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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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여준이 불을 켰다.희미한 조명이 방 안을 밝히자 눈가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그대로 드러났다.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놀라지 마. 아무것도 안 했어. 병원에 있는 간이침대가 너무 불편해서 당신이 제대로 못 잘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멋대로 당신을 집으로 데려온 거야.”‘집?’시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낯선 공간인데도 어딘가 일부러 아늑하게 꾸며 놓은 느낌이 들었다.여준이 다급하게 설명했다.“여기는 내가 새로 산 집이야. 그림빌은 아직 공사 중이거든.”“아, 그리고 여긴 당신 집 바로 위층이야. 당신이랑 가까우니까 앞으로 빛나도 같이 돌보기 편할 거야.”시유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여준을 바라봤다.“나를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여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내가 안고 데려왔어. 당신이 너무 깊이 자서 오는 동안 한 번도 안 깼어.”시유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자신이 이렇게까지 깊이 잠들 줄은 몰랐다.여준이 병원에서 자신을 안고 여기까지 데려왔는데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반쯤 잠든 상태에서 따뜻하고 넓은 품에 감싸인 느낌이 들었다.익숙하면서도 편안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그 포근함에 취해 시유는 끝내 잠에서 깨지 못했다.여준이 하품을 하고 두 팔을 벌린 채 조심스럽게 시유의 눈치를 살폈다.“이리 와. 우리 다시 같이 자면 안 될까? 걱정하지 마. 절대 건드리지 않을게.”“그냥 나도 푹 자고 싶어서 그래.”여준은 잠시 시유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요즘 당신도 많이 지친 거 알아. 아까 내 옆에서 그렇게 깊이 잔 것도 그 때문이잖아.”“당신도 내 옆에서 자면 마음이 편하다는 거, 알고 있잖아.”시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여준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지난 5년 동안 시유가 일에 그렇게까지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매일 밤 잠을 푹 잤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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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지난 5년 동안 두 사람은 부부로 살아오며 서로의 삶에 깊숙이 얽혀 있었다.이제 와서 그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오랫동안 쌓인 감정과 기억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다.쉽게 떼어 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낮에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마음이 가장 쉽게 흔들렸다.지금도 그랬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여준은 두 팔을 벌린 채 시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익숙한 시더우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그 향기는 조용히 시유를 감싸 왔다.조금만 다가가면 됐다.발끝을 살짝 들고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다시 여준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예전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같은 숨결을 나누며 함께 잠들 수 있었다.시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빛에 서려 있던 차가운 벽도 조금씩 흔들리는 듯했다.“안아 줘, 여보.”여준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시유를 달랬다.시유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여준이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리고 그대로 시유를 다시 침대 위에 눕히고는 이불을 끌어올려 함께 덮었다.“나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딱 한 번만 봐줘. 나 거의 두 달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잤어.”“당신도 알잖아. 내가 잠자는 것만큼은 얼마나 예민한지. 이러다 정말 잘못될까 봐 나도 무서워.”“지금 새벽 5시잖아. 우리 조금만 더 같이 자자. 당신도 많이 지쳤다는 거 알아. 제대로 못 잔 것도 알고.”“오늘만은 나를 베개라고 생각해. 내가 옆에 있으면 잠이 잘 오잖아.”“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한숨 자자. 그리고 우리 잠에서 깬 뒤에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이혼 얘기를 해도 되고, 나한테 차갑게 굴어도 돼. 그때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게. 그러니까 지금만큼은 안 될까?”여준은 숨기고 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은 듯했다.말 한마디 한마디에 간절함이 묻어났다.평소의 여준답지 않게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있었다. 그저 시유와 함께 잠들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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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그 발길질에는 그동안 쌓이고 쌓인 서러움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시유가 있는 힘껏 걷어차자 여준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신음을 흘렸다.몸이 뒤로 밀려 침대 헤드보드에 세게 부딪혔다.그리고 그대로 침대 옆에 힘없이 주저앉았다.시유는 곧바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신발을 신을 여유도 없었다.맨발로 옷걸이 앞으로 달려가 옷을 거칠게 끌어내렸다. 그리고 허둥지둥 주워 입었다.여준은 배를 움켜쥐었다. 방금 전 발길질에 흐릿했던 정신이 완전히 깨어났다.그는 떨고 있는 시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곧이어 다시 시유를 품에 안으려 했다.“여보 이러지 마. 부부 사이에 쌓인 감정은 풀 수 있잖아. 우리...”짝!여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이번에는 시유도 남은 힘을 전부 쏟아부었다.여준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뺨이 화끈거리며 아팠고, 시유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여준의 손에서 힘이 순간 빠졌다.여준은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유를 바라봤다.방 안이 순식간에 죽은 듯 조용해졌다.시유는 그 자리에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차갑게 식은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두 손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잠을 못 잔 게 그렇게 불쌍해?”목소리가 떨렸다.“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고작 두 달 잠을 못 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불쌍한 사람인 척하면서 나한테 다정하게 굴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지금까지 있었던 일도 전부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착각하지 마. 절대 그럴 수 없어. 내 마음은 빛나를 낳은 그날 완전히 죽었어.”시유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내가 죽을힘을 다해 빛나를 낳았던 그날, 간호사가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데려왔어.”“그리고 분만실 밖에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다고 했어.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내 아이야. 내가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낳은 아이인데,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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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여준은 진명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유에게 그렇게 많은 상처를 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돌이켜 보니 지난 5년 동안 시유는 혼자서 그렇게 많은 일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이 철이 들었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유에게 그렇게 많은 서러움이 쌓여 있었을 줄은 몰랐다.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도 정말 너무했다.그때 여준은 그저 새나가 외국에서 혼자 지내고 있고, 곁에 가족도 없다는 생각만 했다.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새나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준은 고개를 숙였다. 가슴 깊은 곳에 짙은 죄책감이 내려앉았다.무의식적으로 시유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시유가 뒤로 물러나 그의 손을 피했다.“그동안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왜 한 번도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말하라고? 당신은 틈만 나면 나한테 철들라고 했잖아.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라고.”“내가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말하면 바로 내가 철이 없다고 했잖아. 지난 5년 동안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있어?”“당신이 나를 그렇게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당신 가족들도 나한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여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시유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여준을 바라봤다.“빛나 백일잔치 날 내가 전화했을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바쁘다고 했잖아. 이미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고.”“그런데 그날 뭐하느라 바빴던 건데? 소새나 아이 백일은 그렇게 성대하게 챙기면서, 나랑 빛나는 기사한테 맡겨 집으로 보내 버린 게 전부였잖아.”“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소새나가 나타난 뒤 마음 한구석에 나랑 아이를 위한 자리라도 조금 남아 있었어?”여준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새나의 이름이 나오자 여준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게 뒤틀렸다.시유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여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앞으로는 새나와 확실하게 선을 지킬게. 새나 문제에도 더 이상 지나치게 관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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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여준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화가 치밀어 올라 가슴을 움켜쥔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시유는 차갑게 여준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여준은 새나가 스스로 감당하게 두지 않았다.여전히 새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이게 자신이 그렇게 신중하게 골랐던 남편이었다.그토록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남자였다.시유는 예전의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생각하며 차라리 그때 자신의 눈을 씻어 버리고 싶었다.“계속 나한테 잘해 줬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지금도 정말 나한테 잘해 줬다고 생각해?”“소새나한테 했던 것의 3분의 1만이라도 해줬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왔을 것 같아?”여준은 숨이 턱 막혔다.“왜 자꾸 새나랑 비교하는 거야? 새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잖아. 그런데 당신은...”“하하...”시유는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는 정말 여준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새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울 줄 아는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는 법이니 당연히 편애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반면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온갖 일을 혼자 견디며 살아왔다.누가 돌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버텨 온 사람이었다.그러니 당연히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고, 누구에게도 특별한 사랑이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였다.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지.세상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었다.시유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지쳤다.“이혼하자, 부여준.”“또 그 얘기야? 당신은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툭하면 이혼하자고 하잖아.”여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죽어도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나 당신이랑 이혼할 생각 없어. 당신이 말한 일들도 우리 가족이 이제는 잘못을 깨닫고 있어.”“아버지도, 누나도, 할머니도 다 우리가 다시 잘 지내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다들 빛나가 다시 부씨 집안으로 돌아와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어.”“우리 가족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돼? 어차피 난 이혼 안 해. 그러니까 이혼할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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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여준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또다시 뺨을 세게 맞은 탓에 양쪽 뺨이 화끈거렸다.여준은 그 자리에 선 채 새나를 차갑게 바라봤다.‘대체 왜 찾아온 거지?’‘지금 상황이 이 정도로 엉망인데도 더 엉망으로 만들 생각인가?’“오빠, 안 아파?”새나는 여준의 뺨에 선명하게 남은 손자국을 보더니 무심코 다가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려 했다.여준은 새나의 손을 거칠게 밀어냈다. 그리고 재빨리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내가 여기 사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어떻게 들어온 거야?”새나는 밀려나며 휘청거릴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해도 답이 없어서 걱정돼서 온 거야.”“주소는 그림빌 관리인한테 물어보니까 당분간 여기서 지낸다고 알려 주더라.”새나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비밀번호는 너무 간단하더라. 역시 오빠는 예전이랑 똑같이 아직도 내 생일을 비밀번호로 쓰고 있었네.”여준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현관 비밀번호가 새나 생일이라고?’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대학 시절부터 여러 비밀번호에 그 숫자를 사용해 왔다.오래 사용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움직일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요즘도 습관처럼 그 숫자를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숫자가 새나의 생일과 관련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시유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여준은 자신도 모르게 찔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새나를 차갑게 노려봤다.“그렇다고 해도 노크도 없이 들어오면 안 되잖아. 기본적인 예의도 몰라?”새나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급하게 온 거야.”“시유 언니는 아직도 이혼하겠다고 하는 거야? 그냥 빨리 이혼하는 게 낫지 않아?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오빠까지 시유 언니 때문에 큰일 날 수도 있어...”새나는 방금 전까지 문밖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속으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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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진명화는 이미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쉬고 있는데, 유란이 잔뜩 굳은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유란은 씩씩거리며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진명화가 흘끗 유란을 바라보더니 빈정거리듯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임시유한테 찾아가서 화해하자던 유란이 아니야? 시유한테 한바탕 당하고 돌아왔나 봐?”유란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진명화를 매섭게 노려봤다.“다 엄마 때문이잖아요. 며느리한테 조금이라도 잘했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어요.”“여준이 결혼 생활도 이제 끝일 거예요. 조만간 정말 이혼할지도 모르니 이제 속이 시원해요?”진명화는 피식 웃었다. 말투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묻어났다.“내가 진작 말했잖아. 임시유는 절대 만만한 애가 아니라고. 넌 그런데도 내 말을 안 듣고 계속 임시유 편을 들었잖아. 이제 임시유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 그래도 앞으로 임시유 편을 들 거야?”유란은 씩씩거리며 진명화 옆에 털썩 앉았다.오늘 시유와 마리가 자신을 몰아붙이던 모습이 떠오르자 속이 다시 부글부글 끓었다.“여자는 너무 잘해 주면 안 돼요. 잘해 줄수록 더 기고만장해지는 법이니까요. 전 시유가 말이 통하고 사리분별도 하는 애인 줄 알았어요.”“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좋게 말해 봤는데, 듣지도 않더라고요. 엄마, 저 이제 두 사람 이혼하는 거 찬성이에요. 그런데 그 아이는...”진명화는 그동안 꾹 참고 있었던 터라 모처럼 듣기 좋은 말을 듣자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유란의 어깨를 세게 두드렸다.“이제 알겠지? 임시유가 우리 부씨 집안에 들어오면 집안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임시유가 낳은 애라고 뭐가 다르겠어? 엄마가 그 모양인데 딸이라고 별수 있겠어?”“내 생각에는 그 아이도 없어도 돼. 너희 세 자매가 친하게 지내는 명문가 아가씨들도 많잖아. 그중에서 하나 골라 여준이랑 결혼시키면 시유보다 훨씬 나을 거야.”“이혼하고 아이는 임시유한테 주면 그만이야. 그래야 여준이 새 사람을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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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유란은 시유가 자신의 호의를 받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시유도 적당히 한발 물러설 줄 알았다.그렇게 다시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시유는 유란의 체면조차 세워주지 않았다.오히려 친구까지 불러 그 자리에서 부씨 집안 사람들을 몰아붙였다.유란은 이렇게까지 무시당한 적이 처음이었다.사람들 앞에서 손가락질을 당한 것도, 그렇게 심한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그동안 시유에게 해 준 일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딸 하나 낳은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유란은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반드시 시유에게 확실하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빛나가 아무리 시유의 딸이라고 해도 결국 부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부씨 집안에서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나서면 시유가 마음대로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결국 중요한 건 부씨 집안의 이익과 체면이었다.시유는 계속해서 부씨 집안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있었다.이번에는 빛나를 앞세워서라도 시유에게 확실하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이 세상은 아직 임씨 집안이 아니라 부씨 집안의 것이라는 걸.유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갑자기 거실에 새나가 나타났다.새나를 본 유란은 순간 화가 치밀어 얼굴부터 굳었다.“여긴 또 왜 왔어? 너희 모녀 정말 대단하더라. 우리 엄마를 가지고 놀더니 결국 병원까지 보내 놓고. 우리 가족이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런 식으로 보답해?”새나는 그 자리에 서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언니, 저랑 엄마도 잘못한 거 알아요. 그래서 오늘 사과하러 온 거예요. 이모는 좀 괜찮아지셨어요?”“죄송해요, 이모. 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병원까지 가셨으니 제가 무릎 꿇고 사과할게요.”새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진명화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으려 했다.진명화가 깜짝 놀라 급히 새나를 붙잡았다.“새나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러지 마. 됐어.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끝까지 남남으로 지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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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부씨 집안 사람들이 분노하는 모습을 본 새나는 속으로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새나는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시유와 여준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긴 녹음이 흘러나왔다.녹음이 끝나자 부씨 집안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특히 부인걸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여준이는 원래 무슨 일이든 알아서 잘 처리하는 녀석인데 어떻게 자기 아내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뺨까지 맞고도 참고 있는 거지?”유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빛에는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가득했다.“여준이 계속 감싸 주니까 시유가 저렇게까지 날뛰는 거죠.”“여준이 물러선다고 우리까지 물러서면 안 돼요. 아빠,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시유가 물러나게 해야 해요.”부인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시유 전화번호를 내게 줘. 내가 직접 전화할 거다. 내가 직접 나서는데도 내 말을 무시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지.”시유와 여준은 5년 동안 부부로 지냈지만, 부인걸이 시유의 얼굴을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하지만 만날 때마다 시유는 부인걸 앞에서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워했다.조금이라도 잘못해서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늘 공손하게 행동했다.부인걸은 며느리인 시유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삼켰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시유가 자신을 시아버지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감히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리 없다고.무엇보다 H시 전체를 둘러봐도 지금까지 감히 자신에게 대놓고 맞선 사람은 없었다.부인걸은 직접 시유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데리고 부씨 집안으로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시유가 감히 오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유란이 핸드폰을 꺼내 시유의 번호를 찾아 부인걸 앞에 내밀었다.부인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뚜르르르-몇 번 벨이 울리고 나서야 시유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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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시유 집.“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 제가 꼭 가야 해요? 어르신이 왕이라도 돼요? 아니면 대통령이라도 돼요? 대체 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라 마라 하는데요?”“게다가 20분 안에 오라고 시간까지 정해요? 정말 웃기네요. 제가 배달원이에요? 배달을 시켜도 최소한의 존중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시유는 이제 부씨 집안 사람들에게 질릴 대로 질렸다.그쪽 사람들의 오만한 태도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더 이상 참고 싶지도 않았고,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시유는 상대가 누구인지 따질 생각조차 없었다.부여준의 아버지라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그동안 충분히 존중해 줬을 때도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이제 와서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해도 절대 그럴 생각은 없었다.부인걸은 자신이 체면까지 내려놓고 직접 시유에게 전화했는데,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금 전화는 스피커폰으로 연결돼 있었다.시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인걸의 뺨을 후려치는 것처럼 날카롭게 꽂혔다.그동안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존경과 아첨을 받아 온 그였다.감히 자신에게 이렇게 대놓고 따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부인걸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이마와 목에 핏대가 불거지고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얼굴은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임시유! 난 네 시아버지야! 감히 그런 태도로 나한테 말해? 정말 버릇이 없군. 도대체 부모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이토록 무례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네 부모님은 대체 널 어떻게 가르친 거야? 이렇게 버릇없고 무례하게 행동하다니!]부인걸은 화를 참지 못하고 거칠게 기침을 쏟아 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분노가 치솟았다.시유가 바로 받아치려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임애교가 갑자기 시유의 핸드폰을 낚아챘다.시유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임애교가 전화기에 대고 거침없이 쏘아붙였다.“시아버지라고요? 제 딸이 부씨 집안에 시집간 지 5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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