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11 -الفص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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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이유라는 김도진과 이야기를 끝내자 마자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서둘러 갈아 입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니 엉망이 된 머리칼이 보였지만, 그걸 정리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생각하지 말자. 그냥 일하러 온 거야.’애써 심장을 진정시키며 거실로 나온 유라는 자신이 어질렀던 침실을 정리하며머릿속에 가득 찬 복잡한 생각들을 함께 지워내려 애썼다.같은 시각, 도진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휴대폰 화면을 쓸어 넘기고 있었다. 매끈한 액정 위로 불쾌한 기사가 떠올랐다.[실시간 1위 : 김도진 유태희 스캔들]“하….”도진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이번 영화의 상대역인 유태희. 그녀는 도진에게 그저 대본대로 대사를 주고받는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유태희는 영악했다.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은근슬쩍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스태프들이 보는 앞에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도진이 소름 끼칠 정도의 무관심으로 일관할수록, 그녀의 눈빛은 기묘한 승부욕으로 번뜩였다.‘김도진, 너라고 별수 있겠어?’유태희는 확신하고 있었다. 도진의 그 오만한 눈빛이 자신을 향한 갈망으로 변하는 순간을. 그의 재력, 큰 키, 신이 빚어놓은 것 같은 얼굴. 그 모든 것을 제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상상을 하며 그녀는 뒤에서 교묘하게 여론을 조작했다.도진은 미간을 팍 구긴 채 휴대폰을 소파 위로 툭 던져버렸다. 가짜 미소와 계산된 스캔들. 화면 속 세상은 온통 오물투성이였다.그때, 침실을 정리하고 나온 이유라의 손길이 소파 근처까지 닿았다.도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정리하느라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유라의 뺨과, 잔뜩 긴장해 꼿꼿하게 굳은 어깨.세상은 온통 그를 어떻게든 이용해 보려 안달인데, 이 여자는 달랐다. 톱스타 김도진이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건 말건, 그저 자신이 시킨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그 지독하리만큼 정직한 무관심이, 오히려 도진의 비틀린 신경을 건드렸다.김도진의 따가운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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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그만 가봐.”결국 뱉어낸 말은 생각보다 더 차갑고 딱딱했다. 도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쾅, 소리 없이 닫힌 문 너머로 유라의 잔뜩 위축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죄송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닫힌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유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큰 실수를 저지른 게 분명했다. 이 자리는 간절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높은 월급, 그리고 지금 자신의 처지에서 이만한 조건의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는 없었다. 유라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도진은 그녀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텅 빈 거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집에 돌아온 유라는 쉴 틈이 없었다.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도진의 스케줄 표를 몇 번이고 되새긴 후에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고열의 후유증인지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기만 했다.“그래, 지나간 일은 생각해서 뭐 해. 당장 하루 살기도 벅찬데…….”지끈거리는 머리를 짓누르며 유라는 강제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맞춰 기계처럼 일어난 유라는 샤워를 마친 뒤 마스크로 창백한 얼굴을 가렸다. 활동하기 편한 후드 차림에 패드를 챙겨 든 그녀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항상 세트장에서만 진행되던 촬영이었으나, 오늘은 드물게 야외 로케이션이 잡혀 있었다. 유라는 로드 매니저와 함께 도진의 집 앞에 도착해 정중히 문자를 남겼다.[이유라 매니저] : 안녕하세요, 도진 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10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세요.문자가 전송되고 5분이나 지났을까.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열리며 김도진이 모습을 드러냈다.특별히 꾸미지 않은 차림이었으나, 그가 걸어 나오는 순간 공기의 농도가 달라졌다. 몸의 선을 따라 유려하게 떨어지는 검은색 슬랙스는 그의 긴 다리를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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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유라는 애써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가까워진 거리 탓에 그의 진한 체향이 훅 끼쳐 왔다.“안녕하세요. 푹 주무셨나요?”최대한 매니저다운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으나, 도진의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덕분에.”어제와 다름없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말투. 유라는 조용히 문을 닫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그녀는 패드를 열어 오늘의 스케줄을 읊기 시작했다.“오늘은 카페에서 야외 촬영이 있어요. 오전 10시부터 도진 님 단독 씬을 먼저 촬영하고, 2시쯤 유태희 씨와 연결된 씬을 찍는다고 전달받았습니다.”하지만 뒤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유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살폈다.도진은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밖으로 흐르는 빛이 그의 오뚝한 콧날과 날렵한 턱선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속눈썹 아래로 느껴지는 피곤 기색은 그에게 왠지 모를 나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더했다.‘많이 피곤한가….’유라는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고른 숨소리 외에는 엔진 소리만 들리는 차 안, 유라는 괜히 마스크를 고쳐 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차 안의 고요함은 산산조각이 났다. 도진의 촬영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카페 주변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팬과 취재진이 바리케이드를 에워쌌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총성처럼 쏟아졌다.“도진 씨 왔다!”“김도진! 여기 봐주세요!”함성 속에 차 문이 열리고, 눈을 감고 있던 도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차 안에서의 나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눈빛을 갈아끼우며, 대중을 압도하는 톱스타의 서늘한 아우라를 뿜어냈다.보디가드들이 도진의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싸며 거칠게 길을 터 나갔다. 플래시 세례와 터질 듯한 함성 속에서 도진은 구름 같은 인파를 가르며 전진했다. 하지만 그 빠른 속도를 따라가기에 오늘 유라의 몸은 너무도 무거웠다."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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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그때, 대기실 문이 힘겹게 열렸다.이유라 였다.“죄송해요… 들어올 때 살짝 넘어져서, 매무새 좀 정리하느라 늦었습니다.”들어오는 유라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발목을 접질렸는지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에가냘픈 어깨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인파에 휩쓸리며 옷이 뜯기기라도 한 건지, 헐렁한 후드 티셔츠의 넥라인이 길게 늘어져 그녀의 하얀 목선과 쇄골 라인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쓰고있던 마스크조차 벗어던진 유라는 엉망이 된 머리를 대충 쓸어 올려 묶은 상태였다.사람들 앞에 평소 자신을 꽁꽁 감싸고 있던 베일이 벗겨진 순간이었다.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자리 잡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열기로 붉어진 볼과 젖은 속눈썹이 도진의 시야에 박혔다.질끈 묶은 머리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덜미와 땀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잔머리.그 후질근하고 처량한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도진의 본능을 자극했다.거칠게 몰아쉬는 그녀의 숨소리가 조용한 대기실 안을 메우자,메이크업을 받던 도진의 눈빛이 형형하게 가라앉았다.“이유라.”도진이 자신을 만지던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유라의 앞에 섰다. 압도적인 피지컬이 그녀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그는 늘어진 그녀의 옷가지 사이로 드러난 쇄골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너 지금 꼴이 어떤지 알고나 떠드는 거야?”화가 난 건지, 아니면 다른 감정에 휩싸인 건지 알 수 없는 도진의 서늘한 눈빛이 유라의 입술에 머물렀다. 도진의 손가락이 유라의 훤히 드러난 목덜미 근처를 스칠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늘어진 옷깃을 움켜잡았다.“도대체 일 좀 제대로 할 수 없어?”도진의 서늘한 일침이 대기실의 정적을 깼다. 그 말투에 담긴 것이 걱정인지, 아니면 정말 한심함인지 유라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가슴을 후비는 통증에 기가 죽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한 게 있긴 한가.’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 주눅 든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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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가녀린 어깨라인 아래로 푹 파인 네크라인을 따라 매끄러운 쇄골이 도드라졌다. 몸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훑고 지나가는 타이트한 핏은 유라의 가느다란 허리선을 집요하게 강조했고, 그 위로 봉긋하게 솟은 가슴 곡선이 아찔한 존재감을 드러냈다.특히 얇은 천 너머로 살짝 비치는 속옷의 흐릿한 실루엣은 오히려 보일 듯 말 듯 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머리를 대충 질끈 묶어 올리자,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뒷목과 유려한 목선이 시원하게 드러나며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분위기까지 더해졌다.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지금의 유라는 위험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어깨와 그에 대비되는 아찔한 곡선미. 화장실에서 돌아와 대기실 문앞에 선 그녀의 모습에, 분주하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스태프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유라에게 꽂혔다. 대기실 밖 복도를 지나던 남자 스태프들마저 걸음을 멈추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와, 저 친구 누구야? 모델인가?”“분위기 장난 아닌데…….”낮게 깔리는 감탄사와 시선들이 화살처럼 유라를 향해 쏟아졌다. 그 소란스러움에 감고 있던 김도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시선 역시 문 앞에 서 있는 유라에게 붙박였다.몸에 선명하게 밀착되어 그녀의 가녀린 체구와 은밀한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얇은 티셔츠. 도진은 당혹감을 감추려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옷을 갈아입으라 지시한 건 자신이었지만, 저토록 노골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차림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당장이라도 무언가 덧입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저 유라를 지켜보는 입장일 뿐이었다. 도진은 요동치는 속내를 감추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차에 핸드폰을 놓고 왔어. 가져와.”애써 시선을 돌리며 던진 무심한 명령이었다.“네, 알겠습니다.”유라는 짧게 답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발목에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이곳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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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촬영장 안의 공기는 여전히 이유라를 중심으로 미묘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촬영준비를 마친 김도진은 카메라 앞에 서서 조명과 구도를 체크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한쪽 구석에 웅크려 앉은 유라에게 향해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촬영을 기다릴 뿐이었지만, 얇은 티셔츠 위로 드러난 가녀린 실루엣은 어두운 촬영장 한구석에서도 지독하게 시선을 끌었다. 곁을 지나가는 남자 스태프들의 눈길이 약속이라도 한 듯 유라의 깊게 파인 쇄골과 잘록한 허리선에 머물렀다.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노골적으로 훑고 지나가는 그 지저분한 시선들을 같은 남자인 도진이 모를 리 없었다.유라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뒷목과 옷감 너머로 비치는 은밀한 라인. 도진의 미간이 거칠게 좁아졌다. ‘저 여자는 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이유라“결국 도진이 참지 못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유라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진한 눈망울이 지금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진은 되레 화가 치밀었다.“너, 지금 당장 대기실로 들어가.”“네……? 하지만 곧 촬영 시작하신다고…… 제가 그래도 있어……야…….”유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도진은 거칠게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는 성큼 다가와 유라의 앞에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며 낮게 읊조렸다.“말 안 들려? 여기서 얼쩡거리면서 내 신경 건드리지 말고 대기실에서 기다려”서슬 퍼런 반말과 함께 쏟아지는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이 되어 유라를 짓눌렀다. 도진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 평소보다 훨씬 사납고 뜨거웠다.유라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도진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내가 뭘 잘못했지? 분명 나한테 화가 나셨어.’유라는 도진이 화난 이유가 자신이 촬영 준비를 제대로 돕지 못해서이거나, 옷을 갈아입느라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결국 유라는 아픈 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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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아…… 예! 그럼 저희는 밖에서 먹겠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세요!”스태프들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구원이라도 받은 듯 서둘러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사실 도진의 숨 막히는 카리스마 앞에서 밥을 먹는 건 체하기 딱 좋은 일이었기에, 그들은 오히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딸깍.문이 닫히고, 넓은 대기실 안에는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유라의 심장은 바닥 없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손끝이 덜덜 떨려 도시락 뚜껑조차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매니저랑 할 이야기라니……? 지금 이 대기실에 매니저는 나밖에 없는데.'아까부터 자신을 짐승 보듯 차갑게 몰아세우던 태도, 살벌하기 짝이 없던 말투, 모든 정황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진은 지금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확실했다.'설마…… 잘리는 건가? 오늘 당장 그만두라고 하려고 사람들까지 다 내보낸 거야?'불안감이 목을 조여왔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유라는 억지로 마른침을 삼키며 돌아섰다. 도진은 벌써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오직 유라 한 사람만을 강렬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이유라 도시락, 다 내려놓고 이쪽으로 와.”조용히 대기실을 울리는 도진의 거친 음성에, 유라의 가녀린 어깨가 크게 움찔 떨렸다.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억누르며, 유라는 도진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아까 넘어지면서 꺾인 발목이 비명을 지르듯 욱신거렸다. 순간 중심이 흔들려 몸이 움찔 절뚝였지만, 유라는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삼켰다.하지만 그 처절한 노력을 김도진이 놓칠 리 없었다.제 앞에 다가와 선 유라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얇은 티셔츠 너머로 잘게 떨리는 가녀린 어깨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도진은 그 모습이 묘하게 신경을 긁어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더 차갑게 깔았다.“다리는 또 왜 그래?”“……별거 아닙니다.”유라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가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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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띠리링-.팽팽하게 당겨진 침묵을 깨고 유라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깜짝 놀란 유라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감히 도진의 앞에서 전화를 받을 여유 따윈 없었다.“죄송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정말…….”유라가 급히 변명을 이어가려던 찰나, 거짓말처럼 다시 한번 진동과 함께 벨소리가 대기실을 채웠다. 집요하게 화면 가득 피어오른 발신인의 이름에 유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도현 오빠]그 네 글자가 도진의 시야에 정통으로 박혔다. 순간, 도진의 눈빛이 짐승처럼 사납게 번뜩였다.‘도현 오빠……?’심장이 쿵 내려앉는 불쾌감과 함께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도현. 국내 최고 사립 병원장의 아들이자, 태생부터 도진의 부모와 얽혀 늘 지긋지긋한 비교 대상이 되었던 숙적. 사교계에서 완벽한 황태자라 불리는 그 오만한 새끼의 이름이, 왜 지금 이유라의 휴대폰 화면에 뜨는거지?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친밀감이 도진의 이성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안 그래도 얇은 옷차림 때문에 속이 뒤틀리던 참이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이도현이라니.몇칠 전의 기억이 도진의 머릿속을 사납게 헤집기 시작했다. 첫 회식 날, 정신을 잃은 이유라를 흔적도 없이 채 가듯 데려갔던 이도현이었다.‘이도현 그 새끼랑 도대체 무슨 사이인 거지?도진의 턱끝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유라를 집어삼킬 듯 응시하며, 낮고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했다.“받아.”“네……? 아니에요 제가 나중에 다시......”“받으라고 했어.”거부권을 박탈하는 강압적인 어조에 유라의 숨이 턱 막혔다. 도진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마치 사냥감을 구석에 몰아넣은 맹수처럼 서슬 퍼런 눈으로 유라의 손끝을 주시했다. 유라는 도진의 기세에 눌려 결국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밀어 올렸다.달깍, 하는 소리와 함께 수화기 너머로 도진에게도 익숙한, 그 부드럽고 오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유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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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유라야? 유라야! 지금 옆에 누구 있어?!]수화기 너머 이도현의 목소리가 급박하게 갈라졌지만,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유라의 혀를 집요하게 얽어매며 그녀의 숨을 모조리 앗아갔다. 아찔한 쾌감이 뒤섞인 마찰음이 대기실의 정적을 사정없이 헤집었다.한참 뒤, 타들어 갈 것 같은 입술을 거칠게 떼어낸 도진이 붉게 젖은 유라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느리게 훔쳐냈다. 숨 가쁘게 들썩이는 유라의 쇄골 위로 도진의 뜨거운 숨결이 쏟아졌다.도진이 수화기를 향해, 그리고 눈물 고인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라를 향해 낮고 은밀하게 속삭였다.“아무 일도…… 없다고?”유라의 귓가를 간지럽히는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소름 끼치도록 섹시했다. 수화기 너머 이도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김도진이 유라의 귓가에 닿을 듯 낮게 속삭인 그 한마디는 대기실의 공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이제 아무 일이 생겼네?”도진의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매끄럽게 걸렸다. 방금 전까지 몰아쳤던 폭압적인 열기와는 대조적인, 소름 끼치도록 오만한 태도였다.그의 품에 갇힌 유라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밀착된 얇은 브이넥 티셔츠 너머로 유라의 가녀린 몸이 잘게 떨리는 게 도진의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당황스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이 무자비한 상황에 대한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무엇보다 제 온기를 처음으로 남에게 빼앗겼다는 충격이 유라의 머릿속을 하얗게 탈색시켰다.이유라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이내 커다란 눈망울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사실 유라는 어디를 가나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고백해 오는 남자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불우한 환경은 그녀에게 연애라는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빠 남자에게 눈길 한 번 줄 여유조차 없었던 유라에게, 오늘 이 순간은 인생의 첫 경험이자 지독한 폭력과도 같았다.하지만 김도진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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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비참함이 한계에 다다르자, 억누르던 눈물이 결국 유라의 하얀 뺨을 타고 툭, 툭 흘러내렸다. 얇은 브이넥 티셔츠 너머로 잘게 떨리는 가녀린 어깨가 유라가 느끼는 수치심의 깊이를 대변하고 있었다.도진은 제 손등 위로 떨어지는 유라의 뜨거운 눈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치 데인 것처럼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오히려 유라의 턱을 쥔 손가락에 은근한 힘을 주며 그녀의 아찔한 눈물 자국을 집요하게 응시했다.도진의 잔인한 독설이 끝난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유라의 인내심이 결국 처참하게 끊어져 버렸다.“흐어어엉……! 흡, 흐윽……!”숨을 죽이고 참아내던 유라가 결국 아이처럼 서럽게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 수준이 아니었다. 첫키스를 빼앗긴 수치심, 그리고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는 비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유라는 온몸을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서럽게 울부짖는 유라의 새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눈물로 엉망이 되어 숨을 헐떡이는 그 모습은, 지독하게 안쓰러우면서도 보는 이의 파괴욕을 자극할 만큼 잔인하게 매혹적이었다.“……!”이유라의 울음 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채우자, 도진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굳어버렸다.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도진의 주변에는 어떻게든 그와 얽혀보려 꼬리를 치거나, 그의 거친 행동조차 유혹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가식적인 여자들뿐이었다. 울더라도 예쁘게 눈물만 훔치는 여자들과 달리, 눈앞의 유라는 정말 상처받은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순간적인 당황함이 도진의 전신을 지배했다.‘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으며 할 말을 잃은 도진은, 유라의 목덜미와 손목을 강압적으로 움켜쥐고 있던 손을 저도 모르게 스르륵 떼어냈다. 손을 떼자마자 유라는 도망치듯 벽 구석으로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유라를 잡았던 도진의 커다란 손바닥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고 미세하게 떨렸다. 가식 없는 유라의 처절한 거부와 오열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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