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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카스터 가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이었다. 금융과 기술,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 사업을 뻗고 있었고, 하진그룹과의 협력 역시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큰 규모의 사업이었다.남우가 직접 이곳까지 온 것도 결국 그 사업 협의를 위한 일이었다.정말 기막힌 우연이었다. 은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나를 우연히 만났어. 위험해 보여서 도와줬고, 집까지 데려다준 것뿐이야. 여기서 널 볼 줄은 몰랐네.”남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계속 은희에게 머물렀다. “넌 늘 그래. 무슨 일만 생기면 네 안전은 생각도 안 하고 먼저 끼어들잖아.”은희는 입술만 살짝 다물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지금 남아 있는 기억만으로는 예전에 자신과 남우가 어떤 식으로 지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확실한 건 남우가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친한 사이였다는 듯 말해도 맞장구쳐 줄 마음은 없었다.그때 카스터 우나의 아버지인 카스터 링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고은희 씨와 하 대표님이 원래 아는 사이셨군요. 이런 인연도 있네요. 다들 아는 사이니 편하게 앉아 이야기하시죠.”“하 대표님은 고은희 씨와 못다 한 이야기도 있으신 것 같으니, 저는 나가서 우나와 다과를 좀 준비하겠습니다.”은희가 바로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카스터 회장님. 저는 우나만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온 거예요. 무사히 도착했으니 먼저 가 보겠습니다.”그러자 남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은희에게 거절할 틈조차 주지 않는 말투였다.“기왕 왔는데 왜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해? 회장님이 배려해 주시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잖아.”은희는 남우와 단둘이 남고 싶지 않았다. 이런 자리라면 더더욱 그랬다.카스터 링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어느 정도 눈치챈 듯했다. 남우는 중요한 사업 파트너였고, 그런 남우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눈앞에 있었다.그렇다면 살짝 기회를 만들어 주는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카스터 링이 손뼉을 가볍게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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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마침 카스터 우나가 접시를 들고 밝게 뛰어왔다.“은희 언니, 하 대표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저희 집 셰프가 직접 만든 거예요.”은희는 웃으며 카스터 우나가 내민 디저트를 받아 들었다.“고마워.”카스터 우나는 눈을 반짝이며 은희 옆에 바짝 붙었다.“언니, 너무 빨리 가지 마세요. 조금만 더 있다 가세요. 저 언니랑 할 얘기 진짜 많아요.”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은희도 카스터 우나에게 유난히 친근함을 느끼고 있었다.결국 거절하려던 마음도 자연스럽게 누그러졌다.“알았어. 그럼 조금 더 같이 있을게.”은희는 카스터 우나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우는 원래 업무 때문에 온 사람이었고, 은희가 불편해하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서두른다고 달라질 일도 아니었다. 남우 역시 지금은 시간을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남우와 카스터 링은 홀 한쪽으로 자리를 옮겨 구체적인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카스터 우나는 그사이 은희를 데리고 저택 이곳저곳을 보여 줬다. 두 사람은 오래 알던 사이처럼 금세 가까워졌다.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묘하게 말이 잘 통했다.그때 카스터 우나의 사촌인 카스터 메이가 높은 굽의 구두 소리를 내며 홀 안으로 들어왔다. 걸음부터 거만함이 묻어났다.메이는 앞서 벌어진 일도 몰래 지켜본 듯 모든 사정을 이미 안다는 표정이었다.“어머, 은희 씨 아직 계셨네요?” 카스터 메이가 비웃듯 말했다. “벌써 우리 집안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오셨어요? 사람 붙잡는 솜씨가 대단하시네.”처음 봤을 때부터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말에도 거리낌이 없었다.은희는 차분하게 답했다.“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는 우나를 집에 데려다준 것뿐이고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카스터 메이는 팔짱을 낀 채 어이없다는 듯 은희를 바라봤다.“아무 목적이 없다고요? 하 대표님하고도 저렇게 가까운 사이면서요?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모를 것 같아요? 은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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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홀 안은 곧바로 아수라장이 됐다. 비명과 다급한 발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였다.계단을 굴러 내려온 카스터 메이는 이마를 모서리에 부딪쳤다. 피가 뺨을 타고 내려와 옷깃까지 붉게 물들였다.카스터 메이는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안색도 핏기 없이 창백했다.“빨리 의사 불러!”사고를 알아차린 카스터 링이 크게 외치며 카스터 메이에게 달려갔다. 곁에 쪼그려 앉아 다친 곳을 살폈다.집사와 직원들도 허둥지둥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수건으로 카스터 메이의 이마를 눌러서 지혈했고, 다른 사람은 급히 구급차를 불렀다.홀 전체가 혼란스러웠다. 남우도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비명을 들었을 때 혹시 은희가 다친 건 아닐까 먼저 걱정했던 터였다.은희가 멀쩡히 서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조금 숨을 놓았지만, 카스터 메이가 왜 계단에서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카스터 메이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고 목소리는 억울하다는 듯 떨렸다.“삼촌... 저분이 왜 저를 밀었을까요? 저는 길을 알려 주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어요.”목소리는 약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홀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은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차갑게 카스터 메이를 바라봤다.당황해 허둥대지도, 서둘러 변명하지도 않았다. 짧게 사실만 말했다. “저는 밀지 않았어요.”카스터 메이가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봤을 때 처음에는 은희도 놀랐다. 하지만 저 말을 듣자 무슨 의도였는지 금세 짐작이 갔다.자기 잘못을 은희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일부러 일을 만든 것 같았다.카스터 메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럼 제가 스스로 굴러떨어졌다는 건가요? 제가 제 몸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이유가 있나요?”왜 없을까?은희가 보기에는 분명 카스터 메이 스스로 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이 정도 규모의 저택이라면 당연히 내부 보안 영상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이렇게 뻔뻔하게 누명을 씌우면서도 기록을 확인할 생각은 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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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하지만 은희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우가 자신을 믿어 준다고 해서 놀라거나 기쁠 이유도 없었다.오히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은희에게 남우는 그저 무시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었다.카스터 메이가 날카롭게 따졌다. “하 대표님, 그 말씀은 제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제가 왜 일부러 계단에서 떨어지겠어요? 지금도 머리가 이렇게 아픈데, 자칫 잘못해서 죽기라도 하면 저만 손해잖아요.”“제가 제 몸을 다쳐가면서 이런 장난을 칠 이유가 어디 있어요?”카스터 메이는 머리를 감싸 쥔 채 계속 몸을 떨었다. 다친 상태인 건 분명했지만 자기 주장을 펼치는 말만큼은 막힘이 없었다.은희는 다시 차분하게 설명했다.“저는 밀지 않았습니다. 카스터 메이 씨가 아까부터 계속 저를 모욕했고, 제가 카스터 가문에 다른 의도로 접근했다고 몰아붙였어요. 저는 그 말에 몇 마디 반박했을 뿐이고, 카스터 메이 씨가 혼자 계단에서 떨어진 겁니다.”“거짓말이에요!” 카스터 메이가 울면서 소리쳤다. “저 사람이 거짓말해요! 저를 해치려고 한 거예요. 저를 질투해서 일부러 그런 거라고요!”그때 카스터 우나가 앞으로 나섰다. “언니, 왜 은희 언니한테 누명을 씌워? 아까부터 은희 언니한테 못된 말 한 건 언니잖아. 우리 집에 목적이 있어서 왔다고 계속 몰아붙였고.”“은희 언니는 언니 안 밀었어. 언니가 혼자 떨어진 거야!”카스터 메이는 카스터 우나까지 은희 편을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이를 악문 카스터 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어떻게 남의 편을 들어? 나는 네 사촌 언니야.”카스터 우나는 겁이 난 듯 몸을 조금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난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은희 언니는 나 구해 준 사람이야. 없는 일을 만들어서 몰아가게 둘 수 없어.”카스터 링은 카스터 우나와 카스터 메이를 번갈아 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누구 말을 바로 믿어야 할지 저울질하는 눈치였다.상황이 뒤엉킨 탓에 겉으로만 봐서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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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카스터 링은 은희와 남우에게 나란히 붙어 있는 객실 두 개를 내줬다.방은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지만 은희는 구경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은희는 아까 자신이 꺼낸 이야기가 왜 아무 반응도 얻지 못했는지 계속 생각했다.‘왜 내부 CCTV 영상을 확인하지 않는 거지?’‘혹시 카스터 회장도 카스터 메이가 스스로 떨어졌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에...’‘일부러 기록 확인을 피하는 걸까?지금으로서는 그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상 이 저택에 억지로 붙잡힌 상황이었지만 은희는 순순히 누명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카스터 링을 직접 찾아가 다시 따져 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들어가도 돼?”남우의 목소리였다.은희는 남우가 싫었지만 적어도 카스터 가문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아는 게 많을 것 같았다.조금이라도 정보를 들을 수 있다면 들어오게 하는 편이 나았다.“들어와.”남우는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곧장 은희를 보며 말했다. “은희야, 네가 궁금한 게 많다는 거 알아. 아까 영상 얘기했지? 카스터 가문에는 오래된 규칙이 하나 있어. 가족이 지내는 내부 공간에는 감시 장비를 설치하지 않아.”은희가 묻고 싶어 하던 걸 남우가 먼저 꺼낸 셈이었다.아까 은희가 카스터 링에게 확인을 요구할 때 남우도 옆에서 전부 듣고 있었다.“감시 장비를 아예 안 둔다고? 그게 무슨 이상한 규칙이야?”남우가 대충 만들어 낸 핑계인지, 정말 그런 관습이 있는 건지 은희로서는 바로 판단하기 어려웠다.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큰 저택일수록 보안을 위해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것 아닌가.은희의 의문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자 남우가 차근차근 설명했다.“카스터 가문은 사생활이랑 오래된 관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 감시 장비가 가족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서로를 못 믿게 만든다고 생각해. 수십 년 전부터 가족이 생활하는 내부에는 그런 장비를 두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켜 왔어.”‘수십 년 전부터?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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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그럼 난 나갈게.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남우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섰다. 하지만 자기 객실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카스터 링의 서재로 향했다.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카스터 링의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오십시오.”남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조명이 켜진 서재가 눈에 들어왔다. 카스터 링은 책상 뒤에 앉아 서류 한 부를 보고 있었다.남우를 확인한 카스터 링은 서류를 내려놓고 옅게 웃었다. “하 대표님,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남우는 책상 앞까지 걸어가 카스터 링이 내려놓은 서류를 한번 보고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회장님, 고은희 씨의 일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카스터 링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남우가 찾아온 걸 의외라고 생각하는 기색은 없었다.“앉으시죠, 하 대표님. 저도 고은희 씨 일로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남우는 앉지 않았다. 선 채로 카스터 링을 바라봤다. “회장님, 이 집안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도 알고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도 압니다.”“하지만 고은희 씨는 제 사람입니다. 부당하게 대우받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서로 속뜻을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카스터 링도 남우가 무엇을 경고하는지 바로 이해했다.카스터 링은 손가락을 맞물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여유롭게 웃었다.“하 대표님이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은희 씨는 대표님의 지인이기도 하고 우나를 구해 준 은인이기도 합니다.”“저희가 함부로 대할 이유가 없지요. 이 일은 제대로 확인하겠습니다.”겉으로만 둥글게 넘어가려는 답에 남우는 전혀 만족하지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회장님도 한 가지는 알아 두셨으면 합니다. 고은희 씨는 저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고은희 씨가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본다면 저는 카스터 가문과의 협력을 끝내는 것도 감수하겠습니다.”카스터 링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 남우가 사업까지 걸고 나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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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카스터 링의 말을 듣는 남우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저들이 내민 해결책이 카스터 가문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 분명했다.동시에 카스터 링 말대로 남우와 은희가 가까워질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의도를 덧붙였다.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대신 죄인으로 세운다는 방식은 남우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그렇다고 이곳에서 카스터 링과 계속 말다툼해 봐야 당장 달라질 건 없었다. 원래부터 이런 식으로 집안을 지켜 온 사람들이었다.남우는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서재를 나갔다.서재에서 멀리 가지도 않았는데 바깥쪽에서 큰 소란이 들려왔다.또 무슨 일이 벌어진 듯했다.카스터 링도 미간을 좁히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다급히 달려왔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회장님, 노레드 박사님이 오셨습니다. 직접 뵙겠다고 하시면서 고은희 씨를 데리고 가겠다고 합니다.”카스터 링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노레드는 의료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카스터 가문에도 그의 진료와 치료에 의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은희 문제로 노레드의 심기를 거슬러 앞으로 가문 사람들을 더는 보지 않겠다고 하면 손해가 너무 컸다.카스터 링은 새삼 은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남우와도 연결되어 있고 노레드까지 직접 찾아올 정도였다. 처음에는 남우가 아는 여자라는 사실 자체가 번거롭게 느껴졌었다.남우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면 훨씬 빨리 결론을 내리고 처리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었다.노레드가 아끼는 사람인 줄도 모르고 무리하게 손을 썼다면 관계가 크게 틀어졌을 게 분명했다.카스터 링은 급히 표정을 정돈하고 홀로 내려가 노레드를 맞았다.노레드는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홀 가운데 서 있었고 몇 명의 보조 인력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카스터 링을 보자 노레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회장님, 고은희 씨는 제가 여기에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이곳에서 더 붙잡아 두시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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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카스터 링은 은희를 다시 봤다. 사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남우와 의료계에서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움직이는 노레드가 동시에 은희의 뒤에 있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카스터 가문이 가볍게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고은희 씨, 오늘 여러모로 불편을 끼쳐드렸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카스터 링은 전보다 훨씬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은희는 겉과 속이 다른 카스터 링의 이중적인 태도를 알아차렸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빨리 나가는 게 먼저였다. 차갑게 답했다.“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남우는 은희와 노레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굳혔다.은희가 그대로 노레드를 따라가는 게 싫었지만, 붙잡을 말을 찾지 못했다.은희가 망설임 없이 노레드와 함께 몸을 돌리자 남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 걸음 나섰다. “은희야.”은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조금 돌렸을 뿐 남우를 제대로 보지는 않았다. 담담하게 물었다.“또 왜?”차갑게 선을 긋는 말투가 남우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그때 카스터 우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와 은희의 손을 붙잡았다.“언니, 지금 가는 거예요? 전 언니 가는 거 싫어요.”은희는 몸을 낮춰 카스터 우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부드럽게 말했다.“언니가 시간 나면 또 보러 올게. 밖에 놀러 가고 싶을 때도 언니한테 연락해. 알았지?”카스터 우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약속해 주세요. 거짓말하면 안 돼요!”은희도 웃으며 카스터 우나의 손가락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두 사람만의 작은 약속이 그렇게 생겼다....한편, 병원에 있던 카스터 메이는 은희가 저택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카스터 메이는 협탁 위에 있던 물건을 전부 쓸어버렸다. 꽃병과 물컵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하게 깨졌다.“고은희가 뭔데 노레드 오빠까지 아는 거야! 절대 그냥 안 둬. 반드시 대가 치르게 할 거야!”카스터 메이는 이를 갈았다. 처음부터 은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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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노레드가 보기에 은희가 원하는 해결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그래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은희였기에 처음부터 단호하게 잘라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은희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오늘 여러 일을 겪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셨을 겁니다.”“이번에 온 목적도 원래 쉬게 해 드리려는 거였어요. 제가 조용히 다녀올 만한 곳도 몇 군데 알아뒀으니 며칠은 휴가로 생각하고 쉬세요.”말을 마친 노레드는 냉장고에서 은희가 먹기 편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꺼내 자연스럽게 앞에 놓아줬다.은희는 노레드가 사실상 더 깊이 관여하지 말라고 완곡하게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들었다. 더 캐묻지는 않았다.카스터 가문의 힘이 워낙 컸다. 남우와 노레드가 자신을 무사히 빼내 준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노레드에게 더 큰 부담까지 떠넘기는 건 미안했다.“알겠어요. 고마워요, 박사님.”입으로는 그렇게 답하고 웃었지만 은희의 마음에서 그 직원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대체 어떤 벌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징계라면 노레드가 저렇게 말을 아끼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렇다면 평범한 처벌이 아니라는 뜻일 가능성이 컸다.그날 밤 은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방에서 빠져나왔다. 누명을 쓴 그 직원이 어떻게 됐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며칠 동안 본 카스터 가문의 방식은 충분히 거칠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직원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다는 불안이 들었다.은희는 낮에 봤던 길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카스터 저택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달빛도 희미했고 주변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겨우 저택 근처까지 도착했지만 막상 들어서자 길을 잃은 것처럼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낮에는 정원과 길에 빛이 충분해서 구조가 복잡해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대충 보였다.하지만 깊은 밤이 되자 모든 길이 비슷하게 보여 목적지를 찾을 수 없었다. 은희는 일단 기억나는 쪽으로 계속 걸었다. 자신도 몰랐지만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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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왜? 이제 무서워? 빌어 봐. 잘못했다고 빌면 내가 멈출 수도 있잖아.”하지만 은희는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몸에도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그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부서질 듯 열렸다.노레드와 남우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눈앞의 광경을 확인하자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노레드가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외쳤다.남우는 곧장 카스터 메이에게 달려가 손에 든 채찍을 빼앗아 멀리 던졌다.은희를 묶고 있던 것을 풀어낸 남우는 힘없이 무너지는 은희의 몸을 품에 안았다.“은희야,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어.” 남우의 목소리는 낮게 떨렸다. 카스터 메이가 이 정도 짓까지 저지를 배짱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은희의 의식이 조금 돌아왔다. 품에 안고 있는 사람이 남우라는 걸 알아보고 밀어내려 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노레드는 카스터 메이 앞으로 다가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는 선을 넘었어! 오늘 한 일은 반드시 책임지게 할 거니까!”노레드의 눈빛에 카스터 메이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크게 밀려든 감정은 배신감과 질투였다.“오빠, 왜 저 여자 편을 들어? 은희 같은 여자는 오빠가 신경 쓸 가치도 없어!”노레드는 카스터 메이를 차갑게 바라봤다. “너 착각하는구나. 오늘 있었던 일은 카스터 링 회장님께 다 말씀드릴 거야.”카스터 메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노레드를 붙잡으려 했다. “오빠, 그러면 안 돼. 나 오빠 환자잖아. 오빠는 나 버리면 안 되잖아!”카스터 메이는 자신이 노레드를 향한 감정 때문에 병이 났다고까지 믿고 있었다. 자기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사람도 노레드뿐이라고 생각했다.남우는 은희를 안은 채 지하 공간을 빠져나왔다.은희는 너무 지쳐 있었고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 몸에는 카스터 메이가 휘두른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은희는 힘겹게 물었다. “그 직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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