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71 - Chapter 80

108 Chapters

제71화

영우의 시선은 새나를 지나 시터가 안고 있는 작은 아기에게 향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에 처음으로 부드러움이 스쳤다.영우는 다가가 시터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를 자기 품에 안고 잠시 바라보던 영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또 자고 있지? 깨어 있는 때가 없나?”귀국 후 지금까지 영우는 리오가 깨어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아기방에 보러 갈 때마다 리오는 늘 깊이 잠들어 있었다.시터가 우물쭈물 말했다.“아기들은 어릴 때 대부분 이렇게 잡니다. 이건... 정상이에요.”‘정상일까?’영우는 속으로 의문을 품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미간을 좁힌 채 품에 안은 리오를 시터에게 다시 건넸다.영우는 돌아서 문 쪽으로 걸었다. 그 과정에서 여준을 한 번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이자 형제 같은 사이였다.어릴 때 매년 여름 캠프에서 산악 훈련을 받을 때도 둘은 늘 한 팀이었다.야외 생존 훈련도 함께 했고, 익스트림 스포츠도 경험했으며, 해외에 나가서 초원에서 동물 대이동도 보러 갔다.해외에서 동물을 촬영할 때 영우가 코브라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여준은 재빨리 배낭 안의 작은 석궁을 꺼내 코브라의 목에 화살 두 발을 박았다.화살은 목을 꿰뚫었고, 코브라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여준은 영우의 목숨을 구했다.나중에 어른이 되어 중요한 국제 비즈니스 협상 자리에서도 일이 있었다. 상대가 비열한 수를 써, 그 자리에서 여준을 죽이려고 사람을 배치했다.영우는 미리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다. 위기가 닥치는 그때 영우는 재빨리 여준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총알은 빗나가 영우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영우의 오른쪽 귀에는 총알이 지나간 뚜렷한 흉터가 남았다.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구한 사이였다. 목숨을 나눈 우정이었다.여준에게 영우는 친형제와 다름없었다.하지만 지금 영우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준은 깨달았다. ‘우리 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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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두 사람이 약속한 곳은 원도심 골목 깊숙한 곳에 조용히 숨어 있는, 아는 사람만 찾는 프라이빗 와인바였다.이곳은 본래 주찬의 집안에서 대대로 술을 보관하던 지하 저장고였다.나중에 주찬이 내부를 새로 꾸미고 당구대와 음향 장비, 대형 스크린까지 들여놓으면서 친구끼리 몰래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다.시중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술이 담긴 병들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전 세계 곳곳에서 모아 온 귀한 술이었다.두꺼운 방음문을 밀고 들어서자, 익숙한 위스키 향과 오래 묵은 오크 향이 뒤섞여 훅 끼쳐 왔다.두 사람은 차례로 안으로 들어가 맨 안쪽 구석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자리에 앉은 뒤에도 두 사람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직원은 두 사람을 알아보자마자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곧이어 봉인이 뜯기지 않은 맥캘란 30년산 두 병과 아이스버킷을 가져오고, 견과류와 치즈, 작은 핑거푸드 몇 접시를 조용히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물러났다.여준은 자기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고개를 젖혀 반 잔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매운 액체가 속을 태우자, 가슴의 답답함이 겨우 내려갔다.여준은 잔을 내려놓고 잔 속 호박빛 액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나한테 묻고 싶은 게 없어?”영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없어.”여준은 멈칫했다.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예전에는 여기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얼마나 편하게 떠들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말이 없냐?”영우의 목울대가 가볍게 움직였다.“예전은 예전이지.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달라진 거겠지.”담담한 한마디였지만, 여준의 가슴에는 천군만마가 밟고 지나간 듯했다. 여준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져? 너도 온라인에서 떠도는 그런 대필 글을 쉽게 믿고, 나와 새나 사이를...”여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말이었다.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여준은 아무리 설명해도 벗어날 수 없는 억울함을 느꼈다. 없는 죄를 뒤집어쓴 사람처럼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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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나 떳떳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선을 지켰고, 단 한 번도 넘지 않았어. 내 마음은 하늘과 땅이 다 알고 증명해!”“시유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 그런데 너까지, 이렇게 오랜 친구인 너까지 그런 말에 넘어가서 내 인격을 의심할 줄은 몰랐어!”영우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영우도 자리에서 일어나 여준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넌 아직도 네 문제가 뭔지 모르는구나.”“그만하자. 잠든 척하는 사람은 아무리 불러도 깨울 수 없지. 너와 나 사이에서는 더 말해 봐야 소용없겠어.”영우는 여준과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대화는 영우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영우가 돌아서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여준이 뒤에서 홧김에 외쳤다.“강영우, 내 문제가 대체 뭔데? 내가 네 부탁으로 새나의 임신 기간을 챙겼고, 산후조리 기간에도 밤낮으로 지켰어.”“나는 내 딸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못했고, 분유 한 번 먹인 적 없어. 태어나서 마주한 적도 없어.”“하지만 네 아들은 내가 처음 기저귀를 갈았고, 내가 분유를 먹였고, 분만실에서 나온 뒤 처음 안은 사람도 나였어. 생후 한 달 축하 자리까지 내가 멋지게 챙겼어.”“내가 네 아내와 아들에게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는 나와 등을 지겠다는 거야? 강영우, 너 언제부터 시유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거냐?”여준은 술기운이 올라왔다. 마음속에 쌓인 억울함과 답답함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억울했다. 너무 억울했다. 여준과 새나 사이에 정말 더러운 일이 있었다면 차라리 모를까...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여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마음은 없었다.‘일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마치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너무 괴로워!’영우는 걸음을 멈췄다. 원래는 더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여준의 말은 영우의 귀에 지나치게 거슬렸다.영우는 돌아서지 않은 채 담담하고 또렷하게 말했다.“바로 그게 문제야.”“네 인생의 우선순위가 잘못됐어. 너는 새나와 리오를 네 아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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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H시의 한 대형 쇼핑몰 의류 매장.빛나는 물놀이를 마친 뒤 유모차 안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장순영이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마리는 시유와 함께 새 옷을 고르고 있었다.아이를 낳은 뒤 시유의 몸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예전 옷은 작아졌고 낡기도 했다. 시유는 새출발을 맞이하기 위해 옷을 여러 벌 구입할 생각이었다.시유가 이제야 자신을 꾸미는 데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마리는 신이 났다. 쇼핑몰 안을 이리저리 누비며 시유에게 어울릴 만한 옷이 보이면 바로 가져와 입혀 보았다.어느새 시유는 옷을 한가득 샀다.시유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긁었다. 카드 잔액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분’이 준 돈은 전부 빛나 이름으로 모아 두었다. 시유는 그 돈에 손대지 않았다. 자신은 지난 몇 년 동안 개인 의뢰 작업을 통해 벌어 둔 돈만 해도 적지 않았다.여준이 준 카드는 하루 만에 본인이 막아 버렸다. 시유는 예상했던 일이었고, 그저 웃어넘겼다.이제 시유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아도 돈만큼은 부족하지 않았다.마리는 기꺼이 쇼핑에 동행했고, 틈만 나면 온갖 말로 칭찬했다.“너 아이 낳고 나서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어. 지금 모습이 전보다 더 예뻐.”“머리도 조금만 길러 봐. 남자아이처럼 짧게 하지 말고 쇄골까지 오는 단발 어때? 네 얼굴형에 잘 어울릴 거야.”“지금 딱 좋아. 예전에는 너무 말랐어. 살이 조금 붙으니까 훨씬 보기 좋다.”시유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퇴사한 뒤로 기분이 좋아졌다.수유를 끊으니 툭하면 젖이 불던 고통도 사라졌다. 며칠 동안 잠도 푹 잤다.변항은 어디서 구했는지 귀한 보양식 재료를 한가득 보내왔다. 여준이 가져간 백 년 묵은 산삼보다 훨씬 귀하고 드문 것들이었다.장순영이 한 번 전복삼계탕을 끓여 주었는데, 먹고 나니 온몸이 따뜻해졌고 기력이 금세 돌아왔다.며칠 동안 꾸준히 회복한 덕분에 시유의 혈색은 좋아졌다. 결혼 전보다 컨디션도 더 나아 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도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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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시유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빠르게 스쳐 가는 상실과 고통이 지나갔다.“내 인생에는 빛나 하나면 충분해. 앞으로 어떤 남자도 내가 이런 고통을 다시 겪을 만큼 값지지 않아.”화제는 갑자기 무거워졌다. 시유가 하지 않은 말들도 있었다.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남편의 아낌이 아내가 모든 고통을 버티게 하는 가장 좋은 약이라고 말한다.그 시기는 여자의 삶에서 가장 아프고 견디기 힘들며, 보살핌과 배려가 가장 절실한 때다.하지만 시유가 그런 시간을 지나는 동안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유는 모든 것을 혼자 버텼다.어떤 일이 있어도, 시유는 평생 여준을 다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마리는 입을 벌렸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시유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돕던 매장 매니저도 함께 안타까워했다.“여자가 아이 낳는다는 게 정말 그래요. 자연분만은 산도가 아프고, 제왕절개는 절개 부위가 아프죠. 낳고 처음 소변보고 대변볼 때의 고통은 사람을 절망하게 해요.”마리는 놀라 입을 가렸다.“세상에. 이야기 들으니까 나 아이 낳는 게 무서워졌어. 너무 심하잖아!”매장 매니저가 익살스럽게 말했다.“그래서 남편이 아이 낳기 전에는 아무리 사랑한다고 붙어 다녀도 다 모르는 거예요. 낳고 나서 아내의 모든 배설과 망가진 몸을 다 보고도 여전히 사랑하고 보살피면, 그때가 진짜죠.”매장 안의 다른 여성 고객과 직원들도 이 화제에 끌렸다. 모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맞장구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한 여성 고객은 자기 남편의 다정함을 자랑했다.“우리 남편이 딱 그래요. 제가 화장실 갈 때마다 부축해 줬고, 오로도 닦아줬어요. 산후조리 때 제가 남긴 음식은 전부 남편이 먹었고, 다리 마사지도 해 주고 유축하는 것도 도와줬어요.”다른 여성 고객도 말을 보탰다.“맞아요, 저희 남편도 정말 잘했어요. 산후조리 기간에 저는 밤새운 적이 하루도 없어요. 남편이 밤마다 일어나 분유를 먹이고, 아기가 깨면 바로 안아 데려갔어요. 저는 푹 쉴 수 있게 해 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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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시유가 고개를 들자, 검은색 캐주얼 차림의 남자가 성큼성큼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곧게 뻗은 자세,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키는 얼핏 봐도 180센티미터는 훌쩍 넘어 보였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워낙 빼어나서 매장 안의 환한 조명마저 몇 단계 어두워진 듯했다.마리의 눈에 저 남자는 영우가 아닐 수 없었다.시유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같은 업계 사람인 데다 이전에도 직접 만난 적이 있었고, 이후 업무상 몇 차례 접점이 있었기에, 시유는 망설임 없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영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내려던 때였다. 이어 시선이 시유를 지나 뒤쪽 유모차로 향했다.마침 빛나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는 울지 않고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이리저리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빛나의 귀여운 모습에 눈길이 간 영우가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낮추고 아이를 살짝 어르자, 빛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통통한 두 손이 유모차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허공을 휘저었다. 정성껏 만든 인형처럼 사랑스러웠다.“아기가 정말 예쁘네요, 뽀얗고 포동포동한 게 귀여워요. 이름이 뭐예요?”시유가 고개를 돌려 빛나를 다정히 바라보았다.“임빛나요. 빛나게 살라는 뜻으로 지었어요.”영우가 분명히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더 묻지는 않고 옅게 웃었다.“이름 좋네요. 뜻도 좋고요.”시유도 희미하게 웃었다.마리는 그때 거의 굳어 있었다. 영우의 비현실적인 외모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마리는 시유 옆으로 다가와 시유의 팔을 툭툭 찌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저 사람 강영우 맞지?”시유는 고개를 끄덕인 뒤 웃으며 소개했다.“강 대표님, 제 절친 윤마리예요. 공간 디자이너고요.”영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강영우입니다.”마리의 두 눈은 이미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몇 초나 멍하니 서 있던 마리는 뒤늦게 흥분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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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영우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두 분은 천천히 둘러보세요. 다음에 뵙죠.”시유와 마리는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영우는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걸음으로 돌아서서 멀어졌다.마리가 놀란 듯 입을 틀어막고, 매장이 울릴 만큼 크게 감탄했다.“세상에! 저게 사람 얼굴이야?”“이목구비, 얼굴형, 머릿결, 피부, 몸매, 분위기... 하나하나 전부 최상급이잖아. 소새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저런 남편이랑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니. 와, 진짜 말이 안 나와.”“나 같으면 저런 남자한테 매일 무릎 꿇고 모셔도 돼. 시키는 거 다 하고, 밤마다 침대에서 기다릴 수도 있어. 당장 병원 가서 피임 시술 예약해도 아쉽지 않다니까.”시유가 마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정신 좀 차려. 너무 빠져들지 말고.”마리가 소리를 질렀다.“아니, 저 얼굴을 보고 어떻게 침착해? 데뷔하면 연예계 남자 배우들 다 정리될 얼굴인데!”시유는 이미 마리의 이런 반응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마리는 잘생긴 남자를 볼 때마다 세상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었다.시유는 영우가 빛나에게 무엇을 줬는지 궁금해져 작은 쇼핑백을 열어 보았다. 안에는 작고 붉은 케이스가 들어 있었다.시유는 그저 소소한 장난감이나 액세서리일 줄 알았다. 그런데 케이스를 열자 안에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아기 금팔찌가 들어 있었다. 아이의 무탈한 성장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선물이었다.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팔찌가 시유의 손바닥 위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아기 손목에 맞춘 작고 섬세한 팔찌였지만, 별것 없어 보이던 작은 케이스마저 단숨에 귀한 물건처럼 보이게 할 만큼 존재감이 있었다.시유는 보석류를 볼 줄 알았다. 금의 중량도 적지 않은 데다 다이아몬드 커팅까지 깔끔했다. 이 정도 물건이라면 값이 절대 만만치 않을 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쉽게 마음먹고 살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다.너무 귀한 선물이었다. 영우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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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새나가 의기양양해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새나의 이름이 다시 온라인 이슈 상위권에 올랐다.이번에는 글만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여준이 새나 곁을 지키던 사진들을 줄줄이 공개했다.동시에 시유가 임신 기간 혼자 산부인과에 다녔던 일, 혼자 아이를 낳은 일, 병원에서 대량 출혈이 생겨서 사경을 헤맬 때 보호자 서명 하나 받을 가족이 없었던 일, 산후조리까지 혼자 버틴 일에 관한 사진과 글도 함께 올라왔다.부강그룹 홍보팀은 앞선 이슈를 겨우 가라앉히느라 이미 큰 힘을 쓴 뒤였다.이제야 한숨 돌리려던 차에 더 큰 파도가 들이닥쳤다. 직원 전원이 밤샘으로 게시글 삭제 요청, 여론 대응, 이슈 하락 작업에 매달렸다.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계속 불을 지피는 것처럼, 이슈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누리꾼들은 새나와 여준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화면에 가득한 모욕적인 말과 끔찍한 저주를 보며 새나는 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처음 시유에게 그 사진들을 보냈을 때, 새나는 그저 한때의 우월감에 도취해 있었다.그때 새나는 시유처럼 무른 성격이면 아무것도 못 하고 혼자 속으로만 삭일 거라고 확신했다.그런데 지금 그 사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온라인에 올라와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여준이 보호자로 서명했던 기록까지 공개됐다. 흰 종이 위의 글자들이 너무도 선명했다.새나가 그때 얼마나 거칠게 과시했는지, 그 대가는 지금 정확히 같은 깊이로 돌아와 새나를 깊이 찌르고 있었다.온라인은 이미 들끓고 있었다.[부강그룹 대표이사 아내 홀로 출산, 남편은 사촌 여동생 곁에?][부강그룹 여준 대표와 사촌 소새나, 정말 그냥 보통 사촌 사이 맞아...?][여자들아, 사촌 여동생 조심해라. 재벌가 시댁은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온갖 문구가 앞다투어 실시간 이슈로 치솟았다.새나는 그 글들을 보자 온몸이 뒤틀릴 만큼 화가 치밀었다.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자 미친듯이 곧장 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유가 전화받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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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여준이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딸을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시유가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지내는지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두 요구 모두 시유가 들어줄 리 없었다.시유는 아예 핸드폰 전원을 껐다. 천산캐슬에서 일주일 동안 쉬며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그 주 내내 온라인 이슈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부강그룹의 주가는 급락했고, 새나와 여준은 온갖 욕을 먹었다. 반면 시유는 H시에서 손꼽히는 최고급 저택에서 빛나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시유는 오래간만에 여러 날 깊이 잠들었다.일주일 뒤, 시유는 또 하나의 큰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바로 딸의 출생신고였다.원래는 엄마 임애교가 D국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필요한 서류를 받아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임애교는 계속 답이 없었고,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다.시유는 마음먹은 일은 곧장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연호가 H시 상류층 사이에서 웬만한 일은 다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인맥도 넓고 손도 빠른 데다, 처리 못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시유는 그래서 연호에게 부탁했다. 자신을 세대주로 따로 분리하고, 먼저 빛나의 출생신고를 시유 쪽으로 올릴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연호는 과연 대단했다. 전화 한 통으로 길을 열어 주었다. 연호는 시유에게 신분증 사본과 필요한 서류를 챙겨 자신이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시유는 신분증을 챙겨 집을 나섰고, 연호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모든 절차는 순조로웠다. 30분 뒤, 일은 깔끔하게 끝났다.시유는 새로 발급받은 가족관계증명서와 출생신고 접수 서류를 들고 연호와 함께 민원실을 나왔다.“연호야, 고마워. 저녁은 내가 살게. 마리도 같이 부르자.” 시유가 웃으며 말했다.연호가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좋지. 그럼 사양 안 한다. H시에 새로 생긴 파인 다이닝이 있는데 맛이 꽤 독특하다더라. 거기로 가 보자.”시유는 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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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시유는 빛나의 출생신고를 마친 기쁨에 빠져 여준이 들어온 것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시유와 연호는 서로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분위기는 편하고 즐거웠다.“시유야, 이제 빛나 출생신고도 끝났잖아. 다음은 어떻게 할 거야? 꼭 이혼할 거지?”“응. 반드시 해야지.”“여준 형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너한테 한 짓만큼은... 아니다, 그 인간 얘기는 그만하자. 아무튼 이번엔 나도 무조건 네 편이야.”“고마워, 연호야. 네가 아니었으면 빛나 출생신고 이렇게 쉽게 못 했을 거야. 술 대신 차로 한 잔 줄게.”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연호가 장난기 섞인 얼굴로 말했다.“그럼 이혼하고 나면 날 한 번 생각해 볼래?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도 널 좋아했어. 너만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안 믿었지.”시유가 허리를 젖힐 만큼 웃었다.“그만, 그만! 연호야, 장난치지 마. 네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여자를 손가락으로 세려면 열 손가락도 모자라. 내 약한 마음 흔들 생각 하지 마.”연호도 크게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잦아들자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시유야, 내가 바람둥이인 건 인정해. 그래도 진심으로, 네 곁에 있으면서 널 지키고 보호하고 싶어.”“네가 아이 낳던 날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을 때, 내가 분만실 밖에서 얼마나 떨었는지 너는 몰라. 나는...”연호가 감정적인 말을 이어 가려던 때, 여준은 더 듣고 있을 수 없었다.여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의 날아가듯 연호 곁으로 다가갔다.연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여준은 연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갑작스러운 주먹에 연호는 완전히 허를 찔렸다.정신을 차렸을 때, 여준은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연호 앞에 서 있었다.여준이 단정 짓듯 말했다.“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 역시 당신이 내 아내한테 수작 부리고 있었어.”여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때 시유가 여준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그만해!”“나랑 연호가 농담하는 건지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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