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뒤, 우리는 드레스룸 앞에 서 있었다. 태윤의 맞춤 정장과 구두, 시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 쪽에도 청담동에서 맞춘 옷과 가방, 주얼리가 남아 있었다.“필요한 것만 챙기자.” 태윤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렸다.“나머지는?”“법무팀이 자산 목록 정리하게 둘 거야. 내 마음대로 팔거나 빼돌릴 상황도 아니고.” 예전의 태윤이었다면 모든 걸 지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는 물건보다 먼저 회사의 현금흐름과 직원 급여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편하게 돌려 입을 수 있는 옷과 속옷, 세면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병원에서 받은 임신수첩과 검사 서류를 가장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이건 꼭.” 태윤이 말했다.“알아.” 그는 자기 쪽에서 정장 두 벌과 셔츠, 운동복 몇 장만 넣었다. 유리 진열장 안의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문을 닫았다.“안 가져가?”“시간은 휴대전화로 봐도 돼.”“그 말 네가 하니까 이상하다.”“나도 알아.” 짐을 다 싸고 현관으로 나오면서 나는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던 날이 생각났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무서웠던 거실. 태윤이 서툰 아침을 만들어 줬던 주방. 싸우고, 울고, 다시 같은 소파에 앉았던 밤들.“미련 있어?” 문 앞에 선 태윤이 물었다.“조금.” 솔직하게 대답했다.“집은 장소이기도 하니까.” 그는 말없이 기다렸다.&ldquo
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