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561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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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1화

지강산과 관련된 기억이 하나라도 돌아온 게 너무 기뻤다.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시작하자 백시욱은 마음이 답답하다며 술까지 주문했다. 심인혜에게도 같이 마셔 달라고 했다.심인혜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지강산은 운전해야 했다. 결국 허서령이 백시욱과 한 잔 정도만 함께 마셨다.백시욱은 술을 잔뜩 마신 뒤 취한 채 지강산의 어깨에 팔을 걸고 경험자인 척 충고했다.“강산아, 너는 절대 나처럼 하지 마. 자기한테 제일 잘 맞는 사람 버리고 엉망인 사람을 주워서 온갖 고생 다 하고 이제 와 후회하는 그런 짓 하지 마.”지강산은 귀찮다는 듯 백시욱의 손을 치웠다.“나랑 같은 부류로 묶지 마. 우린 달라.”백시욱은 술에 취해 감상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난 모든 옛사랑은 다시 잡을 가치가 있는 줄 알았어. 네가 허서령한테 한결같이 집착하고 좋아한 것처럼 말이야. 사람마다 운명은 다르더라.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잘 지켜. 후회할 때가 되면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지강산은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바로 세워 의자 등받이에 기대게 했다.“취했어. 좀 쉬어.”백시욱은 갑자기 식탁 위로 엎어졌다. 컵과 그릇, 수저가 이리저리 흩어지자 지강산이 급히 손을 뻗어 떨어질 것들을 붙잡아 옆으로 치웠다.백시욱은 갑자기 술주정하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흘리며 외쳤다.“인혜야, 나 후회해. 나 좀 용서해 주면 안 돼? 제발 용서해 줘. 내가 잘못했어. 진짜 잘못했어.”심인혜는 짜증 난 표정으로 백시욱을 질색하며 바라봤다. 밥맛까지 떨어진 듯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세상의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가치가 있는 건 아니고, 모든 결혼이 되돌릴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백시욱이 이렇게 초라해진 모습을 보니 심인혜는 오히려 속 시원했다.허서령은 심인혜를 한번 보고 백시욱을 다시 바라보며 사람 인생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한때 했던 영원한 사랑의 맹세도 세월 앞에서는 버티기 어렵고, 사람의 욕심과 선택 앞에서는 더더욱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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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허서령은 그렇게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계속 망설였다.한쪽으로는 지강산을 떠나기 싫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아직 젊을 때 결혼해 아이를 낳고 온전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깊은 밤, 지강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서령아, 언제 돌아올 거야?]허서령이 답했다.[당분간 안 갈래요. 나중에 생각해 볼게요.][그럼 나도 부모님 집에서 살게.][아주머니가 요 며칠 매트리스랑 이불 말리느라 허리도 못 펼 만큼 힘드셨대요. 괜히 와서 일 더 만들지 말아요.][난 출근해야 해서 매일 저녁 그 짧은 시간밖에 없어. 그래도 매일 너를 보고 싶어. 서령아, 사실 너 아직 결혼하고 싶은 거지?][네.][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는 거구나.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 잊었으니 이제는 나랑 평생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저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요.][내 말은 여전히 같아. 네가 떠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게. 남아서 나랑 계속 살고 싶다면 평생 잘해 줄 거고, 상처받거나 억울한 일 없게 할게.]허서령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만 얘기해요. 잘 자요.][서령아, 아직 자지 마. 조금만 더 나랑 있어 줘.][졸려요.][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 네가 자꾸 모호하게 말하니까 나도 계속 불안해. 나도 많이 힘들어.][동지 지나고 이야기해요. 잘 자요.]허서령은 메시지를 보내고 휴대전화를 방해 금지 모드로 바꾼 뒤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마음은 여전히 어지러웠다.결국 지강산을 놓고 싶지 않았고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에 걸려 예전처럼 아무 걱정 없이 좋아할 수가 없었다.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카톡 알림이 계속 쌓였지만 방해 금지 모드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늦은 밤, 집 안은 조용했다.깊이 잠들어 있던 허서령은 갑자기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잠이 깼다. 몽롱한 상태라 눈은 뜨지 못했다.그 순간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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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그 말을 듣는 순간 허서령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마음이 저려 왔다.기억을 잃은 삶은 분명 결핍이 있는 삶이었다. 기억상실이 좋은 일일 리 없었고 전기경련치료도 몸과 뇌에 어느 정도 부담이 따를 수 있었다.‘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걸까...’허서령은 저도 모르게 지강산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그런 바보 같은 짓 하지 말아요. 저한테 조금만 더 시간을 줘요. 제 미래가 걸린 문제잖아요. 한번 잘못 선택하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어요.”지강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녀를 안고 있었다.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허서령도 조금 피곤해져 말했다.“강산 씨, 오늘 밤 돌아가기 싫으면 여기서 자요.”“응.”지강산이 낮게 대답하며 품을 풀었다.허서령은 침대 반대쪽으로 조금 옮긴 뒤 이불을 들어 지강산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었다.방문은 닫혀 있었고 불도 켜지 않아 안은 흐릿하고 어두웠다. 지강산은 외투와 안에 입은 두꺼운 겉옷을 벗어 옆의 의자에 던져 놓고 신발과 양말도 벗은 뒤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허서령은 이미 누워 있었고, 지강산은 침대 위에 앉아 하체만 이불로 덮은 채 망설였다.“왜 안 누워요?”허서령이 물었다.지강산은 몇 초 망설이다 물었다.“바깥 바지 입고 자면 불편한데, 벗어도 돼?”허서령의 뺨이 뜨거워져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내복은 입었어요?”“아니.”지강산은 이불을 걷어 내며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그럼 내 방에 가서 잠옷 한 벌 가져올게.”허서령은 얼른 손을 뻗어 몸에 붙는 지강산의 안쪽 옷자락을 잡았다. 지강산은 멈춰 돌아봤지만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불 속에 까만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그녀가 자신의 옷을 붙잡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지강산이 의아하게 물었다.“왜?”“가지 말아요. 괜히 은영이나 부모님 깨우면 집에 도둑 든 줄 알잖아요.”허서령은 옷을 놓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바깥 바지만 벗고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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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허서령은 입술을 깨물고 침을 한번 삼켰다.머리로 아무리 참으려 해도 몸의 반응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오래 눌러 둔 갈망 때문에 마음도 몸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자신도 이렇게 힘든데 지강산은 얼마나 더 힘들고 답답하게 참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아마 깜깜한 어둠이 사람을 평소보다 대담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용기도 생기고 평소보다 많이 거리낌도 줄었다.허서령은 천천히 몸을 뒤로 움직여 지강산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몸이 닿는 순간 지강산은 크게 굳었다. 손으로 허서령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 조금 밀어 거리를 만들며 움직임을 막았다. 욕망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고 당황한 기색도 묻어났다.“그러지 마.”허서령은 숨이 흐트러진 채 뜨거운 이불 속에서 그의 손목을 잡아 자기 잠옷 안으로 끌어당기고 몸도 다시 가까이 붙였다.지강산의 온몸이 단단하게 굳었다.입으로 거칠게 숨을 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한여름 사막처럼 뜨겁고 메말라 있었다.지강산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쉰 목소리로 말했다.“장난치지 마. 이러면 나 진짜 못 견뎌.”“강산 씨, 그만 참아요.”“여기엔 피임 도구가 없어.”“괜찮아요. 내일 약 먹을게요.”“약은 몸에 안 좋아.”“가끔 한 번 정도는 괜찮아요.”“난 참을 수 있어. 네가 나만 안 건드리면 돼.”“그런데 전 참기 싫어요.”허서령이 분명하게 원하자 지강산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다.이불 밖에서 허서령은 숨이 막힐 것 같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입으로 숨을 쉬었다.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쥔 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혔다.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몸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목소리를 참기 어려워진 허서령은 결국 자기 손등을 깨물었다.지강산은 한쪽 팔을 그녀의 목 아래로 넣어 팔베개를 해 주고, 팔뚝을 입가로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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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동지까지는 사흘이 남아 있었다.지강산은 기지에 들어간 뒤 허서령에게 전화나 메시지를 자주 하지 못했다.최근 기억이 점점 더 많이 돌아오자 허서령은 병원에 한 번 다녀왔다. 의사를 만나 심리 평가를 받고, 자신의 병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지도 물었다.의사는 확답하기 어렵다고 했다.기억이 돌아와도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기억과 함께 과거의 고통이 되살아나 다시 우울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었다.의사는 마음에서 비롯된 문제는 결국 마음의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감정을 무너뜨리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어야 완전히 좋아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은 3개월에서 반년 안에 기억이 차례로 돌아온다고도 했다.특히 감정적 자극이 클수록 기억 회복이 빨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머리가 활발하게 돌아가거나 감정이 크게 흔들리고, 고통이나 슬픔, 공포 같은 강한 감정을 겪을 때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하루를 차분하게 살아가며 감정 변화가 너무 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의사의 설명과 조언을 들은 허서령은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지강산이 기지에 간 며칠 동안 그녀의 생활은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것뿐이었다.그러던 중 사무실 건물 밖에서 이은경과 닮은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기억을 잃은 뒤에는 사진으로만 이은경을 본 적이 있었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던 여자가 최근 이틀 동안 다시 주변을 맴도는 걸 보니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또 무슨 일을 시작한 모양이었다.이은경은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허서령이 일하는 사무실 밖을 자주 돌아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듯했다.동지 전날 밤, 제산시는 다시 기온이 내려갔고 밤에는 작은 눈까지 내렸다.지강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서령아, 날씨 더 추워졌어. 옷 따뜻하게 입고 감기 걸리지 마. 내일 아침에 맡은 일 마무리하면 점심쯤 할아버지 댁으로 갈게. 내일 보자.]허서령은 짧게 답했다.[네.]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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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네, 할아버지. 그럼 저희 먼저 가 있을게요.”지은영은 허서령의 팔을 끼고 걸어가 정윤슬의 곁에 앉았다.정윤슬은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먹고 있었다. 허서령과 지은영을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입안의 큼직한 새알심을 얼른 씹었다.“새언니.”“형님.”허서령과 지은영이 동시에 인사했다.정윤슬은 음식을 삼키고 울상처럼 얼굴을 늘어뜨렸다.“서령 언니, 은영 씨, 드디어 왔네요. 저 혼자 있으려니 너무 어색했어요!”지은영은 멀리 있는 지태일을 한번 흘겨보고 낮게 물었다.“새언니는 집안사람들도 아직 잘 모르는데 큰오빠는 왜 같이 안 있어 줘요?”“은영 씨 큰오빠가 옆에 있으면 제가 더 불편해요.”정윤슬은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으로 팥죽을 휘휘 저었다.“제가 저쪽 가 있으라고 했어요. 저는 여기서 조용히 먹는 게 편해요.”허서령은 지태일의 시선이 이쪽으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걸 보고 옅게 웃으며 정윤슬에게 물었다.“신혼 적응은 아직도 안 끝났어?”“그 사람도 바쁘고 저도 바빠서 적응할 시간도 없어요. 그냥 서로 예의 지키면서 별문제 없이 지내요.”정윤슬은 담담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강산 오빠는 왜 안 왔어요?”허서령이 대답했다.“기지에서 일하고 있어. 조금 늦게 와서 점심은 같이 먹을 거야.”“서령 언니, 팥죽 먹을래요?”정윤슬이 테이블 위 보온 냄비를 가리켰다.허서령은 고개를 저었다.“우린 아침 먹고 왔어. 너 천천히 먹어.”그때 지은영이 팔꿈치로 허서령을 살짝 찔렀다. 시선은 입구 쪽을 향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새언니, 사촌 오빠랑 사촌 새언니 왔어요.”허서령과 정윤슬도 함께 입구를 바라봤다.지로운이 한나의 팔을 부축해 들어오고 있었다. 한나는 넉넉한 옷을 입었지만 배가 살짝 불러 있었다. 원래 살이 찐 건지 임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넉 달쯤 된 것 같았다.두 사람은 들어오자 먼저 어른들에게 인사했다.허서령 때와는 달랐다. 어른들 가운데 몇몇은 두 사람을 보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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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도미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다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집안 어른이 할 말이 있으시대요. 얼른 오세요...”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허서령과 지은영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갔다.정윤슬은 그릇에 남은 새알심 두 알을 얼른 입에 넣고 휴지를 꺼내 입을 닦은 뒤 두 사람 뒤를 바짝 따라갔다. 큰 무리에서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얌전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지태일도 사촌 동생 몇 명과 함께 거실로 왔다.넓은 거실 한가운데에는 직사각형 테이블이 있었고 소파 세 개와 지용식이 앉는 나무 의자가 둥글게 배치돼 있었다.네 집안 식구가 모두 모여 소파만으로는 자리가 부족했다. 젊은 사람들은 나무 의자를 가져와 바깥쪽에 둘러앉았다.분위기는 꽤 엄숙했다.보통 이런 식으로 온 가족을 모으는 건 집안에 큰일이 생겨 다 같이 의논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지용식은 영문을 몰라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 큰아들과 큰며느리를 바라봤다.“준석아, 대체 무슨 일이냐?”지준석은 여전히 엄숙한 얼굴이었다.도미란이 몸을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조금 있으면 아시게 될 거예요.”모두 자리에 앉아 조용해지자 지준석은 싸늘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본 뒤 지상훈에게 말했다.“상훈아, 이 일은 강산이와 관련돼 있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기다리지 않겠다. 중요한 일인 만큼 강산이가 끼어들게 해서도 안 돼.”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지상훈도 놀라 물었다.“형, 무슨 일인데 그렇게 심각해? 강산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바깥쪽 의자에 앉아 있던 허서령은 그 말을 듣고 이 일이 자신과 관련돼 있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다.오늘 동지 모임은 가족끼리 즐겁게 모이는 자리가 아니었다. 자신을 겨냥해 마련한 거대한 함정에 가까웠다.아직 식사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큰아버지는 벌써 서두르고 있었다. 지강산이 오기 전에 개입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을 먼저 정리하려는 모양이었다.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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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모두가 지준석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시선이 한꺼번에 허서령에게 쏠렸다.허서령은 심장이 꽉 조여 왔다. 손난로 안에 넣고 있는 두 손도 여전히 차가웠다. 수많은 시선을 받으니 두피까지 저릿했다.지은영은 바로 불안해져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지강산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지강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큰아버지는 계속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서로 사랑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적어도 감정이라는 건 있겠죠. 그런데 사랑도 없이 이해득실만 따져 내린 선택이라면 그건 허영이고, 권력을 탐하는 거고,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지상훈의 얼굴이 굳었다.“형, 지금 누군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다 가족이잖아. 알아들을 수 있게 똑바로 말해 줘.”“좋아. 그럼 대놓고 말하지. 난 강산이가 허서령과 결혼하는 걸 반대한다. 여기 있는 어른들도 강산이의 어른인 만큼 나와 같은 입장을 취해 줬으면 해.”지준석은 화가 난 표정으로 손을 들어 허서령을 가리켰다.“절대로 이 여자를 우리 지씨 집안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선 안 돼.”순간 모두가 놀랐다.지준석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고 강하게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지용식은 더 듣고 있을 수 없어 얼른 말했다.“준석아, 말이 너무 심하다.”“아버지는 잠깐 가만히 계세요. 일단 들어 보시면 돼요.”지상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자기 아들의 결혼 상대를 부모인 자신도 반대하지 않는데 형이 나서서 이래라저래라하며 온 가족까지 끌어들여 반대하라고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래도 형의 체면을 생각해 당장은 참았지만 얼굴빛은 갈수록 좋지 않았다.하선희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주버님, 서령이는 강산이를 허영 때문에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보려고 이용하는 것도 아니에요. 강산이가 누구를 만나든 그 문제까지 아주버님이...”지준석은 날카롭게 말을 끊으며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제수씨, 이 녹음부터 한번 들어 보고 그런 말을 해요. 아직 며느리도 아닌 그 여자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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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잠시 뒤 성능 좋은 큰 스피커에서 전화 통화 녹음이 흘러나왔다. 허서령의 목소리가 거실 전체에 울렸다.녹음은 앞뒤가 잘려 있었고 중간 내용도 일부러 삭제돼 있었다. 허서령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도, 앞뒤 상황도 알 수 없게 편집한 것이었다.그런 불완전한 녹음 일부만 재생됐다.녹음 속 허서령이 말했다.“큰아버지, 전 기억을 잃었고 지강산을 예전처럼 깊이 사랑하지도 않아요. 지금은 여러 조건을 따져서 선택한 거예요. 전국을 다 찾아봐도 지강산보다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겠죠.”“나도 이미 서른이라 지강산보다 더 나은 남자를 찾는 데 시간을 쓸 여유가 없어요. 다른 남자를 2, 3년씩 다시 알아가고 싶지도 않고요. 지강산은 집안도 부유하고 배경도 탄탄하고, 얼굴도 잘생겼고 몸도 좋아요.”“무엇보다 저를 아껴 주고 잘 챙겨 줘요. 제가 바보도 아닌데 굳이 그 사람을 포기할 이유가 없죠. 아버지 사건이 재심 되지 않더라도 전 강산 씨와 결혼할 거예요.”지준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냐? 정말 그 애 인생을 망치고 싶은 거야? 예전의 넌 이러지 않았어. 그 애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 주려고 했잖아. 너...”허서령이 말을 끊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큰아버지, 그런 거창한 얘기는 하지 마세요. 지금 전 그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조건을 따져 결혼 상대로 적합한지를 보고 있는 거예요... 두고 보세요. 제가 어떻게든 강산 씨를 유혹해서 직장도 그만두게 하고 저랑 결혼하게 만들 테니까.”녹음이 끝나자 현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모두 충격받은 얼굴이었고 표정에는 심각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평소 허서령을 많이 아껴 주던 가족들조차 이번에는 말이 없어졌다. 녹음 내용에 놀라 멍해진 것이다.가족들은 모두 지강산의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성취와 그가 하는 일을 큰 명예로 여겼다. 결국 가족들이 먼저 사랑하는 사람은 지강산이었고, 허서령은 지강산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함께 아껴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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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맞아. 절대로 집안에 들이면 안 돼.”큰고모는 지상훈과 하선희를 보며 말했다.“상훈아, 올케, 둘도 말 좀 해 봐. 입장을 분명히 해야지. 절대 저 여자가 강산이 일을 망치게 두면 안 돼.”거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허서령을 몰아세우며 자기 의견을 말했다.비난하고, 무시하고, 공격했다.평소 말이 많지 않은 사촌 동생들조차 작게 불만을 중얼거렸다.지준석이 엄숙하게 물었다.“상훈이랑 제수씨, 두 사람 생각은 어때요?”지상훈과 하선희의 얼굴에는 고민이 가득했다.지상훈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선희가 대신 입을 열었다.“아주버님, 이 일을 우리 아들 빼놓고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어요. 강산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부모인 우리는 아들 선택을 존중할 거예요.”지준석이 화를 냈다.“답답하고 어리석네요! 저 여자는 제수씨 아들을 사랑하지도 않고, 심지어 아들의 인생까지 망치려 한다는데 뭘 존중해요?”지태일의 굵은 목소리가 단호하게 울렸다.“큰아버지, 녹음 중간에 삭제한 부분이 있죠? 앞뒤를 잘라내면 사람 말을 가장 쉽게 오해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위험한 편집이고요.”지준석은 지태일을 노려봤다.“저건 허서령이 직접 한 말이야. 본인도 인정했잖아. 다른 말이 뭐가 중요하지?”“당연히 중요하죠.”지태일은 담담하게 웃었다.“서령이 말투를 들어 보면 큰아버지를 협박하는 것처럼 들려요. 왜 협박했는지,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틀어 놓고 다 같이 들어 본 뒤 판단하는 게 맞죠.”지준석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로운이 느긋하게 말했다.“뻔뻔한 사람은 못 당한다더니. 당연히 아버지한테 자기랑 강산이 결혼하는 데 끼어들지 말라고 협박한 거겠지. 우리 부모님이 원래 저런 배경도 없는 여자를 못마땅해하셨으니까.”지태일은 주먹을 꽉 쥐고 지로운를 날카롭게 꾸짖었다.“사촌 형, 말 좀 가려서 해.”지로운는 입을 다물었다. 지준석이 대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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