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헌의 손에 들린 몇 장의 서류.
그것은 대사간이 피눈물을 흘리며 써 내려간, 서상서 가문 모함 사건의 끔찍한 전말이자 우의정 김윤합의 목을 칠 수 있는 완벽한 단두대의 칼날이었다.집무실 취선당에 홀로 앉은 이헌은 그 자백서를 서안 위에 펼쳐놓고 턱을 괴었다.
촛불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깊고 서늘한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당장 내일 아침, 어전에 이 자백서를 던지고 우의정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증거는 명백했고, 자백은 완벽했다.
의금부 도사를 풀어 김윤합의 사가를 포위하고 그 늙은 목을 베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이헌은 서류의 가장 밑바닥, 대사간의 떨리는 지장(指章)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아니. 너무 빠르다.’
자본주의 정글에서 수조 원대 기업의 사냥꾼으로 군림했
왕과 대신들이 뻔히 지켜보는 어전 한가운데서, 수십 명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관료들이 붉은 오라줄에 줄줄이 엮여 개처럼 바닥을 끌려 나갔다.“놓아라! 우의정 대감! 대감! 저희를 살려주시옵소서!”결박당한 자들이 김윤합을 향해 처절하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김윤합은 이빨을 꽉 깨문 채 그들을 외면했다.이헌이 서상서 모함의 건은 덮어두고 뇌물죄만을 들고나온 이상, 여기서 저들을 구명하려 나섰다가는 자신마저 뇌물 카르텔의 배후로 엮일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탓이었다.자신의 손발이 눈앞에서 뭉텅이로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는 처참한 무력감.김윤합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옥좌 아래의 이헌을 올려다보았다.이헌은 그런 김윤합을 향해, 입모양만으로 소리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다음은 네놈이다.]“……!”김윤합의 턱이 덜덜 떨렸다.이헌은 우의정을 칠 명분과 증거를 이미 다 쥐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것을 숨긴 채 삼사만을 도륙 내었다.그것은 무지해서가 아니었다.사냥감의 숨통을 한 번에 끊는 대신, 살점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공포를 천천히 음미하게 만들려는 악마 같은 유희였다.질질 끌려가는 관료들의 비명이 편전 밖으로 멀어질 즈음, 조정에는 묘지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오직 치밀한 회계 분석과 악마적인 법적 거래를 통해 얻어낸 자백서 한 장으로, 이헌은 조정을 쥐고 흔들던 거대 권력 삼사를 완벽한 해체 수준으로 짓밟아버렸다.서연의 가문을 물어뜯고 조롱했던 그 위선적인 사냥개들을 모조리 의금부의 가장 축축한 지하로 쑤셔 박으며, 이헌은 그녀를 향한 첫 번
이헌의 손에 들린 몇 장의 서류.그것은 대사간이 피눈물을 흘리며 써 내려간, 서상서 가문 모함 사건의 끔찍한 전말이자 우의정 김윤합의 목을 칠 수 있는 완벽한 단두대의 칼날이었다.집무실 취선당에 홀로 앉은 이헌은 그 자백서를 서안 위에 펼쳐놓고 턱을 괴었다.촛불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깊고 서늘한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당장 내일 아침, 어전에 이 자백서를 던지고 우의정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증거는 명백했고, 자백은 완벽했다.의금부 도사를 풀어 김윤합의 사가를 포위하고 그 늙은 목을 베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이헌은 서류의 가장 밑바닥, 대사간의 떨리는 지장(指章)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아니. 너무 빠르다.’자본주의 정글에서 수조 원대 기업의 사냥꾼으로 군림했던 이헌은, 사냥감을 단숨에 물어 죽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권력의 정점에 있는 적의 목통을 단번에 끊으려 들면, 상대는 죽기 살기로 저항하며 조선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반정(反正)의 빌미를 만들 수 있었다.적을 가장 완벽하게 파멸시키는 방법은, 그가 발을 딛고 있는 땅부터 하나씩 무너뜨려 스스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공포를 뼈저리게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몸통을 치기 전에, 수족(手足)부터 완벽하게 말려 죽여주마.’이헌은 붓을 들어 대사간의 자백서 내용 중, 서상서 모함과 우의정의 이름이 들어간 핵심 부분에 붉은 먹줄을 죽 그어 가렸다.대신, 그 아래에 적힌 또 다른 추악한 명단에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그것은 삼사(三司)의 관료들이 지난 십 년간 지방 수령들에게 뜯어낸 집단 뇌물 수수 내역과, 횡령한 국고를 나누어 먹은 수십 명의 하급 관료 명단이었다.서연의 아버지
기생의 몸에서 태어나 족보에도 오르지 못한 열 살짜리 아들놈이더군.”이헌의 목소리가 뱀의 혓바닥처럼 대사간의 귓가를 핥고 지나갔다.“네놈이 평생을 긁어모은 은표와 장부 조작으로 빼돌린 토지의 명의가, 놀랍게도 본처의 자식들이 아니라 그 사생아의 이름으로 은밀하게 신탁되어 있더군. 훈구파의 개 노릇을 하며 더러운 짓을 도맡았던 이유가, 늙은 막내아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어 양반 행세를 하게 만들려는 알량한 부정(父情)이었나.”대사간의 턱이 기괴하게 벌어지며 짐승의 단말마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것은 육체가 찢길 때의 비명이 아니었다. 평생을 걸쳐 가장 깊고 내밀한 곳에 숨겨두었던 최후의 보루가, 이헌의 압도적인 정보력 앞에 완벽하게 발가벗겨졌을 때 느끼는 영혼의 절망이었다.“이, 이 악마 같은 놈! 내 아들은 안 된다! 그 아이는 아무 죄가 없다!”“아무 죄가 없어?”이헌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쇠창살 앞까지 바짝 다가섰다.“네놈이 서상서에게 누명을 씌워 한 가문을 멸문지화로 몰아넣었을 때.그 집안의 여식은 관노비로 끌려가 짐승처럼 짓밟혔다! 네놈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놈의 호의호식 뒤에는, 서연이라는 한 여인의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단 말이다!”이헌의 사자후가 옥사의 지하를 쩌렁쩌렁 울렸다.“현행법상 횡령과 국고 손실의 주범은 구족을 멸하고 재산을 전액 국고로 환수한다. 내가 이 장부를 사헌부에 넘기는 순간, 네 본처의 자식들은 물론이고 저 사생아 놈까지 이 의금부의 찬 바닥에 끌려와 네놈이 당한 것과 똑같은 주리틀기를 당하게 될 것이다.”“아, 안 돼! 제발! 내 아들만은…… 내 핏줄만은!&rdquo
“글줄이나 읽으며 탁상공론만 하던 네놈들보다, 이들이 조선의 실무와 회계 장부에 천 배는 더 밝다. 나는 섭정의 직권으로 이들에게 임시 벼슬을 하사하여, 네놈들이 비워둔 삼사의 모든 빈자리를 즉각 대체할 것이다.”“마, 말도 안 돼! 천한 중인 놈들이 어찌 대간의 자리에 앉는단 말이오!”“조선의 신분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짓이오!”“신분 질서? 율법 앞에서는 신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이헌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타올랐다.“조선의 행정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파업을 선동한 네놈들은 내일부터 당장 녹봉이 끊긴 실업자 신세가 되어, 한양 바닥을 전전하게 되겠지.”완벽한 논파. 그리고 무자비한 대체 인력 투입.현대적 의미의 직장 폐쇄(Lock-out)와 파업 주동자 전원 해고를, 이헌은 조선의 율법과 신분제의 허점을 교묘하게 비틀어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이다.“흑위대는 들어라! 파직된 자들이 궐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면 국법을 모독한 죄를 물어 곤장을 쳐라! 삼사의 모든 전각은 이제 임시 관료들이 접수한다!”“예, 섭정 대감!!”명령이 떨어지자 중인과 서리들이 궐 안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갔다.바닥에 엎드려 있던 양반 관료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이 눈앞에서 완벽하게 날아가는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며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자신들만이 국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알량한 기득권의 오만이, 이헌의 압도적인 행정 장악력과 비정함 앞에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났다.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삼백 명의 정적을 한날한시에 백수로 만들어버린 전무후무한 숙청.이헌은 그 처참하게 무너진 자들을 뒤로한 채, 단 한 번
삼사의 수장인 대사간이 이헌의 숫자 놀음에 완벽하게 도륙당하여 의금부로 끌려간 다음 날.조정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섭정의 무도한 탄압을 좌시할 수 없다!”“명확한 국문도 없이 삼사의 수장을 하옥시키고 전면 감찰을 선포하다니, 이는 명백히 대간(臺諫)의 언로를 틀어막고 조정을 사유화하려는 독재이오!”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하급 관료 수백 명이 일제히 관복을 벗어 던졌다.우의정 김윤합의 은밀한 사주를 받은 그들은, 대사간의 구명과 섭정의 횡포를 규탄한다는 명목 아래 ‘권당(捲堂)’을 선언했다.권당. 곧 집단 파업이었다.삼사의 관리들이 일제히 궐문 밖으로 나가 광화문 앞 대청에 엎드리자, 조정의 행정 시스템은 순식간에 마비 상태에 빠졌다.상소문은 읽히지 않고 쌓였고,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장계의 처리도 전면 중단되었다.백성들의 송사와 국가의 재정 출납마저 삼사의 감찰과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완벽하게 올스톱되었다.국정이 마비될 위기에 처하자, 결국 참다못한 국왕 이도가 이헌을 편전의 내밀실로 따로 불렀다.“진안, 그만두어라.”이도가 미간을 짚으며 피곤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네가 내세운 장부의 숫자들은 훌륭했다. 하지만 삼사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국정을 멈춰 세우는 것은 섭정으로서 지나친 처사다. 저들이 권당을 풀 명분을 만들어주고, 대사간의 처벌 수위를 적당히 낮추어 타협하거라.”이도는 삼사의 입을 막는 것이 왕권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나, 당장 나라의 행정이 멈추는 것은 두려워했다.그러나 이헌은 이도의 타협안을 듣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서늘하
그와 구족의 재산을 모조리 적몰하고, 기방의 첩년이 숨겨둔 금고의 현찰까지 엽전 한 닢 남기지 말고 국고로 환수해라.”“예, 섭정 대감!”무장한 의금부 나졸들이 편전 안으로 들이닥쳐 대사간의 관복을 거칠게 벗겨냈다.“놓아라! 놔! 우의정 대감! 대감! 소인을 이리 버리실 작정이옵니까!”포박당한 대사간이 피눈물을 흘리며 훈구파의 영수 김윤합을 향해 울부짖었으나, 김윤합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질질 끌려가는 대사간의 처절한 비명만이 편전의 높은 천장에 메아리치다 서서히 멀어졌다.“…….”“…….”숨 막히는 정적.아무도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조정의 언로를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삼사의 수장이,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은 섭정의 치밀한 숫자 놀음 앞에 단 며칠 만에 형장의 이슬로 전락했다.이헌은 굳어버린 대신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의 핏발 선 눈동자가 이번에는 사헌부와 홍문관의 관료들을 차례대로 훑고 지나갔다.“대사간 한 놈의 목이 떨어졌다고 끝날 줄 알았더냐.”이헌의 입꼬리가 섬뜩하게 비틀려 올라갔다.“십 년 전, 평안도 관아의 장부를 조작하여 충신을 물어뜯고 가산을 나눠 먹은 쥐새끼들이 이 편전 안에 아직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사헌부 대사헌과 홍문관 대제학의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오늘부로, 삼사(三司) 소속의 모든 관료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고강도(高强度)의 재물 출납 감찰을 선포한다.”조선 역사상 단 한 번도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