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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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다행히 이 남자는 이미 자신의 남자 친구였다. 따로 다가가거나 고백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자신의 사람이었다.쉽게 얻은 행운처럼 느껴졌다.지강산은 걸어오며 외투를 벗었다.그녀의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외투를 어깨에 둘러 준 뒤였다. 빠르고 능숙한 손길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이렇게 추운데 왜 안에서 기다리지 않았어?”허서령은 부드럽게 웃으며 맑고 촉촉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커다란 외투가 몸을 감싸자 훨씬 따뜻해졌다.옷에는 지강산의 은은한 소나무 향이 남아 있었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향이었다.그녀가 말이 없자 지강산이 이마를 짚었다.“아직 불편해?”허서령은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열도 이제 없네.”지강산은 어깨를 감싸 안고 식당으로 몸을 돌렸다.“저녁 먹고 약 한 번만 더 먹으면 거의 나을 거야.”“원래 별일 아니었어요. 평범한 감기라 한숨 자면 낫는다고 했잖아요.”허서령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여기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괜찮아요.”허서령은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적어도 밥을 먹거나 잠잘 때 그를 볼 수 있으니 강령원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지강산이 말했다.“다 나으면 집에 데려다줄게.”허서령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혼자 강령원에 남아 그와 멀리 떨어지고, 평소에는 얼굴도 보지 못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계속 기지에 있을 수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재심을 신청하고 증거를 모아 진범을 찾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야 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 그와 결혼할 것이다.한참 뒤에야 허서령이 대답했다.“그래요.”두 사람은 함께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밤이 되자 허서령은 약을 먹고 샤워한 뒤 잘 예정이었다.지강산은 여전히 샤워를 못 하게 했다. 따뜻한 물을 가져와 발을 담그게 하고 체온까지 쟀다. 열이 완전히 내린 걸 확인한 뒤에야 기지로 야근을 하러 갔다.지강산이 숙소를 나설 때 허서령은 3층 복도 창가에서 밖을 바라봤다. 심채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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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허서령은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지강산이 앉은 쪽은 조명이 너무 어두워 서류를 읽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탠드를 켜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외투를 걸친 넓은 등은 무거워 보였고, 차갑고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허서령은 그의 등을 조용히 바라봤다. 지강산은 창밖의 달빛만 바라봤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하늘이 밝아졌고, 허서령도 고요 속에서 서서히 잠들었다.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강산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그는 여전히 인내심 있게 옷 입는 일과 세수, 약과 아침까지 모두 챙겨 줬다. 감기가 거의 나았다는 걸 확인한 뒤 정오에 차로 강령원까지 데려다주었다.별다른 당부도 설명도 없이 그는 곧바로 기지로 돌아갔다.집에는 가사 도우미가 그녀와 함께 있었다.허서령은 가라앉은 기분을 추스르고 다음 날 로펌으로 출근했다.모든 사람을 잊었기에 동료들과 다시 인사를 나눴다. 보조 직원 은솔이와 안내 데스크의 예린이는 그녀를 무척 반겼다.상사 하준은 퇴원 뒤 강령원에 찾아와 그녀를 높이 평가하고 아낀다는 뜻을 보인 적이 있었다. 이번에 복귀하자 무척 기뻐했다.다른 동료들의 태도는 예의는 바르지만 담담했다.허서령이 은솔에게 물었다.“내가 예전에 일을 잘 못 했어? 왜 동료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은솔이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허 변호사님은 좋은 분이고 모두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셨어요. 다만 예전에는 말을 잘 하지 않으셨죠. 게다가 변호사 업계에서는 신인이잖아요. 공익 변호사에서 기업 사건 전문 변호사로 바꾸고 제산시에 오자마자 400억짜리 기업 분쟁을 맡았어요. 까다로운 사건을 몇 달 만에 크게 이겨 수억을 벌었고요.”은솔은 신이 나 말을 이었다.“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성화 그룹 화학 공장 오염 사건도 이겨 책임자 여러 명을 감옥에 보내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어요.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은 실력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못마땅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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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제출을 마친 뒤 지태일에게 지강산의 큰아버지 개인 번호를 받아 전화를 걸었다.지준석은 그녀의 전화에 조금 놀랐지만 말투는 나름대로 예의가 있었다.“나한테 무슨 일이냐?”“큰아버님, 아버지 사건 재심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어요. 이번에는 꼭 서명해 주세요. 큰아버님 담당이 아니라면 적어도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다른 검사들도 이 자료와 증거를 보면 재심을 허가할 거라고 믿어요.”지준석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서령아, 사실은...”허서령이 말을 끊었다.“큰아버님, 부탁드릴게요. 제가 곧 조카며느리가 될 사람이란 걸 생각해서라도 제 아버지 사건에 개입하지 마세요. 저를 싫어하고 업신여기며 강산 씨가 저와 결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하지만 이번에도 재심이 안 되면 강산 씨에게 일을 그만두고 사업하라고 할 거예요. 전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과 결혼할 거니까요.”지준석은 다급해졌다.“감히 나를 협박해? 강산이의 꿈은 우주항공 연구야. 로켓 연구를 사랑하고, 그건 집안의 명예를 높이는 위대한 일이야. 어떻게 연애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너와 결혼하라고 할 수 있지? 너무 이기적이지 않으냐?”허서령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그의 정의로운 말을 들으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펜을 느긋하게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예전에도 이렇게 고상한 말로 저를 몰아붙였겠죠? 강산 씨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그 사람의 일을 위해 제 사랑을 기꺼이 포기하게 했을 거예요. 참 잘도 통했겠네요.”지준석이 호통을 쳤다.“기억만 잃었지 정신이 나간 건 아니잖아. 네가 말하는 사랑 때문에 강산이의 앞길을 망치지 마라.”허서령은 코웃음을 쳤다. 고집불통에 계층적 편견까지 깊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더 독하게 나가야 했다. 약점을 잡아 그대로 되돌려 주는 수밖에 없었다.“큰아버님, 저는 기억을 잃어서 지금의 지강산에게 깊은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요. 장단점을 따져 보고 선택했을 뿐이에요. 전국을 뒤져도 지강산보다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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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허서령은 샤워하고 긴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워 카톡을 확인했다. 지강산은 종일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짧은 한마디나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는 데 몇 분도 걸리지 않는다.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다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하더니 이런 태도로 어떻게 그러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시간은 벌써 밤 10시 30분이었다. 이때쯤이면 아직 야근 중일 것이다. 가뜩이나 바쁘고 지친 사람을 더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자신을 달랜 허서령은 휴대전화와 그리운 마음을 함께 내려놓고 불을 끈 후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그렇게 바쁜 날들이 일주일가량 이어졌다.지강산은 여전히 연락하지 않았다.금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백시욱에게서 전화가 왔다.목소리는 몹시 가라앉고 괴로워 보였다. 그는 자조적으로 말했다.“서령 씨, 전 정말 당해도 싸요. 전에 말했던 게 맞았어요. 그때 한 제안은 아직 유효해요?”“어떤 제안이요?”“지인 가격으로 소송을 맡아 준다고 했잖아요.”“무슨 소송인데요?”“윤가온을 고소해 그 여자에게 쓴 돈을 전부 돌려받고 싶어요. 차용증 없이 빌려준 돈까지요.”백시욱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했다.허서령은 전문 변호사라 웬만한 일에는 웃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얼른 휴대전화를 손으로 가린 채 목을 가다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전문적인 태도로 물었다.“혼인 신고는 했어요?”“아직 못 했어요.”“외도한 걸 알아냈고요?”“네.”“맡을 수 있어요. 언제 시간이 되죠? 사무실로 와서 자세히 이야기해요.”“오늘도 시간이 되긴 하지만 벌써 저녁이라 퇴근을 방해하면 미안하잖아요. 내일 아침에 갈게요.”허서령은 멈칫했다.“기지에서 돌아왔어요?”“오늘 막 돌아왔어요. 지강산이 말 안 했어요?”허서령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했다. 지강산에게서는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내일 아침 9시까지 사무실로 오세요.”“알았어요.”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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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휴대전화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잎이 진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깊은 눈과 옅은 미소가 그녀를 향했다.허서령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리움이 이런 감정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마음이 시큰하고 기대와 설렘이 뒤섞였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 사람뿐인데 막상 마주하자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은 후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지강산도 휴대전화를 내렸다.밤이 점점 깊어졌다. 어두운 노란 가로등이 정원을 낭만적인 분위기로 물들였다.허서령은 그가 돌아와 정원을 거닐 시간은 있으면서 왜 가장 먼저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용기를 내 그에게 다가간 허서령은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눈을 올려다보며 옅게 웃었다.“왜 돌아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지강산은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대답했다.“지금 알았으니 됐잖아.”“그건 달라요.”허서령은 조금 불쾌했다.“백시욱에게 강산 씨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어요.”“그 사람이 왜 널 찾았는데?”“소송 때문에요.”“그래.”지강산은 관심 없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한 뒤 입을 다물었다.밤이 두 사람을 감쌌다. 어두운 가로등 아래에서는 서로의 눈빛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허서령은 서운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 물었다.“강산 씨, 저 안아 주지 않을 거예요?”기억을 잃은 뒤 관계를 맺거나 입을 맞춘 적은 없지만 손을 잡고 안긴 적은 있었다. 잠잘 때도 그가 꼭 끌어안았다.두 사람은 충분히 가까운 사이였다.지강산은 씁쓸하게 웃으며 담담히 대답했다.“안아 주지 않을래. 여기 추워. 들어가자.”그는 그 말을 남기고 허서령의 곁을 지나갔다. 손조차 잡지 않았다.허서령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마음도 텅 빈 듯했다. 왜 예전보다 차가워졌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다고 아주 냉정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전처럼 뜨겁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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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지강산은 요리를 잘했다.그가 만든 허서령 고향의 요리가 식탁을 가득 채웠다. 담백하고 맛있었으며 모두 허서령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하얀 조명이 거실 전체를 밝게 비췄다.두 사람은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 평소보다 차가운 분위기였지만 지강산은 여전히 반찬을 놓아 주고, 생선 가시를 발라 주고, 국도 떠 주었다. 이런 세심한 보살핌은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밴 듯했다.식사 뒤 그가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주방을 정리했다.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지강산이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허서령은 마음이 들떴다. 밤이 되자 샤워하고 머리를 감은 뒤 말렸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수줍게 웃었다.그러고는 겉옷을 하나 걸치고 방을 나와 옆방 문을 두드렸다.문 앞에 선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속 설렘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긴장과 기대가 함께 밀려왔다.잠시 뒤 지강산이 문을 열었다. 옅은 회색 실내복 차림이었고 깨끗한 짧은 머리는 아직 반쯤 젖어 있었다. 표정은 담담했다.“무슨 일이야?”허서령은 억지로 웃었지만 마음은 반쯤 식었다.어렵게 용기를 내 찾아왔는데 이렇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니 실망스러웠다.그녀는 조금 긴장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산 씨 방에서 책 한 권 빌리고 싶어서요.”지강산은 문을 잡고 뒤로 물러나 길을 내줬다.“가져가.”허서령은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하게 안으로 들어가 서재 책장 앞에서 잠시 살핀 뒤 고전 소설 한 권을 아무렇게나 뽑은 후 책을 품에 안고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지강산은 여전히 문가에 서서 문을 열어 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허서령은 서운했지만 웃으며 다가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고마워요. 다 보면 돌려줄게요.”“가져. 돌려주지 않아도 돼.”지강산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은 문손잡이에 댔다. 눈빛과 표정이 모두 가라앉아 있었다.허서령은 책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잘생긴 얼굴과 깊은 검은 눈, 옅은 분홍색 입술을 바라봤다.이 방을 나가고 싶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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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허서령은 뺨을 붉힌 채 환하게 웃었다.“네. 잘 자요.”인사를 나눈 그녀는 책을 안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다.자신의 포옹에 지강산이 뜨겁게 응했으니 그동안 혼자 지나치게 생각한 것이었다.지강산이 냉정해진 게 아니라 예의를 지키며 절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허서령은 즐거운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지강산은 방문을 천천히 닫았다.눈빛은 곧바로 어두워졌다. 그는 서재로 걸어가 의자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책상을 바라봤다. 손을 뻗어 우주비행사 로봇을 집어 들고 전원 버튼을 천천히 눌렀다.“주인님, 좋은 밤입니다.”에어봇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지강산은 풀이 죽은 얼굴로 로봇을 바라봤다. 넓은 어깨는 무거운 짐에 짓눌린 듯 축 처져 있었다.한참 뒤 그가 조용히 물었다.“에어봇, 내 여자 친구가 반년 뒤에 나를 떠난대. 우리가 함께할 시간에 다시 끝이 정해진 거야. 일을 그만두고 청혼해야 할까, 아니면 이 관계에서 빠져나와야 할까?”에어봇가 대답했다.“주인님, 남자는 꿈과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여자가 많아요. 이 사람이 떠나면 더 착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 올 겁니다.”지강산은 씁쓸하게 웃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가족과 반려자가 더 중요한 것 아니야?”“가족과 반려자도 중요합니다. 그분은 주인님과 결혼할 의사가 있나요?”지강산은 잠시 망설이다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나에 대한 기억도, 감정도 없어. 아직 헤어지지 않았고 연인 관계이니 책임감 때문에 곁에 있는 거겠지.”“주인님, 확신이 없다면 더더욱 일을 그만두고 청혼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나셔도 됩니다.”“바꾸지 않아.”지강산은 단호히 거절했다.“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분을 붙잡을 방법을 알려 드릴까요?”“억지로 붙잡아서 무슨 의미가 있어? 모두가 고통스러울 뿐이야. 난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주인님은 마음이 넓으시군요. 이미 내려놓기로 했다면 더는 슬퍼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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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지강산의 답장을 받은 허서령은 들뜬 마음으로 곧바로 베개를 안고 찾아갔다.지강산이 문을 열어 주었다.방 안으로 들어간 허서령이 돌아보니 지강산은 웃음을 참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다가온 그가 물었다.“엄청 큰 바퀴벌레라고?”“네. 엄청 큰데 날기까지 해요.”허서령은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했지만 속으로는 찔려 죽을 지경이었다.‘날기까지 한다’는 말에 지강산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허서령은 베개를 침대에 놓고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봤다.“왜 웃어요? 거짓말 아니에요.”“그래.”지강산은 목을 가다듬고 진지한 척 맞장구를 쳤다.“요즘 바퀴벌레가 자주 나오긴 하지. 날이 추워지니까 하수구에 있던 바퀴벌레가 겨울을 나려고 집 안으로 날아들었나 봐.”허서령이 작게 중얼거렸다.“정말 그렇다니까요.”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 덮었다. 긴 머리를 정리하고 얼굴만 내놓았다. 하얀 조명 아래 보이는 곱고 흰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저 잘 거예요. 강산 씨도 같이 잘래요?”‘일부러 핑계를 만들어 나와 자러 온 걸까?’지강산은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래.”그는 불을 끄고 침대 반대편으로 돌아가 이불을 들고 누웠다.방 안은 완전히 어두워졌다.두 사람 사이에는 반 미터쯤 거리가 있었다.지강산은 반듯하게 누워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겉으로는 평온하게 잠든 듯했지만 머릿속은 엉망이었다.갑자기 이불이 움직였다. 옆의 여자가 안쪽으로 돌아누우며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 마음을 흔드는 향기를 선명히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지강산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몸은 뜨거워졌고 아랫배도 팽팽하게 긴장해 괴로웠다.“강산 씨.”허서령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작고 달콤한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목소리만 들어도 마음과 몸이 흐트러져 미칠 듯했다.지강산은 침을 삼키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응.”그녀가 속삭였다.“저랑 입 맞추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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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짧은 입맞춤만으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었다....다음 날 아침, 허서령은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깨어났다.졸린 눈을 가늘게 뜨고 따뜻한 이불 밖으로 손을 뻗었다. 침대 옆 탁자의 휴대전화를 집어 알람을 끈 뒤 얼른 손을 이불 속으로 넣고 지강산 쪽으로 다가갔다.남자의 몸은 크고 단단하며 따뜻했다. 허서령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팔을 끌어안고 얼굴을 붙여 비볐다.지강산은 그 움직임에 잠에서 깼다. 얇은 잠옷 너머로 부드럽고 풍만한 몸이 팔에 닿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몽롱한 눈을 뜬 그가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일어나서 출근해야지?”“네.”허서령은 얼굴 전체를 그의 팔에 묻고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작게 중얼거렸다.“이불 속은 따뜻한데 밖은 너무 추워요. 일어나기 싫어요.”지강산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그럼 일어나지 말고 더 자.”“그래도 아침에 백시욱 씨를 만나기로 했어요.”“그 자식 무슨 소송을 맡은 거야?”“윤가온이 바람피운 걸 알아냈대요. 그 여자에게 쓴 돈을 돌려받고 싶다면서 지인 가격으로 맡아 달라고 했어.”“도와줄 생각이야?”“어떻게 도움이에요? 전 돈을 버는 거잖아요. 그 사람이 돈을 돌려받으면 제 친구에게 양육비도 제대로 줄 수 있을 거고요.”지강산이 감탄하듯 말했다.“그 자식도 벌을 빨리 받았네. 그래도 결혼식 전에 알았으니 다행이야. 결혼까지 했으면 더 많은 돈을 썼을 테니까.”“맞아요. 아무리 싫어도 제 절친의 전남편이고 아이 아빠잖아요. 앞으로는 아이에게 잘하고, 번 돈도 그런 여자에게 속아 넘기지 말고 아이를 키우는 데 썼으면 좋겠어요.”“그래. 일어나자. 아침 만들어 줄게.”지강산은 몸을 일으키며 그녀까지 함께 부축해 앉혔다.허서령은 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고개를 숙였다. 졸린 눈과 힘없는 몸에는 아침잠이 덜 깬 짜증이 조금 묻어 있었다.“겨울은 정말 싫어요. 너무 추워요.”“겨울은 다음 달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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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지강산은 씻고 주방으로 가 아침을 만들었다.허서령도 씻고 나와 두꺼운 옷을 입은 후 긴 머리를 간단히 묶고 옅게 화장했다.도우미가 쉬는 날이라 집에는 두 사람뿐이었다.아침의 따뜻한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해 거실 바닥에 창살 무늬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거실은 밝고 포근해 편안했다.지강산은 국수를 삶고 달걀찜을 쪘으며 과일을 자르고 우유도 따뜻하게 데웠다.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아침이었다.지강산은 요리를 잘했고, 집에 있을 때면 허서령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 점이 무척 감동적이었다.허서령은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기억을 잃기 전에는 이런 남자와 오랫동안 함께하며 줄곧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았겠지? 당시의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그와 헤어졌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도 이해가 됐다.지금의 감정만 생각해도 지강산과 헤어지라고 하면 그러지 못할 것이다. 몹시 괴로울 게 분명했다.지강산은 우아하고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허서령은 음식을 먹으면서 자꾸 몰래 바라봤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애틋한 감정이 차올랐다.식사를 마친 뒤 지강산은 식탁을 정리했고 허서령은 출근 준비를 했다.가방을 들고 저택을 나서는데 뒤에서 지강산의 목소리가 들렸다.“서령아.”허서령은 현관 밖에서 몸을 돌렸다.지강산은 옅은 회색 체크 무늬 목도리를 들고 다가와 목에 둘러 줬다. 긴 머리를 밖으로 꺼내고 예쁜 매듭까지 지었다.허서령은 눈을 떼지 않고 그를 올려다봤다. 부드러운 목도리가 목의 피부를 포근하게 감쌌다. 은은한 향기도 났다.“이 목도리 어디서 났어요?”허서령이 궁금한 듯 물었다.“내 거야. 싫어?”“아니요.”허서령은 달콤하게 웃었다. 맑고 큰 눈에 촉촉한 빛이 어렸다.“날씨가 추우니까 몸 얼지 않게 조심해.”지강산은 목도리를 다 매어 준 뒤 손을 내렸다. 시선은 아름다운 얼굴에 머물렀다.“퇴근하면 일찍 들어와.”“네.”허서령은 얌전히 대답했다.지강산은 옅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제 출근해.”허서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고로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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