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331 - Chapter 340

358 Chapters

331. 왕부 안의 이름

"…누구지."월령이 다시 물었다.강무진은, 그 이름을 쉬이 입에 올리지 못했다."…설련이었습니다."방 안이, 조용해졌다.*위지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월령은, 잠깐 말을 잃었다.설련. 자녕궁의 숙비 곁에서 자라, 그 그늘의 안쪽을 본 아이. 그 그늘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산실에서 초야의 손목을 붙든 아이."…초야가, 설련을 댔다고.""예. 다음 명부를 받을 이름이, 설련이라 했습니다."강무진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그 자신도, 그 이름을 믿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초야가, 왜 그 이름을 댔을까요."월령이 낮게 물었다.위지헌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사흘을 버티던 자가 끝에 내놓은 이름이라면, 거기에 뜻이 없을 리 없었다."…그 뜻을, 알아내야겠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그 말은, 하루도 안 되어 왕부 안에 옅게 번졌다.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설련이 지나가면 눈이 한 번씩 따라갔다. 더운 물을 나르던 손이, 설련이 들어오면 잠깐 멎었다. 산실에서 안주인을 지킨 아이가, 하루아침에 곁눈질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방어멈이, 그 곁눈질을 먼저 나무랐다."눈들 똑바로 둬라. 그 아이가 안주인 손목 잡고 향을 막을 때, 너희는 어디 있었어."그러나 나무람만으로, 한번 든 의심이 가시지는 않았다.청아만은, 그 의심에 끼지 않았다."설련 언니가 아니에요."청아가 부엌에서 낮게 말했다."그 밤에, 언니가 마마님 손목 잡는 걸 제가 봤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마마님을 해쳐요."그러나 청아의 말은, 겁먹은 다른 이들의 침묵에 묻혔다. 의심은, 목격보다 빨리 번지는 것이었다.왕부의 공기가, 하루 만에 달라졌다. 서로를 믿던 집이, 서로를 곁눈질하는 집이 되었다. 초야는 죽어서도, 그 하나를 이뤄 놓고 갔다.월령은 그 달라진 공기를 하루 만에 알아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적이 원한 것임을 곧 알았다.*설련이, 제 발로 월령을 찾아왔다."마마님."설련이 낮게 말했다. 얼굴이
Read more

332. 묶지 않는다

"묶지 않는다."월령이 말했다.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확신하느냐. 저 아이가 아니라고.""확신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초야가 왜 하필, 설련의 이름을 댔을까요. 사흘을 버티던 사람이, 끝에 내놓은 이름이에요. 아무 이름이나 내놓지 않았어요."죽어 가면서도, 초야는 왕부에 의심 하나를 심고 갔다. 그 의심이 자라면, 왕부는 제 손으로 제 사람을 벤다.전생의 궁이 그러했다. 아무도 칼을 안 들었는데, 사람이 사람을 베었다. 의심 하나가, 백 자루의 칼보다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설련은, 자녕궁의 그늘을 안에서 본 아이예요. 향이 어디서 오는지, 명부가 어떻게 도는지. 그 그늘의 안쪽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그런 아이를 우리가 제 손으로 묶어 가두면—""…적은, 손 하나 안 대고 그 아이를 잃게 만드는 거지."위지헌의 눈이 서늘해졌다."초야는, 설련을 없애려고 그 이름을 댄 거예요. 우리가 의심으로, 우리 편을 잘라 내게.""…교활한 수로군."위지헌이 낮게 말했다."칼을 안 들고, 우리 손에 칼을 쥐여 주는.""그 칼을, 안 쥐어요."월령이 낮게 답했다."쥐는 대신, 그 칼을 준 손을 따라가요."*전생에도, 궁은 그렇게 무너졌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제 손으로 제 편을 치게 하고. 월령은 그 그림을, 안에서 겪은 사람이었다."이번 생엔, 그 손에 안 놀아나요."월령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러나 단단했다.전생에 그녀는, 그 손이 짠 그림 안에서 홀로 죽었다. 이번 생에는 그 그림을 밖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림을 밖에서 보는 사람은, 다음 획이 어디로 갈지 안다.적은 이번에도, 같은 획을 그으려 했다. 월령은 그 획이 닿기 전에, 붓을 쥔 손을 보려 했다.*"그럼, 어쩌려고.""설련을 그대로 둬요. 곁에, 전처럼."월령이 낮게 말했다."대신, 소문은 그대로 흐르게 둬요. '설련이 의심받고 있다'고. 그 소문이 왕부 밖으로 나가려면, 누군가 그걸 물어 나르는 입이 있어야 해요. 설련이 미끼면,
Read more

333. 물어 나르는 입

설련을 향한 의심은, 그대로 두었다.도리어 월령이, 그 의심을 옅게 부추겼다. 설련에게 안채 출입을 줄이게 하고, 다른 이들이 보는 데서 한두 번 차게 대했다. 왕부 안의 눈들이, 그것을 보았다.월령은, 설련에게 미리 일러 두었다."차게 대해도, 서운해 마라. 보는 눈이 있어야, 무는 입도 움직인다.""압니다, 마마님."설련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도리어 제 몫의 연기를, 야무지게 해냈다. 안채에서 물러날 때 어깨를 조금 늘어뜨리고, 다른 시비들 앞에서 말수를 줄였다.*그리고 월령은, 그 눈들을 되보았다.설련이 차게 대접받는 것을 보고, 누가 그 소식을 반기는지. 누가 그것을 품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지. 강무진과 기윤이, 왕부의 드나드는 걸음을 조용히 세었다.드나드는 사람 하나하나를, 이름과 시각까지 적었다. 여느 때와 다른 걸음 하나가 나오면, 그것이 무는 입이었다.사흘째 되던 저녁, 그 다른 걸음 하나가 나왔다.왕부의 여느 저녁과 똑같은 저녁이었다. 다만 그 저녁에, 한 걸음이 여느 때와 어긋났다.*왕부의 반빗간에 드나드는 노파 하나가 있었다.이름을 막실이라 했다. 오래 왕부의 반찬거리를 대던 여인이라, 대문을 드나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아무도, 그 늙은 반빗아치를 눈여겨보지 않았다.그것이, 그 여인이 오래 쓰인 까닭이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만큼, 소식을 나르기 좋은 사람은 없었다.월령이 노린 것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눈에 안 띄는 사람일수록, 잡으면 크게 흔들 수 있었다.그런데 그 막실이, 설련이 의심받기 시작한 그날 저녁, 여느 때보다 이르게 대문을 나섰다.*기윤이, 그 뒤를 밟았다.막실은 저잣거리 초입의 국밥집에 들렀다.왕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오래 다닌 듯 주인과 눈인사만 나누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국밥 한 그릇을 시키고, 값을 치르며 엽전 사이에 접힌 종이 하나를 함께 내려놓았다. 국밥집 주인이, 그 종이를 소매에 넣었다.한두 번 해 본 손이 아니었다. 종이를
Read more

334. 막실

막실이, 월령 앞에 꿇렸다.늙은 반빗아치였다. 삼십 년을 왕부의 반찬거리를 대 온 손이, 잘게 떨렸다.월령은, 그 떠는 손을 오래 보았다. 그 손이 삼십 년간 이 집의 밥을 지었다. 그 손이, 이제 이 집을 판 종이를 날랐다.월령은, 그 손을 벌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 손이 왜 떨리는지를, 먼저 알고 싶었다.*"…누가, 시켰지."월령이 낮게 물었다.막실은, 오래 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제 손자가, 그 사람들 손에 있습니다."방 안이, 조용해졌다."작은 종이 하나 날라 주면, 손자를 살려 준다 했습니다. 큰일도 아니라고… 그저, 왕부 안의 소식 몇 줄이라고요."막실의 목소리가, 잘게 부서졌다."손자밖에… 없습니다. 그 아이 하나 살리자고, 제가 밥 먹인 집을 팔았어요. 죽어 마땅한 년입니다."막실이, 제 손으로 제 뺨을 한 번 쳤다.늙은 손이 늙은 뺨을 치는 소리가, 방 안에 낮게 울렸다. 월령은 그 손을 말리지 않았다. 다만, 오래 보았다.그 오래 봄이, 문초보다 무거웠다.*월령은, 그 늙은 여인을 오래 보았다.벌하기는 쉬웠다. 문초하고, 내치고, 죄를 물으면 됐다. 그러나 그러면, 저쪽은 막실이 잡힌 것을 알고 다른 입을 세울 것이었다. 잡을 수 있는 실 하나가, 끊어지는 셈이었다.무엇보다, 이 늙은 여인은 적이 아니었다. 손자 하나에 겁먹은, 삼십 년 이 집의 사람이었다. 적이 겨눈 것은 이 여인이 아니라, 이 여인의 겁이었다.벌하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무섭게 쓰였다. 삼십 년을 밥 지은 손을 죄인으로 내치는 대신 사람으로 되돌리면, 그 손은 무엇이든 했다."막실."월령이 낮게 말했다."네 손자를, 내가 찾아 주마."막실이, 고개를 들었다.월령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빈말이 아니었다. 강무진이 이미, 그 아이가 어디 잡혀 있는지 실을 잡기 시작한 참이었다.아이를 잡아 둔 자들은 곧, 저희가 쥔 패가 도리어 덫이 된 것을 알게 될 것이었다.월령은, 적이 쥐여 준 겁을
Read more

335. 거꾸로 흐르는 소식

그날부터, 막실이 나르는 종이는 월령의 손에서 나갔다.거짓과 참을, 월령이 반반씩 섞었다. 저쪽이 이미 아는 것 몇 줄에, 월령이 흘리고 싶은 것 한 줄을 얹었다. 참에 섞인 거짓은, 참처럼 읽혔다.월령이 흘린 한 줄은, 이런 것이었다. 왕부의 눈이 여전히 설련에게 쏠려 있다는 것. 정작 안주인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저쪽은 알지 못했다.저쪽이 설련을 보는 동안, 월령은 저쪽을 보았다. 종이가 나가는 길을, 거꾸로 되짚으며.*그리고 월령은, 그 종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았다.국밥집에서, 다른 손으로. 그 손에서, 또 다른 손으로. 종이는 몇 번 손을 바꾸어, 마침내 한 곳으로 모였다.궁의, 자녕궁이었다.월령의 손끝이, 그 이름 앞에서 잠깐 멎었다. 숙비의 처소였다. 근래 숙비가 병을 칭하고 오래 문을 닫아건, 인적 끊긴 자리.오래 잊혔다는 것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무언가를 숨기기에, 그만한 자리가 없었다.병을 칭한 처소라, 산 사람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귀신이 산다는 소문까지 돌던 곳이었다. 그 소문이, 도리어 좋은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자녕궁. 오래 비어 있다던, 대비의 옛 처소.설련이 그 이름을 듣고, 낮게 말했다."…거기예요. 제가 자란 곳. '연'의 명부가, 거기서 나와요."월령의 손끝이 식었다. 늙은 후궁도, 초야도, 막실도. 다 그 한 곳으로 이어지는 실이었다.늙은 후궁이 숨은 산실도, 초야가 든 산실도, 막실이 나른 종이도. 겉으로는 다른 손이었으나, 실을 거슬러 오르면 한 손이었다.그 한 손을, 월령은 아직 보지 못했다. 다만 그 손이 어느 방 안에 있는지는, 이제 알았다.두 생에 걸쳐 어머니를 죽이고 월령을 죽인 손이, 그 닫힌 처소 안에 있었다. 병을 칭해 잠근, 그곳에.비어 있어야 할 곳이 비어 있지 않다면, 그것부터가 적의 첫 거짓말이었다.*"마마님."설련이 낮게 말했다."저를, 안 묶어 주셔서.""…음.""그 덕에, 여기까지 왔어요. 저를 잘라 냈으면, 이
Read more

336. 대를 잇는다는 말

봄이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조정에 한 가지 말이 돌기 시작했다.섭정왕가에, 아직 아들이 없다는 말이었다.*말은, 곱게 시작되었다.섭정왕이 나라의 큰 기둥이니, 그 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정비가 딸을 낳았으니, 이제 측실을 하나 들여 아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 종친의 도리이자, 나라의 안정이라는 것.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위험한 말이었다. 옳은 말의 탈을 쓴 것일수록, 물리치기가 어려웠다.곱게 시작된 말일수록, 뒤가 사나웠다. 그 말의 뒤에는, 노예원이 있었다.노예원은, 산실에서 한 판을 지고도 물러서지 않은 여인이었다. 힘으로 밀고, 법도로 흔들고, 이번에는 후사라는 이름으로 안을 파고들었다. 지는 자리마다, 그 여인은 새 명분을 하나씩 갈아 끼웠다.이번 명분은, 앞의 것들보다 질겼다. 후사라는 말은, 왕가 스스로도 함부로 물리치기 어려운 말이었으니까.*노예원은, 제 사람들을 움직였다.몇몇 종친 부인이, 황후에게 넌지시 아뢰었다. 섭정왕가의 후사가 걱정된다고. 마침, 참하고 문벌 좋은 규수가 여럿 있다고.측실 후보의 이름까지, 이미 입에 오르내렸다. 그 가운데, 노예원의 먼 조카 하나가 있었다. 곱고 어린 규수라 했다.아직 열예닐곱이나 되었을까 싶은 규수였다. 그 어린 규수가 노예원의 손에서 어떤 패로 쓰일지, 규수 자신은 아직 모르는 얼굴이었다.*황후가, 그 말을 월령에게 전했다."…네 귀에도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어, 부른다."황후가 낮게 말했다."섭정왕가에 측실을 들이자는 말이, 돌고 있다."월령은,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놀라지 않았다. 노예원이 딸의 소식을 듣던 그 밤부터, 올 것이 온 것뿐이었다.'딸이라, 대를 이을 아들 자리는 비었구나.' 노예원이 그날 밤 흘렸다는 그 말이, 이제 조정 한복판에 측실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었다.*"…마마께서는, 어찌 보십니까."월령이 낮게 물었다."나는, 이 일에 손대지 않으마."황후가 말했다."측실을 들이고 안 들이고는, 그
Read more

337. 들이지 않는다

그날 밤, 위지헌도 그 말을 들었다.강무진이 조심스레 아뢰었다. 조정에 도는 말과, 측실 후보로 오르내리는 이름들을. 노예원의 조카가 그 가운데 있다는 것까지.위지헌의 눈썹이, 그 이름에서 한 번 굳었다. 노예원의 조카라면, 그 규수의 뒤에 무엇이 서 있는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위지헌은, 오래 듣지 않았다."들이지 않는다."한마디였다."…왕야. 후사가 걱정된다는 명분이라, 조정에서 자꾸 밀어붙이면—""들이지 않는다. 두 번은, 없다."위지헌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러나 그 낮음이, 강무진의 다음 말을 막았다.강무진은, 더 아뢰지 못했다. 왕야가 저 목소리를 낼 때는 무슨 말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다만 물러나면서, 그 마다함이 조정에서 어떤 말이 되어 돌아올지를 걱정했다.*그러나 위지헌도, 그 마다함의 값을 알았다.섭정왕이 후사를 위한 측실마저 마다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트집이 되었다. 산실 문을 넘은 일이 그러했듯이. 저들은, 그의 모든 마다함을 주워 칼로 벼렸다.그러나 위지헌은, 그 트집이 무서워 측실을 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트집은 견디면 됐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이 자리에 월령 아닌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이었다.들여도 덫이고, 안 들여도 트집이었다. 노예원은, 그 두 갈래를 다 재 놓고 이 말을 흘린 것이었다.한쪽 문으로 들어오면 안을 흔들고, 그 문을 닫으면 밖에서 트집을 잡고. 어느 쪽이든, 노예원은 잃을 것이 없는 수를 두었다.*위지헌이, 안채로 들었다.월령은 봄을 재우고 있었다. 등불 아래, 작은 것이 그녀의 팔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어린 숨이 오르내리는 결이, 방 안에서 가장 고요한 것이었다.그 고요한 숨 하나를 지키자고, 밖에서는 온 조정이 시끄러웠다. 위지헌은 문가에서, 그 대비를 오래 보았다.위지헌은 그 모습을 문가에서 잠깐 보았다. 그리고 낮게 불렀다."…령아.""…들으셨어요."월령이, 고개를 들지 않고 물었다."들었다.""어찌하실 거예요.""이미 말했다. 들이지 않는다고
Read more

338. 너 하나다

위지헌이, 그녀의 곁에 앉았다.잠든 봄을, 그가 조심스레 받아 유모에게 넘겼다. 방문이 닫히고, 방 안에 두 사람만 남았다.측실이라는 말이 온 조정을 채운 밤에, 그 방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위지헌은 그 둘뿐인 자리에서 저들의 말에 답할 셈이었다. 말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이 아이가 딸이라서 저들이 그러는 거라면, 제가 부군께—""령아."위지헌이 그 말을 끊었다.그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말을 더 잇지 못하게."나는, 대를 이으려고 너를 안는 게 아니다."*그 말과 함께,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깊었다. 그녀의 입에서 '못 드려서' 같은 말이 다시 나오지 못하게, 오래. 월령의 말이, 그 입맞춤 안에서 흩어졌다."…부군.""아들이든 딸이든."그가 숨 사이로 낮게 말했다."나는 너를 안는다. 후사가 아니라, 네가 너라서."그 말이, 월령의 안에서 오래 얼어 있던 것을 녹였다. 딸을 낳아 죄스럽던 마음이, 그 한마디에 조금씩 풀렸다.*그의 손이, 그녀의 옷고름으로 갔다. 급하지 않았다. 다만, 물러설 기색도 없었다.월령의 등이, 등불 아래로 천천히 눕혀졌다. 그 위로, 위지헌이 몸을 기울였다. 그의 무게가 닿을 때마다, 월령의 숨이 한 번씩 얕아졌다.무섭지 않았다. 두 생을 건너 처음으로, 무게 하나가 이렇게 든든한 밤이었다."저들이 뭐라 하든."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낮게 말했다. 이름을 부르는 자리마다, 열이 번졌다."이 자리에, 다른 사람은 안 들인다. 두 생을 통틀어, 너 하나다."*월령의 눈시울이, 열기 속에서 옅게 젖었다.그 젖음을, 위지헌이 입술로 지웠다. 눈가에서, 관자놀이로. 관자놀이에서, 다시 입술로. 지우는 손길이, 뜨거우면서도 다정했다.월령은 그 손길 아래, 오래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죄스럽다는 마음도, 못 낳았다는 마음도. 그 밤 그의 품 안에서 하나씩 녹아 없어졌다.남은 것은, 그를 향한 뜨거움 하나뿐이었다.월령은 그 밤, '못 드려서'라는 말을
Read more

339. 후사라는 말의 뒤

이튿날, 월령은 그 '후사'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았다.*저들의 명분은, 후사가 없어 왕가가 위태롭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왕가의 후사를 정말로 끊으려 한 손은, 따로 있었다. 두 생에 걸쳐 어머니를 죽이고, 월령을 죽이고, 봄이 태어나던 밤 산실에 독향을 들인 손. 자녕궁의, 그 손이었다.숙비가 병을 칭해 닫아건 그 처소에서, 두 생에 걸쳐 같은 명부가 나왔다. 이번 생에도 그 손은, 같은 끝을 그리려 했다.월령은 이번엔, 그 손이 붓을 놀리기 전에 종이를 빼앗을 셈이었다."…저들은, 후사가 없다고 걱정하는 척하면서."월령이 낮게 말했다."정작 그 후사를 지우려는 손과, 한 줄로 이어져 있어요."*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한쪽은 아들이 없다 흔들고, 한쪽은 그 아들이 오기도 전에 지우려 했다. 겉으로는 정반대의 말이었으나, 두 손이 노리는 것은 하나였다. 섭정왕가의 대를, 끊는 것.월령은 그 두 손을, 한 자리에 놓고 보았다. 측실을 들이라는 말과, 아이를 지우려는 향. 따로 보면 남남이었으나, 함께 보면 한 몸이었다."…노예원과, 자녕궁이.""같은 자리에서 나온 손이에요. 하나는 측실로 안을 흔들고, 하나는 향으로 대를 끊고."*월령은, 막실이 나르는 종이에 한 줄을 얹었다.'섭정왕비가, 측실 말을 받아들이려 한다. 아들을 못 낳은 것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거짓이었다. 그러나 그 거짓을, 저쪽이 참으로 믿으면.월령은, 제가 흔들린다는 그림을 스스로 그렸다. 아들을 못 낳아 자리를 위협받는, 흔한 정비의 그림. 저쪽이 오래 봐 온 익숙한 그림이었다. 익숙한 그림일수록, 의심 없이 믿었다.월령은, 저쪽이 오래 봐 온 그 그림을 도로 그려 저쪽에게 돌려주었다. 참처럼 보이는 거짓 한 장을.그 한 장이 자녕궁까지 가 닿으면, 저쪽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저쪽이 그 말을 믿으면, 무슨 일이 생기오."위지헌이 물었다."방심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제가 흔들린다 믿으면, 노예원은 서둘러 제 조카를
Read more

340. 서두르는 손

월령이 흔들린다는 소식은, 며칠 만에 자녕궁까지 닿았다.그리고 노예원이, 서둘렀다.월령이 흔들린다는 거짓을 문 순간, 노예원은 이때다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두르는 자는, 발밑을 보지 못했다.*노예원은, 제 조카를 서둘러 궁의 봄 잔치에 세웠다.섭정왕의 눈에 들게 하려는 자리였다. 그 어린 조카에게, 값비싼 패물과 고운 옷을 입히고. 그리고 향을 들려.어린 규수는, 제 몸에 어떤 향이 발렸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곱게 단장하고 나온 그 아이는, 노예원의 야심을 실어 나르는 그릇일 뿐이었다.그 향을, 설련이 알아보았다.*"…마마님. 저 향이에요."설련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자녕궁에서 나오는, 그 향. 노예원의 조카가, 그걸 몸에 지니고 있어요."월령의 손끝이 식었다.측실로 들어오려는 규수의 몸에서, 자녕궁의 향이 났다. 안을 흔들려는 손과, 대를 끊으려는 손이. 한 향을 나눠 쓰고 있었다.*노예원과 자녕궁이, 향 하나로 이어졌다.측실을 밀어넣으려는 야심과, 두 생에 걸쳐 왕가의 대를 지우려는 명부가. 겉으로는 다른 일이었으나, 한 자리에서 나온 향을 쓰고 있었다.월령은, 멀리 그 규수를 오래 보았다. 마침내, 노예원의 야심과 자녕궁의 명부가 한 줄로 꿰였다.오래 따로 놀던 두 실이, 향 하나에서 만났다.이제 남은 것은, 그 실의 끝에 있는 방 하나를 여는 일이었다. 숙비가 병을 칭해 닫아건, 인적 끊긴 안쪽.그 문 앞까지, 이제 반걸음이 남았다. 그 반걸음을, 저쪽이 마저 딛게 하면 됐다.*"…잡았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위지헌이 그녀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혼자, 다 짊어지지 마라.""혼자 아니에요."월령이 그를 보았다."이번 생엔, 부군이 곁에 있잖아요."위지헌은 그 말에, 그녀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전생에 월령은, 이 모든 것을 혼자 겪다 혼자 죽었다. 곁에 손 하나 없이. 이번 생에는, 그 손이 제 손 위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짊어진 것이 절반으로 가벼웠다.월
Read more
PREV
1
...
31323334353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