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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겹쳐지는 체온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9 09:32:07

아침이 왔는데도 밤은 다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건우는 거의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떴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이 희미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어젯밤의 말들이 지워지지 않았다.

“서하.”

자신이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냈던 순간.

그건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변명할 여지를 하나 지워버리는 일이었다.

건우는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왔을 때, 부엌 쪽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뒷모습이 낯설 만큼 조용해 보였다.

밤에 본 얼굴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건우는 문득 이상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한 것처럼.

“일어났어?”

하나가 먼저 돌아봤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조금 낮고, 조금 조심스러운.

“응.”

건우는 짧게 답했다.

하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제… 늦게까지 안 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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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우는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몸이 멈춘 게 아니라, 움직이려고 하면 먼저 머릿속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생각이 이어지다가 중간에서 잘리는 게 아니라,이어지기 직전에 누가 한 번 끊어버리는 것처럼, 다음이 나오지 않았다.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거기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지금은 그 문장을 다시 꺼내려고 하면 어딘가가 비어 있었다.“나… 거기 없었어.”그가 다시 말했다.이번에는 확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문장이었다.서하는 그걸 듣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조용해졌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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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그녀를 보고 있었고, 분명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데,그 말 한 문장이 그 사이의 거리를 이상하게 뒤틀어 놓았다.조금 전까지는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버티고 있었다면,지금은 그 두 개가 동시에 밀려들어오면서 기준 자체가 흐려지고 있었다.“그게 무슨 뜻이야.”건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짧게 끊지 않고, 숨을 한 번 더 이어 붙이며 물었다.“혼자가 아니었다는 얘기야, 아니면…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야.”서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보는 눈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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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8. 잠긴 문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 형수의 밤   7. 6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9시 12분.9시 18분.6분.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그녀가 먼저 물었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근데 전

  • 형수의 밤   6. 6분의 공백

    카페는 회사 건물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한산했다.유리창 밖으로는 출입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있었다.유림은 이미 와 있었다.짙은 네이비 재킷, 단정한 머리.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곧았다.하나와 건우가 들어서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와주셔서 감사합니다.”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하나는 마주 인사했다.“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건우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유림과 눈이 마주쳤다가,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세 사람은 마

  • 형수의 밤   5. 공백의 길이

    건우는 거의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떴다.방은 익숙했다.벽지의 색, 침대 옆 협탁의 위치, 책상 위에 뒤집힌 법전까지.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그런데도 공기는 낯설었다.부엌에서 물이 끓는 소리, 컵이 부딪히는 소리,혼자일 때는 존재하지 않던 생활의 잔향이 집 안에 남아 있었다.그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하나가 부엌에 있었다.단정하게 묶인 머리, 다림질된 셔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어제 새벽의 젖은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일어났네.”건우는 대답을 늦췄다가 짧게 말했다.“네.”하나는 커피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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