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아는 거부서를 다시 읽었다. 결속과 수반 권한을 거부한다는 문장은 있었지만, 약혼과 혼인 예정 지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문서를 한 장 더 준비해주세요.”오스카가 펜을 집었다.“약혼 해소 요청서입니까?”“요청서가 아닙니다.”엘리시아는 열린 법령집 사이에 끼워진 황실 혼인 규정을 꺼냈다.“제가 직접 해소할 수 있는 절차를 찾으세요. 없다면 없다는 사실부터 기록하고요.”오전 열한 시를 앞둔 황궁 공개 법무청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법무청은 귀족과 관료가 청원서를 제출하고, 황실의 결정을 공개 기록으로 남기는 장소였다. 높은 천장 아래로 검은 목재 난간이 반원을 이루고 있었고, 중앙 접수대 뒤에는 황실 문장 대신 저울과 펜이 교차된 법무청 표식이 걸려 있었다.엘리시아가 들어서자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차례로 잦아들었다.귀족회의 서기관, 대신전 성직자, 황실 법률관, 결속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난간 뒤에 서 있었다. 몇몇 귀족은 그녀가 지나갈 때 몸을 숙였지만, 눈은 거부서가 든 이레나의 서류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다.결속식 한 달 전, 성녀가 황제를 거부한다.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법적 절차보다 버림받는 황제의 얼굴일 것이다. 사랑받던 성녀가 돌연 마음을 바꾼 이유를 추측하고,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정하며, 황후 자리를 두고 벌어진 연애사로 축소하려 들 것이다.엘리시아는 중앙 접수대까지 걸어갔다.발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주변을 향해 미소 짓지도 않았다.오늘 제출하는 것은 연인의 변심이 아니었다.한 인간의 거부였다.법무청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로젠베르크 성녀께서 결속 거부 의사를 정식으로 접수하시겠다고 통보하셨습니다. 황실과 대신전의 입회인이 모두 도착한 뒤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대신전은 도착했습니다.”난간 오른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그레고르 팔렌이 고위 성직자 두 명과 함께 앞으로 나왔다. 테오도르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한 일이었다.“황실 입회인은 아직입니
Last Updated : 2026-07-1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