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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는 공범이었다: Chapter 101 - Chapter 110

174 Chapters

제101화

가슴이 답답해 참을 수가 없었다.그동안 고소를 미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영이의 존재가, 그 미래를 본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 세상에 드러날까 봐.하지만 자신이 지켜주면 되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모든 걸 밝힐 순간만 기다려왔는데.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오빠가 알아서 할 게. 그러니까 영이는...""내 일이야. 내 일이잖아.""영이 일이면 오빠 일이기도 해."영이는 더 이상 바보 천치 멍청이가 아니었다. 준호와 함께 지내며,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모든 진실을 알아 버렸다. 그동안 겪어온 일이 어떤 일인지. 그런 일을 저지른 자가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그래서 더 끔찍했다. 혼자 있을 때면 늘 마음이 무너져내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었다.출근을 하는 것도 그래서 좋았는데. 그래서 기뻤는데. 오빠는 지금 중장님을 향해 칼을 겨누려 하고 있었다."중장님은 감옥에서 못 버티셔. 그건 내가 알아.""뭐?""오빠 손으로 아버지를 죽음으로 밀어넣고 싶으면 그렇게 해."거짓말이었다. 애초부터 그렇게 긴 미래는 볼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준호는 영이의 말에 의심은 커녕, 오히려 흔들림 조차 없어 보였다."그게 정해진 결말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오빠!""이 얘기는 그만 하자. 머리 아프다."그날, 준호는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이 되어서야 침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이 든 영이의 옆에 뒤늦게 몸을 뉘이곤 한참동안 뒤척이고, 또 뒤척였다. ***“유 비서!”“네. 이사님.”“오늘은 사내 인트라넷 교육을 진행하지!”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로 남겨두고, 오늘도 좌충우돌 회사 생활이 시작됐다. 역시나 석현은 신입사원 교육을 명목으로 영이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준호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와서는 책상 위에 무언가를 툭, 무심하게 내려놓았다.“사원증 나왔어.”사원증을 어루만지는 영이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믿기지 않는 듯, 혹은 좋은 티를 숨기려는 듯. 끈과 카드를 번갈아 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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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다시 대표실 문이 열리는 순간, 준호의 시선이 영이에게로 향했다.정확히 말하면 영이의 손에 들린 작은 통장이었다.“축하해.”“감사합니다. 대표님.”“얼른 사본부터 인사팀에 넘겨줘.”“네. 대표님.”석현이 영이를 향해 툴툴거렸다.“유 비서! 우리 커피부터 마시기로 했잖아!”“사본 보내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치..”석현이 이러는 이유는 분명했다.어제부터 재무팀에 찡찡거리며 휘핑크림을 잔뜩 사놓으라고 요청해 놨는데. 카페도 거절당하고, 탕비실마저 뒤로 밀려나 버리고. 하지만 영이가 싫다면 뭐 어쩔 수 없지. 다시 자상한 모드로 돌입해 커다란 프린터기 앞에 섰다.“여기다 통장 펼쳐서 올려놔.”“이렇게요?”“응. 이제 뚜껑 닫고 스캔 버튼을 누르면.. 짜잔! 영이 이름 뜨지?”영이가 손을 뻗어 자신의 이름을 눌렀다. 드르륵 소리가 울리며 프린터가 요란하게 작동했다. “됐다. 이렇게 하면 영이 컴퓨터에 파일로 딱! 전송되는 거야.”“신기해요.”“복사는 더 쉬워. 이면지 하나로 연습해 보자.”“사본부터 보내고요.”“아.. 으응..”이렇게나 똑 부러질 줄이야.준호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석현과 영이는 노트북 앞에 앉아 인트라넷 사이트에 접속했다.로그인부터 이메일, 각종 결재 서류가 오가는 매일매일 접속해야 하는 중요한 사이트. 메일함을 클릭하고, 스캔을 뜬 사본 파일을 끌어다 놓았다. 첨부파일은 무리 없이 첨부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비어있는 제목과 내용란. “제목은 뭐라고 적는 게 좋을까?”“안녕하세요. 유영입니다. 통장 사본 전달드립니다...?”“아니. 제목엔 핵심적인 내용만 간결하게.”“음...”영이가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이며 제목을 적어나갔다.- 신입사원 유영, 통장사본 보내드립니다.“좋아. 근데 이름은 어차피 자동으로 뜨니까, 앞 내용은 지우고 말머리를 달자.”“말머리요..?”“자, 봐봐.”석현의 손길에 맞춰 제목이 수정되었다. - [자료전달] 통장사본 보내드립니다.“아,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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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완성된 커피를 들고 자리로 향하자 준호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고정됐다. 휘핑크림? 언제부터 회사에 휘핑크림이 있었지?에라이, 뻔하지. 강석현 짓이지 뭐. 자신보다 한발 앞서 움직였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솟았지만, 이내 시선을 노트북 화면으로 돌렸다.석현은 복사기 사용법부터 회사 인트라넷 사이트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주었고, 영이는 내내 메모를 하며 석현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질문이 쏟아졌고,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연차 신청서는 뭐예요?”“꿀같은 휴무지. 보통 1년에 15일 정도 부여되는데, 재직 일수에 따라 개수가 달라.”“그럼 이사님이랑 대표님은 엄청나게 많겠네요?”“대표님한테는 해당 안 돼.”응? 오빠는 쉬는 날도 없다는 뜻인가? “왜요..?”“회사 주인이니까. 본인 마음이지 뭐.”아 맞다. 우리 오빠는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벌었댔지. 멋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그럼 이사님은요..?”“글쎄. 딱히 써본 기억이 없어서.”정말이다. 석현은 딱히 연차 신청서를 써본 기억이 없었고, 준호 역시 영이를 찾기 전에는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었으니까. “그럼 저도 안 쓸래요.”“왜?”“회사를 왜 쉬어요...? 이렇게 재미있는데요?”“유 비서. 방금 전 발언, 그거 되게 위험해. 그 생각은 곧 달라질 거야.”참다 못한 준호가 불쑥 끼어들었다.“강 이사. 우리 순진한 유 비서 물들이지 마.”“대표님. 회식이나 시켜주세요.”“예? 갑자기요?”“유 비서도 왔는데, 쪼잔하게 회식도 안 시켜 주시고.”준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 영이가 석현을 향해 버럭 했다.“이사님! 우리 대표님 안 쪼잔해요!”키득키득. 그 얄미운 소리는 준호의 웃음소리였고 석현은 할 말을 잃은 듯 영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나한테 화를 낼 수가 있어? 내 말엔 틀린 것 하나 없었는데?남매들 사이에서 이렇게 외로움이 느껴지는 게 당연한 건가.나만 남이지, 나만 왕따지.“유 비서. 실망이야.”“네...?”“교육은 내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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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테이블 위에 정갈한 음식이 하나둘 놓이고, 전통주도 한 병 함께 놓였다. “영이는 잔만 받자. 그래도 주인공이니까.”“응.”준호의 말에 석현이 목청을 높였다. 감싸고 도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아오.“야! 영이도 이제 어른인데, 술도 좀 배우고 해야지.”“영이 술 못 마셔. 맥주도 맛없다고 난리였어.”이번에는 영이가 조금 망설였다.“그럼... 먹어보고 결정할게.”모두가 놀란 듯 영이를 바라보았다.이번에는 준호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밝히고 있었다. “좋아! 그럼 다 같이 짠하자고.”“영아, 천천히. 알지?”“으응.”세 사람의 잔이 부딪히고, 한 모금을 넘긴 영이의 입에서 놀라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향긋해. 맥주랑 달라. 하나도 안 써.”“그럴 리가.”“진짜로.”석현의 어깨가 괜스레 으쓱거렸다. 이거 봐, 영이는 어른이라니까. 그만 좀 애처럼 대하라니까. 뭐 그런 뜻.“영이가 전통주 스타일이었구만.”“매실 향이 진하긴 하다. 그래도 조금씩 마셔. 고기 많이 먹고.”그렇게 그들만의 기분 좋은 회식이자 농땡이가 시작되었다. “영아, 그거 알아? 오빠가 영이 취직시키자고 했다?”“정말요?”“응. 신준호는 처음에 반대했었어!”“아...”준호가 눈매를 좁히며 석현을 흘겨보았다. 안 그래도 망설였던 걸 내내 후회할 정도로 영이가 기특했는데. 하필 그 이야기를 할 건 또 뭐람.“걱정돼서 그랬지. 치사하게 이제 와서 꼰지르고 있냐?”“사실인데 뭐.”두 사람의 투닥거림에 이미 적응한 영이는 솔직한 마음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그래도.. 아직 이틀밖에 안 됐지만, 집에만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아요.”“그동안 많이 심심했겠다.”“아니요. 오빠가 선물해 주신 노트북 덕분에 심심하진 않았어요.”“그럼 왜? 왜 회사가 훨씬 더 좋아?”“준호 오빠랑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잖아요. 하루 종일 붙어있잖아요.”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말은 꼭 고백 같았다. 어릴 때면 몰라도, 다 큰 남매 사이에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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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잠시 준호의 눈치를 보던 영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키스를 할때는 왜 입술을 부딪힐까요?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잖아요.” 석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정답은 없는 것 같은데..문득, 언젠가 얼핏 읽었던 칼럼 글 하나가 떠올랐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입술 접촉을 선호한대. 모유 수유부터 시작된 감각이 긍정적인 강화로 연결된다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어.”“그럼 저는 해당이 안 되겠네요.”“그게 무슨 소리야.”“저는.. 엄마가 없으니까요.”간신히 끌어올린 분위기가 다시 한 번 가라앉았다. 준호는 여전히 석현을 노려봤고, 석현은 잔뜩 당황한 채 손을 휘저었다.“아니야. 그것뿐만이 아니라 입술은 특히나 민감한 부위라 그래. 오빠가 신기한 거 하나 말해줄까?”“뭐요..?”“옷을 많이 입을수록 키스 빈도가 높아지고, 옷을 덜 입을수록 키스 빈도가 낮아진대. 이유가 뭘까?”영이가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음.... 잘 모르겠어요.”“옷을 입고 있을 때 감각적인 접촉이 가능한 유일한 부위니까!”“우와... 신기해요. 그런데 어차피 섹스를 할 때는 전부 다 벗잖아요.”참다못한 준호가 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주제를 좀 돌릴 생각은 없냐?”“나도 막 그러려던 참이었어.”영이가 준호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너무도 안쓰럽고, 미안한 감정을 꾹꾹 담아서.“오빠. 혹시.. 그동안 나 때문에 모태솔로였던 거야?”“아니야. 영이가 왜.”“그냥.. 맨날 나만 챙기느라.. 사랑할 시간이 없었나 해서.”“그런 거 아니야.”석현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확실히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말았다.왜 문장들이 다 과거형이지? 지금도 신준호는 솔로인데, 마치 애인이라도 있는 것처럼.확인해 보자.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영아, 일은 좀 할만해?”“네. 오빠가 이것저것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지 않아?”“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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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석현 역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려버렸다.아픈 과거를 다 알고도 늘 품어주고 싶었고, 진심으로 준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랐다. 자신도 있었다. 영이를 웃게 해 줄 자신, 누구보다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 자신. “서두를 생각 없어. 근데 만약 영이도 나를 남자로 느낀다면, 그땐 나한테 맡기고 너도 좀 자유로워져라.”그때였다. 종업원이 닫혀있던 룸 문을 벌컥 열었다“잠깐 좀 나와보셔야겠어요!”표정엔 당혹스러움이 한가득 번져 있었고.“무슨 일이죠?”“그... 같이 오신 일행분께서...”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며 튀어 나갔다. 화장실 앞, 영이가 바닥에 앉아 무릎을 매만지고 있었다.“영아...!”고개를 든 영이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 조금 어지러워서...”“넘어졌어? 어디 다친데 없어?”“으응.. 나 괜찮아.”준호가 영이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고, 석현은 영이의 몸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많이 어지러워? 머리 아파?”“괜찮아요.. 근데.. 더는 못 마시겠어요.”석현이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종업원을 향해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대리 좀 불러주시겠어요?”“네. 알겠습니다.”영이를 챙겨 다시 룸 안으로 향하고는, 모두가 벗어뒀던 재킷을 걸쳐 입었다. 괜스레 미안해진 영이가 손가락을 매만졌다. 정말 별거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내려앉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괜찮은데... 그래도 처음 하는 회식인데..”“아니야. 집에 가자. 가서 좀 쉬자.”“그래 영아. 회식은 언제든 또 하면 돼.”얼마 지나지 않아 대리 기사가 도착했다.석현은 두 사람이 뒷좌석에 올라타는 모습, 차가 완전히 주차장을 빠져나간 모습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택시를 불렀다. “하...”이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은 뭐지?신준호는 오늘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했다. 유독 예민하게 굴었고, 유독 기분이 언짢아 보였고.게다가 방금, 나란히 앉아 영이를 바라보던 그 표정과 눈빛은 도무지 동생을 챙기는 오빠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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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오, 오빠... 나 혼자 씻어도 되는데."욕실 앞에 선 준호가 영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영아, 너 이상하다.""으응?""우리 사이에 같이 씻는 게 뭐가 어때서."안다. 다 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행복한 순간이 아니니까. 마음도 불편하고, 화가 난 오빠 앞에서 벌거벗는 건 내키지 않았으니까."그냥.. 지금은 조금 그래서."준호가 영이를 향해 다가오더니,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꾹꾹 눌러오던 감정이 지금 이 순간 폭발해버린 것처럼."조금 그렇다니? 왜? 강석현이 아직도 그렇게 신경쓰여?"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말도 안 되는 질투였다. 평상시답지 않은 준호의 모습에 당황한 영이는 고개만 저었지만, 이미 그 힘에 이끌려 발걸음은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오, 오빠..."욕실 앞, 준호의 손이 영이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한 순간 영이의 어깨가 작게 움찔했다."하..."갑작스레 멈춰버린 행동에 영이는 눈치만 살살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뭔가 싫었던 기억이 잠시 떠올랐을 뿐인데. 그게 다인데.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내, 내가.. 내가 벗을게.""됐어."준호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영이가 달라질 리 없다. 강석현 따위에 흔들렸을 리 없단 말이다. 그렇게 질투가 만들어 낸 혼자만의 상상을 최대한 끊어냈다.다시금 셔츠 단추가 하나 둘 풀리고, 허리 뒤를 만지작거리며 스커트 지퍼도 끌어내렸다.비소로 속옷만 입은 영이를 마주 했을 때, 이제야 좀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미안. 미안해 영아.""오빠 오늘 좀 이상해. 대체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어."준호가 영이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그냥... 자꾸만 불안해서.""그러니까 뭐가.""강석현 말이야. 그 자식이 너한테 다른 마음을 품어버렸어." 이제야 준호가 이상했던 진짜 이유를 깨달은 영이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준호의 등을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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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제 목에 매달려 부르르 떨어대는 영이의 모습에 준호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방금전 질투에 허덕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고, 머릿속에는 오직 색정만이 남아 이성을 마비시켰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영이의 몸을 돌려 벽을 바라보게 하고는, 허벅지 사이에 기둥을 끼워 넣었다."아, 하읏, 하응!"상체를 두 팔로 휘감고 허리를 움직이는데, 한껏 예민해진 질벽이 자꾸만 수축해 그의 성기를 놓아주질 않았다.영이는 가슴을 조몰락거리는 손의 감각도 미칠 것만 같았지만, 그보다 제 아래를 쑤셔대는 쾌락에 빠르게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흐으응, 오, 오빠아, 나, 나 너무 좋아서, 아흑!"하아,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내버려 둬. 하루도 안지 못하면 본인이 딱 돌아가실 것만 같은데."영아, 그렇게 좋아?""미, 미치겠어, 읏, 오빠 너무 커, 커...!"준호는 영이의 고개를 돌려 키스를 퍼부었다. 이제는 혀, 손, 성기가 전부 제 몸을 유린하고 있었다."웁, 우웁, 웁.."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평상시에는 세상 다정한 오빠가 이렇게 난폭하게 구는 모습. 그 모습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이상하게 설레고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완벽하게 엉겨붙은 두 사람은 욕실 안에서 한참동안 헉헉거렸다.그러다 마지막 절정과 함께 열기가 사그라들 때 즈음, 영이가 준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오빠, 이제 화 안 낼 거야?""하지 마, 창피하니까."영이를 향한 석현의 마음은 여전히 불쾌하고 불편했지만, 어차피 그건 혼자만의 마음이니 열을 낼 필요는 딱히 없었다. ***다음날, 사무실의 분위기가 묘하게 이상했다. 전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공기가 가라앉았달까.석현은 출근을 하자마자 영이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영아, 오늘은 인사팀이랑 재무팀 직원이 따로 교육해 줄 거야.”“네..? 이사님 말고요..?”“응. 각자의 영역이 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와.”그러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해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준호는 그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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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보람의 눈에 비치는 영이는 참 여전했다.빌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잔뜩 겁 먹은 표정. 어릴 때부터 그게 가장 역겨웠다. 저렇게 오빠를 홀린 거겠지. 일부러 보호본능을 자극하면서. 약하고 착한 척만 하면서.“어디 학교도 못 나온 게 비서 행세야? 내가 진짜 기가 막혀서.”“저.. 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고....”“그러니까 누가 너더러 열심히 하랬냐고...!”팍, 어깨를 세게 밀치자 영이의 몸이 탕비실 서랍장에 부딪혔다. 동시에 머리 위에 줄지어 걸려있던 와인 잔들이 강하게 흔들리며 바닥으로 하나 둘 떨어졌다. 와장창, 잔들이 깨지고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그 와중에도 보람의 이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더 어깨를 밀쳐 그 파편들 위로 넘어뜨렸다. 순식간이었다. 손바닥과 다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파편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아...”“너한텐 이런 게 잘 어울려. 바닥에서 빌빌 기는 거, 아파도 꾹 참고 찍소리도 못 하는 거.”영이는 울지 않았다. 보람이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넘어진 그대로 자리에 앉아 어깨를 떨었다.“다음에 왔을 때 또 비서 행세를 하고 있으면, 그땐 이 정도로는 안 끝날 거야.”쾅!탕비실 문이 닫히고, 보람이는 그대로 사무실을 떠나버렸다. 영이가 다쳤다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후련했다.혼자 남은 영이는 이제야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눈물보다 피가 더 흘렀다. 손바닥이며 다리며, 콕콕 박힌 유리조각들이 꼭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에 박힌 조각부터 하나둘 빼냈다. 아팠다. 엉엉 소리 내서 울고 싶을 만큼 아팠지만,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그때, “유 비서!”석현의 목소리가 들렸다.회의를 마치고 내내 혼자 내버려둔 게 마음에 걸려, 준호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온 것.“엥? 영이 어딨어?”“그러게. 잠깐 화장실 갔나.”여기 있다고, 나 지금 다쳤다고 소리치고 싶은데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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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석현 역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신준호의 여동생 신보람. 유학을 떠가기 전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돼먹은 인간이라니. 도대체 같은 핏줄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지만, CCTV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 존나 선 넘네. 아무리 미워도 이건... 이건 아니잖아.”“하....”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한숨 소리만이 오갔다. 영이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는 순간 말을 잃었다.유리 조각이 잔뜩 박힌 다리, 그리고 잔뜩 박혀있던 손바닥. “보호자분들은 잠시 나가계세요.”“괜찮은 건가요? 네?”“봉합해야 하는 상처들이 더러 보입니다. 처치부터 할게요.”곧바로 커튼이 쳐지고, 응급처치가 시작됐다. 꼭 닫힌 커튼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영이는 그 날카로운 조각들을 빼는 내내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강석현.”“아... 미안한데 나 지금.. 욕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영이 좀 부탁해.”순간, 내내 시선을 피하던 석현이 심상치 않은 느낌에 준호를 바라보았다. “너 뭐 하려고.”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석현은 준호가 어디로 향할지 뻔히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당연했다. 뒤지게 혼내는 걸 떠나 법적인 책임까지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한참 뒤, 닫혀있던 커튼이 열리고 석현은 의사를 향해 다급히 물었다. “좀 어떤가요?”“봉합한 상처가 6개, 나머지 상처들도 꽤 깊습니다. 흉터는...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하....”“드레싱과 소독, 매일 신경 써서 잘 해주시고요. 일단은 상처가 아무는 게 우선입니다.”“감사합니다.”새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영이가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영아.. 왜.. 왜 그래. 응?”“오빠는요..? 준호 오빠는요?”“잠깐... 일이 좀 있어서.”“보람 언니한테 간 거죠? 네..?”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겠지.하지만 어쩌겠어. 지금 신준호는 누구도 말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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