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은 이미 충분히 책임을 자각하고 있으니, 더 문책할 것까지는 없사옵니다.다만 군영의 기강을 다시 한번 다잡게 하시옵소서.”말만 들으면 벗을 감싸는 평범한 말 같았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현의 목 안쪽에는,눈에 보이지 않는 쓴 맛이 올라오고 있었다.낙마… 실수.그는 그 단어들이 마음 한구석에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동시에, 낙마 소식을 들었을 때 얼굴빛이 식어버렸다는 어떤 소문도 기억 속 어딘가를 건드렸다.'누가… 그 얼굴을 보고 있었던 것이냐.'조회가 끝나고 대신들이 물러난 뒤에도, 현은 한동안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수렴청정의 형식은 이미 옅어졌으나, 대비의 영향력은 아직도 깊었다.왕이 일어나자, 대비의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멀찍이 방 밖을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그 시선이, 한순간 세자에게 머물렀다가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라졌다.현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이 궁은 지금, 누굴 보고 있는 것인가.'궁녀들에게 소문은 먼저 ‘형체 없이’ 퍼졌다.멀리서 보았다는 사람, 들은 것 같다는 사람,누군가에게서 들었다는 사람.“… 어제 밤에 말이야, 빈마마 처소 담장 쪽에 누가 서 있었다더라.”“아니, 누가 서 있었는지는 아무도 못 봤다잖아. 다만 사내의 옷자락이 보였다나.”그리고 그 말 사이사이에 새로운 조각들이 덧붙었다.“낙마하셨다는 경께서…그 근처를 자주 지나다니셨다지 않아.”“요사이 저하께서도 빈마마 처소 쪽으로 발길을 여러 번 옮기셨다더라.”도진의 이름과, 세자의 이름과, 세자빈의 처소가하나의 문장 안에 자연스럽게 묶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누군가는 호기심에서,누군가는 악의 없는 장난처럼,누군가는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그 말들이 향하는 곳은 늘 같은 곳이었다.빈의 처소.이수는 오전 내내 내전에서의 예를 지키느라 몇 번이고 사람들을 만났다.왕비, 후궁들, 나이가 있는 빈궁들.“빈은 요사이 잘 지내고 있느냐.”“안색이 예전보다 더 희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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