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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안과 밖의 경계선에 서서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2 17:53:35

“성녀님의 명령권은 신성 의식과 구호 활동에 한정됩니다.”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요청했고, 거절을 기록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신전은 내부 기밀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저도 외부인입니까?”

질문은 조용했지만 방 안에 남았다.

그레고르는 곧 답하지 못했다.

대신전은 엘리시아를 성녀라 부르며 의무를 요구했다.

그러나 기록을 보여달라고 할 때에는 외부인으로 취급했다.

안과 밖의 경계는 언제나 대신전이 필요할 때마다 움직였다.

칼릭스는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가 황제의 권한으로 대신전 기록고를 열면 빠르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엘리시아의 요청은 황제의 명령에 딸린 부속 절차가 된다.

칼릭스는 레온하르트에게 시선을 주었고, 재상은 대신전의 답변 시한만 확인했다.

“공식 요청서를 오늘 안에 보내겠습니다. 답변은 사흘 이내로 요구하겠습니다.”

그레고르가 말했다.

“사흘은 지나치게 짧습니다.”

엘리시아가 곧장 받았다.

“제 결속식은 이십구 일 뒤입니다.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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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279. 조금 아는 편이 낫다는 고백

    “계획을 쓰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셨고, 통신망을 쓰지 않으면 남겨둬도 된다고 생각하셨군요.”칼릭스는 잠깐 침묵했다.“예.”그것이 그 사람의 오래된 방식이었다.위험한 수단을 자신이 쓰지 않는 것과, 아무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같은 일처럼 취급했다.엘리시아가 말했다. “저는 폐하께서 지금 후회하는지 묻지 않겠습니다.”“알겠습니다.”“대신 저 중계소를 폐쇄하라고 혼자 명령하지도 마세요.”“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증거를 확보하고, 지금도 필요한 비상통신선이 있는지 분리한 뒤 닫으세요.”“법무청과 왕핵관리국에 같은 조건을 전달했습니다.”이미 해두었다는 말을 들은 엘리시아의 손끝이 아주 조금 멈췄다.“빠르시네요.”칼릭스의 입가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조금이군요.”“많이 안다고 했다가 틀리는 것보다는 낫습니다.”엘리시아는 그 말을 듣고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웃음은 길지 않았지만 없던 일도 아니었다.칼릭스 역시 그 표정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잠시 뒤 그는 오늘의 의료기록을 먼저 확인시켰다. 심박 이상은 재발하지 않았고 오른손 감각도 변화가 없었으며, 왕핵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예정된 휴식까지 마쳤다.이번에는 엘리시아가 묻기 전에 보고가 끝났다.그녀는 기록을 확인한 뒤 말했다. “받았습니다.”그 한마디로 충분했다.옛 왕핵 중계소에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대신 황실이 유지비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현재 통신선의 양쪽 끝만 법무청과 로스테가 동시에 끊었다. 중계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려고 연결을 유지하는 대신, 먼저 새 작업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길을 차단했다.효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남부 급수정 저장통의 회색 반응이 서서히 낮아졌고, 북부 첫 번째와 두 번째 먹이점에서도 갱신 주기가 늘어났다. 누군가 실시간으로 조작하고 있었다면 새로운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그러나 세 번째 먹이점만은 달랐다.이미 시계장치를

  •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278. 스스로를 지워버리지 않아도 되는 자신

    찬성 일곱.반대 열한.기권 셋.중단안은 부결됐다.그러나 그 다음 안건은 별개였다.‘성녀 체류 여부와 무관하게 북부·남부 먹이길 위험이 상승할 경우 거처와 주민 대피계획을 동시에 재심사할 것.’찬성 열일곱.반대 둘.기권 둘.엘리시아는 결과를 사무실에서 받았다.남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고, 자신을 내보내자는 표가 일곱이나 나왔다는 사실에 상처받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오스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그녀는 잠깐 창문 밖을 본 뒤 서류에 시선을 내렸다.“일곱 명이 제게 떠나달라고 했네요.”“예.”“그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성녀님.”“무섭다면 그럴 수 있죠.”엘리시아는 펜 끝으로 표결 결과를 눌렀다.“다만 오늘 남게 됐다고 다음에도 자동으로 남을 수 있는 건 아니겠죠.”“계약은 그대로입니다.”“그럼 됐어요.”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환영받는 지위가 아니었다.떠나달라고 말할 수 있는 도시와, 그 말을 들었다고 스스로를 지워버리지 않아도 되는 자신이었다.칼릭스는 그 표결에 아무 의견도 보내지 않았다.황실 기록고는 오전에 요청받은 자료만 전달했다. 로스테의 취소된 북부 순회조 작업번호가 십일 년 전 만들어진 구형 왕실 북부 관측망에 자동 송신됐다는 사실, 그리고 그 관측망이 공식적으로는 팔 년 전 폐쇄됐음에도 한 곳에서 최근까지 수신 기록을 남겼다는 내용이었다.수신 위치는 황도가 아니었다.대신전도 아니었다.북부 폐목초지 시설에서 남동쪽으로 한나절 떨어진 옛 왕핵 중계소.현재 지도에는 폐허로 표시된 곳이었다.그리고 수신자는 개인 이름이 아니라 구형 직무코드를 사용했다.‘흑갑 회수조.’하겐이 자료를 읽고 이를 한 번 맞물렸다. “또 갑옷입니까.”엘리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사람도 갑옷도 확인된 게 아닙니다. 코드만요.”“그 코드가 먹이길 작업정보를 받아갔고요.”“예.”“레나르트는?”“아직 묻지 않았습니다.”“왜요?”“그가 흑갑 7번을

  •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277. 두 개뿐인 선택지 너머의 답

    ‘순환로 4.’그리고 그 아래에는 숫자 하나가 표시돼 있었다.현재 축적량 18.테사가 북쪽 먹이점의 수치와 비교했다. “하루 전에는 11 정도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지나갔습니까?”“어제 시장 조사 때문에 남문 쪽 물자마차가 열두 대 움직였습니다.”특별한 대피조차 없었다.평범한 물류만으로도 장치는 조금씩 먹이를 모았다.그 순간 법무관이 나무판 한쪽에서 작은 홈을 발견했다.최근 교체된 나사 옆에는 일회용 긴급시설표 흔적이 없었다. 대신 로스테가 아니라 황실 북부 수송망에서 쓰던 오래된 검증 홈이 있었다.누군가 로스테 행정권만 훔친 것이 아니었다.옛 황실 운송권한도 사용했다.“열어볼까요?”시설 기술자의 질문에 테사가 잠금 내부를 확인했다. 개방 순간 금속통 압력이 떨어지면서 내용물이 배수로로 흘러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풀면 먹이 잔류를 오히려 길 전체로 뿌릴 수 있었다.“안 엽니다. 먼저 유입을 끊죠.”우물 안의 저장통을 건드리지 않고, 대피로 양끝에서 들어오는 얇은 회수선만 물리적으로 차단한다. 그 뒤 내부 반응이 낮아지는지 본다.로스테 법무관이 현장에서 조치를 승인했다.첫 번째 금속선 차단.저장통 변화 없음.두 번째.축적량 증가 멈춤.세 번째는 바로 끊지 않았다. 남문 가까이 이어져 있었고 현재 수송로 바닥과 겹쳤기 때문이다.테사가 외부선만 우회시켰다.반 시각 뒤 저장량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길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적어도 현재 확인된 구조로는, 주민 대피와 먹이 공급을 분리할 수 있었다.엘리시아는 그 결과를 듣고서야 의자 등받이에 아주 조금 몸을 기대었다.떠날 것인가.남을 것인가.대피로를 닫을 것인가.사람을 위험 속에 둘 것인가.처음에는 또 두 개뿐인 선택처럼 보였지만, 실제 장치를 뜯어보니 그 사이에 다른 방법이 있었다.완벽하지 않아도 좋았다.적어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선택지에 그대로 답할 필요는 없었다.오후 주

  •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276. 그건 다음 제 선택입니다

    엘리시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임대계약서를 펼쳤다. 로스테가 계약을 종료하려면 사흘 전 통보가 필요했고, 즉각적 위험이 확인될 경우에는 긴급 조항으로 더 빠른 이전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요청이 결속이나 황실 귀환 명령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계약 절차대로라면요.”“황궁으로 돌아가십니까?”“그건 다음 선택입니다.”로스테가 떠나달라고 했다고 황궁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도, 다른 도시도, 로젠베르크 가문의 별장도 있었다. 어디로 갈지를 도시가 대신 정할 수 없었다.하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주민한테도 같은 말을 해두겠습니다. 성녀님을 내보내자는 선택이 황실에 돌려보내자는 뜻은 아니라고.”“그건 꼭 적어주세요.”누군가가 엘리시아의 로스테 체류에 반대할 수는 있다.그 반대가 곧 그녀의 결속을 승인하는 표가 될 수는 없었다.남부 반응점은 대피로 한가운데가 아니라 길에서 서른 걸음 정도 떨어진 오래된 급수정 옆에 있었다. 겨울에는 얼어붙어 아무도 쓰지 않는 우물이었고, 표면은 나무판과 눈으로 덮여 있어 길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그 아래에 왕핵 장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현장에는 테사와 시설 기술자 두 명, 법무관 한 명만 들어갔다. 경비병은 수송로 양쪽 끝에서 사람의 접근만 막았고, 하겐은 로스테에 남아 대피로 전체를 관리했다.테사는 우물을 열지 않고 바닥부터 읽었다. 남쪽에서 감지된 회색 반응은 우물 자체가 아니라 지하 배수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얇은 금속선에서 나오고 있었다. 북쪽 세 번째 먹이점이 왕핵 정제분을 물길에 조금씩 흘리는 방식이었다면, 이쪽은 반대로 외부에서 들어온 잔류를 모아 저장하는 구조였다.“북쪽은 뿌리고, 남쪽은 모읍니다.”로스테에서 원격으로 지켜보던 엘리시아가 물었다. “무엇을 모읍니까?”“지금까지 확인한 건 왕핵 잔류입니다. 신성력도 조금 잡히는데,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 발생한 걸 끌어당기는 쪽에 가깝습니다.”

  •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275. 궁금한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르다

    남부 대피로를 폐쇄하자는 안건은 아침 첫 회의에서 바로 부결되지도, 그대로 통과되지도 않았다. 베른하르트가 평의회 탁자 위에 세 개의 지도를 겹쳐놓자 의견이 갈린 이유가 분명해졌다. 북쪽 위험이 커질 경우 로스테 주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남문대로, 서쪽 산길, 오래된 강변 수송로 세 곳이었는데, 겨울철에 마차까지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남문대로가 유일했다. 전날 발견한 왕핵 잔류점이 그 길과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전면 폐쇄하면 주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대피 능력을 먼저 잃을 수 있었다.하겐은 평의회 벽에 기대지 않고 탁자 끝에 서서 밤새 받은 경비 보고를 설명했다. 남쪽 반응점은 자정 이후 세 차례 열이 올랐지만 위치가 이동하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마물의 접근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북쪽 세 번째 먹이점을 멈춘 직후 반응이 시작됐다는 시간적 연관성은 분명했으나, 그것이 자동 전환인지 외부 조작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니까 오늘 당장 길을 닫는 건, 위험을 막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대피로 하나를 버리는 일이 됩니다.대신 남문대로를 계속 쓰려면 저 반응점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오늘 안에 확인해야 합니다.”한 평의원이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물었다. “확인하다가 켜지면 어떻게 합니까? 북쪽 장치 하나 멈췄다가 남쪽 것이 반응했다면서요.”“그래서 회수부터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들여보내기 전에 외부에서 구조를 확인하고, 실제 작동부가 있으면 그걸 어떻게 끊을지 결정합니다.”엘리시아는 하겐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그녀 앞에는 별도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현 성녀의 로스테 체류 여부’였고, 북부 위험대응 문서와는 다른 사건번호가 찍혀 있었다.어젯밤부터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말이 퍼지고 있었다. 성녀가 로스테에 머무는 동안 흰 뿔의 왕이 주변을 맴돌게 만들 수 있다는 소문, 성녀가 떠나면 북부의 먹이길도 멈출 수 있다는 소문,반대로 성녀를 쫓아내려는 세력이 일부러

  •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274. 저만 빼는 계획은 만들지 마세요

    베른하르트도 곧 연결됐다. “현재 사용 중인가?”“예. 눈 많이 오면 북문 쪽보다 저쪽을 먼저 엽니다.”엘리시아는 지도 위의 북쪽 세 점과 남쪽 한 점을 천천히 이어봤다. 일직선이 아니었다. 흰 뿔의 왕을 도시로 끌어오는 길이라기보다 로스테를 가운데 놓고 방향을 조정하는 표식에 가까웠다.“남쪽 시설에 최근 반응이 있습니까?”테사가 황실 대여 장비의 범위를 돌렸다.처음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두 번째 측정에서도 왕핵 반응은 없었다.그러나 세 번째로 깊은 잔류층만 따로 읽자 아주 약한 회색 신호 하나가 나타났다.최근 몇 달 안쪽.북부 세 번째 먹이점과 비슷한 시기였다.하겐이 낮게 숨을 뱉었다. “누가 도망갈 길에도 먹이를 준비했다는 건가.”엘리시아는 그 결론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 작동 중인지부터 확인합니다.”“만약 맞으면?”“그때 대피로를 바꾸죠.”“성녀님을 먼저 빼는 건?”“저만 빼는 계획은 만들지 마세요.”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롭게 끊기지 않았다. 그녀는 지도 위 남문과 서쪽 마을길을 차례로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북쪽 위험 때문에 주민을 대피시키면서 저만 다른 길로 보내면 성녀의 이동이 또 도시 전체 계획보다 위에 놓입니다.제 이동이 필요하면 같은 대피 체계 안에서 별도 위험만 계산하세요. 그리고 지금 당장은 누구도 이동시키지 않습니다.”하겐은 몇 초 동안 지도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점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주민에게도 이유를 알리고요.”“대피로를 폐쇄할 경우 대체 길을 먼저 확보하세요.”“알겠습니다.”그날 밤 로스테는 또다시 성문을 닫지 않았다.대신 남부 대피로의 사용 준비만 잠시 중단했고, 서쪽 우회로의 제설 인원을 늘렸다. 주민들에게는 ‘마물 접근’이라고 쓰지 않고,과거 왕핵 유도시설 가능성이 확인돼 대피로 안전점검을 시행한다고 공지했다.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남쪽 시설을 외부에서 측정하던 장비가 작은 변화를 잡았다.북부 세 번째 먹이점의 시계장치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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