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한 대군의 후회: Chapter 151 - Chapter 160

231 Chapters

[148화] 균열(龜裂)(1)

 밤하늘이 찢어진 듯 굵은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대군저의 기와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천지를 집어삼킬 듯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수십 명의 흑위대 무사들이 비를 맞으며 횃불을 들고 섰으나, 거센 빗줄기에 불씨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이헌은 처마 밑 툇마루에 선 채, 쏟아지는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굳게 닫힌 서연의 처소를 응시하고 있었다.빗소리 때문에 그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밤은, 그에게 끔찍한 형벌과도 같았다.“…….”이헌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마당을 서성이던 찰나였다.타닷.빗소리에 묻혀 들릴 리 없는 아주 미세한 파열음.대군저 안채를 둘러싼 가장 안쪽 담장 위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이헌의 동공이 미친 듯이 수축했다.그림자는 흑위대의 시선이 빗줄기에 가려진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고들어, 서연의 처소로 이어지는 뒤뜰에 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었다.“거기 멈춰라!”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흑위대장이었다.어둠 속에서 시퍼런 칼날이 번뜩였고, 담장을 넘으려던 괴한의 허벅지에 깊숙한 자상이 새겨졌다.“크윽!”괴한이 균형을 잃고 빗물이 고인 진흙탕 위로 곤두박질쳤다.그가 다시 몸을 일으켜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려던 순간, 수십 명의 흑위대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의 사지를 짓밟고 목에 칼을 겨누었다.“이,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담장을 넘어!”흑위대장이 괴한의 복부를 거칠게 걷어차며 호통을 쳤다.괴한은 피를 토하면서도, 독기가 서린 눈으로 안채의 닫힌 문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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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균열(龜裂)(2)

 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괴한의 입 밖으로 시커먼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이헌이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괴한의 고개가 힘없이 꺾여 가슴 위로 떨어졌다.자신의 배후를 밝히는 대신, 혀를 깨물고 그 자리에서 자결해 버린 것이다.“이런 미친……!”흑위대장이 다급하게 괴한의 턱을 벌려보았으나, 이미 기도가 끊어져 숨이 멎은 뒤였다.“자가. 숨을…… 거두었사옵니다.”흑위대장이 꿇어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이헌은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괴한의 뜨거운 피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죽음 자체에 대한 충격이 아니었다.모진 고문을 견뎌가면서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서연을 노리는 그 지독하고도 맹목적인 적의(敵意).자신이 율법으로 완벽하게 도륙 냈다고 믿었던 이 조선 팔도에, 아직도 그녀의 목숨을 집요하게 노리는 악의 잔재가 숨을 쉬고 있었다는 끔찍한 사실이었다.“몸을…… 뒤져라.”이헌이 피 묻은 손을 꽉 쥐며 낮게 으르렁거렸다.“옷가지부터 입안의 금니 하나까지 남김없이 뒤져. 그놈이 어디서 굴러먹던 쥐새끼인지 단서 하나라도 찾아내.”흑위대 무사들이 시신에 달라붙어 품속을 뒤집기 시작했다.잠시 후, 흑위대장이 괴한의 허리춤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어 이헌에게 바쳐 올렸다.“자, 자가. 이것을 보시옵소서.”그것은 은장도로 위장된 작은 단검이었다.그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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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0퍼센트의 살의(1)

 “문 열어라! 어명이다!”꽝! 콰직!한밤중의 고요를 찢으며 도성 곳곳에서 대문이 박살 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횃불을 치켜든 수백 명의 금군과 흑위대 무사들이 미친 듯이 한양의 밤거리를 휩쓸고 다녔다.“이, 이것이 무슨 짓이오! 나는 종사품 사간원 헌납이오!”“입 닥쳐라! 반역의 무리와 내통한 대역 죄인은 신분을 막론하고 의금부로 압송하라는 섭정 대감의 추상같은 명이 떨어지셨다!”금군들이 양반의 상투를 거칠게 틀어쥐고 진흙탕 바닥으로 끌어냈다.비단옷을 입은 권문세가의 자제들, 객주를 운영하던 거상들, 심지어 우의정 집안의 외거 노비들까지.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밧줄에 굴비 엮이듯 묶여 의금부를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다.도성은 말 그대로 피바람이 몰아치는 거대한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같은 시각, 의금부 국문장.수십 개의 횃불이 마당을 대낮처럼 붉게 비추고 있었다.형틀에 묶인 죄인들의 비명이 밤하늘을 찢었고, 튀어 오른 핏물이 의금부의 모래바닥을 질척하게 적셨다.이헌은 국문장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 지옥 같은 풍경을 서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의 무릎 위에는 두꺼운 명부와 장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죽은 우의정 김윤합과 훈구파 잔당들이 과거에 남겼던 모든 거래 내역과 서신 기록들이었다.“섭정 대감!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그저 십 년 전, 우의정 대감의 수하에게 인삼 열 뿌리를 납품하고 영수증을 받았을 뿐이옵니다!”형틀에 묶인 중인 출신의 상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악을 썼다.“단지 물건을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어찌 역모의 죄를 뒤집어쓴단 말이옵니까!”&ldqu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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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악마의 부활(1)

 “제발…… 제발 살려주시옵소서! 소인은 저 상단의 물건을 몇 번 떼다 팔았을 뿐, 반역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다!”의금부 마당.형틀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된 늙은 상인이 땅에 머리를 찧으며 애원했다.그의 곁에는 상단의 장부를 정리하던 어린 서기들까지 굴비처럼 엮여 공포에 떨고 있었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극단적인 연좌제 수사에, 한양 도성의 감옥은 이미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이헌은 옥좌처럼 마련된 상석에 앉아 그 아비규환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그의 손에는 상인과 훈구파 잔당 사이에 오갔던 몇 장의 거래 내역서가 들려 있었다.“그저 물건만 떼다 팔았다.”이헌의 건조한 목소리가 의금부 마당에 울렸다.상인이 희망을 품은 듯 고개를 쳐들었다.“예! 예! 그러하옵니다, 대감!”“허나, 네놈이 떼다 판 그 물건의 이문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느냐. 우의정의 잔당들이 숨어 지내며 세력을 키우는 든든한 자금줄이 되지 않았더냐.”이헌이 붓을 들어 서류 위에 붉은 줄을 직- 그었다.“모르고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 했다면 반역이다. 어느 쪽이든 내 율법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쳐라.”“안 돼! 대가아아암……!”망나니의 칼이 허공을 갈랐고, 상인의 목이 모래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튀어 오른 핏물이 이헌의 장화 끝을 붉게 물들였다.“자, 자가.”밤새도록 국문을 지켜보던 형조 판서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앞으로 나섰다.“이, 이자들은 정말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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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경제적 처형(1)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아친 광기 어린 연좌제 수사는 마침내 그 거대한 악의 뿌리 끝단에 도달했다.“놓아라!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리 무엄하게 구느냐!”도성 최고 상단의 본거지.비단옷을 걸친 살찐 사내가 흑위대 무사들에게 양팔을 결박당한 채 거품을 물고 발악했다.십 년 전, 훈구파의 자금줄 역할을 하며 서상서 가문을 모함하는 데 결정적인 뇌물과 인맥을 동원했던 숨은 거물, 박 대행수였다.“섭정 대감이라 하였느냐! 당장 내 발을 풀지 못할까! 내 뒤에는 명나라의 황궁 상단이 버티고 있다! 섭정이 감히 나를 건드린다면 명나라와의 교역이 끊어지고 외교적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의금부로 압송되어 이헌의 발밑에 내동댕이쳐진 뒤에도, 대행수의 혓바닥은 멈추지 않았다.그는 조선의 정치판을 뒤에서 돈으로 주무르던 자본의 진짜 괴물이었다.권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돈과 명나라 인맥 앞에서는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평생의 진리로 믿어온 자였다.“그리고…… 내 재산의 절반! 아니, 팔 할을 대감께 바치겠소이다! 은표 십만 냥이 넘는 거금이오! 이 돈이면 조선의 군대를 두 배로 늘리고도 남소!”대행수가 진흙탕에 엎드린 채,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헌을 올려다보았다.“살려만 주신다면, 그 어마어마한 부를 모두 섭정 대감의 개인 금고로…….”“은표 십만 냥이라.”이헌의 건조한 목소리가 의금부 마당에 낮게 깔렸다.그는 상석에 앉아 턱을 괸 채, 대행수의 필사적인 구걸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명나라의 외교적 압박과 은표 십만 냥. 참으로 매력적인 거래 조건이로군.”&ld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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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텅 빈 승리자(1)

 광란의 피바람이 휩쓸고 간 한양 도성 위로, 핏빛처럼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수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성을 짓누르던 칼바람 소리와 망나니의 비릿한 숨소리는 마침내 완벽하게 멎어 있었다.모든 복수와 불안 요소가 완벽하게 제거된, 기괴할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한 아침이었다.“…….”대군저의 집무실.이헌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문턱을 넘어, 거대한 서안 뒤의 의자에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그의 모습은 처참했다.며칠 밤을 새운 두 눈은 실핏줄이 터져 기괴하게 붉게 물들어 있었고, 핏기가 싹 가신 창백한 뺨 위로는 지독한 피로감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밤마다 우물가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몸을 문질러댄 탓에, 옷깃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와 손목에는 붉은 핏물이 밴 붕대가 처절하게 감겨 있었다.“자가. 드시옵소서.”집무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흑위대장과 형조 판서, 그리고 의금부 도사가 무거운 걸음으로 들어섰다.그들의 뒤로 수십 명의 서기들이 끙끙거리며 나무 궤짝들을 끊임없이 실어 날랐다.쾅, 쾅.무거운 궤짝들이 서안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갔다.“이것이 전부냐.”이헌이 바싹 말라 갈라진 입술을 억지로 떼어내며 물었다.“예, 섭정 대감. 십 년 전 서 판서 대감을 모함하는 데 가담했던 우의정 김윤합의 잔당 세력, 그리고 그들에게 자금을 댄 상단과 객주들의 모든 처결 기록이옵니다.”형조 판서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어젯밤, 광화문 네거리에서 박 대행수의 목을 쳐 장대에 효수하는 것을 끝으로…… 관련자 삼백 마흔두 명의 참수형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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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텅 빈 승리자(2)

 당신의 아버님을 모함하고, 당신의 발목에 노비의 족쇄를 채웠던 그 역겨운 짐승들.”그의 손아귀에 꽉 쥐인 형집행 서류가 구겨지며 바스락거리는 비명을 질렀다.“제가 다 죽였습니다. 이 율법의 칼로…… 그들의 목을 썰고, 가문을 찢어발기고, 그들의 더러운 돈마저 당신의 이름 아래 완벽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이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아가씨의 목숨을 노리거나 손가락질할 수 있는 놈은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습니다.”이헌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르며 기어이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서류 위로 툭, 떨어져 내렸다.안도감.살을 에는 듯한 지독한 안도감이 그의 온몸을 관통했다.“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그는 구겨진 서류에 자신의 이마를 댄 채, 짐승처럼 어깨를 들썩였다.이 미친 학살과 통제의 죗값으로, 자신이 당장 내일 벼락을 맞아 죽는다 해도 상관없었다.수천 명의 피를 손에 묻힌 이 끔찍한 업보 때문에 자신이 무간지옥의 가장 뜨거운 불길 속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는다 할지라도.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그 모함의 끔찍한 흔적들을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그녀의 얇은 창호지 문에 먼지 한 톨 날아들지 않게 완벽한 요새를 구축했다는 이 사실 하나만이, 지옥을 뒹구는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이었다.“…….”한참 동안 서류 더미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이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화려한 집무실과 그의 피 묻은 흑색 철릭을 비추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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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닫혀있던 입술(1)

 며칠 전, 텅 빈 집무실에서 서류 더미에 엎드려 무너져 내리던 그 아침 이후.이헌은 조선의 모든 권력과 복수의 결과물을 등진 채, 스스로 가장 처절하고 기괴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섭정 대감! 궐내에서 편전 회의가……!”“물러가라. 내 곁에 아무도 오지 마라.”그의 일상은 파괴될 정도로 단순해졌다.아침이 밝으면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로 서연의 처소 앞에 서서, 굳게 닫힌 문을 향해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했다.그녀가 잠에서 깰까 두려워 발소리조차 죽였고, 식사 때가 되면 하인들을 물리고 자신이 직접 소반을 들고 와 문지방 아래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아가씨. 식사를 가져왔습니다.”갈라진 목소리가 문풍지를 때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서늘한 침묵뿐이었다.이헌은 그 묵언을 가장 큰 형벌로 달게 받으며, 식은 밥이 담긴 소반을 곁에 둔 채 차가운 툇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밤이 깊어 이슬이 맺히고, 뼛속까지 시린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마치 스스로를 징벌하듯, 한기(寒氣)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날이 밝을 때까지 그녀의 문밖을 지키는 맹목적인 석상(石像)이 되었다.자신이 쌓아 올린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결국 그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자신을 역겨운 학살귀로 낙인찍었다는 그 뼈저린 자책.그는 이 끔찍한 고독과 징벌 속에서 스스로 말라 죽어가는 것만이, 그녀에게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속죄라고 맹신하고 있었다.그렇게 며칠의 밤이 더 흘렀다.“…….”어둠이 무겁게 깔린 대군저.이헌은 오늘도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그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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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피 묻은 손과 닫힌 문(1)

 그가 천천히, 젖은 눈동자를 들어 올려 서연을 올려다보았다.그의 시선에는 오직 맹목적인 구원을 갈구하는 광적인 신앙만이 가득했다.“저를 위해 피를 묻히셨다 하였습니까.”서연이 그를 내려다보며, 아주 느리게,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권력도, 옥좌도 걷어차고…… 이 좁은 문지방 아래서 죽기를 자처할 만큼, 당신의 죄가 깊다 여긴다 하셨습니까.”“그렇습니다, 아가씨. 제 모든 것을 찢어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그렇다면.”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이헌을 꿰뚫었다.“당신이 쥐고 있는 그 칼끝을…… 이제 나에게 넘기십시오.”“……!”이헌의 숨이 턱 막혔다.율법의 사각지대에서 시작되어,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그 지독하고 끔찍한 복수극의 2막.그 무자비한 정치전이 완벽하게 막을 내리고, 이제 두 사람만이 남겨진 이 적막한 툇마루 위에서.도망치고 숨기만 했던 서연이 마침내 침묵을 깨고, 그 권력의 정점인 이헌의 숨통을 스스로 쥐어 흔들기 위해 닫힌 입을 연 것이다.폭풍전야.서연의 발밑에 엎드린 이헌과, 그를 서늘하게 굽어보는 서연.서로의 영혼을 옭아매고 살을 파고들, 가장 지독하고 파괴적인 애증의 3막이, 달빛 아래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그 거대한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차가운 겨울밤의 정적이 짓누르는 대군저의 안채.수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성을 피비린내로 물들였던 광란의 학살극이 끝났다.조선의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들던 우의정의 잔당들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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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피 묻은 손과 닫힌 문(2)

 자신을 살린 뒤 법과 권력으로 삶을 통제해 온 사내가, 이제는 조선의 무력까지 쥐고 언제라도 자신의 숨통을 뜯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괴물로 보일 뿐이었다.‘저 피에 젖은 괴물이…… 언제 그 광기를 나에게로 돌릴지 모른다.’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오직 생존을 향한 원초적인 공포였다.그 공포가 너무도 선명하고 압도적이어서, 이헌은 자신의 심장이 거대한 쇠망치에 얻어맞아 수만 조각으로 박살 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아, 아가씨.”이헌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려 했다.하지만 그가 손을 미세하게 움찔거린 것만으로도, 서연은 숨을 헉 들이마시며 다시금 뒷걸음질을 쳤다.쾅.그녀의 등 뒤로 방문의 문틀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더 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는 그녀가, 벽에 기대어 벌벌 떨며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이헌의 내밀었던 두 손이 허공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자신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피를 묻혔다.그녀에게 완벽한 성벽을 지어주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했다.하지만 자신이 뒤집어쓴 그 괴물의 허울과 피비린내가, 정작 그녀의 영혼을 끔찍한 공포로 찢어발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 차가운 툇마루 위에서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그의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시야가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자신은 그녀에게 구원자가 될 수 없다.자신이 다가갈수록, 자신이 내미는 손길이 짙어질수록, 그녀는 이 끔찍한 핏자국 앞에서 질식할 듯한 공포만을 느끼게 될 터였다.“……송구합니다.”이헌은 핏물이 밸 정도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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