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참한 것은,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상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의 추악함이었다. 소영의 무너진 자존심을 짓밟으며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상수의 어깨를 보며, 혜연은 소영이 느꼈을 배신감보다 더 깊은 자기혐오에 빠졌다. '소영아, 나는 너를 배신한 게 아니야. 나는 나 자신을 배신한 거야.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내 20년의 세월을, 고작 이 찰나의 온기에 팔아넘긴 거야.' 소영의 붉어진 눈시울 속에서 혜연은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곳엔 사랑에 눈먼 여자가 아니라, 친구의 영혼을 갉아먹고 기생하는 괴물이 서 있었다.소영은, 피가 거꾸로 솟는 치욕 속에서도 혜연을 응시했다. 혜연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테이블 위로 툭, 툭 떨어지며 상수가 조향했다는 그 매끄러운 향수병 겉면을 타고 흘러내렸다.그 적막을 깬 것은 소영의 서늘한 냉소였다. "그래, 할 말 없겠지. 낯짝이 있으면 할 말 없어야지. 안 그래, 박혜연?" 카페 안의 다른 손님들은 이제 숨소리조차 죽인 채 이 기괴한 삼각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찾은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모든 시선이 혜연에게는 살을 파고드는 가시처럼 느껴졌다. "너희를 따라오면서 봤어. 행복해 보이더라. 세상에 둘밖에 없는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된 줄 알았니?" 소영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손톱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آخر تحديث : 2026-08-13 اقرأ المزي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