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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완벽한 세계의 균열, 불청객(2)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4 11:01:14

제34화 완벽한 세계의 균열, 불청객(2)

"아, 기획전 말씀이시군요. 이번에 저희 갤러리에서 새로 발굴한 루키들인데……."

"아니, 다른 애들은 다 고만고만하고. 그 왜, 검붉은 색 잔뜩 써서 엄청 거칠게 그려놓은 거 있잖아. 묘하게 야해 보이기도 하고, 막 소름 끼치기도 하고. 그거 작가 이름이 뭐더라?"

서아의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사모님이 말하는 그림은 단 하나뿐이었다.

"……권이안 작가 작품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권이안. 그 작가 아주 물건이던데? 선 쓰는 게 꼭 누구 잡아먹을 것처럼 흉폭한 게, 아주 매력 있어. 오늘 그 작가 혹시 갤러리에 있어?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

서아는 입안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피 맛이 비릿하게 퍼졌다.

"아…… 권 작가님은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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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뚝뚝 떨어졌다.유리 조각에 깊게 찔린 맨발에서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 복도 위로 서아의 발자국이 점점이 찍혔다.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아니, 발바닥의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 따위는 지금 그녀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끔찍한 공포와 배신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오른손에는 크리스털 와인잔의 날카로운 파편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너무 꽉 쥔 탓에 손바닥마저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서아는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파편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살을 파고드는 감각만이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졌다.복도 끝.굳게 닫힌 거대한 마호가니 원목 문.강도진의 서재.그 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는 은은하고 따뜻한 노란빛이, 지금 서아에게는 지옥불의 아가리처럼 보였다."하아… 하아…."서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땀과 눈물에 젖어 뺨에 들러붙어 있었고, 샴페인 골드 컬러의 실크 슬립은 붉은 와인과 선혈이 뒤엉켜 기괴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에서 강도진이 쓴 소설의 문장들이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희수는 류의 목에 팔을 감았다.][다리 더 벌려. 당신 남편이 이 꼴을 보면 얼마나 즐거워할까?][희수는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었다.]"아아악-!"서아는 짐승 같은 비명을 토해내며 서재 문을 향해 돌진했다.그리고 온몸을 던져 육중한 마호가니 문을 걷어찼다.쾅-!!대포를 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서재 문이 거칠게 열려 젖혀졌다. 문고리가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며 서재 안의 고요한 공기를 산산조각 냈다."……."

  • 타인의 뮤즈   제150화. 투명한 표본(3)

    액자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서아는 깨진 액자의 뒷면을 짐승처럼 파헤쳤다. 합판을 뜯어내고, 사진을 갈기갈기 찢었다.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났지만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서아의 다급하고 서툰 수색으로는 몰래카메라나 도청기를 단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헉… 헉… 왜 없어… 왜…."난장판이 된 방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서아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적어도 서아의 눈에 드러난 기계 장치는 없었다.그렇다면 강도진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장치를 숨기고, 그 기록 너머의 감정까지 알아낸 것인가?불현듯, 서아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설책의 끄트머리에 꽂혔다.책은 후반부가 펼쳐진 채 엎어져 있었다.서아는 홀린 듯이 기어가 그 책을 다시 뒤집었다.이 책의 결말.자신과 이안의 끝. 도진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 놓았을까.이안이 화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도진은 자신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었을까.서아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어가며 문장을 읽었다.[류의 작업실이 불탔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희수는 처음에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청년의 비극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작업실에 남은 그림과 저장 장치가 타버렸다. 남편에게 도착한 대표작은 미치광이의 망상으로 받아들여졌고, 남아 있는 자료도 원본을 잃었다.'남은 증거마저 조작과 집착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희수의 입술 끝이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그녀는 변기통을 부여잡고 속을 게워냈다. 그것은 안도감이라는 이름의 구역질이었다. 결정적인 진실의 원본을 불태워버리고 살아남았다는, 짐승 같은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가장 역겨운 안도감.희수는 거울 속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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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화 마침표가 없는 방(1)계단을 오르는 도진의 발소리는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서재 앞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차갑게 식은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서재는 그의 성소이자, 거대한 감옥이었다.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전부터 현대 소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장편 소설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넓고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았다. 의자에 몸을 기대자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부잉-, 하는 기계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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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때의 거친 문장들도 참 좋아했는걸요.""지금의 내 문장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게 평단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서아 씨도 알다시피.""물론이죠. 지금의 당신은 완벽해요. 의심할 여지 없이."서아는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대화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곡선을 그리려 하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안전한 평지로 돌아왔다. 그것이 이 결혼 생활을 5년 동안 파탄 없이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서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식사 시작 후 정확히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오늘

  • 타인의 뮤즈   제1화 완벽한 식탁의 조건(1)

    제1화 완벽한 식탁의 조건(1)오전 6시 50분.정확히 조율된 스위스제 벽시계의 초침이 서늘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서아는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미세한 아침 햇살이 정돈된 침대 위에 일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도진은 언제나 자신보다 20분 먼저 일어났고, 그가 머물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눕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서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크 가운의 끈을 단정하게 묶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흐트

  • 타인의 뮤즈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오후 2시 30분.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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