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건우는 서하를 바라본 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방금 전까지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끌어내고,그걸 다시 의심하는 흐름이 분명히 이어지고 있었는데,지금은 그 흐름이 어딘가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채 멈춰 있었다.멈췄다는 표현이 정확한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이어진 결과만 남아 있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어야 할감각이 희미하게 빠져 있었다.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말하려던 내용이 있었는데,그 문장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잡히지 않았다.질문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막상 꺼내려는 순간 그 질문의 앞부분이&nb
건우는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몸이 멈춘 게 아니라, 움직이려고 하면 먼저 머릿속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생각이 이어지다가 중간에서 잘리는 게 아니라,이어지기 직전에 누가 한 번 끊어버리는 것처럼, 다음이 나오지 않았다.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거기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지금은 그 문장을 다시 꺼내려고 하면 어딘가가 비어 있었다.“나… 거기 없었어.”그가 다시 말했다.이번에는 확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문장이었다.서하는 그걸 듣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조용해졌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서하가 고개를 들었을 때, 건우는 이미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 대화가 어디로 가게 될지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확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빈틈이 있었고,의심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조각이 맞아떨어져 있었다.그래서 더 불안정했다. 하나로 결론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 이미 결론에 가까워진 감각이 먼저 몸을 붙잡고 있었다.“서하야.”그가 먼저 불렀다.이름을 부르는 순간, 말이 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그날 밤.”
여자가 말한 ‘경계’라는 단어가 방 안에 남아 있는 동안에도 공기는 그 자리에서 멈춰 있지 않았다.오히려 그 말이 떨어진 이후부터,보이지 않던 압력이 더 분명하게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지금까지는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짐작만 하면서 버텨왔다면,이제는 그 한계선 위에 정확히 올라서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발을 잘못 디디면 바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그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는 상태.건우는 그걸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몸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느낌은 이미 분명해졌고,서하의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호흡은 계속 어긋나고 있었고,시선은 한 번 맞았다가도 금방 흐트러졌으며,반응은 의식보다 먼저 튀어나왔다가
서하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그녀를 보고 있었고, 분명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데,그 말 한 문장이 그 사이의 거리를 이상하게 뒤틀어 놓았다.조금 전까지는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버티고 있었다면,지금은 그 두 개가 동시에 밀려들어오면서 기준 자체가 흐려지고 있었다.“그게 무슨 뜻이야.”건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짧게 끊지 않고, 숨을 한 번 더 이어 붙이며 물었다.“혼자가 아니었다는 얘기야, 아니면…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야.”서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보는 눈이 조금
“같이.”그 한 단어가 방 안에 남아 있을 때, 공기는 잠깐 고요해진 것처럼 보였다. 말이 더 필요 없을 만큼 정리가 끝난 상태였고, 그 정리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시선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택이 끝난 뒤에도, 몸이 그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고, 그 차이가 드러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처음 변한 건 호흡이었다.서하가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아까까지는 의식적으로라도 리듬을 붙잡고 있었는데,이번에는 그 리듬 자체가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들이쉬는 숨이 짧아졌다가, 내쉬는 숨이 길어졌다가, 그 사이에 아주 작은 끊김이 계속 끼어들었다. 건우는 그걸 보면서도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방금까지의 흐름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더 빨리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걸 그대로 두기에는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서하의 시선이 한 번 더 어긋났다.건우를 보고 있었는데,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 다른 쪽을 같이 보고 있는 것처럼 겹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반복이 두 번, 세 번 이어지면서, 단순한 피로나 긴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서하야.”건우가 낮게 불렀다.서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 대신 숨이 먼저 끊겼다.그녀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건우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지금 어디까지야.”그가 물었다.문장을 짧게 자르지 않고, 그대로 이어 붙였다.“겹치는 건지, 넘어가는 건지, 아니면 이미”말을 끝까지 잇기 전에, 서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나 아닌 쪽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건우의 눈이 멈췄다.“…더 빨라.”그 문장은 설명이 아니었다.상태 그 자체였다.건우는 그걸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지금까지는 같이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시신을 실은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건우는 비를 맞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경광등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형은 그렇게 떠났다.설명도, 변명도 없이.경찰은 현장을 통제했고, 필요한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참고인 조사 일정이 잡힐 거라고 했다.말은 또렷했지만, 건우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저녁 8시 전후.그 시간에 그는 집에 있었다.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하나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 현관을 나왔다.비는 여전히 세게 내리고 있었고,그녀의 코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부모님이 돌아가셨다.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