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석 달 전부터, 우린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해원의 눈이 가늘어졌다.“내 방에 들어왔다고?”“예.”“미쳤어?”지혁은 피하지 않았다.“그때는 마님이 누군지 몰랐습니다.”“남의 처녀 방은 누군지 몰라도 들어가?”“창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사람이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해원의 표정이 멈췄다.그날이었다.친정에서 혼담이 깨졌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술을 마셨던 밤.“그래서 들어왔다?”“쓰러지실까 봐.”“개수작 부리지 마.”“손 하나 안 댔습니다.”“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지혁이 붉은 댕기를 내밀었다.“이것만 가지고 나왔습니다.”해원은 댕기를 낚아챘다.“도둑이네.”“맞습니다.”“왜 훔쳤어?”지혁이 잠시 웃었다.“다시 보고 싶어서.”해원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그때부터?”“예.”쾅쾅!문밖에서 강우가 문을 두드렸다.“지혁아! 문 열어!”해원이 이마를 짚었다.“또 시작이네.”지혁은 문을 보지도 않았다.“무시하십시오.”“네 아버지잖아.”“지금은 경쟁자라면서요.”밖에서 강우가 악을 썼다.“야, 이 개자식아! 안에서 뭐 해!”지혁이 피식 웃었다.“들으셨죠?”해원도 웃었다.“부자가 나 하나 두고 이 지랄하는 게 안 창피해요?”“조금.”“그런데 왜 안 멈춰?”“아버지한테 지기 싫어서.”“결국 너도 똑같네.”지혁의 웃음이 사라졌다.해원이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누가 더 크니, 누가 더 잘났니, 누가 먼저 봤니. 결국 그거잖아.”“그건 아닙니다.”“아니긴.”그 순간 밖에서 강우가 소리쳤다.“해원! 저놈 말만 믿지 마!”해원이 문 쪽을 봤다.“또 뭐예요?”“석 달 전 그날, 지혁보다 내가 먼저 네 방에 갔어!”지혁이 벌떡 일어났다.“아버지!”해원의 눈빛이 바뀌었다.“문 열어.”“마님.”“열라고.”지혁이 마지못해 빗장을 풀었다.문이 열리자 강우가 들어왔다.“저 새끼가 네 방에 들어간 건 나 때문이야.”“무슨 뜻이에요?”강우가 지혁을 가
Last Updated : 2026-07-3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