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강 건너 마을은 개 짖는 소리로 밤을 알렸다.기윤은 지붕 위에 엎드려 있었다. 아래 초가에서 여인이 물을 길어 들이고, 그 뒤를 대여섯 살 사내아이가 따랐다. 아이가 넘어졌다. 여인이 돌아서서 아이를 일으키다가, 사립문 밖의 그림자를 보고 굳었다.그림자는 기윤이 아니었다.먹빛 소매의 여인이었다. 향을 짓는 손이 사립문을 밀었다. 여인이 아이를 제 뒤로 숨겼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기윤은 지붕에서 그 문을 밤새 보았다.새벽에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아이는 없었다.*"오상궁이에요. 자녕궁 향방을 맡은."설련이 그 이름을 댄 것은, 기윤이 강을 건너기 전이었다."향을 짓는 손이, 옥에는 왜 드나들지.""향을 짓는 손이라서요. 숙비마마는 손에 아무것도 안 쥐어요. 쥐는 건 늘 오상궁이었어요. 명부도, 향도, 저도."설련이 마지막 말을 조금 늦게 붙였다. 위지헌은 그 늦음을 흘려듣지 않았으나, 묻지도 않았다."기윤."그림자가 답했다."오상궁의 하루를 가져와라. 어디서 자고, 누구 집 문을 두드리는지."*기윤이 돌아온 것은 이틀 뒤 저녁이었다.옷자락에 흙이 묻어 있었다. 강 건너 흙이었다."도성 밖 강촌입니다. 명부지기의 며느리와 손자가 거기 삽니다. 오상궁이 그 집 문을 두드렸고, 새벽에 손자가 사라졌습니다.""…사라져.""자녕궁 소속 절에 맡겼습니다. 공부시켜 준다는 명목으로."월령의 소매 안 손끝이 접혔다."명부지기가 옷자락을 쥔 까닭이, 그거였군요.""손자를 찾아옵니까."강무진이 물었다."찾아오면 자녕궁이 안다. 알면 다른 이름을 잡는다."위지헌이 말했다."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켜라. 절 담 밖에 사람을 둬. 아이가 절 안에서 한 발도 안 나오게.""…어느 정도로 안 나오게 합니까.""제가 절 밖으로 나오고 싶어질 때까지."강무진이 그 말을 곱씹더니, 알겠다는 얼굴로 나갔다.*그날 밤, 월령은 늦도록 장부를 펴 놓고 있었다.문상궁의 봉함 기록이 그 곁에 있었다. 오래전 봉해진 이름. 그 봉함을 청한
"…뭐라고 바꿨지.""제가 혼자 한 일이라고요. 위에서 시킨 게 아니라, 늙은 것이 제멋대로 사람을 지웠다고. 어젯밤까지 '위에서'라던 입이."강무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밤사이 옥에 누가 들었느냐.""옥리 말로는, 아무도.""옥리 말 말고.""…그건 제가 물어 온 게 아니라서."강무진이 솔직하게 답했다. 위지헌은 그 솔직함에 고개만 까딱이고 일어섰다.*옥은 눅눅했다.명부지기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손이 달랐다. 어제는 무릎 위에 포개 두었던 손이, 오늘은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혼자 했다고."월령이 물었다."예. 제가 혼자 했습니다. 마마님이 누굴 잡으려 하시는지 알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어요.""어제는 있다 하셨는데요.""늙은 것이 헛소리를 했지요."명부지기는 월령을 보지 않고 답했다. 옷자락을 쥔 손가락이 하얬다.월령은 그 손가락을 보았다. 그러고는 물음을 바꿨다."…손자가, 몇 살이에요."명부지기의 손이 멎었다.*"…그런 건 왜 물으십니까.""어제는 없던 겁이, 오늘 있으니까요."월령이 낮게 말했다."누가 밤에 와서, 손자 이름을 대고 갔군요."명부지기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으로 답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옥리를 불렀다."어젯밤 이 옥에 든 사람, 옥리 말고 또 누가 있지요.""…없습니다.""그럼 옥리 당신이 들었네요."옥리의 얼굴이 굳었다."저, 저는 옥을 지킨 것뿐입니다.""지켰으면, 문을 연 손도 봤겠네요."옥리가 침을 삼켰다. 명부지기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가, 옥리가 먼저 눈을 내렸다."…상궁 하나가, 왔습니다. 잠깐 얼굴만 보고 간다고.""어느 처소.""…그건 말 안 했습니다.""말 안 해도, 향은 남지요."월령이 옥 안의 공기를 한 번 맡았다. 눅눅한 냄새 아래, 옅게 다른 것이 있었다. 자녕궁의 그 향이었다.*옥을 나오며, 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뒤집힌 것을, 도로 뒤집을 셈이냐."
"…이 값은, 아직 안 치러졌군."위지헌이 월령의 어깨 너머로 그 줄을 읽었다.값 자리에 먹이 마르지 않은 채, 숫자 대신 획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매기다 만 셈이었다."치러지기 전에 태우라 하셨소."독고진겸이 낮게 말했다."그 줄이 마르기 전에, 내가 먼저 도성을 뜨라고.""…누가 치르지.""돈이야 상단이 치르지. 그런데 그 돈이 나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따로 있소. 나도 그 얼굴은 병풍 너머로만 봤고."*기윤이 창턱에서 소리 없이 내려섰다."밖에 발소리 둘. 상단 사람은 아닙니다."위지헌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으로 기윤은 다시 그림자가 됐다.월령은 장부를 소매 안에 넣지 않았다. 접지도 않았다. 펴진 채로 품 안에 붙여 들고, 아궁이의 남은 불을 한 번 더 보았다."…이 사람은요.""데려간다."위지헌이 독고진겸을 보지 않고 말했다."살려 두면 값이 되고, 죽으면 숙비의 값이 된다. 강무진.""예.""뒷덜미 말고 허리띠."강무진이 낮게 헛기침을 하고 독고진겸의 허리띠를 잡았다.독고진겸은 끌려가며 한 번 돌아보았다. 월령이 아니라, 아궁이를 보았다. 다 타 버린 장부들의 재를."…그 재 속에, 내 이름도 있소.""압니다."월령이 답했다."그래서 데려가는 거예요. 재가 되기 전에."*돌아오는 길, 마차 안은 어두웠다.월령은 펴진 장부를 무릎 위에 놓고, 그 위에 두 손을 얹었다. 위지헌이 그 손을 보았다."…손이 차다.""불 앞에 오래 있었는데도요."그가 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장부째로. 그 손이 무거워서, 월령은 잠깐 눈을 감았다."…이 한 장으로, 될까요.""안 된다."위지헌이 바로 답했다. 월령이 눈을 떴다."이 한 장으로는 안 돼. 그런데 이 한 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왕부에 닿은 것은 새벽이었다.방어멈이 대문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밤새 잠을 안 잔 얼굴이었다."애 젖 먹일 시각에 어미가 들어오는 집이 어디 있답니까.""어멈.""죽 데워
"…설련이가, 보냈나."독고진겸이 다시 물었다.월령은, 그 물음에 곧장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궁이 속에서 말려 드는 장부를 보았다."…그걸 태우면, 숙비가 당신을 살려 줄 것 같아요?"독고진겸의 손이, 잠깐 멎었다.월령은, 그 멎은 손을 놓치지 않았다. 태우라는 명을 받은 사람이 태우는 손을 멈칫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이 사내도, 제가 무엇을 태우는지 알고 있었다.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겨 온 손이었다. 그 값이 어디로 흘러 누구의 목을 조였는지, 이 사내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손이 지금, 그 셈을 스스로 태우고 있었다.무엇이 그 손을 태우게 했는지, 월령은 알 것도 같았다.*"…숙비마마의 명이오."독고진겸이 낮게 말했다."장부를 지우고, 나도 도성을 뜨라는. 병중이신 분이, 그 와중에도 그것부터 챙기셨지.""…장부만 지우라 했어요? 당신은요."월령이 낮게 물었다.독고진겸은, 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장부가 재가 되고 나면, 그 장부를 쥐던 손도 함께 재가 될 것이었다. 숙비는 제 오라비의 목숨까지, 셈에 넣어 두었다.피를 나눈 오라비도, 숙비에게는 지울 수 있는 한 줄이었다. 하물며 남의 집 아이 하나쯤은. 독고진겸은 그 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제가 그 셈을 매겨 온 손이었으니까.*"당신 딸은, 그 그늘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설련이가 당신을 가리켰어요. 아비를 파는 게 아니라, 아비도 그 명부에서 빼내려고. 당신이 태우는 그 장부가, 언젠가 당신 딸 이름도 적을 거라서요."독고진겸의 눈이, 불빛 속에서 흔들렸다.오래 셈만 매기던 손이었다. 사람의 목숨에 값을 붙이면서도 제 손끝은 떨지 않던 손. 그 손이, 제 딸의 이름 앞에서 처음으로 흔들렸다.설련. 괄시받던 첩실 소생, 셈방 뒤로 숨던 어린 딸. 그 이름 하나가, 값을 매기던 손을 처음으로 멈춰 세웠다.*그가, 손에 든 마지막 장부를 오래 내려다보았다.그러고는 그 한 권을, 아궁이에 넣
위명서가 그 말을 흘린 순간, 월령은 알았다.위명서가 안다는 것은, 곧 숙비도 안다는 뜻이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이르지 않을 리 없었다.월령은 걸음을 서둘렀다. 위명서의 입에서 숙비의 귀까지는, 반나절이면 닿았다. 그 반나절 안에 셈방에 먼저 닿아야, 장부가 재가 되기 전에 한 장이라도 건졌다.월령은 이번에도, 숙비의 손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를 먼저 읽었다. 숙비라면 사람보다 장부부터 지운다. 이름과 값을 이은 그 한 줄이, 숙비에게는 제 목보다 위험했으니까.*궁을 나서기 무섭게, 월령은 위지헌에게 그 걸음을 옮겼다."숙비가 알기 전에, 독고진겸을 먼저 잡아야 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그 셈방 장부가, 명부와 숙비를 잇는 유일한 물증이에요. 숙비가 먼저 손을 쓰면, 그 장부부터 지울 거예요. 제 오라비까지 잘라서라도."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강무진."한마디에, 거구의 사내가 그림자에서 나왔다."청릉 상단 뒷방이다. 기윤을 데리고, 지금."*그러나 숙비의 손이, 반나절 빨랐다.강무진과 기윤이 청릉 상단에 닿았을 때, 뒷방에서는 이미 다른 걸음이 오가고 있었다. 급히 짐을 싣는 손,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손. 무언가를 서둘러 없애는 손이었다.숙비의 손이, 제 아들의 입보다도 빨랐다. 아니, 아들이 어미에게 이르기도 전에—어미가 먼저 손을 쓴 것이었다. 숙비는 제 아들의 걸음까지 셈에 넣어, 반나절을 앞서 있었다.위명서가 월령 앞에 나선 그 순간, 숙비는 이미 청릉 상단으로 사람을 보낸 뒤였다. 아들의 입을 통해 새는 소식까지, 그 어미는 셈에 넣어 두고 있었다.기윤이, 지붕을 타 넘어 그 뒷방 창을 먼저 짚었다.*월령과 위지헌이 그 뒷방에 닿은 것은, 해가 기운 뒤였다.문을 열자, 종이 타는 냄새가 확 끼쳤다.장부가, 아궁이 속에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두꺼운 셈방 장부 여러 권이, 불길에 귀퉁이부터 말려 들어갔다. 값과 이름을 이은 그 줄들이, 한 장씩 재로 바스러졌다.몇 해 치 셈이, 반나절 불
"…삼전하께서, 자녕궁을 걱정하시나 봅니다."월령이 나긋하게 받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이었다.위명서의 웃음이, 잠깐 굳었다.월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삼전하의 앞이라고 고개를 숙이지도, 그렇다고 맞서 세우지도 않았다. 나긋한 결로, 다만 한 뼘도 내주지 않았다.위명서는 그 한 뼘을 오래 밀어 보았다. 예법으로도, 미소로도. 그러나 월령은 나긋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밀리지 않는 부드러움이, 도리어 위명서를 서늘하게 했다.*"걱정이라."위명서가 낮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처소를, 섭정왕가가 밤낮으로 살핀다 들었소. 병중이신 분을. …그게 걱정할 일이 아니면, 무엇이오."월령은, 그 눈을 마주 보았다.다정한 얼굴이었다. 예법에 흠 하나 없는 얼굴. 그런데 그 얼굴 아래로, 다른 것이 지나갔다. 월령을 보는 눈이, 어머니를 말하는 눈보다 오래 머물렀다.전생의 월령은, 이 눈빛의 뜻을 너무 늦게 알았다. 폐후의 명을 내리던 그 손이, 실은 저를 미워한 손이 아니라 갖지 못해 뒤틀린 손이었다는 것을. 이번 생에는, 그 뒤틀림을 먼저 읽었다.뒤틀린 마음은, 미움보다 다루기 어려웠다. 미워하는 손은 멀리 밀어내면 됐지만, 갖고 싶어 하는 손은 밀어낼수록 더 다가왔다. 월령은 그 결을, 두 생 만에 알아보았다.*전생에, 이 얼굴이 월령을 형장으로 보냈다.숙비에게 휘둘려, 제 손으로 폐후의 명을 내린 얼굴. 그러나 이번 생의 위명서는, 아직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자신도, 제 어머니가 안쪽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지는 못하는 얼굴이었다.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그 경계에서 위명서는 오래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이 사내의 유일한 틈이었다.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들이 온전히 알게 되는 날. 그날이 오면 위명서는 어머니의 편에 설 수도, 등질 수도 있었다. 그 갈림이, 이 사내의 틈이자 판이었다.월령은, 그 판을 눈에 담아 두었다."…삼전하는."월령이 낮게
해시가 가까워질 무렵, 남쪽 연못에는 안개가 내려앉았다.봄밤의 안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얇고 희어서,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서 곧장 풀어질 듯했다.그러나 그 안에 오래 서 있으면 숨이 조금씩 낮아졌다.물 위의 달도,버드나무 아래 그림자도,멀리 별채 처마에 걸린 등불도 한 겹씩 지워졌다.소리가 먼저 숨었다.벌레 우는 소리는 물가의 돌 틈으로 잦아들었고, 회랑 아래 고인 밤공기는 젖은 약재처럼 싸늘했다.월령은 회랑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흰 장삼 위에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다. 밤 안으로 스며
그 말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그대가 내 곁에 있다면.이 황궁도 외롭지 않을 것 같군요.위명서의 목소리는 살구꽃잎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너무 가벼워서, 처음 듣는 사람은 그것이 칼집에 숨은 소리라는 것을 모를 터였다.한때의 월령도 몰랐다.그녀는 그 말을 오래 품었다. 황궁의 붉은 담 안에 한 사람의 온기를 들이면, 그 외로움이 조금은 녹을 줄 알았다.높은 처마와 긴 회랑과 밤마다 닫히는 문들 사이에 자신이 봄을 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이제는 안다.황궁의 외로움은 사람 하나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사람 하나를 삼
"월령 언니, 여기 계셨어요?"문밖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부드러웠다.심서윤은 늘 저렇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그때의 월령은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촌이라 믿었고, 어머니의 방 앞에 흰 천이 걸린 뒤에는 서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운 적도 있었다. 등을 토닥이던 작은 손의 감촉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그리고 황후전의 어느 밤, 비녀함 안쪽에서 밀서를 꺼내던 그 손도.그 손등에 비치던 차가운 등불도.그래도 월령은 그 손을 기억할
살구꽃 향이 났다.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희미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아가씨!"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 피와 비가 뒤섞이던 형장의 냄새가 혀끝에 되살아났다.아니.칼이 아니었다.그녀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던 것은 칼날보다 조용한 것이었다. 탕약의 밑바닥에 가라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