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다 먹고 나서도, 둘은 한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를 보지 않았다.하나는 설거지를 하고, 건우는 싱크대 옆에 서서 물 한 모금을 마셨다.다정함은 없었고, 적대감도 없었다.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닿으면 깨질 것 같은 투명한 거리만 있었다.“나 먼저 들어갈게.”하나가 말했다.건우는 고개만 끄덕였다.하나가 방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건우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이 집은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해야만 했을까.그는 거실 불을 끄지 못했다.불을 끄면 어둠이 오고, 어둠이 오면그 이름이, 그 발소리가, 그 눈빛이 따라올 것 같았다.그런데도.건우는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태도는, 이상하게도 언제나 가장 정직한 몸짓으로 드러났다.건우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시계는 밤 열두 시를 넘겼다.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문 쪽에서 아주 미세한 기척이 들렸다.노크는 없었다.문이 열리는 소리도 과장되지 않았다.대신, 집 안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같은 얼굴이 들어왔는데, 눈빛이 달랐다.서하였다.그녀는 오늘 유난히 조용했다.화장이 짙지도 않았고, 옷차림도 노골적이지 않았다.그게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마치 ‘유혹’이 아니라 ‘확인’을 하러 온 사람처럼.서하는 거실 불빛을 한 번 쓸어보듯 바라보다가, 건우를 보았다.“불 켜놨네.”그 말투는 낮의 하나와 달리 말끝이 단정했다.감정을 숨기려는 게 아니라, 감정이 너무 선명해서 굳이 흔들지 않는 목소리였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조용하네.”서하는 천천히 걸어와 소파 끝에 앉지 않았다.그녀는 건우 맞은편이 아니라, 옆에 앉았다.어젯밤처럼 숨이 닿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몸이 서로의 온도를 느낄 만큼은 가까웠다.“조용하면 안 돼?”“너는 보통 그렇게 안 들어오잖아.”서하의 입꼬리가 아주 얕게 올라갔다.“넌 내가 들어오는 방식을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척하지.”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
Last Updated : 2026-05-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