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한 루나를 사랑하다 : Chapter 21 - Chapter 30

50 Chapters

수색

발레리 다음 날, 팩 도시가 막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동이 트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건넨 쪽지에는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내 연락처와 이곳의 주소, 그리고 이제 매 순간 가까워지고 있는 약속 시간. 그의 문자 한 통이면 그가 이곳에 올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일부러 이곳을 고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팩의 경계와 가까웠고, 내가 아는 곳 중 가장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직원 한 명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힐끗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게 당연했다. 나는 이 시간대에 돌아다니는 팩 사람들이 혹시라도 나를 알아보는 일을 막기 위해 후드로 머리를 가리고 마스크로 얼굴까지 가려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만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카페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리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그는 머리만 가리지 않았을 뿐 거의 나와 똑같이 변장하고 있었지만,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트리스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장 테이블로 걸어왔다. 직원이 자리를 비우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작게 같은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넓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침 햇살이 건물들을 아름답게 비추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의무에만 얽매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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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발레리 “세상에, 너무 오래 서 있었나 봐. 엉덩이가 다 아프네.” “그럼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온몸을 굳혔다.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두 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문 가까이에 있었지만 무언가를 뒤적이는 소리만 들릴 뿐,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트리스탄의 숨소리는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가 너무 가까이 있는 탓에 오히려 바깥 상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그날 밤처럼. 그와 단 하룻밤을 보냈던, 유일한 그 밤처럼…. ‘집중하자.’ 나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의식을 집중했다. 소리는 몇 초 정도 이어지더니 곧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걸 받으면 기뻐할까? 차라리 새걸 사 줄 걸 그랬나.” 어머니가 망설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원래 당신 목걸이였잖아. 결혼 선물로 물려주는 게 맞지.” 아버지가 대답했다.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머니가 말한 목걸이가 무엇인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구애 선물로 어머니께 드렸던 가보였다. 아직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언젠가 그 목걸이를 내게 물려주겠다고 웃으며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앨린에게 주려는 것이었다.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목의 응어리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아버지의 희미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 아이는 정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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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트리스탄 내 서재의 희미한 불빛 아래, 손에 든 위스키 잔은 호박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매번 나는 그녀 때문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당신조차도.’ 그녀의 말은 위스키보다도 더 뜨겁게 나를 태웠다. 그 불길은 그녀의 부모를 향한 분노로 타올랐다. 그들의 가혹하고, 무정하며, 무지하고, 모욕적인 말들 때문에.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분노스러운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내 안의 한쪽은 지난 생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른 한쪽은 그 기억 속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두려워했다. 그 속의 내가 지금보다 더 끔찍한 사람이었다면 어떡할까.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내가 그녀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죽음은 되돌려졌지만,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메이트 유대는 끊어졌고 그녀는 자유로워졌다. 그런데도 그 모든 일을 겪고도 그녀는 지금 내 앞에 있었고,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팩 사람들은 늘 내 편을 들었지만, 그들은 모두 틀렸다. 그녀를 가질 자격이 없는 건 바로 나였다. 나는 그녀의 친절을 받을 자격도, 그녀가 내게 준 이 두 번째 기회도 받을 자격도 없었다. 그녀의 도움도, 그녀의 사랑도, 그녀의 미소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적막 속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 내 서재 문이라는 사실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트리스탄?” 그 목소리를 듣자 나는 재빨리 몸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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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발레리 눈을 뜨자마자 트리스탄에게서 온 새 메시지들을 보고도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다행히도 아직 혼자였다—나는 눈물과 감정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부모님이 망설임 없이 나를 밀어냈던 것처럼, 나 역시 그것들을 밀어냈다.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은 내 뱃속의 소중한 생명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를 것이고, 오랫동안 부모님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눈을 뜨자 이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용은 단순한 메시지였다. 같은 카페에서 만나자는 말이었다. 아직 하늘은 어두웠고, 지금이라면 갈 수 있었다. 문제는 단 하나였다. 내가 정말 그를 만나고 싶은가?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는 가장 적나라하고 나약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후… “넌 내 메이트였지만, 난 널 거의 알지 못했어. 그리고 널 알게 된 뒤에야, 내가 얼마나 진작 널 알고 싶었는지 깨달았어.”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사과보다도 그 말이 훨씬 더 내 혼란을 흔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용서를 받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이거나, 내 도움을 바라는 말이라고 넘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가 나를 위로하거나 기분을 나아지게 해 줄 이유는 없었다. 하물며 그런 말까지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는 원래 거짓으로 꾸며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 점만큼은 분명했다. 그를 바라보지 않아도 목소리에 담긴 진심만큼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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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발레리 우리는 다음 날 그곳으로 향했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다른 팩 대표들의 떠들썩한 관심과 호기심도 점차 사그라들었고 팩 내부 역시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갔다. 점심 연회에 한두 번 불참하거나 하루 종일 호텔에서 쉬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도시 중심부에서 머물고 있었기에, 이 근처에서 누군가와 마주칠 가능성도 낮았다. 그래서 우리는 꽤 철저히 변장한 상태였지만, 전보다 훨씬 마음을 놓고 함께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트리스탄이 운전해 우리를 팩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한산했다. 인간들과 달리 우리 늑대인간은 드문 불치병이나 큰 부상, 혹은… 임신이 아닌 이상 병원을 찾을 일이 많지 않았다. 나는 몇몇 간호사들 곁을 지나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이에 대한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이번 생에서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것도 임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볍게 문을 두드린 뒤 우리는 그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루… 전 루나 발레리 님.” 그는 황급히 말을 고쳐 부르며 허리를 숙였다. “얼마 전에 팩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그의 시선이 내 배로 향하더니, 이내 얼굴에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와 만났던 건 임신 초기였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내 임신이 은폐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건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트리스탄이 말을 끊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슬픔과 두려움이 스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는 내가 아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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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발레리 축제의 몇 주간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짝맺기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내 알리스테어의 곁을 지켰다. 더 이상 핑계도, 자리를 비울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오찬과 만찬에 참석하며 그의 곁에 있었고, 다른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편 알리스테어의 구애는 자연스럽게 흘려넘겼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야 했다. 다른 일은 전부 잊고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내 시선은 계속해서 그에게 향했다. 트리스탄. 그는 더 이상 오찬이나 만찬을 피하지 않았다. 모든 행사에 참석했고, 아린의 곁을 지키며 사람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색하지도 않았다. 모두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날 내게 말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분명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행복한 척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 감정은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에서 드러났다. 아린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그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려다 멈추었고, 곧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원래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상처 입힐 때조차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차라리 예전의 차갑고 가차 없는 솔직함이 더 나았다. 지금의 가면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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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발레리 “그동안 당신이 몰래 하던 일이 이거였군요.” 알리스터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든 그가 화낼 권리는 없었고, 나를 다그칠 권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짜증은 곧 죄책감에 묻혀 사라졌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나는 그의 동반자로 이곳에 왔는데, 정작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그 반대의 행동만 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그에게 더 이상 트리스탄과도, 이 팩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바로 여기 있었다. “미안해요.” 나는 그가 더 말하기도 전에 먼저 사과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게 최선은 아니지만… 당신이 기대했던 동반자가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일이 생겼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에요.” 내 말이 끝나자 그의 분노는 조금 누그러진 듯했지만, 그는 내 뒤를 바라보며 눈빛을 굳혔다. “그래서 저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겁니까?” 그가 턱으로 트리스탄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애써 긴장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너무 티 내지는 말아요. 아무도 이 일을 알아서는 안 되니까요.” “그건 알겠네요.” 그가 내 손에 들린 마스크를 가리키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심이 어려 있었다. “그럼 두 분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그의 말에는 내가 금세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한 뉘앙스가 담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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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2)

발레리나는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입을 연 것만으로도 뜻밖이었지만, 하필 그 이야기를 꺼낼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님이 떠오르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게 조여 왔다. 그때의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소식을 들었을 당시에는 그 슬픔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죽음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전 알파와 루나는 우호적인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은 트리스탄을 데리러 갔다가 그의 손을 잡고 돌아왔고, 이후에는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팩 전체가 몇 주 동안 깊은 애도에 잠겼다. 그 시기의 일들은 대부분 희미하게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트리스탄만은 기억했다. 장례식장에서 본 그는 나보다 몇 살 많았지만, 눈동자 속이 텅 빈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채워 주고 싶었다. 너무 가까우면서도 너무 멀었다. 어쩌면 그때가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거리가 훗날 수년 동안 이어질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그와 단 한 번도 나눈 적 없는 주제였다. 애초에 그럴 기회조차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떨쳐 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무릎을 살며시 한 번 더 쥐었다. '전 여기 있어요.' 그렇게 전하고 싶었다. 무슨 이유로 그가 이 이야기를 꺼냈든, 나는 끝까지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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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트리스탄 피아노 선율이 귓가를 거슬렀다. 모든 것이 숨 막힐 만큼 답답했다. 이제 메이팅식을 위해 꾸며진 연회장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몇 주에 걸친 부정과, 며칠에 걸친 체념과 받아들임 끝에. 마침내 그날이 찾아왔다. 나의 메이팅식이었다. 단 한순간도 달갑지 않았다. 이곳에 서 있으니 첫 번째 메이팅식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는 지금과 전혀 달랐다. 화려한 축하도 없었고, 모든 것이 급하게 진행됐으며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축하연 도중 우리는 모두의 앞에서 서로가 메이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부모님과 앨린의 불평만 들으며 그녀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나는, 갑자기 그녀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에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겨우 열여덟이었다. 나보다 몇 살 어렸지만, 겉으로는 무척 침착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 눈으로 돌아보니, 그때 그녀는 분명 두려웠을 것이다. 어째서 나는 그때조차 앨린을 위해 그녀를 적대했던 걸까? 어째서 우리 둘 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을 그녀의 탓으로 원망했던 걸까? 그때 우리는 둘 다 어렸다. 둘 다 두려웠고, 둘 다 미숙했다. 그런데도 모두의 시선과 비난은 그녀에게 향했다. 나까지 포함해서. '발레리라면…' 목이 메어 왔다. 나는 무심코 객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너무도 익숙하게 외워 버린 단 하나의 자리. 알리스테어 바로 옆, 섀도 문 팩을 위해 마련된 좌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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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트리스탄 충격이 방 안을 짙게 감싸며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말이 모두의 가슴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켰는지 굳이 느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결코 거두지 않을 것이다. “알파… 트리스탄,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그녀의 아버지가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를 악문 채 발레리의 초록빛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어 그녀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창백하게 질린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 한편이 흔들렸지만, 그것은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들은 가족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나를 거두어 친아들처럼 키워 준 사람들이었다. 발레리에게 우리가 함께 저질렀던 일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깨달은 뒤에도, 나는 언제나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썼다. 그들이 대놓고 발레리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소리치고 싶을 때조차도 그랬다. 앨린의 방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녀를 향한 독설과 그 이후의 모든 순간에도 그랬다. 그들이 그녀를 대하는 방식에 분노하면서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더 혐오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선 이 남자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이번만큼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난 이 결혼도, 이 짝 의식도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의식은 제 의사와 상관없이 강요된 것이었습니다. 제 의무와 부족의 기대, 그리고 앨린이 갑작스럽게 임신을 발표한 이후의 상황이 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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