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41 -الفص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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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유라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따뜻한 죽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뜨거운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참았던 서러움이 더 진하게 밀려왔지만, 유라는 묵묵히 숟가락을 움직였다.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진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거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스케줄 표를 집어 들고 흐릿한 눈으로 일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스케줄 표의 월요일 에는 며칠 전 제멋대로 파토를 냈던 유태희와의 촬영 스케줄이 다시 잡혀 있었고, 다음날에는 곧바로 강원도에서 진행되는 1박 2일간의 야외 촬영 일정이 빽빽하게 표시되어 있었다.하필이면 그 빡빡한 강원도 출장날 오전에 브랜드 CF 촬영 시간까지 교묘하게 겹쳐 있는 상태였다. 살인적인 일정에 도진은 피로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젖은 머리칼을 뒤로 거칠게 쓸어 넘겼다.허기만 겨우 채운 채 죽을 반 정도 비운 유라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릇을 싱크대로 옮겨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유라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김도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폭풍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던 남자의 얼굴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도진이 잠들었다고 생각한 유라가 발소리를 죽여 다시 서재로 들어가 남은 일을 하려던 찰나였다.도진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도, 유라의 미세한 인기척을 용케 알아채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그만 들어가 봐.”갑작스러운 도진의 목소리에 유라가 멈칫 섰다. 도진은 여전히 눈을 감고 피로에 젖은 서늘한 음성을 이어갔다.“이번 주는 더 이상 스케줄 없으니까 들어가서 쉬어, 월요일날 촬영장에 굳이 올 필요 없고 다음 날 있을 강원도 출장이나 제대로 준비해.”비아냥거림도, 거친 윽박지름도 없는 덤덤한 지시였다. 하지만 유라에게는 그저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라는 허락이자, 며칠 뒤면 또다시 그의 그림자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무거운 예고장처럼 들려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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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신호음이 채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뚝 끊기며 들려오는 기계적인 안내음. 갑작스럽게 꺼져버린 유라의 전화기에 도현은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듯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단 한 번도 제 전화를 피한 적 없던 유라였다. 어지간히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전원이 꺼져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서늘한 침묵을 마주한 순간, 도현의 머릿속은 제어장치가 고장 난 것처럼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내가 저지른 그 한 번의 실수 때문에…….’자책감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보육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 동안 유라의 곁을 지키며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특별한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 자부했던 도현이었다. 하지만 그 견고했던 믿음과 자부심이, 자신의 어리석은 실수 하나로 인해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바스러져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거기에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었다. 하필이면 유라가 들어간 곳이 자신과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사이가 나쁘다 못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주고받는 김도진의 매니저 자리라는 사실이었다. 그 잔인하고 오만한 김도진의 반경 안에 유라가 머물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도현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엄습이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이유라…… 제발.”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유라의 자취방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문을 두드리고, 그녀를 품에 안고, 미안하다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막상 찾아갔을 때, 자신에게 깊이 실망해 차갑게 굳어버린 유라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도현에게는 없었다.불안과 죄책감, 그리고 김도진을 향한 알 수 없는 적대감이 뒤엉키며 도현의 눈빛이 점차 어둡게 가라앉았다. 유라를 이대로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공포는, 얌전했던 도현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소유욕을 자극했다.자신을 밀어낸다면, 차라리 억지로라도 제 곁에 묶어두어야 하는 걸까.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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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그 시각, 화려한 조명이 내리쬐는 CF 촬영장 한가운데에서 김도진은 유태희와 재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는 프로답게 완벽한 연인처럼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컷 소리가 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싸늘한 냉기만이 감돌았다. 유태희는 오늘 촬영 내내 기분이 몹시 상해 있는 상태였다. 며칠 전, 오만하기 짝이 없는 김도진이 제멋대로 촬영을 파토 내는 바람에 자신의 애꿎은 스케줄까지 전부 뒤엎고 조정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못내 짜증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존심 높은 탑배우인 유태희로서는 도진의 그런 독단적인 행동을 도저히 너그럽게 넘길 수 없었다.하지만 유태희의 신경을 긁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아까부터 대기실과 세트장 구석에서 스태프들이 저희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유태희의 귀추를 자극했다. 그들은 새로 들어왔다는 김도진의 보조 매니저, ‘이유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웬만한 연예인 뺨치게 예쁘다는 칭찬부터 시작해서, 평소 사람을 벌레 보듯 하던 김도진이 그 매니저만큼은 남다르게 생각하고 챙겨준다는 무성한 소문들이었다.‘김도진이 매니저 따위한테 신경을 쓴다고? 그 냉혈한이?’대체 얼마나 대단하게 예쁘길래 이 바닥 베테랑 스태프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유태희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필 오늘따라 그 이유라라는 여자는 출근하지 않아 촬영장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도대체 누군데 이 난리야. 유태희는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도진의 주위를 힐끔거리며 보조 매니저로 보일 만한 인물을 악착같이 찾아 헤맸다. 하지만 도진의 곁에는 늘 보던 총괄 매니저뿐, 소문의 주인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결국 아무런 수확도 없이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유태희는 콧방귀를 뀌며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럼 그렇지. 하여간 이 바닥 인간들 말 만들어내는 알아줘야 해.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어.’자신처럼 화려하고 완벽한 여자가 유혹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얼음장 같은 김도진이었다. 그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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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유태희가 일부러 교묘하게 여러 번 NG를 내자, 참을성 없기로 유명한 김도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며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도진의 눈빛이 눈에 띄게 차가워질 때쯤, 다행히 감독의 우렁찬 컷 소리가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오케이! 컷! 수고하셨습니다!”감독의 사인과 동시에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렸고, 스태프들은 저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며 인사를 나누며 분주하게 촬영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유태희는 입술을 떼며 아쉬운 듯 슬쩍 미소를 지었고, 이내 도진에게 다가가 매혹적인 눈빛을 흘리며 말을 건넸다.“오늘 고생했어, 도진아. 내일 강원도에서 봐.”하지만 김도진은 유태희의 인사에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등을 돌려 대기실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서늘한 냉기만이 남았다. 무참하게 무시당한 유태희는 쿵쾅거리는 자존심을 억누르며, 도진이 사라진 대기실 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언제까지 그렇게 도도하게 구는지 어디 한번 보자.”유태희는 기가 찬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입술을 비틀었다.“나 유태희야.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다들 나랑 한번 사귀고 싶어서 안달인데, 네가 아무리 천하의 김도진이라도 끝까지 나한테 안 넘어올 수 있을 것 같아?”승부욕과 뒤틀린 독기가 유태희의 눈 속에서 위험하게 번뜩였다. 하지만 이내 주위 스태프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낀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며 특유의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태희는 스태프들에게 세상 착하고 상냥한 탑배우인 척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 촬영장을 유유히 떠났다.다음 날 아침 일찍, 유라는 로드매니저와 함께 김도진의 촬영 물품과 개인 짐을 차량에 가득 싣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고작 1박 2일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탑배우의 촬영 지원을 위한 의상과 소품, 사적인 물품들까지 합쳐지니 짐이 그야말로 한가득이었다.몇 시간을 달려 강원도의 한 최고급 호텔에 도착한 유라는 서둘러 체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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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하지만 유라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비록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 유라는 어떤 옷을 걸쳐도 감출 수 없는 독보적이고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충 질끈 묶은 머리칼 사이로 가냘픈 목덜미를 타고 몇 가닥 흘러내린 잔머리는, 오히려 보호본능을 자극하면서도 묘한 섹시함을 풍겼다. 유태희의 화려함이 인위적으로 가꿔진 보석 같다면, 유라의 아름다움은 거친 원석 속에 감춰진 채 은은하게 빛나는 매혹 그 자체였다.다만, 김도진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짓눌려 상처 입은 이유라 본인만이 자신의 눈부신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유라는 도진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호텔 로비로 마중을 나갔다.잠시 후, 미끄러지듯 들어온 고급 밴이 로비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수행원들을 거느린 김도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라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기다리다, 그의 총괄 매니저에게 호텔 룸카드를 전달하며 앞으로의 스케줄을 공유했다.김도진의 뒤를 따라 이동하면서도 총괄 매니저와의 짧은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유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한 시간쯤 지났을까, 방 안의 고요함을 깨고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김도진이었다.순간 유라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네, 도진 씨. 이유라입니다.”“내 방으로 올라와.”낮게 깔리는 그의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는 거침없이 끊어졌다. 유라는 손에 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도진은 몇 날 며칠 동안 머릿속을 사정없이 헤집어놓던 이유라의 잔상 때문에,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 지독한 궁금증과 갈증을 억지로 참아내던 도진은, 마침내 방 문을 두드리는 미세한 기척에 직접 문을 열어젖혔다.문이 열리자마자 유라의 시야에 보인 것은 씻고 막 나왔는지 하얀 호텔 가운을 걸친 김도진의 모습이었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뿜어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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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도진은 찌푸려진 미간을 가다듬지 않은 채, 태연한 척 서늘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쉬는 동안 뭐 했어?”“……아무것도 안 했어요.”“내가 분명히 일에 지장 없게 아프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어쩐지 얼굴이 전보다 더 안 좋아진 것 같네?”“아녜요, 지금은 다 괜찮아졌어요.”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또다시 트집을 잡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도진의 태도에 유라는 서둘러 방어벽을 쳤다. 도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본론을 꺼냈다.“그래? 마침 내일부터 진행될 촬영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다시 정확하게 듣고 싶어서 말이야.”사실 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위는 도진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쉬는 동안 이 여자가 대체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모든 게 미치도록 궁금하던 찰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적인 질문을 던질 명분이 없었기에 일을 핑계 삼은 것뿐이었다.눈앞에 마주 앉은 유라를 보니, 제 침대 위에서 부서질 듯 울던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당장이라도 저 가녀린 몸을 다시 품에 싶다는 욕망이 김도진의 머릿속을 하얗게 헤집어놓고 있었다.그런 도진의 위험하고 뜨거운 생각을 전혀 모르는 유라는, 그저 빨리 보고를 끝내고 이 방을 나가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도진에게서 거둔 채,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 화면을 켜며 촬영 일정을 덤덤하게 전달하기 시작했다.“오늘은 저녁 7시쯤 호텔 근처 공원에서 야간 촬영이 예정되어 있고…… 내일은 오후 1시쯤 계곡에서 진행되는 신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그다음은…….”유라는 도진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서류를 읽어 내려갔지만, 도진의 귀에는 그 어떤 음성도 단 한 마디조차 들어오지 않았다.쉴 새 없이 달싹이는 유라의 작고 붉은 입술.도진의 깊고 어두운 시선은 오직 그 입술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저 입술을 집어삼켜 대답을 막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그의 전신을 타고 위험하게 들끓기 시작했다.도진의 이성이 욕망으로 검게 물들어 당장이라도 유라를 덮칠 듯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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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촬영 시간이 다가오자 먼저 도착한 스태프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대한 조명 기기를 옮기고 촬영 장비를 세팅하는 소리가 공원에 가득 찼고, 저마다 동선을 체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이유라 역시 그들 사이에 섞여 일찌감치 현장에 나와 있었다. 가방을 메고 스태프들의 요청 사항을 체크하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유라의 이마에는 얇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현장의 모든 세팅이 완벽하게 완료되자, 마침내 오늘 밤 야간 촬영의 주인공인 김도진과 유태희가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이 동시에 걸어 들어오는 순간,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화려한 연예인 특유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두 사람은, 그야말로 완벽한 선남선녀의 정석 같았다. 카메라 조명을 받기 전인데도 빛이 나는 외모에 주위에서는 나직한 감탄이 흘러나왔다.도진이 촬영장에 도착하자, 유라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 총괄 매니저에게 들은 내용과 현장 스태프들과 조율한 바뀐 동선을 도진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태블릿을 들고 도진의 곁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는 유라의 모습, 그리고 그 유라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도진의 모습이 마침 저만치 서 있던 유태희의 눈에 날카롭게 들어왔다.‘……처음 보는 김도진의 보조 매니저가 쟤란 말이야?’유태희는 유라를 향해 서늘한 시선을 던지며 그녀의 온몸을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충 묶은 머리까지. 유태희는 콧방귀를 뀌며 속으로 비웃었다. 뭐야, 저 후줄근한 스타일은? 소문만 무성하더니 역시 별거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도진에게 동선 설명을 마친 유라가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의 반 이상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유태희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숨을 들이켰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새하얀 피부와 밤하늘처럼 깊고 큰 눈망울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숨이 막힐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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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어느덧 긴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밤바람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내내 뛰어다니느라 흠뻑 젖었던 유라의 이마와 등줄기의 땀이 찬 바람에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웅크린 몸 사이로 급격하게 한기가 스며들며,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덜덜 떨며 살짝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김도진의 짐들을 꼼꼼히 챙기느라 정작 제 옷가지는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유라는 초여름 강원도 산골의 매서운 밤바람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그 시각 세트장 중심에서는 유태희의 여우 같은 행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슛 사인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조명을 수정하는 막간의 대기 시간일 뿐이었는데도, 유태희는 춥다며 엄살을 피우며 은근슬쩍 도진의 품으로 파고들어 안겼다.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담하게 꼬리를 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도진은 연예계 생활을 하며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라는 듯, 밀어내지도 안아주지도 않은 채 그저 인형처럼 대수롭지 않게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유태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한편, 몰아치는 차가운 밤바람에 오한이 든 유라는 가냘픈 두 팔로 제 몸을 거칠게 감싸 안으며 버티고 있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위태로워 보이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남자 스태프가 유라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두툼한 점퍼를 벗어 유라의 어깨 위로 다정하게 걸쳐주었다.“춥죠? 강원도 밤바람이 이래요. 이거라도 입고 있어요.”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호의에 유라의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아…… 감사합니다.”유라는 점퍼 깃을 여미며 자신을 챙겨준 남자 스태프를 향해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그녀의 미소는 밤하늘의 별보다 잔잔하고 아름다웠다.그리고 멀리서, 유태희를 품에 안은 채 미동도 하지 않던 김도진의 매서운 시선이 그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포착했다.남자 스태프의 옷을 입고 그를 향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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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유라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잡으려던 찰나, 차창이 내려가며 낮게 가라앉은 도진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뒤에 타."도진은 턱끝으로 제 옆자리를 가르켰다. 유라는 순간 굳어버렸다. 늘 지켜오던 안전거리가 단숨에 좁혀지는 기분에 당황스러웠지만, 길 한복판에서 계속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뒷좌석 문을 열자, 시트 깊숙이 몸을 묻고 있던 도진의 서늘한 체향이 훅 끼쳐왔다. 유라가 마지못해 그의 옆자리에 웅크려 앉자, 도진은 룸미러를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었다."출발해."누가 봐도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 같은 상태였다.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유라는 더욱 위축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도진의 시선이 닿는 것조차 두려워 손가락만 짓이기고 있을 때,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를 가르는 두꺼운 암막 커튼이 쳐졌다.순식간에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오직 두 사람만의 숨 막히는 밀실이 완성되었다.커튼 너머로 매니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정적이 찾아오자 유라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유라가 입고 있는 헐렁하고 볼품없는 점퍼를 불쾌하다는 듯 뜯어보았다. 그의 뜨겁고도 집요한 시선이 온몸을 유영하듯 얽혀들자 유라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한참을 가만히 응시하던 도진의 붉은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벗어.""네…? 그게 무슨……."유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대답 대신 도진의 눈빛이 한층 더 짙고 위험하게 가라앉았다. 유라가 충격으로 굳어 움직이지 못하자, 이미 한계에 다다른 도진이 거칠게 팔을 뻗었다.스윽, 팍! 마찰음과 함께 유라의 두꺼운 점퍼가 단숨에 벗겨져 시트 아래로 내팽개쳐졌다.놀란 유라가 숨을 들이켜며 도진을 올려다보았다. 동그랗게 커진 눈망울과 가늘게 떨리는 입술, 경계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 얼굴은 도진의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지독하게 매혹적이었다. 도진은 유라의 겁먹은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이내 퓨즈가 끊어진 듯 그녀의 뒷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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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더 위험하고 노골적인 자세가 되자 유라는 필사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커튼 너머 매니저의 존재를 의식하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몸을 뒤틀었지만, 허리를 짓누르는 도진의 묵직한 무게감 앞에서는 무력한 반항일 뿐이었다.열기에 휩싸인 도진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가냘픈 허리 라인을 단단히 쥔 그의 커다란 손이 거칠게 아래로 내려갔다. 딱딱하게 몸을 죄고 있던 유라의 청바지 버클이 가차 없이 풀렸고, 지퍼가 스르륵 내려가는 금속음이 유라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이윽고 도진의 뜨거운 손가락바닥이 데일 듯한 열기를 품고 유라의 바지 안쪽, 가장 은밀하고 연약한 속살을 파고들었다."아……!"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은밀한 곳으로 사정없이 침범해 들어오는 거친 자극에, 유라는 저도 모르게 찢어지는 듯한 아픈 신음을 내뱉었다. 도진의 손가락이 깊숙이 얽혀들며 유라의 연약한 점막을 헤집어 놓자, 척추를 타고 강렬한 통증과 낯선 쾌감이 동시에 치솟았다.도진에게 양 손목이 단단히 묶여 제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는 상황.매니저에게 소리가 새어 나갈까 극도의 공포를 느낀 유라는 본능적으로 도진의 단단한 어깨 홈에 고개를 거칠게 파묻었다.신음과 비명을 억누르는 유라의 온몸은 땀과 열기로 흠뻑 젖어 들고 있었다. 어깨에 닿는 유라의 뜨겁고 가쁜 숨결과 살을 파고드는 애처로움이, 도진의 이성을 남김없이 불태우고 있었다.끼이익―타이어가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에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 섰다. 호텔에 도착한 것이었다. 운전석 너머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로드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룸미러를 향해 말을 건넸다."도착했습니다."두꺼운 암막 커튼에 가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커튼 너머로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거친 호흡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매니저의 목소리가 얕게 떨렸다. 도진은 유라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낮고 서늘한 음성을 뱉어냈다."먼저 들어가.""……네, 알겠습니다."눈치 빠른 매니저는 황급히 차 문을 열고 자리를 비워주었다. 쿵 하고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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