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20

154 فصول

침범당한 성역(聖域) #2

얼마 후, 빌라 앞 골목에 익숙한 흰색 세단이 멈춰 섰다. 혜연의 아버지가 아내를 태우러 온 것이었다. 차에 올라탄 아내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아유, 속 시원해. 혜연이 그 기집애 방을 아주 싹 뒤집어엎고 왔어. 묵은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나 아니면 누가 저걸 치우겠어." "애 집을 왜 당신 맘대로 그렇게 들쑤셔. 혜연이도 이제 서른 중반이야. 본인 프라이버시가 있는 거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들쑤시는 게 아니라 치워준 거지! 근데 여보, 세상에... 그 집 장식장 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병이 있더라고. 무슨 흙 썩은 냄새 같기도 하고,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한 게... 아주 기분 나빠서 내가 확 버려버렸어. 그 냄새 맡으니까 머리가 다 아프더라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버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걸 왜 당신 마음대로 버려? 혜연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서 둔 걸 수도 있는데." "아끼긴 뭘 아껴! 냄새가 딱 질색이더만. 그런 걸 방에 두면 애 건강에도 안 좋아. 당신은 몰라서 그래, 요새 애들이 얼마나 이상한 데 돈을 쓰고 다니는지. 부모가 안 걸러주면 애 인생 망가지는 거 한순간이야." "에휴, 당신은 그게 문제야. 냄새가 좋고 나쁘고를 왜 당신 기준으로 정해. 혜연이 인생은 혜연이 거야. 향이건 뭐든 간에 본인이 선택하게 둬야지. 자꾸 그렇게 애 물건에 손대고 통제하니까 애가 자꾸 우리한테 입을 닫는 거 아냐. 그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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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계절 #1

퇴근 후 현관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공기를 찢었다. 혜연은 문을 열자마자 덮쳐오는 생경한 공기에 숨을 들이켰다.  어제까지만 해도 현관에서부터 은은하게 배어 나오던 상수의 짙은 우디 향, 그 안온하고 비밀스러운 숲의 냄새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코끝을 찌르는 것은 살균 소독제 특유의 비릿한 향과 엄마가 사다 놓은 인위적인 장미 비누 향뿐이었다. 혜연은 신발도 벗지 못한 채 거실 장식장 앞으로 달려갔다. 낡은 도자기 인형 뒤, 상수가 자신의 밤을 증류해 담아주었던 그 작은 샘플 병이 놓여 있던 자리는 이제 휑한 먼지 자국조차 남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닦여 있었다.  혜연은 떨리는 손으로 그 빈 공간을 쓸어보았다. 유리 선반의 차가운 촉감이 손가락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엄마는 단순히 청소를 한 것이 아니었다. 혜연이 겨우 찾아낸 자신만의 계절을, 상수의 흔적을, 혜연의 영혼 한 조각을 '불결한 것'으로 규정하고 하수구 구멍으로 가차 없이 쏟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혜연은 싱크대 밑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이미 상수에게 전화를 걸어 한차례 울음을 쏟아냈고, 그가 다시 만들어주겠노라 다정한 약속까지 해주었지만, 눈앞에 닥친 이 거대한 '지워짐'은 이성적인 위로로 채워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수구 구멍에 코를 대고 깊게 숨을 들이켜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락스 냄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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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계절 #2

드디어 토요일 저녁. 상수의 작업실 옥상은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기에 충분할 만큼 화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노란 전구들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화로에서는 기분 좋은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요, 혜연 씨. 고생 많았죠?" 상수가 가장 먼저 다가와 혜연을 맞이했다. 짙은 네이비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인 그는 평소보다 훨씬 편안하고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는 혜연의 차가운 두 볼을 감싸 쥐고 눈을 맞췄다. 그의 눈동자에는 숯불의 온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하지 마요. 여기엔 혜연 씨를 괴롭히는 그 어떤 냄새도, 기억도 없으니까." 상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혜연의 긴장감이 마법처럼 풀렸다. 뒤이어 도착한 민지와 재현도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민지는 상수가 선물해준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옥상의 분위기를 한층 더 화사하게 만들었다. "와, 상수 작가님! 여기 분위기 정말 최고예요. 재현 씨랑 저랑 아까부터 감탄했다니까요." 민지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옥상을 채웠다. 재현은 능숙하게 와인 병을 땄고, 상수는 미리 준비해둔 최고급 한우를 화로 위에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육향이 피어올랐지만, 그것은 무겁거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네 사람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분 좋은 배경음 같았다. "자,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우리 주인공 혜연 씨, 이번 한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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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균열 #1

상수는 그 난장판 같은 행복을 아주 조용히, 마치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차분한 눈빛으로 지켜보며 혜연의 잔에 남은 와인을 채웠다. "혜연 씨, 이제 좀 편안해 보이네요. 형이 저렇게 시끄럽게 굴 줄 알았으면 진작 자리를 만들 걸 그랬습니다. 늘 정적인 제 작업실이 오늘은 좀 낯설긴 하네요." 상수가 혜연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일 때마다, 그의 숨결에 섞인 진한 와인 향과 체취가 혜연의 이성을 부드럽게 마비시켰다. 혜연은 상수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제 속도를 잃고 멋대로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좋아요. 그냥... 모든 게 다 꿈같아요. 민지도, 재현 씨도, 그리고 상수 씨도. 우리 네 사람만 이 세상의 지독한 소음에서 떨어져서 비밀 파티를 하는 기분이에요. 시간이 여기서 딱 멈췄으면 좋겠어요." 혜연은 이 찰나의 완벽한 박제를 꿈꿨다. 엄마가 강요하던 결벽증적인 삶, 그 차가운 감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홀린 듯 휴대폰을 들어 렌즈 너머의 풍경을 담았다. 타오르는 모닥불의 붉은 잔상, 고기를 먹다 말고 재현과 눈이 마주쳐 당황해하는 민지의 코믹한 찰나, 그리고 테이블 한구석에서 조용히 빛나는 상수의 가죽 스트랩 시계까지. 혜연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켰다. 가장 먼저 올린 것은 네 사람의 와인 잔이 어지럽게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내는 영상이었다. '따뜻한 주말,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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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균열 #2

같은 시각, 소영의 방은 지독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암막 커튼을 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노트북의 차가운 모니터와 스마트폰의 푸른 불빛뿐이었다. 소영은 침대 위에 엎드린 채 혜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수백 번째 다시 재생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상수 오빠가 왜." 소영은 혜연의 스토리를 캡처해 이미지 보정 앱으로 불러왔다. 화면을 최대한 확대하고 밝기를 올리자, 어둠 속에 가려졌던 디테일들이 하나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기를 굽는 남자의 손목에 감긴 가죽 시계. 소영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시나 했던 사실이 확실해졌다.그것은 10년 전, 그들의 연애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 상수의 생일에 선물했던 시계였다. 8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하며 수많은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상수는 유독 이 시계를 아꼈다.  헤어지기 직전, 이별의 징조처럼 상수가 가구 모서리에 부딪혀 가죽 스트랩에 깊게 남겼던 그 생채기. 상수가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흉터가 사진 속에서 선명하게 소영을 비웃고 있었다. 그들이 이별했을 때, 상수는 조향사가 아니었다. 불행처럼 다가온 변화던 세상에 휩쓸려 그는 회사라는 방주에서 떨어져 방황하고 있었다.  소영이 뒤늦게 그가 조향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소영이 발을 들일 수 없는 자신만의 '성역'을 구축한 뒤였다. 소영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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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그림자 #1

월요일 아침. 혜연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창밖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손목에 코를 대면 상수가 남긴 그 다정하고 묵직한 향기가 여전히 은은하게 감돌았다. 혜연은 그 향기를 맡으며 마치 갑옷을 입는 기분으로 출근 준비를 마쳤다. 회사 로비에서 민지가 혜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지는 혜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팔짱을 꼈다. "혜연아! 어제 잠은 잘 잤어? 너 오늘 얼굴 보니까 완전 꿀잠 잔 표정인데? 역시 상수 작가님 옥상 공기가 보약이었나 봐." 민지의 너스레에 혜연이 얼굴을 붉혔다. 민지는 주위를 슥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내가 말했지? 너도 이제 사랑받을 자격 충분하다고. 어제 상수 작가님 눈빛 봤어? 아주 너를 꿀 떨어지게 쳐다보더라. 재현 씨도 나한테 슬쩍 말하더라고. 자기 동생 저렇게 다정한 모습 처음 본다고. 너희 둘, 정말 잘 어울려. 그러니까 소영이 눈치 보지 말고 너 행복한 것만 생각해, 알았지?" 민지의 든든한 지지는 혜연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 민지는 혜연의 손을 꽉 쥐어주며 윙크를 보냈다. 혜연의 유일한 아군이자 친구인 민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월요일 아침의 중압감은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근데 진짜 너무 재밌었지? 나 아직도 재현 씨 농담이 생각나서 혼자 웃는다니까." 민지가 깔깔거리며 혜연의 팔짱을 꼈다. 혜연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n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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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그림자 #2

혜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소영의 메시지는 다정한 제안을 가장한 채 혜연의 목을 천천히 조여오는 올가미와 같았다. '언제까지 거짓말할래? 네가 숨기고 있는 그 남자가 내 과거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니?' 소영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혜연은 무의식적으로 왼쪽 손목을 코끝에 가져다 댔다.  상수가 남긴 향기는 여전히 은은하게 남아 있었지만, 이제 그 향기는 안식이 아닌 공포의 매개체였다. 소영이 이 향기를 맡는 순간, 모든 가짜 평화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혜연아,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디 아파?" 옆자리의 민지가 걱정스러운 듯 혜연의 어깨를 짚었다. 혜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아,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거짓말 마. 너 아까부터 그 휴대폰만 뚫어지게 보고 있잖아. 또 소영씨야?" 민지는 혜연의 반응만 보고도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민지의 눈에 비친 혜연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 인형 같았다.  주말 내내 상수의 옥상에서 빛나던 그 생기는 어디로 가고, 다시 소영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 웅크린 작은 아이만 남아 있었다. "혜연아, 네가 왜 죄인처럼 굴어? 상수씨는 이제 소영씨 남자가 아니야. 헤어진지가 몇년인데. 너랑 상수 작가님은 서로 진심이잖아. 소영씨가 뭐라고 하든 무시해. 걔는 지금 너를 흔들어서 자기 존재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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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그림자 #3

상수에게 혜연은 소영의 대체재가 아니었다. 소영과의 시간이 상수를 깎아내고 소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면, 혜연과의 시간은 상수의 부서진 내면을 다시 채우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상수는 소영에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가장 깊은 곳, 그 성역을 혜연에게 열어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상수는 조향실 구석에 놓인 낡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소영이 준 선물.  그는 이 시계를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소영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얼마나 파괴해왔는지 잊지 않기 위한 '경계석'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계가 혜연을 괴롭히는 무기가 되었다면, 상수는 기꺼이 그것을 떼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신을 고립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세상의 모든 날 선 시선들로부터 당신을 잠시 숨겨주고 싶은 겁니다.' 상수는 혜연에게 전화를 걸려다 멈췄다. 지금 자신의 목소리가 오히려 혜연을 더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수는 대신 혜연의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의 회사 앞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혜연의 곁에 자신이 있다는 것, 소영의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도 그 끝에는 항상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야 했다. 퇴근 시간, 혜연은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소영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 같아 자꾸만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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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벽을 허무는 낮은 목소리 #2

상수는 들고 있던 스포이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능적인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지만, 이제 그 긴장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아버지와 겪었던 그 처절한 대립과 해소 이후, 상수는 아버지의 그림자만 봐도 숨이 막히던 병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 있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구나. 이런 냄새 속에 종일 있으면 폐가 상하지 않겠느냐." 아버지는 조향실 구석구석을 검열하듯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전의 상수였다면, 이 말은 분명 '이런 쓸데없는 짓 당장 때려치우고 집으로 들어와라'는 강압적인 훈계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해가 풀린 지금, 상수는 아버지의 문장 뒤에 숨겨진 서툰 걱정을 읽어낼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상수에게 호통을 치거나 인생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저 말투가 지나치게 딱딱했고, 태도가 지나치게 무뚝뚝했을 뿐이었다. "아, 네. 아버지. 안 그래도 공기 청정기를 하나 더 들일까 고민 중이었어요. 오늘 공기가 좀 무겁긴 하죠?" 상수의 대답에 아버지는 큼큼, 하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오늘따라 무언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풀기 위해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직 군인으로서 평생을 명령과 복종의 세계에서 살아온 노병에게 '다정한 아버지'의 연기는 고난도 작전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작업대 위에 놓인 조향병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바라보다가, 가장 구석에 있는 작은 병을 가리켰다. "저번에 네가 보내준 향... 그거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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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벽을 허무는 낮은 목소리 #1

비가 갠 뒤의 종로 거리는 씻겨 나간 먼지 대신 눅눅하고 달큰한 흙내음을 머금고 있었다. 상수는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리듬을 맞추며, 조수석에서 창밖을 응시하는 혜연을 가만히 살폈다.  가로등 불빛이 주기적으로 그녀의 옆얼굴을 스칠 때마다, 혜연의 올곧은 콧날과 단단하게 다문 입술이 명암 속에 드러났다 사라졌다. 차 안에는 낮은 엔진음과 함께 두 사람의 미묘한 숨소리만이 교차하고 있었다. "혜연 씨, 오늘은 조향실 말고 다른 곳으로 가요. 향기가 없는 곳으로." 상수의 낮은 저음이 차 안의 정적을 부드럽게 깨웠다. 혜연이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리자, 상수는 특유의 유연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세웠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오래된 적벽돌 건물의 독립 서점이었다. 낡은 종이 냄새와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상수는 혜연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여긴 향기가 없어서 좋아요. 오직 종이와 문장뿐이죠. 그래서 당신의 숨소리가 더 잘 들리거든요." 상수는 서점 구석진 자리, 빛이 바랜 나무 벤치로 혜연을 이끌었다. 그는 서가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내와 혜연의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혜연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상수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샴푸 향이 혜연의 감각을 자극했다. "이 시집 12페이지를 읽어봐요. 제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적혀 있어요." 혜연은 떨리는 손으로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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