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551 - Chapter 560

688 Chapters

제551화

분위기가 무겁고 답답했다. 허서령은 지강산이 자신을 내보내려고 온 것 같아 마주하기 싫었다. 그래서 담요를 걷고 두 발을 바닥에 내리며 신발을 신으면서 지은영에게 말했다.“은영아, 나 먼저 방에 갈게. 너 혼자 해.”“왜 가요.”지은영은 얼른 새언니의 허벅지를 손으로 눌렀다. 그리고 귀에 가까이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오빠가 누가 봐도 새언니 보러 온 건데 방으로 숨으면 어떡해요?”그렇다면 더 만나고 싶지 않았다.지강산이 자신을 찾은 이유는 아마 헤어지는 문제를 확실히 정리하려는 것일 터였다.결혼한 사이도 아니니 한쪽이 끝내겠다고 마음먹으면 관계는 끝날 수 있었다.허서령은 지은영의 손을 살짝 밀어내며 핑계를 댔다.“좀 피곤해서 방에서 잠깐 자려고.”지은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허서령은 복슬복슬한 슬리퍼를 신고 일어나 지강산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장 방으로 걸어갔다.지은영은 허서령을 한번 보고 다시 지강산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야 둘째 오빠의 깊은 시선이 줄곧 허서령에게 붙어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숨길 수 없을 만큼 애틋한 눈빛이었고 얼굴빛도 어두웠다.지은영은 게임도 그만두고 휴대전화를 던져 놓은 뒤 허리를 펴고 앉아 심각하게 따졌다.“둘째 오빠, 이제 거짓말하지 마. 새언니를 아직도 엄청 사랑하는 거 다 보여. 눈빛은 속일 수 없거든. 대체 왜 헤어지자고 한 거야?”지강산은 시선을 거두고 지은영을 바라보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며칠 동안 괜찮았어?”“안 괜찮았어. 밥도 안 먹고 물도 잘 안 마시고, 웃지도 않아. 새언니 살 빠진 거 안 보여?”지은영이 불만스럽게 말했다.지강산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왜 기분이 안 좋은 건데?”지은영은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등 뒤에 있던 쿠션을 집어 지강산에게 던졌다.“그걸 몰라? 차였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아!”지강산은 날아오는 쿠션을 빠르게 받아냈다.지은영은 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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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2화

허서령은 가슴이 꽉 조여 왔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눈이 순식간에 붉어진 허서령은 화가 나 돌아서 지강산을 바라봤다.“강산 씨, 혹시 심채린을 좋아하게 된 거예요?”“다른 여자 없어.”지강산은 고개를 숙인 채 유난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 주는 게 네가 바라던 거 아니야?”허서령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억지로 침착한 척 비웃었다.“강산 씨 제 속마음이라도 들여다봤어요? 제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아요?”지강산은 고개를 돌려 눈물이 가득 고인 허서령의 눈을 바라보며 안도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떠올렸다.“네가 보낸 메시지들이랑 지금도 떠나지 않겠다는 태도, 그리고 네가 정말 힘들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자꾸 착각하게 돼. 네가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처럼.”허서령은 더 숨기지 않았다.“맞아요. 저 헤어지기 싫어요.”“나랑 사귀면서 다른 결혼 상대를 찾으려는 거야?”“강산 씨는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군요.”허서령은 가슴이 계속 아팠다. 눈물을 꾹 참으며 거의 무너질 듯한 마음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제가 언제 그런 짓을 했는데요? 제가 남아 있는 기억 속에 있는 남자는 강산 씨 하나뿐이에요. 대체 누구를 두고 누구를 찾았다는 거예요?”지강산은 두 손을 꽉 맞잡아 주먹처럼 말아 쥐었다.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 아려 와 잠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서른 살에는 결혼하고 싶다고 했잖아.”“결혼이요?”허서령이 힘없이 비웃었다. 소파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품에 안은 쿠션을 바라봤다. 마음은 쓰라렸고, 눈가에 맺힌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이렇게 헤어질 지경까지 왔는데 무슨 결혼을 말하겠어. 강산 씨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너무 크게 믿었던 내가 바보지.’이제는 헤어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니 결혼까지 바랄 엄두가 나지 않았다.“안 할래요.”허서령은 고개를 돌려 뒤통수를 지강산에게 보이고, 한 손으로 뺨을 받치며 몰래 차가운 눈물을 닦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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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지강산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거운 기운이 조용한 방 안을 맴돌았다. 둘 다 마음 한쪽에 걸리는 게 있어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허서령은 답답한 공기를 견디기 힘들어 작게 물었다.“다른 할 말 있어요? 없으면 나가 줘요. 좀 쉬고 싶어요.”지강산은 무겁게 숨을 내쉰 뒤 두 손으로 허벅지를 짚고 일어나, 내키지 않는 듯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지강산의 손이 멈췄다. 몇 초 동안 가만히 서 있던 그가 뒤를 돌아 허서령을 바라봤다.허서령도 마침 지강산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우연히 시선이 부딪쳤다. 서로의 눈에는 뜨거운 사랑과 놓지 못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지강산이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서령아, 집에 오고 싶어지면 전화해. 내가 데리러 올게.”허서령은 바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됐어요. 제가 택시 타고 갈게요.”지강산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깊은 눈에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이 짙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와. 많이 보고 싶어.”목소리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섞여 있었다. 허서령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멈칫했다.지강산은 그 말을 남기고 문을 열어나갔다. 문도 조용히 닫았다.허서령의 귓가에는 ‘많이 보고 싶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가벼운 깃털이 마음 한가운데를 스치고 지나가듯 잔잔한 파문이 일었고, 심장도 따라 두근거렸다. 손목의 맥박까지 쿡쿡 아픈 느낌이었다.허서령은 지강산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정말 헤어지고 싶은 건지, 계속 함께 있고 싶은 건지. 자신을 이제 안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많이 보고 싶다’고 할 만큼 아직 좋아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허서령은 쿠션을 끌어안은 채 천천히 소파 팔걸이에 엎드렸다. 기분이 가라앉아 생각에 잠겼다.방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다. 머릿속에는 지강산의 모습과 목소리만 가득했고, 대학 시절 연애하던 때의 자잘한 기억 조각들도 또 떠올랐다.이상하게도 슬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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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지은영은 맞은편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장난스럽게 말했다.“둘째 오빠, 새언니도 손 있어. 알아서 집어 먹을 수 있으니까 오빠 밥이나 먹어.”지강산이 동생을 한번 흘겨봤다.“넌 말이 참 많다.”지은영은 일부러 삐친 척 중얼거렸다.“나도 닭 날개 중간 부위 좋아하는데.”지강산은 날개 끝 한 조각을 집어 그녀에게 줬다. 지은영이 멈칫했다.“날개 끝엔 살 없잖아.”지강산은 아무 말 없이 남은 날개 끝 하나까지 그녀의 그릇에 넣어 줬다.“살 없으면 뼈나 뜯어.”지은영은 볼을 부풀리고 귀여운 표정으로 허서령을 바라봤다.“새언니, 둘째 오빠 봐요. 절 괴롭혀요.”허서령은 지은영의 귀여운 표정에 웃음이 터졌다. 지강산이 자신에게 준 닭 날개 중간 부위와 생선 뱃살이 담긴 접시를 들어 지은영의 앞으로 옮기며 다정하게 말했다.“은영아, 이거 먹어.”“고마워요. 새언니.”지은영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지강산을 향해 코를 찡긋하며 우스운 표정을 지어 도발한 뒤 닭 날개를 집어 맛있게 뜯었다.지강산은 살짝 약이 올랐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채소를 집어 입에 넣었다.다들 조용히 밥을 먹었다.그때 지상훈이 갑자기 물었다.“강산아, 내가 돌아오면서 보니까 네 차 타이어가 바람이 다 빠져 있던데 무슨 일이야?”지강산은 눈썹을 살짝 올리고 몰래 웃고 있는 지은영을 바라봤다.“아버지가 아끼는 딸한테 물어보세요. 걔가 한 짓이에요.”하선희는 놀랐고 지상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딸을 봤다.“은영아, 왜 네 둘째 오빠 타이어를 망가뜨렸어?”지은영은 정의감 넘치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두 손을 식탁에 짚고 허리를 곧게 펴더니 마치 판결이라도 내리듯 엄숙하게 말했다.“둘째 오빠가 너무 나빴잖아요. 새언니를 괴롭혔으니까 벌을 받아야죠. 타이어는 망가지면 수리하면 되지만 새언니 마음이 다친 건 쉽게 고칠 수 없어요.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아주 약하게 벌을 준 거예요.”지상훈은 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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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5화

그 한마디가 나오자 식탁 분위기는 순식간에 풀렸다.지강산의 얼굴에도 차츰 웃음이 돌아오며, 눈에 보일 정도로 분위기가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지은영과 농담도 하고, 아버지에게 요즘 일 이야기도 하며, 어머니에게 반찬도 집어 드렸다.그러면서도 수시로 허서령을 바라보며 잘 먹고 있는지 확인했다. 고기도 집어 주고 휴지도 건네고 국까지 떠 주며 세세한 것 하나까지 챙겼다.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과일을 먹었다.허서령은 방에 들어가 씻은 뒤 다시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지은영은 하선희의 팔에 기대 다리를 소파 위로 접어 올리고 휴대전화를 봤다.지상훈은 지강산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국내외 이야기부터 정치, 민생, 우주항공까지 온갖 주제가 오갔다.한 주제가 끝날 때마다 지강산은 차를 마시는 틈을 타 허서령 방 쪽을 몇 번씩 바라봤다.하선희는 그 기대 어린 시선을 보고 결국 한마디 했다.“강산아, 그만 봐. 서령이는 방에 들어갔으니 오늘은 다시 안 나올 거야.”그 말을 들은 지은영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강산을 바라봤다.지강산은 어색하게 웃었다. 부정하지도 대답하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인 뒤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버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지은영은 궁금해 작은 목소리로 하선희에게 물었다.“엄마, 둘째 오빠 뭐 보고 있었어요?”하선희는 딸의 귀 가까이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네 새언니 방 문 보고 있었지. 새언니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리는 것 같더라. 며칠째 우리 집에 있으니 강산이도 많이 보고 싶겠지. 어렵게 왔으니까 얼굴 좀 더 보고 싶은 모양이야.”지은영도 하선희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오늘 밤 둘째 오빠랑 새언니 같은 방에서 안 자요?”하선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자기들 집에서도 늘 같이 자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여기서야 더 그렇지.”“둘이 그렇게 어색해요?”“네 새언니가 기억을 잃었으니까 당연히 조심스럽고 낯설지. 네 둘째 오빠도 원래 예의 바르고 신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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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6화

지강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넌 오빠가 그렇게 싫어? 밖은 이렇게 춥고 시간도 늦었는데 꼭 이런 식으로 쫓아내야겠어?”지은영은 답답하다는 듯 지강산의 팔을 밀어 옷깃을 빼냈다. 그러고는 정신 좀 차리라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새언니 침대는 안 젖었잖아. 오늘 밤 새언니 방에서 자면 되지.”지강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지은영의 머리를 가볍게 톡 쳤다.“그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잔머리만 늘어서는.”지은영은 머리를 문지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동생이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그 말을 남기고 물통을 든 채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방 안에는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온도도 포근했다.허서령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앉아 이불을 덮은 채 잠시 책을 읽었다.막 불을 끄고 잘 생각이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11시 반이었다.‘이 시간에 누가 찾아온 걸까?’대충 지강산일 거라고 짐작한 허서령은 긴 머리를 한번 정리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복슬복슬한 슬리퍼를 신고 문을 열러 갔다.문을 연 순간 겨울용 회색 잠옷을 입은 지강산이 서 있었다. 깊은 눈에 입꼬리까지 처져 있어 어딘가 억울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은영이가 물통 들고 집에 있는 침대를 전부 젖게 만들었어. 지금 멀쩡한 데는 걔 방이랑 네 방, 부모님 방뿐이야. 오늘 밤만 나 좀 재워 줄래?”허서령은 놀랐다가 곧 생각을 바꿨다. 정말 지은영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짓이었다.“들어와요.”허서령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크게 열어 길을 내줬다.지강산은 넓은 침대 옆으로 걸어가 서서 베개 두 개와 이불 한 채를 바라봤다. 긴 손가락으로 침대 옆 탁자에 놓인 그녀의 책을 살짝 만지며 목울대를 한번 움직였다.허서령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지강산은 돌아서 그녀를 바라보더니 일부러 조심스럽게 옆의 2인용 소파를 가리켰다. “그럼 난 저 소파에서 잘까?”허서령도 소파 쪽을 봤다.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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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7화

그날 밤 허서령은 깊이 자지 못했다. 이유는 지강산이 잠결에 너무 얌전히 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아마 잠들고 나서는 의식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안고 자다가 새벽 무렵 몽롱한 상태에서 자꾸 몸을 움직여 허서령을 깨웠다.지강산은 아주 깊이 자고 있었지만 따뜻한 손은 어느새 그녀의 잠옷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손을 꺼내고 싶어도 깰까 봐 망설여졌다.품에서 빠져나오려 몸을 움직이면 곧바로 다시 끌어안았다. 잠결에 본능적으로 허리 아래까지 몸을 붙여 왔다. 깊이 잠든 뒤에도 억누르기 힘든 욕구가 몸 안에서 터질 듯 강하게 느껴졌다.허서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선을 지키게 하는 의지가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궁금해졌다.그러다 보니 자신까지 몸이 달아오르고 답답해졌다.기억이 없다고 욕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뜨거워진 몸으로 한참 뒤 다시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지강산은 이미 침대에 없었다.허서령은 일어나 씻고 거울 앞에 섰다. 긴 머리는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뺨은 발그레했다.새벽에 반쯤 잠든 상태로 느꼈던 일이 떠올랐다. 지강산은 정말 많이 원했던 것 같은데도 결국 그 이상 나아가지는 않았다.씻고 옷까지 챙겨 입은 허서령은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식탁에는 지은영과 지강산만 있었다.지은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새언니, 와서 아침 먹어요.”허서령은 외투와 가방을 의자에 잠시 내려놓고 지은영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강산과 마주 보는 자리였다.허서령은 눈을 내리깔고 지강산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강산은 줄곧 그녀를 보고 있었다. 뜨거운 시선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허서령이 자리에 앉자 지강산이 부드럽게 물었다.“잘 잤어?”허서령은 들었지만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지은영은 허서령의 귀 가까이 다가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둘째 오빠 오늘 기분 엄청 좋아 보여요. 견인차 불러서 차를 정비소로 보내고 타이어 갈게 했다니까요. 제가 보기엔 새언니 차 타고 가려고 일부러 바로 안 고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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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8화

아침을 먹고 지은영과 허서령은 팔짱을 낀 채 함께 출근하러 나갔다. 지강산도 두 사람 뒤를 따라왔다.아침 공기는 몹시 차가웠고 바람도 매섭게 불었다.세 사람은 집 주차장으로 갔다. 지은영은 자기 차 운전석 문을 열다가 뒤돌아 지강산을 보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둘째 오빠, 내가 회사까지 태워다 줄까?”지강산은 슬쩍 눈을 흘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은영은 웃으며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차에 시동을 건 뒤 두 사람 옆을 지나갈 때 창문을 내리고 허서령을 향해 외쳤다.“새언니, 둘째 오빠 태워 주지 말아요. 택시 타고 가라고 해요!”허서령은 웃으며 지은영의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 뒤돌아 지강산을 봤다.지강산은 뒤에 반듯하게 서 있었다. 두 손은 검은 외투 주머니에 넣었고, 단추도 채우지 않아 외투가 벌어져 있었다. 안에 입은 옷도 많지 않았다.잘생기긴 했지만 따뜻함보다는 멋을 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두껍게 껴입어 조금 둔해 보이는 허서령과는 완전히 반대였다.허서령은 고개를 들어 잘생긴 얼굴을 바라봤다. 깊고 아름다운 두 눈은 햇빛을 머금은 보석처럼 늘 부드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지강산의 얼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역시 저 눈이었다.말을 하지 않아도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눈이었다. 기쁠 때는 반짝였고, 걱정할 때는 깊은 호수처럼 차분했으며, 슬플 때는 빛을 잃었다. 한눈에 그의 다정함과 선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회사 갈 거예요?”허서령이 물었다.“아니. 며칠 내내 야근해서 오늘 대체 휴무야.”허서령은 조금 놀랐다.‘그러니까 며칠 동안 일부러 늦게 찾아온 게 아니라 계속 바빠서 못 오다가 오늘 쉬는 날이라 어제저녁 바로 나를 찾아온 건가?’어쨌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그런데 쉬는 날인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아침 먹고 저까지 따라 나온 거예요?”지강산이 옅게 웃었다.“배웅하려고.”허서령도 그의 미소에 따라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띠었다.“고마워요.”“오늘 아주 바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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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9화

심인혜는 지강산의 옆으로 가 한 자리 건너 앉았다.“오랜만이네요. 지강산 씨.”목소리를 들은 지강산은 고개를 돌려 심인혜를 바라보며 조금 놀랐다.“오랜만이에요. 이 재판 보려고 일부러 울심시에서 온 거예요?”심인혜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가볍게 말했다.“저 사람이 잘돼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면 굳이 와서 볼 생각 없겠죠. 그런데 이렇게 망가지고 비참하게 끝나는 거면 당연히 직접 봐야죠.”지강산은 부드럽게 웃었다. 허서령과 절친이 된 여자라면 무조건 착하기만 한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심인혜가 되물었다.“지강산 씨는요? 백시욱 편들어주러 온 거예요?”“아니요.”지강산의 시선은 허서령에게 향했다.“오늘 쉬는 날이라 서령이 재판하는 거 보러 왔어요.”심인혜는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요즘 세상에 지강산 씨처럼 여자친구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도 드물 텐데요.”지강산은 씁쓸하게 입술만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법관이 들어오고 개정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자 법정 전체가 조용해졌다.재판부의 진행에 따라 허서령이 먼저 소장을 읽고 청구 내용을 설명했다.윤가온 측 변호사도 곧바로 답변을 시작했다.양측 변호사는 증거를 제출하고 서로 반박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백시욱은 맞은편의 윤가온을 봤다가 방청석에 앉은 심인혜를 바라보며 뼈저리게 후회했다.백시욱은 똥을 달콤한 초콜릿으로 착각해 집어 든 셈이었다. 그러느라 손에 있던 멀쩡한 빵까지 내던졌다. 그런데 똥은 배를 채워 주기는커녕 온몸에 악취만 묻혔다. 삼키자니 역겨워 죽을 것 같고, 뱉어내자니 돈 들여 속까지 씻어 내야 할 판이었다.지금 백시욱의 처지가 딱 그랬다.허서령이 빈틈없이 증거를 제시하자 상대 변호사는 더는 제대로 반박하거나 변론하지 못했다. 재판부도 원고 측 주장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윤가온은 진술할 때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그 돈은 다 저 사람 스스로 저한테 쓴 거예요. 저도 저 사람이랑 잤고요. 공짜로 잔 것도 아니잖아요. 아내랑 아이가 있으면서 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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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0화

백시욱의 관심은 주로 심인혜에게 가 있었다.하지만 심인혜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허서령은 대답하지 않고 심인혜를 바라봤다.통화를 마친 심인혜가 다가왔다.“왜?”허서령이 말했다.“백시욱 씨가 밥 산대. 갈래?”심인혜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그래. 가자.”지강산이 운전하고 백시욱은 조수석에 앉았다. 허서령과 심인혜는 뒷좌석에서 이야기를 나눴다.심인혜의 휴대전화에 전화와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자 허서령이 궁금해 물었다.“누가 그렇게 계속 연락해?”“남자친구.”심인혜는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열아홉 살이라 그런가, 엄청나게 달라붙어.”허서령은 눈을 크게 뜨고 입까지 벌어졌다.“너보다 열 살 어려?”심인혜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조수석에 앉은 백시욱은 그 말을 듣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제 신경 쓸 자격은 없었다.“왜 그렇게 어린 사람이랑 만나?”허서령이 궁금해 물었다.심인혜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낮게 말했다.“어린 남자는 몸도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활기도 넘치고, 순수하고 한 사람만 보잖아.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 연애한다고 꼭 결혼까지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 부담도 없고.”허서령은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 안은 좁고 닫힌 공간이라 뒷좌석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앞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지강산은 룸미러로 허서령을 한번 바라봤다. 눈에는 티 나지 않을 만큼 작은 걱정이 스쳤다.심인혜가 다시 말했다.“내 얘기는 그만하자. 넌 어때? 기억은 좀 더 돌아왔어? 지강산 씨랑은 관계 좀 나아졌고?”허서령은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지강산의 뒤통수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봤다.기억은 조금씩 돌아올 조짐이 있었지만 오히려 지강산과의 관계는 더 꼬여 가는 기분이었다.의사는 전에 전기경련치료 후 생긴 기억상실은 대부분 회복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많은 환자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최근 기억부터 다시 떠올린다고 했다.보통 3개월에서 반년이면 대부분의 기억이 돌아오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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