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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사랑의 방정식: Kapitel 21 – Kapitel 30

30 Kapitel

제21화

다음 날 아침, 청하가 이끄는 팀은 음식 다큐멘터리 야외 촬영을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도심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니었다. SUV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마을이었다. 풍경이 아름답고 인근 주민들도 친절했다.현장에 도착하자 스태프들은 바로 장비를 풀고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선배!”“내가 뭐 가져왔는지 맞혀 봐.”용현이 웃으며 청하 앞으로 다가왔다.용현은 대학생 인턴 시절부터 청하와 함께 일한 후배였다. 두 사람은 5년 동안 같은 현장을 뛰며 고락을 함께해온 좋은 동료였다. ‘전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용현은 오랜 시간 동안 청하를 조건 없이 믿어 왔고, 청하 역시 용현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청하는 옆에 있던 접이식 의자를 끌어와 앉으라고 했다.“아까 준 커피도 아직 다 못 마셨어. 이번엔 또 뭘 가져왔어?”용현은 선물이라도 자랑하듯 깨끗하게 씻은 감 몇 개를 꺼냈다.“마을 분들이 우리가 촬영하러 왔다고 많이 주셨어. 내가 몇 번이나 씻었으니까 깨끗한데 하나 먹어 볼래?”마을 집에서 직접 키운 감이었다. 연말까지 따지 않고 남아 있던 감들이 서리를 맞고 충분히 익어 금빛으로 빛났다. 보기만 해도 달콤해 보였다.청하가 한입 베어 물자 정말 꿀처럼 달았다. 웃으며 작게 말했다.“진짜 달다.”용현은 청하의 웃는 얼굴을 몇 초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맞다. 동윤이 줄 것도 몇 개 따로 놔뒀어. 이따 꼭 가져가.”“동윤이 몫까지 따로 줄 필요는 없어. 하나만 가져가서 맛보게 하면 돼.”청하가 용현의 옷을 살피며 물었다.“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흙투성이야?”“아무것도 아니야.”용현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아까 주민분들 감 따는 거 좀 도와드렸더니 묻었나 봐.”용현은 휴지로 옷을 닦으려 했지만 등에 묻은 흙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청하는 몸을 돌려 보라고 한 뒤 대신 닦아주었다.키가 186센티미터나 되는 용현은 작은 의자에 앉아 청하의 손이 등 뒤에서 옷자락을 꼼꼼히 닦는 걸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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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윤 PD님 진짜 부럽다. 남편이 잘생기고 돈도 많고 이렇게 세심하기까지 하잖아. 여기까지 직접 찾아오고. 우리 남편은 내가 야외 촬영 간다니까 따뜻한 물이나 마시라고 말로만 하고 그게 끝이었는데...”“...”사람들의 속삭임을 들으면서도 청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재언이 자신을 보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용현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청하에게 고개를 숙여 물었다.“저쪽 감나무 보러 갈래? 사진 몇 장 찍어서 동윤이 보여 줘. 아마 실제 감나무는 본 적 없을 거야.”동윤이는 어릴 때부터 밖에서 마음껏 뛰어논 적이 거의 없었다. 장혜리가 손자를 지나치게 아껴 작은 상처라도 생길까 늘 걱정했기 때문이다. 청하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용현은 입가를 살짝 올리고 익숙하게 청하의 가방을 대신 멨다. 앞장서 길을 안내했다.두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 용현은 뒤에서 낮게 들리는 재언의 질문을 들었다.“한다미 씨는 어디 있습니까?”용현의 걸음이 잠깐 멈췄고 웃음도 굳었다.용현뿐 아니라 현장에 있던 팀원들 대부분이 놀랐다.이렇게 선물을 잔뜩 들고 와 놓고, 정작 찾아온 이유가 다미를 보기 위해서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모두가 보는 앞에서 청하의 체면을 짓밟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오랫동안 청하와 함께 일한 직원들은 들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현장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국장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옆의 직원을 툭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뭐 하고 있어? 심 대표님 말씀 못 들었어? 한다미 씨 빨리 모셔 와.”다미는 팀의 맨 뒤쪽에서 장비를 한가득 안고 있었다. 감기가 더 심해졌는지 몸이 휘청거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했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누군가 자신을 부르러 오자 다미는 멍해졌다. 몇 번이나 확인했다.“심 대표님이 정말 저 보러 오신 거예요?”부르러 온 직원은 평소에도 다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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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주변 사람들 표정과 달리 청하는 가장 평온했다.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다들 가죠. 점심 먹으러.”팀원들은 기분이 가라앉아 띄엄띄엄 대답했다.“내가 들게. 이거 무거워. 손 아프겠다.”용현은 청하가 든 장비 상자를 받아 들고 함께 차에 올랐다. 그때까지도 누군가가 계속 자신을 노려보는 듯 등이 따끔거렸다.용현은 차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하지만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점심은 마을의 작은 향토 음식점에서 먹기로 했다.B시의 유명 음식점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지역 특색이 있는 곳이었다. 방송국 간부와 대기업 대표가 온다는 말을 들은 주인은 가장 신선한 토종닭과 생선을 준비해 대표 메뉴를 내왔다.하지만 음식이 막 상에 올라오자 재언이 전부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국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심 대표님, 혹시 알레르기가 있으십니까? 못 드시는 음식이 있으면 주방에 바로 전달하겠습니다.”“국장님이 잊으신 것 같은데, 한다미 씨는 손을 다쳤습니다.”재언이 담담하게 상기시켰다.“아이고,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바로 다시 준비하게 하겠습니다.”국장이 자기 이마를 가볍게 쳤다.다미는 과분한 배려를 받은 사람처럼 놀랐다.재언이 자기 상처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봐 신경 쓴 것이었다.다미는 재언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챙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뺨부터 귀까지 붉어졌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청하를 바라보는 눈에도 은근한 우월감이 섞였다.팀원들은 대부분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오래 함께 밥을 먹어 서로 취향도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배가 고픈 채 음식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이런 작은 마을 식당은 주문을 다시 받으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상을 새로 차리려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듯했다.“오늘 아침부터 다들 고생했어요.”청하가 음식을 치우려는 직원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그거 그냥 주시고, 한다미 씨가 먹을 것만 따로 준비해 주세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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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다미는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아 옷자락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국장님,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목소리가 너무 작고 태도도 지나치게 위축돼 있었다.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재언이 대체 다미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익숙한 사람보다 새로운 사람이 더 좋아 보인다는 말이 정말 맞는 걸까?사람들이 다미를 띄우는 말을 주고받는 동안 용현은 청하가 방송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돈도 배경도 없던 청하는 허드렛일부터 하나씩 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지금 다미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했다.방송국 사람들 사이에는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었다.여자는 남자처럼 굴리고, 남자는 기계처럼 굴린다는 말이었다.예산이 부족하던 시절 청하는 컵라면 몇 상자와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건빵을 챙겨 촬영팀에 들어갔다. 산속에서 며칠을 촬영하면 운이 좋은 날을 만나면 흐르는 물을 찾아 세수했다. 대부분은 밤이 되면 배낭을 내려놓고 계단이나 바닥에 기대 그대로 잠들었다. 남자와 여자를 따질 여유도 없었다.한 번은 청하가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산 중턱을 뛰어다니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용현이 발견해 업고 내려오지 않았다면 며칠 뒤에나 찾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음 날 수액을 맞고 바로 출근한 청하는 오히려 윗사람에게 심하게 혼났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그때는 왜 아무도 청하를 위해 이런 말을 해 주지 않았을까?청하는 아직 어리니까 힘든 일은 시키지 말라는 말.용현은 속이 답답해 음식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청하가 용현의 접시에 새우를 한 젓가락 놓아주었다.“좀 더 먹어. 이따 촬영 시작하면 다시 바쁠 거야.”용현은 이미 입맛이 없었지만 청하가 걱정할까 봐 그대로 한입에 먹었다.두 사람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멀리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청하는 촬영할 때 코트를 잘 입지 않았다. 움직이기 편하고 바람과 먼지에 강한 검은 아웃도어 재킷을 주로 입었다. 목까지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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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최민은 표정이 굳어 바로 자리를 떠났다.자리에 남은 용현은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따라가지 않았다.청하는 통증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재언이 방향을 잡아 이끌자 오히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몇 걸음 만에 세면대로 도착했다.차가운 흐르는 물이 손등에 닿자 불에 덴 듯 따갑던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내가 할게.”청하는 재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재언은 놓지 않고 오히려 손목을 더 단단히 붙잡았다. 태도도 부드럽지 않았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움직이지 마.”청하는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너무 아파 더 실랑이할 힘도 없었다.도시의 욕실과 달리 공간은 좁고 답답했다. 누런 조명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키가 큰 재언은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청하의 손목을 잡아 수도꼭지 아래 흐르는 물에 갖다 댔다. 찬물로 계속 열을 식히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급히 따라온 다미는 바로 그 모습을 보게 됐다.오랫동안 부부로 살아온 두 사람은 어딘가 닮은 분위기가 있었다. 가까이 붙어 서 있는 모습은 뜻밖에 친밀해 보였다.다미는 문을 짚은 채 시선을 굳혔다.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촬영지가 외진 곳이라 의사가 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최민이 운전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달리라고 했지만 한 시간 뒤에야 도착했다.아는 얼굴을 본 청하는 예의상 인사했다.“진 선생님, 오랜만이에요.”손등의 화상은 이미 흐르는 찬물로 응급 처치를 한 상태였다. 진준환은 대충 살펴본 뒤 시선을 거두고 의료 가방을 열었다. 늘 그렇듯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가능하다면 저는 제수씨를 병원 밖에서는 평생 안 보고 싶습니다.”청하는 자조하듯 웃었다.“미안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이런 모습만 보여 드리네요.”“됐어.”준환이 대답하기도 전에 재언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널 여기까지 부른 건, 둘이 수다 떨라고 한 게 아니야.”준환은 무표정하게 재언을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청하의 상처를 치료했다. 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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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지난 몇 년 동안 청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용현은 직접 봤고, 청하가 어떤 사람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39도가 넘는 고열에도 조정실에 앉아 촬영 화면을 끝까지 확인하고 편집했다. 사람 봐 가며 함부로 대하는 기업인들에게 술을 억지로 받아 마시다가 위경련이 와 나무 아래에서 토하고 그대로 쪼그려 잠든 적도 있었다. 다음 날에는 또 동윤이를 돌봐야 했는데, 심씨 집안에서 일하는 시터는 아이가 모기에 몇 군데 물렸다는 이유로 청하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탓했다.그때도 용현은 청하 바로 뒤에서 모든 걸 봤다. 그리고 남편인 재언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지, 왜 모든 걸 여자 혼자 감당해야 했던 건지 따져 묻고 싶었다.이제야 나타난 재언은 정작 다른 여자를 지키고 있었다.재언의 시선이 용현에게 향했다. 도전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본 재언이 눈썹을 아주 조금 들었다. 주변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우리 청하 선배?”“그만해!”두 사람이 말을 잇기 전에 청하가 먼저 끊었다.“내가 뜨거운 물 가까이에 있던 것도 잘못이니까 한다미 씨 책임만은 아니고.”청하는 평온한 표정으로 다미에게 거리감 있게 말했다.“게다가 심재언 대표도 곁에 있는데 누가 한다미 씨한테 뭘 하겠어? 그러니까 안심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다미는 청하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 처음 봤다. 늘 말로든 분위기로든 자신이 밀렸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속이 시원해졌다.‘나보다 능력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 뭐 해?’‘결국 심 대표님은 내 편이잖아.’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다미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옆의 준환은 여자들 사이의 신경전에 관심이 없었다. 청하의 손을 잡아 다시 치료를 이어 갔다.청하는 피부가 희고 손도 부드러웠다. 흉터가 남으면 아까울 정도였지만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준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조금 빨리 해 주실 수 있어요?”“그러면 많이 아플 겁니다.”화상 치료는 섬세하게 해야 했다. 서두르면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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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용현은 마지못해 짧게 대답을 한 뒤, 동료 몇 사람에게 이끌려 자리를 떴다.청하는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멀어지는 용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가족 간의 정, 사랑, 우정. 살아오는 내내 청하에게 늘 부족했던 것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별다를 것 없는 삶이었고, 굳이 꺼내 말할 만한 것도 많지 않았다.그래도 다행이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비좁은 대기실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재언은 청하의 입가에 남은 웃음을 바라봤다. 표정에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지만 말투는 유난히 건조했다.“네 손 데었을 때 바로 내가 데리고 가서 흐르는 물에 손부터 식혀 줬고, 의료진도 내가 불렀고, 치료비도 내가 냈는데. 서용현 PD가 대체 뭘 안심한다는 거지?”청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귀에 익게 들어 온 냉랭한 말투였다.“심 대표님 말씀은... 제가 비용을 정산해 드려야 한다는 뜻인가요?”부드럽고 담담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날이 서 있었다. 재언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이 여자 눈에는 내가 그렇게 돈이나 밝히는 쪼잔한 사람으로 보이나?’청하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말다툼할 생각조차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준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나갔다.문이 닫히자 준환은 왕진 가방을 정리하며 물었다.“너희 둘, 대체 무슨 일이야?”재언은 대답하지 않았다.때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와.”문이 살짝 열리며 한다미가 얼굴을 반쯤 내밀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대표님, 룸에 음식 새로 차려 놨어요. 아까 거의 못 드셨잖아요. 지금이라도 조금 더 드시겠어요?”재언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아까 마음 한구석을 아주 미세하게 건드렸던 감정이, 대체 누구의 발걸음이 되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인지 재언 자신도 알 수 없었다.준환은 멀어지는 한다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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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점심 무렵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오후 촬영은 예정대로 이어졌다.청하의 손은 사실 크게 다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국장이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기로 했다.“국장님, 저 정말 괜찮아요.”“윤 PD, 이번에는 내 말 들어. 이참에 집에서 푹 쉬면서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말고.”국장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방송국에는 네 편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한다미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지는 못해.”‘내 편? 참 따뜻한 말인데...’청하는 미소를 띠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청하가 떠난 뒤, 국장은 웃음을 거두고 조연출을 불렀다.“그 한다미라는 친구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굳이 내가 가르쳐 줄 필요 없겠지?”조연출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뜻을 알아챘다.“국장님, 설마 일부러 띄워 줬다가 스스로 무너지게 하시려는 겁니까?”“누가 일부러 무너뜨린대.”국장이 미간을 찌푸렸다.“방송국에서 줄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은 제대로 줄 거야. 그걸 한다미가 받아낼 실력이 있는지는 본인 몫이지. 못 버티고 사라진다 해도 우리 방송국 책임은 아니잖아.”조연출은 뜻을 완전히 알아듣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국장님, 더 말씀 안 하셔도 알겠습니다.”국장은 길게 숨을 내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언을 정면으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라도 다미가 현실의 벽을 직접 부딪쳐 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청하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윤도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다. 이번에는 재언이 직접 데려온 모양이었다. 아이는 현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목소리부터 들려왔다.“엄마! 엄마! 오늘은 왜 동윤이 데리러 안 왔어?”재언이 턱짓으로 안방 쪽을 가리키자, 동윤이는 곧장 안방으로 뛰어갔다.청하의 손에 감긴 붕대를 보자마자 작은 눈썹이 잔뜩 찌푸려지고 입술도 삐죽 튀어나왔다.“엄마, 왜 다쳤어? 많이 아파?”집에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이가 있으니,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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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안경 아빠? 앞치마 엄마?’‘대체 무슨 소리야?’재언은 미간을 찌푸리고 청하를 바라봤다. 청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설명했다.“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물들이야.”그대로 시선을 거두려던 재언은 청하의 붕대가 피에 젖은 것을 발견했다. 잠시 침묵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동윤아, 가서 구급상자 가져와.”동윤이는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자기 머리보다도 큰 구급상자를 품에 안고 달려왔다. 짧고 통통한 다리인데도 달리는 건 제법 빨랐다.“아빠, 여기!”재언은 구급상자를 받아 들고 청하에게 손을 내밀었다.“손.”청하는 아이 앞에서는 두 사람 사이가 지나치게 냉랭해 보이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다친 손을 내밀었다.예전에 선수 생활을 했던 탓인지 재언은 이런 작은 상처를 수도 없이 처리해 본 사람이었다. 손놀림은 익숙했고 처치도 수준급이었다.사실 전화 한 통이면 주치의가 10분 안에 올 수 있었다. 다만 재언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청하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재언은 붕대 끝을 단단히 묶었다.“됐어. 이틀 정도는 손 함부로 쓰지 마.”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동윤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엄마, 아직 아빠한테 고맙다고 안 했잖아!”“고마워.”청하는 잠깐 말을 멈췄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해 끝내 한마디를 덧붙였다.“저기...”지나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를 들었지만 재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한층 더 무심해졌을 뿐이었다.“아니야...”평소에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만큼 바쁘던 재언이 웬일인지 그날은 한가했다. 재언이 떠나지 않으니 청하도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윤의 성화에 못 이겨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 올해 새로 나온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을 함께 봤다. 따뜻하면서도 아이가 배울 만한 교훈이 담긴 작품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청하는 화면을 진지하게 보며 동윤이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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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동윤은 그제야 만족한 듯 눈을 감고 얌전히 누웠다.그렇게 청하와 재언은 다시 한 침대에 누웠다. 동윤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고, 청하는 아들의 등에 한 손을 올린 채 가볍게 토닥여 잠을 재웠다.평소보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웠다. 청하는 이제 막 잠든 아이가 깰까 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어두운 방 안에서 재언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로 다른 숨소리만 잔잔하게 뒤섞였다. 듣고 있자니 슬슬 저절로 졸음이 밀려왔다.얼마쯤 누워 있었는지도 모른 채 청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무거워진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고, 의식도 차츰 흐려졌다. 호흡은 어느새 고르게 가라앉았다.완전히 잠들기 직전, 곁에서 재언이 몸을 일으키는 듯한 기척과 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재언이 방을 나갔다. 그가 자리를 뜨자 청하의 몸을 짓누르던 긴장도 금세 풀렸다. 그제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새벽 3시가 되어 재언이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와 아들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동윤은 팔다리를 사방으로 벌린 채 자고 있었고, 작은 이불은 발치까지 차 내려가 있었다.동윤이는 원래 잠버릇이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지난 두 달 동안 아들과 단둘이 지내며 재언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아이 옷 하나 제대로 벗겨 줄 줄 몰랐지만, 이제는 동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수 있게 됐다.가끔 둘만 남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재언도 새삼 깨닫곤 했다. 아이 하나를 돌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정말 어려운 일이었다.재언은 손을 뻗어 아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고개를 들던 재언의 시선이 잠든 청하에게 머물렀다. 청하는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한쪽 팔은 베개 곁에 힘없이 놓여 있었고, 희미한 달빛이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잠든 모습은 더없이 차분하고 평온해 보였다.청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어쩌면 ‘온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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