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21 -الفص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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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도진은 유라의 앞에 성큼 다가가 차갑고 묵직한 목소리로 툭 던졌다.“오늘 촬영 끝났어. 따라와.”유라는 도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방금 전 대기실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고용주인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라는 아픈 발목을 억지로 지탱하며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촬영장 건물 밖으로 나서자, 도진을 기다리던 수많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함성 소리로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정문에서 전용 차량이 대기 중인 곳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의 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아까 대기실로 올 때처럼, 발목이 삔 유라가 군중들에게 밀려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뒤처질까 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다치게 한 발목이라는 죄책감과 묘한 소유욕이 발을 무겁게 만들었다.결국 도진은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제 뒤를 바짝 따르던 거구의 보디가드 한 명에게 낮게 명령했다.“뒤에 매니저, 잘 챙겨.”짧고 간단한 명령이었지만,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감과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수많은 팬과 카메라 플래시를 뚫고 간신히 차에 올라탄 후에도, 김도진과 이유라 사이에는 지독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차는 도진의 집 앞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도진은 로드 매니저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이번 주는 스케줄 비우고 쉴 거야. 매니저 집 앞에 데려다주고 퇴근해.”“네? 아…… 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갑작스럽게 생긴 일주일간의 황금 휴가에 로드 매니저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차가 다시 미끄러지듯 출발하고 도진의 실루엣이 백미러 너머로 사라진 후에야, 유라는 참았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욱신거리는 발목보다 도진에게 당한 수치심과 비참함에 가슴이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얼마 후, 유라의 허름한 집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유라가 겨우 몸을 추스르며 차에서 내린 순간, 그녀의 서늘한 눈동자가 크게 확장됐다.집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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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바닥끝까지 내려앉았던 도현의 이성이 유라의 아픈 비명소리에 간신히 돌아왔다.철컥, 힘이 풀리듯 도현이 억세게 쥐고 있던 유라의 손목을 놓았다. 도현의 손길이 떨어지자마자 유라는 균형을 잃고 뒤로 움찔 물러섰고, 그 과정에서 절뚝거리는 유라의 발목을 도현이 매섭게 포착했다.“발목은 또 왜 그래? 어쩌다 다쳤어?”억누르려 해도 튀어나오는 다급함과 분노 섞인 질문에 유라는 고개를 숙였다.“……살짝 넘어졌어요.”도현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소리쳤다.“연락은 왜 안 되는 거야! 내가 너 때문에…… 하, 됐다!!”차마 입 밖으로 모든 상황을 들었다고 이야기 할수 없어 도현이 마른 세수를 했다.도현의 화가난 말투에 유라는 본능적으로 제 얇은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매끄러운 감촉 대신 텅 빈 허전함이 손끝에 닿았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기실에서 도진에게 쫓기듯 뛰쳐나오느라 휴대폰을 그대로 바닥에 두고 온 게 분명했다.“하아…… 휴대폰을 촬영장에 두고 왔나 봐요....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도현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유라에게 건넸다.유라는 자신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밀어 올렸다.뚜르르르-. 뚜르르르-.적막한 가로등 밑, 몇 번의 신호음이 이어지는 동안 유라는 침을 삼켰다. 이윽고 달깍,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여보세요?”유라가 다급하게 수화기에 대고 말했지만, 건너편에서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숨소리만이 파도처럼 낮게 출렁일 뿐이었다. 스태프 중 누군가 주운 것이라 생각한 유라가 서둘러 말을 이어 붙였다.“제가 휴대폰을 촬영장 대기실에 두고 온 것 같은데…… 혹시 가지고 계신 곳 알려주시면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가겠다는 유라의 말이 끝나자, 수화기 너머로 기괴할 정도의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낮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유라의 귓가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차갑고 매혹적인 음성.“이유라, 아주 바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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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김도진……!”도현이 짓이기듯 도진의 이름을 불렀지만, 도진은 대답 대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뚝-.냉정한 기계음과 함께 가로등 밑에는 지독한 적막이 찾아왔다. 피가 꺼지는 듯한 고요 속에서, 핏발이 선 채 이성을 잃고 떨고 있던 이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라를 응시했다.“이유라.”늘 부드럽게 감싸주던 ‘유라야’가 아니었다. 낮고 서늘하게 가라앉은 도현의 음성이 유라의 목덜미를 거칠게 긁었다. 그의 시선이 유라의 얇은 브이넥 티셔츠 사이로 잘게 떨리는 하얀 쇄골과, 김도진의 흔적이 남은 듯 붉게 부어오른 입술에 맹렬하게 꽂혔다.“저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딴 전화를 받아?오빠라는 다정한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질투로 까맣게 타버린 한 남자의 위험한 눈빛이 유라를 사정없이 옭아매고 있었다.“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유라가 도현의 처음 보는 서슬 퍼런 모습에 깊은 두려움을 느끼며 간신히 아랫입술을 뗐다.하지만 도현의 분노와는 별개로, 유라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어쨌든 그녀는 고용주인 김도진의 집으로 가야 했다. 계약서 도장을 찍을 때 도진이 은근히 흘렸던 막대한 위약금 이야기도 마음에 걸렸고,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려면 이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제 모든 일상이 담긴 휴대폰을 그 오만한 남자의 손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유라는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태우고 있는 도현에게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타들어 가는 담뱃불이 도현의 차갑게 가라앉은 옆얼굴을 위태롭게 비추고 있었다.“오늘 제 걱정 돼서 오신 거…… 정말 감사해요. 일단 들어가세요. 제가 휴대폰 찾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지독하게 현실적인 유라의 거절이었다. 김도진에게 가겠다는 유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현의 표정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변했다.화악-, 도현이 피우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며 유라를 향해 거칠게 돌아섰다. 억누르려던 이성이 통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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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유라는 사양하려 했지만, 사실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파 더는 버티기 힘든 상태였다. 결국 도현의 강압에 못 이겨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 안의 따뜻한 온기가 감돌자, 오늘 하루 동안 몰아쳤던 끔찍한 사건들과 폭발적인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기 시작했다. 유라는 밀려드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 ‘툭-’ 하고 무겁게 차 문이 닫히는 소리에 유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둘러본 유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병원이 아니었다. 높게 솟은 담장과 한적한 공기가 감도는 곳이었다.“여긴…….”그때 조수석 문이 활짝 열리며 도현이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을 등진 그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내려.”“……여긴 오빠 집이잖아요. 병원이 아니고 왜 여기로……?”“집에 웬만한 의료 장비는 다 있어. 내려, 치료해 줄게.”의사인 도현의 집이라는 공간은 유라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대기실에서 도진에게 당했던 강압적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본능적으로 두려웠다.“아니에요, 오빠. 저 여기서 택시만 불러주시면…… 저 혼자 병원 갈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휴대폰이 없으니 스스로 택시를 부를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지금의 이도현이 유라의 뜻대로 순순히 택시를 불러줄 리 만무했다. 도현이 차 문을 짚은 채 몸을 숙여 유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서늘하게 긁었다.“내가 그렇게 하기 싫다면?”범접할 수 없는 중압감에 유라는 숨을 흡 들이켰다. 한적한 고급 주택가라 인적도 없었고, 휴대폰마저 없으니 도망칠 방법이 아예 없었다. 유라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도현이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하지만 제대로 딛지도 못하고 휘청이는 유라의 모습이 도현의 눈을 자극했다. 다른 남자의 흔적을 달고 제 앞에서 아파하는 꼴이 보기 싫었던 도현은, 거칠게 유라의 허리를 낚아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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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도현은 소파 위로 힘없이 늘어진 유라의 가녀린 몸을 두 팔로 천천히 안아 올렸다. 얇은 브이넥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쇄골이 그의 눈을 자극했다.도현은 품에 안긴 유라를 제 침실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폭신한 침대 위로 유라를 눕힌 그는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그 순간, 유라가 잠결에 자리를 뒤척이며 옆으로 누웠다. 얇은 브이넥 티셔츠가 옆으로 허물어지며 새하얗고 가녀린 턱선과 쇄골, 그리고 잘록한 허리선이 위험하리만치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부서질 듯 연약한 그 자극에 도현은 마침내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오랜 시간 다정한 오빠의 가면 뒤에 숨겨두었던, 가쁘고 거친 욕망이 이도현의 이성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사실 도현은 오늘 낮부터 김도진과 유라의 상황 때문에 극도로 눈이 뒤집혀 있던 상태였다. 전화를 타고 실시간으로 들려오던 유라의 서글픈 울음소리, 김도진의 폭압적인 행위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며 그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 불쾌하고 지독한 질투심이 도현의 이성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성큼 침대 위로 올라탄 도현이 유라의 목덜미를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지만 억세게 잡아 올려, 그대로 붉은 입술을 집어삼켰다.“……읍!”강압적이고 짓이기는 듯한 키스에 숨길이 턱 막힌 유라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머리는 여전히 몽롱하고 흐릿했지만, 자신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도현의 단단한 체격과 뜨거운 숨결에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오빠…… 읍, 읏……!”유라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도현의 단단한 어깨를 강하게 밀어냈지만, 틈을 주지 않고 파고드는 도현의 거친 입술에 가로막혀 짓눌린 신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단단한 도현의 압도적인 체구와 힘을 감당하기에 유라는 너무나 작고 연약했다.도현은 제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유라의 반항에 오히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흥분과 맹렬한 소유욕을 느꼈다.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도망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녀를 완전히 부수어서라도 제 침대에 묶어두고 싶다는 야성적인 본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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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도현은 유라의 가녀린 허리를 제 단단한 허벅지로 내리누르며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를 거칠게 탐하기 시작했다. 오직 김도진의 흔적을 지우고, 이 여자는 온전히 제 것이라는 듯 거칠게 깊고 붉은 표식을 새겨나갔다. 찌릿한 통증에 유라의 아픈 신음이 터져나왔다.“아윽……! 오빠, 아파요…… 흡, 제발……!”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목덜미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지는 통증은 너무나 선명했다. 유라는 가냘픈 고개를 뒤로 꺾으며 도현의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으려 했지만, 도현은 사정없이 유라의 하얀 살결을 집요하게 파고들 뿐이었다.낙인이라도 찍듯 잔인하게 새겨지는 붉은 자국들이 유라의 쇄골 라인을 따라 번져나갔다. 도현의 거친 숨결이 닿을 때마다 유라는 소름이 돋는 듯한 공포와 절망감에 몸을 잘게 떨었다.유라가 고통스럽게 신음할수록, 도현의 허벅지에 들어가는 힘은 더욱 단단해졌다. 제 아래에서 흐느끼며 아파하는 연약한 몸짓이 전해질 때마다, 오늘 낮부터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김도진에 대한 불쾌한 질투심이 하얗게 타오르는 소유욕으로 치환되었다.그 순간, 귓가를 찌르는 유라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도현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광기 어린 열망이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차갑게 내려앉은 이성이 그의 시야를 강제로 틔웠다.도현은 굳어진 채 제 아래에 갇힌 유라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이미 눈물과 땀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가슴을 들썩이며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가 적막한 침실을 애처롭게 울렸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목덜미부터 쇄골 라인까지, 자신이 잔인하게 새겨놓은 붉고 선명한 표식들이 유라의 하얀 살결을 난잡하게 뒤덮고 있었다.무엇보다 도현의 심장을 가장 크게 난도질한 것은 제 한 손에 꽉 쥐여 있던 유라의 가녀린 손목이었다.자신도 모르게 강한힘을 준 탓에 유라의 하얀 손목은 이미 빨개지다 못해 푸르스름한 멍이 울컥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손목이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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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기다려. 데려다줄게…….”그 무거운 목소리에는 어떠한 강압도 없었지만, 유라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절뚝거리며 방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두 남자 사이에서 처절하게 짓밟힌 유라의 밤이, 잔혹한 새벽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유라의 집 앞에 도착해 차가 멈춰 섰다. 도현은 차에서 내려 유라가 탄 조수석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었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두 사람 사이의 숨 막히는 침묵을 갈랐다.조도가 낮은 가로등 불빛 아래로 드러난 도현의 얼굴은, 이 잔인한 상황 속에서도 기가 막힐 정도로 수려했다. 날카롭게 베일 듯한 콧날과 조각 같은 턱선, 그리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가라앉은 깊은 눈매는 평소 언론에서 찬사받던 그 잘난 외모 그대로였다. 하지만 완벽하다 못해 서늘함마저 풍기는 그 잘생긴 얼굴은, 지금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도현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내리는 유라를 차마 붙잡지도 못한 채,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유라야…… 오늘 일은 정말 사과할게. 다 내 잘못이야. 다 내가 미쳐서 그랬어.”가라앉은 도현의 목소리에는 자책이 무겁게 배어 있었다. 여전히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유라에게는 그저 두려운 맹수의 모습일 뿐이었다. 유라는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엉망이 된 몸을 숨기듯 옷깃을 여미며 메마른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알겠어요…… 먼저 들어갈게요.”용서도, 원망도 담기지 않은 유라의 건조한 대답이 도현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절뚝거리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도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익, 불을 붙이자 붉은 불꽃이 어둠을 가르고 뿜어져 나왔다. 연기 사이로 비치는 도현의 옆모습은 퇴폐적이면서도 잔인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이윽고 유라의 집 창문에 툭 하고 노란 불빛이 켜졌다. 그녀가 안전하게 집에 들어갔음을 확인한 후에야 도현은 길게 타버린 담배 재를 거칠게 털어내며 차에 올라탔다.핸들을 잡은 도현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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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머릿속은 이미 온갖 지독한 상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지 않는 유라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있을지 생각할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도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차 키를 낚아챘다. 제 통제를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그 가녀린 손목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꺾어놓기 위해, 도진은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얼굴을 가릴 마스크를 신경질적으로 쓰고 펜트하우스를 나섰다.화려한 스포츠카의 엔진음이 새벽의 도로를 찢어발기듯 울렸다. 거칠게 핸들을 꺾으며 도착한 곳은 유라가 사는 낡은 빌라 앞이었다. 도진은 차에서 내려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 유라의 집 문 앞에 섰다.쾅! 쾅! 쾅!“이유라! 문 열어!”거칠게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문틈 너머로는 지독한 침묵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창문을 올려다보아도 방 안은 불이 꺼진 채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신경질적으로 차에 올라탄 도진이 시동을 거는 찰나 짙은 새벽안개를 뚫고 멀리서 고급 수입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골목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차량 번호, 그리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남자와 내리는 여자.이도현과 이유라였다.‘이 새벽까지…… 단둘이 같이 있었다고?’도진의 안광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머릿속으로만 하던 상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자, 핏줄이 터져 나갈 듯한 맹렬한 분노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차 안의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는 김도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의 잘생긴 얼굴 위로 살기가 서린 싸늘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내가 분명 오라고 했을 텐데…… 이유라?”낮게 읊조리는 도진의 목소리에 서슬 퍼런 분노가 묻어났다.돈 몇 푼에 전전긍긍하며 제 눈치만 살피던 그 가녀린 여자가, 제 명령은 차갑게 씹어버린 채 이 새벽까지 이도현의 차에 타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도현이 매너 있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꼴을 보고 있자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도진의 자존심이 사정없이 짓밟히는 기분이었다.감히 내 전화를 무시하고, 그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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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다음날 아침,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유라의 낡은 빌라 건물 2층 복도. 실장은 좁고 지저분한 계단 주변을 힐끔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입고 있는 고급 코트 자락에 먼지라도 묻을까 봐 소매를 가볍게 털어낸 그녀가 이내 유라의 집 벨을 눌렀다.띵동-.날카로운 벨 소리에 깜짝 놀란 유라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밤새 눈물로 밤을 지샌 탓에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도현의 손아귀 힘에 짓눌렸던 손목과 목덜미는 지독한 통증을 뱉어내고 있었다. 유라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힘든 몸을 겨우 일으켜 문을 열었다.“……어?”문밖에 소속사 실장이 꼿꼿하게 서 있자 유라의 눈이 커졌다. 당혹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유라가 말문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실장님…… 저희 집까지 어쩐 일로…….”“김도진 씨가 계약서 내용을 이유라 씨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하셔서요. 다시 똑똑히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매니저로서 계약서 조항은 늘 상기하고 계실 의무가 있으니까요.”실장이 서류 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하지만 유라가 계약서를 안 읽어본 것은 아니었다. 계약을 어기거나 중간에 일을 그만둘 경우 청구되는 위약금 조항은, 계약 당시에도 유라의 목을 조르는 족쇄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의 굴레. 당장 자신이 사는 이 보잘것없는 집을 팔고 장기를 판다 해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김도진은 그 계약을 무기로 자신을 옥죄고 있었다. 유라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힘겹게 대답했다.“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아, 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말이 빠르겠네요. 그리고 도진 씨가 저한테 이유라 씨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중요한 일이 있으신 건지 고집이 대단하시더라고요. 저랑 같이 가시죠, 차로 데려다드릴게요.”출구가 없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 유라는 체념하듯 고개를 숙였다.“……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요.”방으로 들어온 유라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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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도진의 매서운 시선이 유라의 온몸을 샅샅이 훑어 내리자, 유라는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공포를 느끼며 온몸을 잘게 떨었다. 손가락 끝이 저려왔고, 폴라티 속에 감춰진 도현의 표식들이 홧홧하게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아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당황한 채 굳어버린 유라를 보며, 도진은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그녀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위험할 정도로 좁혀지고 있었다.“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도진의 압도적인 위압감에 짓눌린 유라가 결국 고개를 뚝 떨구며 사죄했다. 그의 매서운 안광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시선을 거칠게 피하는 유라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렸다.“계약서는 잘 읽어 봤나?”도진이 주머니에 손을 걸친 채, 위에서 아래로 유라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가라앉은 목소리에 유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실장이 집 앞까지 찾아와 들이밀었던 위약금 조항들이 머릿속을 잔인하게 스쳐 지나갔다.“네…… 읽어 봤어요.”도진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유라의 주변을 느릿하게 한 바퀴 도는 그의 걸음걸이가 마치 사냥감을 구석으로 모는 맹수 같았다.“내가 갑자기 내 기사를 스크랩하고 싶어졌지 뭐야. 그것도 아주 옛날 방식으로.”도진이 테이블 위에 커다란 스크랩북 몇 권과 가위, 풀, 그리고 수십만 장은 되어 보이는 인쇄물 뭉치를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지금 당장 정리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유라는 눈앞의 짓궂은 상황에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도진의 눈치를 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데뷔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김도진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수천, 수만 개의 인터넷 기사들을 일일이 찾아 프린트한 종이들이었다.그것들을 날짜별, 매체별로 분류해 가위로 오르고 스크랩북에 풀로 붙이는 작업은 생각보다 엄청난 노동이었고, 시간 또한 지독하게 오래 걸렸다. 아침부터 쉴 틈 없이 가위질을 해댔지만,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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