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51 -الفصل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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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말을 마친 김도진은 미련 없이 유라의 몸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낯빛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유라의 손목을 결박하고 있던 가죽 벨트를 툭, 풀어주었다.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유라의 가녀린 손목에는 가죽 벨트의 결이 고스란히 찍힌 채 벌겋다 못해 자줏빛 울혈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다. 제 손가락 모양대로 남은 흔적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도진이, 이내 거칠게 유라의 손목을 다시 낚아챘다."앗……!"쓰라린 통증에 유라가 짧은 신음을 뱉으며 몸을 떨자, 도진은 유라를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코끝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그의 서늘한 눈동자가 유라의 젖은 눈망울을 묶어버렸다. 도진의 붉은 입술이 부르튼 유라의 귀밑에 닿을 듯이 낮게 속삭였다."그러게 얌전히 있었으면 좋았잖아. 왜 미련하게 반항을 해서 상처를 만들어.“낮고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지독한 오만함과 독점욕은 유라의 등줄기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제 탓이 아닌 유라의 반항 탓을 하는 도진의 태도에 유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유라는 그가 잡은 손가락 끝을 잘게 떨며 감히 시선조차 맞추지 못했다.이미 사정없이 뜯겨 나가고 늘어난 유라의 티셔츠는 옷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하얗게 드러난 어깨와 가슴팍에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눈으로 훑던 도진은, 자신의 재킷을 유라에게 툭 던졌다.묵직하고 따뜻한 재킷이 유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입고 먼저 들어가“유라는 도진이 던져준 그의 커다란 재킷을 몸에 걸쳤다. 제 몸집보다 한참은 큰 수트 재킷이 유라의 허벅지까지 덮었지만, 도진의 묵직한 체향이 온몸을 감싸 안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를 대충 수습하고 차 문을 열어 발을 디디는 순간, 툭 하고 다리 사이가 아래로 꺼지는 듯한 묵직한 통증이 아랫배를 강하게 찔러왔다."흣……."걸음을 옮길 때마다 밀려드는 생소하고 지독한 통증에 유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신음을 삼켰다. 비틀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며, 유라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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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유라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거울 속 유라의 얼굴은 밤새 흘린 눈물 탓에 눈가와 뺨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아랫배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가죽 벨트에 묶였던 손목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욱신거렸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부서져 내린 컨디션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침대에 누워 사치를 부릴 처지가 못 되었다."……정신 차려야 해."오늘은 하필 계곡 야외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유라는 부은 눈을 찬물로 겨우 적시고, 손목의 끔찍한 멍 자국을 긴 소매로 꽁꽁 감춘 채 서둘러 방을 나섰다.이른 아침의 계곡은 서늘한 산바람이 불어 닥쳐 몸을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유라는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가누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티스트들이 도착하기 전, 현장 스태프들을 도와 촬영에 필요한 소품을 나르고, 동선을 체크하며 잠시도 쉴 틈 없이 발을 움직였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만 머릿속을 헤집는 김도진의 그 잔인한 음성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현장에서는 벌써 탑스타 유태희의 단독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다행히도 김도진은 오후 촬영이라 아직 현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그의 차가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유라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현장 정리를 마무리해 갔다.바로 그때, 모니터 앞에 모여 있는 감독과 메인 스태프들의 당황스러운 대화 소리가 유라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아니, 태희 씨. 그래도 오늘 메인 신인데…….""감독님, 물이 너무 차갑다니까요? 진짜 이 상태로 들어갔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저 당장 다음 주부터 해외 화보 촬영에, 광고 스케줄까지 꽉 차 있는 거 아시잖아요. 지장 생기면 책임지실 거예요?"태희가 계곡 물에 완전히 빠져야 하는 중요한 감정 신이 문제였다. 오월이라지만 깊은 산속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탑스타인 유태희는 몸이 상한다며 단호하게 입수를 거부하고 있었다. 얼굴 하나로 업계를 쥐고 흔드는 여배우의 서슬 퍼런 기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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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탈의실에서 스태프가 준 유태희의 촬영 의상을 입은 유라는 거울을 보며 숨을 삼켰다.그것은 몸매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얇고 하늘거리는 실크 원피스였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고급스럽고 노골적인 옷의 촉감이 살결에 닿자 전날 도진이 만졌던 흔적들이 찌릿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엉망이 된 손목의 멍을 가릴 수도 없는 짧은 소매였다.유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헤어 담당 스태프가 유라를 의자에 앉히고 태희와 똑같은 모양으로 머리를 우아하게 만져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유라가 마침내 촬영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을 때, 웅성거리던 현장이 순간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와……."여기저기서 남자 스태프들의 짓눌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화려한 태희의 옷을 입은 유라는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가녀린 어깨와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 라인,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원피스가 하얀 살결에 밀착되며 드러나는 굴곡은 보는 이들의 숨을 멎게 만들 만큼 자극적이었다. 청초함과 뇌쇄적인 매력이 공존하는 유라의 모습은 현장의 공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주변의 웅성거림과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유태희는 순간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이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야하고 매혹적인 유라의 자태에 강한 질투심과 모욕감이 치솟았다. 기분이 상한 태희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감독을 닦달했다."감독님! 안 찍고 뭐 해요? 빨리 끝내요, 추운데!""어, 어어! 그래, 준비하자! 유라 씨, 거기 바위 끝에 서 있는 곳에서 카메라 신호 주면 살짝 뛰어내리면 돼. 멀리서 찍을 거니까 긴장하지 말고!"얼음장 같은 계곡물 위로 선 유라는 무서움에 발가락을 웅크렸다. 전날 밤 도진에게 유린당해 욱신거리는 아랫배의 통증이 다시금 도졌지만, 감독의 "레디, 액션!" 소리에 유라는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수면 위로 몸을 던졌다.첨벙―!"악……!"순식간에 사방에서 들이닥친 계곡물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했다. 얼음장 같은 냉기가 얇은 원피스를 뚫고 흽쓸자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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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모니터 뒤에서 그 비참한 꼴을 감상하던 유태희는 턱을 괴고 속으로 서늘하게 비웃었다.'니까짓 게 감히 내 기분을 상하게 해?'철저한 갑질이자 사적인 화풀이였다. 주변 스태프들도 슬슬 유라의 상태가 위험해 보였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서슬 퍼런 대스타의 심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마침내 감독의 입에서 간절했던 "오케이, 컷! 고생했어!"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막내 스태프 한 명이 달려와 유라의 어깨 위로 커다란 담요를 황급히 덮어주었다. 하지만 이미 살을 에는 냉기가 뼛속 깊은 곳까지 침투한 뒤였다. 유라는 수건을 꽉 쥔 채 이가 갈릴 정도로 심하게 몸을 떨었다.그 순간에도 유태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자, 시간 많이 지체됐으니까 다음 씬 찍을게요!”주연 배우의 채찍질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처럼 분주해졌다. 스태프들은 유태희의 심기만 살피며 우르르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화려한 소란 속에서, 대역을 서느라 젖은 채 버려진 이유라를 돌아보고 챙겨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철저한 방치이자 소외였다."하으…… 윽……."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저체온증의 무서운 징후인 지독한 어지러움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묘한 열감이 느껴지며 무거운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축축하게 젖은 원피스를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못할 만큼 이성이 흐려졌다.유라는 이불 같은 수건을 뒤집어쓴 채, 계곡 바위 한구석에 겨우 주저앉았다.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멍든 손목을 감싸 안은 채, 유라는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얼음장 같은 물기가 살결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척박한 계곡 바위 위에서, 유라는 그렇게 서글프고 위태롭게 쓰러져 가고 있었다. 전날 밤 도진이 남긴 아랫배의 통증이 추위와 섞여 유라의 가녀린 숨통을 사정없이 죄어왔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계곡 저편에서는 가식적인 웃음소리와 함께 다음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지만, 유라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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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도진은 손끝이 부르르 떨릴 만큼 거대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감독의 "레디, 액션!" 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판을 엎고 이유라를 찾아내야 성이 차겠지만, 수십 대의 카메라와 스태프들의 눈이 쏠려 있었다."도진 씨……."물기 어린 얼굴의 유태희가 애절한 표정으로 도진의 단단한 가슴팍에 안겨 왔다. 대본에 적힌 포옹 신이었지만, 유태희에게는 사적인 대리만족이자 도진을 제 품에 가두기 위한 노골적인 유혹이었다.그러나 태희를 마주 안은 도진의 온몸은 단단한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태희의 가녀린 몸을 안고 있으면서도 도진의 머릿속은 온통 축축하게 젖은 채 어딘가 있을 이유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제 품에 안긴 유태희의 향수 냄새가 소름 끼치도록 불쾌하게 느껴졌다. 어제 제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뿜어내던 유라의 뜨겁고 애처로운 숨결이 뇌리를 지배했다.언제나처럼 가식 가득한 유태희의 고의적인 NG가 몇 차례 더 반복된 후에야 지독한 촬영이 끝났다. 스태프들은 저마다 장비를 정리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지만, 도진의 시선은 여전히 텅 빈 현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촬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도 이유라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차에 올라탄 도진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시트 깊숙이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을 유라의 잔상으로 어지러웠다."119! 빨리 119 좀 불러주세요! 여기 사람 쓰러졌어요!"도진의 차량이 출발하려던 찰나, 정적을 깨부수는 다급한 비명과 함께 바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 남자 스태프가 누군가를 등 뒤로 들쳐업은 채 비틀거리며 촬영장 입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어수선한 소란에 도진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창밖을 확인한 순간, 도진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남자 스태프의 등 위로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는 익숙한 실루엣. 난생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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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아…… 그게... 유라 씨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심각합니다. 저체온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했는데도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와요. 안 되겠다 싶어서 구급차 안에서 긴급하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도진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매니저는 도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붙였다."이쪽은 제가 가서 밤새 상태 지켜보고 보고드릴게요."전화를 끊으려던 매니저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로 구급대원들이 다급하게 이송 기동을 지시하며 외치는 병원의 이름이 도진의 귀에 똑똑히 박혔기 때문이었다.'서울 대한병원 응급의학과로 이송합니다!'대한병원. 그 세 글자가 도진의 고막을 때린 순간, 그의 사고 회로가 통째로 정지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유라를 향해 언제나 불쾌할 정도로 다정한 눈빛을 보내던 의사 '이도현'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었다."……어디로 간다고?""네? 아, 그…… 강남 대한병원 응급실요. 아무래도 제일 큰……."그 순간, 김도진의 이성의 끈이 완전히 툭, 끊어져 버렸다.와장창―!굉음과 함께 벽에 부딪힌 휴대폰이 처참하게 박살 나 대리석 바닥으로 파편을 흩뿌렸다. 하지만 도진의 가슴속에서 날뛰는 미친듯한 광기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이 핏발로 붉게 충혈되었다."하필…… 이도현이 있는 병원이라니.“당장이라도 차를 몰고 서울로 가 이유라의 상태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하지만 도진의 내일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스케줄 탓에 당장 촬영장을 이탈할 수 없었다. 수십억의 제작비와 얽힌 비즈니스가 도진의 발목을 잡았다.같은 시각,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서울 대한병원 응급실 앞에 급정거했다.뒷문이 거칠게 열리고, 얇은 원피스가 온통 젖은 채 축 늘어진 유라가 침대에 실려 응급실 내부로 빠르게 밀려 들어갔다. 이미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받고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일제히 유라의 침대 주변으로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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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도현은 제 눈을 의심하며 차트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유라가 이 시간에, 그것도 심각한 저체온증으로 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리가 없었다. 동명이인일 거라 스스로를 달랬지만, 가슴 저편에서부터 불길하고 찌릿한 불안감이 순식간에 도현을 급습했다. 심장이 무섭게 요동치기 시작했다."지금 방금 들어온 저체온증 환자, 어디 있어!“평소와 달리 눈 가득 초조함을 띄운 도현의 다급한 물음에, 담당 간호사가 깜짝 놀라 응급실 가장 안쪽의 침대를 가리켰다."저기 7번 베드에……."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현은 성큼성큼 걸어가 허술하게 쳐져 있던 하얀 커튼을 거칠게 젖혔다.촤르륵!커튼이 걷히며 드러난 침대 위에는, 유라가 처참하게 무너진 채 누워 있었다. 밤새 울어 짓무른 눈가, 핏기가 싹 가셔 유령처럼 하얗게 질린 안색, 그리고 보랏빛으로 죽어 있는 입술. 호흡기를 단 채 가느다랗게 숨을 이어 붙이고 있는 유라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얼음 인형 같았다."이 환자, 대체 어떻게 들어온 환자야!!!"도현은 차트를 쥔 손에 핏대를 세우며 간호사를 향해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언제나 환자들에게 다정하고 신사적이던 레지던트 도현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성이 터져 나오자, 응급실 안의 주위 의료진들과 인턴들이 서슬 퍼런 기세에 놀란 눈으로 도현을 힐끗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담당 간호사가 겁에 질려 더듬거리며 차트를 받아 들었다."그, 그게…… 촬영 중에 계곡물 속에 오랜 시간 들어가 있어서 저체온증이 온 모양인데, 현장에서 곧바로 처치를 못 받고 장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구급차 안에서 긴급 보온 처치랑 수액 투여는 끝냈고, 내부 장기 손상이 있을지 몰라 정밀 검사 대기 중입니다.“간호사는 응급실 내부를 힐끗 둘러보며 난감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지금 다들 뭐 하자는 거야! 당장 검사 안 하고!!”평소의 온화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맹수 같은 포효였다.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도현의 고성에 이동형 배드를 잡고 있던 인턴들과 간호사들이 소스라치게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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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저기, 간호사님! 유라 씨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검사받으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김 매니저가 유라의 침대를 쫓으며 묻자, 간호사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속사포처럼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아, 이유라 환자님 지금 VIP 병실로 이송 중이에요. 검사 스케줄도 전부 최우선으로 조정됐으니까 그리로 바로 올라오시면 됩니다.""예? 아, 아니…… 갑자기 웬 VIP 병실이요? 거긴 절차도 까다롭고 비용도 엄청나다고 들었는데……."김 매니저는 멀어져 가는 유라의 침대와 그 손을 잡고 폭주하듯 복도를 가르는 도현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머릿속이 거칠게 복잡해졌다. 연고도 없는 말단 보조 매니저가 쓰러졌는데 병원 측에서 알아서 VIP 대접을 해줄 리가 없었다.'……설마, 김도진이?‘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김 매니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방금 전 전화기 너머로 상황을 물어보던 도진의 그 서늘하고 낮게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평소 얼음처럼 냉정하고 밑바닥 스태프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오만한 김도진 이었다.유태희의 갑질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니 기획사 차원에서 잡음을 막으려고 뒤에서 급하게 병원 고위층에 손을 쓴 모양이었다.'매니저 나부랭이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시다니…… 기사 나가는 게 무섭긴 무서우셨나 보네. 진짜 의외다, 그 인간.‘김 매니저는 도진이 유라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오직 회사의 이미지와 추잡한 스캔들을 막기 위해 막강한 권력으로 VIP 병실을 내어준 것이라 굳게 믿었다.김 매니저는 침대 바퀴 소리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방향을 향해 황급히 뛰어 가기 시작했다.vip 병실 앞에 도착해 매니저가 들어가려 하자VIP 병동의 묵직한 유리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거구의 보안요원 두 명이 다가오는 김 매니저의 앞을 단호하게 가로막았다."죄송합니다. 출입 불가 지역입니다. 돌아가 주십시오.“"네? 저는 응급실에서부터 같이 온 이유라씨 보호자인데요.”김 매니저가 기가 막힌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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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거칠게 날뛰던 숨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도현은 흐려졌던 초점을 천천히 되찾았다. 침대 위에서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유라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빛에 지독한 확신이 서렸다.도현은 가늘게 떨리는 손길로 유라의 헤쳐진 환자복 단추를 하나하나 채웠다,도진의 흔적을 옷자락 속으로 덮어버리는 그의 손길은 지독하리만큼 정성스럽고도 집착적이었다.'다시는…… 그 지옥 같은 인간에게 너 안 보내, 유라야.‘이윽고 감정을 완벽하게 지워낸 무표정한 얼굴로 가면을 바꿔 쓴 도현이 VIP 병실의 무거운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마자 로비 앞에서 서성거리며 보안 직원과 거칠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김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 내가 직장 동료라니까요? 보호자 서명도 내가 했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해요!"안절부절못하며 요원들을 밀치려던 김 매니저의 눈앞으로,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도현이 성큼성큼 다가와 멈춰 섰다. 가운에 새겨진 의사 네임텍과 함께 도현이 뿜어내는 삼엄한 안개 같은 아우라에 김 매니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도현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섭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매니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환자 보호자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쪽은 신경 쓰지 말고 돌아가시면 됩니다.“"예……? 아, 아니,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라뇨? 유라 씨는 가족이 없는 거로 아는데…….“김 매니저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도현의 서늘한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치의 틈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를 한 옥타브 낮추며 쐐기를 박았다."사적인 관계까지 내가 그쪽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합니까?”환자 상태는 보호자인 내가 책임지고 케어할 테니까, 더 이상 여기 서서 소란 피우지 말고 당신 할 일이나 하러 가세요.“뺨을 후려치는 듯한 냉정하고 고압적인 멘트에 김 매니저는 순간 얼어붙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김도진 못지않게 숨이 막히는 압도적인 중압감이었다.당황해 굳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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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분명 그 새끼일 것이다. 대한병원 응급실에서 유라를 발견하고 눈이 뒤집혀 제 손아귀에서 채 가버린 놈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친오빠는 무슨…….'도현이 유라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혹은 사석에서 유라의 주위를 맴돌며 다정한 척 위선을 떨던 그 가증스러운 눈빛. 그 새끼는 지금 유라의 비참한 처지를 기회 삼아, 감히 제 장난감에 '보호자'라는 껍데기를 씌워 제 영역으로 완전히 끌고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드드득―도진의 온몸의 세포가 지독한 모욕감과 질투, 그리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소유욕으로 무섭게 날뛰고 있었다.보호자? 웃기고 있네 그것고 이도현 네 까짓 새끼가?망가뜨려도 제 손으로 망가뜨려야 했고, 숨이 막혀 죽어 가더라도 제 품 안에서 죽어야 하는 이유라였다. 이도현의 손아귀에 있는 이유라를 상상하자, 머릿속의 모든 회로가 새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이사님? 여보세요? 이사님?]수화기 너머로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도진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맹수와 다름없었다."당장 병원 로비에서 대기해."낮게 짓씹어 뱉는 도진의 목소리에는 전율이 일 만큼 짓눌린 살기가 서려 있었다.[그렇지만…… 지금 보호자 동의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데요. 보안팀이 워낙 완강하게 막고 있어서 로비에 서 있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서…….]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매니저의 기어들어 가는 듯한 대꾸에 도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가당치 않은 핑계였다."내 말이 말 같지 않아?"도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낮게 깔리는 음성에는 당장이라도 수화기를 찢고 나와 매니저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은 서슬 퍼런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매니저는 도진의 서늘한 기세에 숨이 턱 막히는 착각을 느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누구 동의 따위를 받으라고 내가 지시했나? 못 들어가면 벽을 부수고서라도 상황을 보고해.“[아…… 네! 네, 어떻게든 숨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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