듯 지극정성으로 아꼈다.기억을 잃기 전에도 지강산은 이토록 잘해 줬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자신은 그를 잊는 수술을 받고 싶어 하지 않았고, 결혼할 수 없어도 평생 함께하길 바랐을 것이다.지강산은 본래 좋은 남자였
Read more

제516화

깊은 밤, 방에는 난방이 돌아가 이불 속이 따뜻했다. 감기 때문에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으며 근육도 아팠던 허서령은 몽롱하게 잠들었다.누군가 이불을 살짝 들고 차가운 기운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희미하게 들었다.곧 등이 따뜻하고 단단한 가슴에 닿았고, 남자의 따뜻한 손바닥이 이마에 살며시 올라왔다.허서령은 정신이 흐릿해 눈을 뜨지 못했다. 귓가에 지강산의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드디어 열이 내렸네.”목소리의 주인은 틀림없이 지강산이었다.반쯤 잠든 그녀가 잠꼬대처럼 물었다.“강산 씨, 몇 시예요?”그는 목덜미 가까이에서 뜨거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새벽 4시. 자.”“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안 피곤해요?”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그녀는 그의 품에 꼭 안긴 채 점점 따뜻해지는 몸을 느꼈다.“안 피곤해.”“어떻게 안 피곤해요?”허서령은 천천히 돌아누워 그의 가슴을 마주한 채 손을 들어 뺨을 만지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분명 많이 힘들었을 텐데 강산 씨도 얼른 자요.”지강산은 멈칫했다. 잔잔한 마음에 작은 돌이 떨어진 듯 물결이 겹겹이 번졌다.반쯤 잠든 상태에서도 그녀는 너무나 쉽게 그의 가장 여린 곳을 건드렸다. 지강산은 그녀의 손등을 덮어 잡고, 뺨에 닿은 손을 입술로 가져가 눈을 감은 채 부드러운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그 뒤 손을 잡아 이불 속으로 끌어당기고 허리를 감싸 품 안에 꼭 붙였다.새벽의 밤은 유난히 고요했고 캄캄한 방 안은 무척 따뜻했다.허서령은 그의 품에서 깊이 잠들었다.하늘 가장자리가 서서히 밝아지고 땅에는 엷은 안개가 퍼졌다.잠결에 허서령은 자신을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천천히 정신이 들었지만 눈을 뜨기 전부터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몸에 닿아 불편했다.의식이 차츰 또렷해지던 순간, 남자가 그녀에게 몸을 비볐다.허서령은 눈을 번쩍 떴다. 온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못했고 심장은 천둥처럼 뛰었다. 숨이 흐트러지고 두 손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더 움직일까 봐 두려웠다.
Read more

제517화

거울 앞에 선 허서령은 뜨거운 얼굴을 감쌌다. 거울 속 자신을 보니 심장이 자꾸 박자를 놓쳤다.지강산을 좋아하는 건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가 묶어 준 머리도 꽤 가지런하고 예뻤다. 그에게 딸이 생긴다면 딸도 아주 잘 돌볼 것 같았다.갑자기 아이를 낳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얼굴은 더욱 뜨거워졌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로 정신을 깨웠다. 머릿속에 떠오른 엉뚱한 생각까지 씻어 내고 싶었다.깨끗이 씻은 두 사람은 숙소를 나와 1층 식당으로 갔다.낮이 되자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앞뒤로 마을 하나 없는 황량한 산지였다.식당에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졌다. 모두 우주항공 기관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가족인 듯 평상복 차림인 사람도 몇 명 있었고, 서너 살쯤 된 아이도 밥을 먹고 있었다.이곳은 정말 가족이 찾아와도 되는 곳이었다.식당으로 가는 동안 사람들이 계속 지강산에게 인사했다. 그도 예의 바르게 허서령을 동료들에게 소개했다.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동료들은 모두 예의가 바르고 품위가 있었다.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 부담스럽게 굴지 않았다.지강산은 허서령과 함께 배식대에서 음식을 골랐다. 입맛이 없었던 그녀는 좋아하는 반찬 두 가지만 대충 골라 빈자리에 앉았다. 지강산은 아직 음식을 담고 있었다.그때 곁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기 앉아도 될까요?”허서령이 고개를 들자 심채린이 식판을 들고 웃으며 서 있었다.이미 이렇게 물었는데 거절하면 너무 냉정하고 무정해 보일 것 같았다. 허서령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채린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이때 백시욱도 식판을 들고 왔다. 그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두 사람의 맞은편, 심채린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아마 절친의 전남편이라서인지 허서령은 백시욱에게 조금의 호감도 없었다.백시욱은 식판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청첩장을 꺼내 심채린과 허서령에게 내밀었다.“저 결혼해요. 다음 달에 식을 올리니까 꼭 와요.”“축하
Read more

제518화

허서령의 목소리는 작지 않아 근처 동료들에게도 들렸다. 가장 또렷이 들은 사람은 심채린이었다. 날마다 마주치는 동료의 이런 이야기를 듣자 궁금하면서도 민망한 표정이었다.백시욱은 표정이 어둡게 굳은 채 불쾌하게 말했다.“허서령 씨,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심했나요?”허서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깜박였다.“생각나는 대로 말했는데 듣기 싫었다면 미안해요. 그럼 카톡 친구라도 추가하죠.”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QR 코드를 보여 줬다.백시욱은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예전에 이미 추가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삭제하지 않았는데요.”허서령은 휴대전화를 거두고 목록을 살폈다.“어느 계정이에요?”“이름에 ‘욱’ 한 글자만 있어요. 그런데 제 카톡은 왜 찾죠?”“나중에 또 이혼하면 저한테 소송을 맡기세요.”허서령은 무심한 말투로 그의 계정을 찾아 화면을 내밀었다.“이거예요? 메모해 둘게요. 다음에는 변호사 비용을 지인 할인으로 해 드릴 테니까.”지강산은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거침없고 상대 사정은 전혀 봐주지 않는 그녀가 귀여워 다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심채린은 놀라 허서령을 바라봤다. 온화하고 달콤한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이렇게 강하고 독한 말을 할 줄은 몰랐다.백시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파랗게 변했다. 주먹을 꽉 쥐자 이마의 핏줄이 솟았고, 이를 악물어 턱 근육까지 떨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이혼할 거라고 저주하다니.분위기가 얼어붙자 지강산이 기름을 부었다. 그는 청첩장을 백시욱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네 결혼식에는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백시욱은 목을 가다듬고 어색하게 웃었다.“사람은 못 와도 축의금은 보내면 되지.”“물론 보내야지.”지강산이 예의상 대답했다.심채린이 농담했다.“시욱 씨는 강산 씨에게서 축의금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강산 씨는 돌려받을 기회가 없었네요. 완전히 손해잖아요.”그제야 백시욱은 조금 마
Read more

제519화

그 말이 떨어지자 주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지강산은 밥을 먹던 손을 멈췄다. 미간을 찌푸린 눈에는 알아채기 어려운 당황과 놀라움이 번졌고 얼굴은 곧 어두워졌다.심채린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봤다. 하지만 지강산의 눈에는 허서령밖에 없었다.백시욱은 그녀가 허풍을 떠는 거로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코웃음을 쳤다.식사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밥을 먹은 뒤 허서령은 지강산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계단을 오를 때 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걸었다. 허서령은 몇 걸음 가다 뒤를 돌아봤다. 지강산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침울한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허서령은 계단이 꺾이는 층계참에서 기다렸다. 넋이 나간 듯 걷던 지강산이 그대로 그녀와 부딪쳤다. 그녀가 벽으로 밀려나자 정신을 차린 그는 얼른 손을 빼 허리를 감싸 품으로 끌어당겼다.“괜찮아?”“네.”허서령은 두어 걸음 비틀거리다 그의 어두운 얼굴을 올려다봤다.“무슨 생각을 하길래 앞도 못 봐요?”지강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위로 걸었다.“백시욱에게 한 말, 진심이야?”“어떤 말이요?”“서른에 결혼하고 서른 하나에 아이를 낳겠다는 말.”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당연히 진심이죠.”허서령의 태도는 확고했고 자신도 있었다.감기가 나으면 바로 로펌에 출근해 아버지의 재심 신청서를 다시 제출할 생각이었다.지태일은 원래도 일이 많고 제산시에 있어 울심시 사건을 조사하기가 어려웠다.재심만 시작되면 곧바로 울심시 경찰에게 사건 재수사를 신청할 것이다. 지금 확보한 증거에는 현장에 다른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담겨 있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할 수 있었다.진범까지 찾아낸다면 아버지가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현재 조사 속도라면 진범을 밝혀낼 자신이 있었다.유일한 어려움은 재심 신청이 검찰에 받아들여지고 검사의 서명을 받는 일이었다.지강산의 큰아버지가 아직 울심
Read more

제520화

숙소로 돌아온 지강산은 약과 따뜻한 물을 챙겨 그녀가 먹는 걸 지켜봤다.“좀 잘래?”허서령은 고개를 저었다.“너무 많이 자서 지금은 잠이 안 와요.”“책 몇 권 가져다줄게. 읽다가 졸리면 쉬어.”그는 서랍에서 고전 소설 두 권을 꺼내 건넸다.허서령은 책을 받아 들고 의아하게 바라봤다.“기지로 갈 거예요?”지강산이 눈을 내리깔았다.“응.”“몇 시에 돌아와요?”“저녁 먹을 때.”“알았어요.”허서령은 두꺼운 책 두 권을 가슴에 꼭 안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가 떠나기도 전에 벌써 아쉽고 그리웠다.저녁까지는 너무 오래 남은 것 같았다.지강산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허서령은 그 시선에 어쩔 줄 몰라 심장이 빨리 뛰었다.얼굴이 달아오른 그녀는 부끄러워 시선을 피하며, 왜 그렇게 바라보는지 몰라 민망했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봤다.고요한 방 안에서 뜨거운 기류가 점점 짙어졌다.허서령은 지강산이 저렇게 깊은 눈빛으로 보는 이유가 입을 맞추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자신은 감기에 걸려 그에게 옮길 수 있으니 입을 맞추지 않는 편이 나았다.그래도 그가 건강하고 면역력이 좋다면 굳이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을 잃은 뒤에는 입을 맞춰 본 적이 없어 그와 키스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촉촉하고 옅은 분홍빛의 얇은 입술은 입 맞추기 좋아 보였다...“갈게.”지강산은 갑자기 그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어?”허서령의 들뜬 상상은 순식간에 끊겼다. 기대도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허서령은 자신이 너무 민망해져 책을 안고 침대로 돌아가 엎드렸다. 발가락으로 바닥이라도 파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지강산은 입을 맞출 생각조차 없었는데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걸까?’그녀는 머릿속의 야릇한 생각을 털어 내고 지강산이 준 책을 펼쳤다.한 시간쯤 읽자 약 기운 때문에 졸음이 쏟아져 결국 다시
Read more
PREV
1
...
5051525354
...
6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