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상수의 작업실에서 입었던 낡은 허물을 벗어던지고, 그가 준비해준 새 옷을 걸치고 나서는 아침은 생경하다 못해 비현실적이었다. 몸을 감싸는 실크 블라우스의 매끄러운 감촉은 마치 상수의 손길이 하루 종일 자신의 살결을 붙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혜연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상수가 쥐여준 '인비저블' 오일을 귀 뒤에 아주 살짝 찍어 발랐다.손끝에 닿는 오일의 농축된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어제 지하 작업실에서의 그 지독하고도 뜨거웠던 기억이 선명한 영상처럼 망막을 스쳤다. 이것은 이제 그녀의 비밀스러운 문장이자, 도덕적 비난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유일한 보호막이었다. 직장인 박혜연의 유니폼이었던 낡은 정장 대신, 상수가 선택한 이 고급스러운 질감은 그녀의 신분마저 조향사가 설계한 대로 재구성하는 듯했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혜연은 멀리서 걸어오는 민지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민지 역시 혜연을 보자마자 입을 벌린 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옷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브랜드도, 소재도, 심지어 전체적인 실루엣까지. 혜연이 화이트 블라우스에 네이비 슬랙스로 냉철함을 강조했다면, 민지는 베이지 톤의 블라우스에 차콜 슬랙스를 매치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세련된 비즈니스 룩을 완성하고 있었다. "야, 박혜연. 너 뭐야? 그 옷... 설마 강상수 작가가 사준 거야?"
آخر تحديث : 2026-08-02 اقرأ المزي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